경계도시 2 (The Border City 2, 2009)
감독 : 홍형숙
출연 : 송두율, 정정희
(존칭은 생략한다. 그리고 이 글은 송두율의 저작을 전혀 읽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송두율이라는 인물과 사상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쓴 것이다)
[경계도시 2]와 [경계도시]를 연이어 보면서 일단 궁금했던 것은 사소하고 사적인 문제였다. [경계도시]에서 무슨 수를 쓰더라도 돌아오라고 조언했던, 송두율이 한국에 돌아오길 바라마지않았던 김지하는 한국에서 송두율을 만났을까 만나지 못했을까. 그가 조선노동당에 입당했다는 사실 앞에 배신감을 느꼈을까 아니면 그가 고초를 겪는 것을 보고 미안함을 느꼈을까.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서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오히려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속에서 되살아나는 것은 90년대 중후반에 일어났던 온갖 사회적인 사건들과 그에 얽힌 개인적인 경험담(영화와 직접 관련 있는 사건은 아니었지만 영화 중반에 등장하는, 어디서 무엇을 하시는 누구인지 이름도 나오지 않는 학창시절 은사님에 대한 씁쓸한 감정이 되살아났다). 이 글에서 떠벌일만한 건 아니고 친한 사람들에게는 나중에 얘기해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영화를 통해 어렴풋이 느껴지는 것은 송두율은 남한보다는 북한에 훨씬 기울어진 사람 아닌가 하는 것. 이 문제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고 싶었다.
영화를 보면서 눈에 밟히는 것은 그런 점이었다. 송두율이 조선노동당 입당을 형식적인 절차로 여겼다면 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원에서 요청했던 준법서약서는 왜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준법서약서가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서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인데 조선노동당이라는 특정한 정당에 입당할 것을 강요하는 행위 역시 그의 정치 및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조선노동당에 가입했다. 영화는 송두율이 순진했기 때문에 이런 사태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묘사하지만 오히려 그는 조선노동당에 입당했다는 것을 남한 사람들, 남한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 사실을 감출 수 있는 데까지 감춘 것 아니었을까. 영화에서 송두율이 김형태 변호사와 정면돌파 하자고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추론이 옳다면 송두율 자신이 감히 그런 문제까지 정면돌파를 시도할 만큼 순진하지는 않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물론 여기서 남한의 정보기관과 대면했을 때 그 문제가 밝혀지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면, 남한 정보기관에 의해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큰 어려움 없이 넘어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면 그건 또 송두율이 지나치게 순진했다는 이야기가 되겠지만.
그리고 또 하나. 송두율이 재판받는 부분에서 법정의 검사측이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은데, 경계인으로 살고자 했다면 남한의 모순을 비판하는 것처럼 북한의 모순도 비판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 말은 물론 보수진영에서 진보진영을 공격할 때 사용하는 상투적인 수작이기는 하지만 내용을 보면 이 점을 결코 쉽게만 생각할 수는 없다. 역설적이지만 우리 사회가 점차 민주화되면서 북한이 얼마나 사람 살만한 곳이 못 되는지가 밝혀지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송두율은 [경계도시]에서 북한의 주체사상을 우회적으로 비판하지만 북한이 그런 이데올로기 이상의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사회라는 것은 지금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고 송두율 역시 북측에 접근할 기회가 많았다면 좀 더 빨리 깨달았어야 하지 않을까.
영화에서 명백하게 선언하지는 않지만 이런 저런 정황으로 볼 때 북한에서 송두율을 이용하려고 했던 것은 분명하다. 송두율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김철수라는 가명으로 활동하도록 한 것, 형식적인 절차라고 쳐도 조선노동당에 입당하도록 한 것 등이 그렇다. 송두율을 대하는 북한과 남한의 태도를 보면 북한은 포섭하려고 하고 남한은 배제하려고 하는데, 소비에트의 몰락 이후 체제의 정당성을 선전해야만 하는 북한과 이미 국제사회에 편입되었고 체제 경쟁에서는 앞서나간다고 자부하는 남한의 입장 차이 아닐까? 더 정확히 말하면 남한의 지배세력의 중추를 이루는 보수 세력은 송두율을 국내 정치에 이용했고 북한은 대외 선전용으로 이용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몇 가지 사실 때문에 송두율이 노동당 정치국원으로 활동하지 않았다는 그의 주장은 오히려 신뢰할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송두율이 단순한 친북 지식인이 아니라 진짜로 권력을 가진 인물이었다면 자신이 남한에 들어갔을 때 어떤 일을 겪게 될지 모를 리가 없고, 또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것도 보이지 않으니까 말이다. 북한의 권력서열 23위라는 인물이 남한에 억지로 들어와서 재판을 받는 걸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송두율 교수가 구속되면서 활발하게 일어난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 그 불씨를 당기기 위해? 송두율이 예수도 아니고, 설령 그런 살신성인의 자세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되리라는 것까지 예측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앞에서 송두율이 북한에 더 가까운, 친북적인 입장이라는 것을 비판적으로 이야기했지만 남한 출신인 그로서는 당연한 것 아니었을까. 기자회견장에서인가 어떤 기자가 송두율에게 북측의 입장에 더 가까우므로 경계인이 아닌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남쪽 진영에 있던 사람이 남도 북도 아닌 경계에 서고자 하면 북쪽에 더 가까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이 그래야만 하는 것 아닐까. 최인훈의 [광장]에 나오는 이명준처럼 남에서도 북에서도 멀어지고자 한다면 그때는 어떤 입장에서도 가까워지지 않는 경계에 설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송두율은 양쪽에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양쪽 모두에 가까운, 그래서 통일의 다리가 되는 경계인이 되고자 했으며 이것이 그의 근본적인 비극이자 딜레마라고 생각한다. 양쪽 모두에 가깝고자 하나 박해받을 수밖에 없고 그럼으로써 진정한 경계인이 될 수 있다는 역설. 형제 간첩단 사건에 연루된 70년대의 서승, 서준식 형제를 비롯해서 비슷한 입장을 취한 사람들도 이런 고초를 겪었다. 모르긴 몰라도 북한에서도 송두율에 대해서 겉보기만큼 호의적이지는 않지 않을까?
남한의 보수 진영이 그를 국내 정치에 이용했다고 말한 부분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하고 싶다. 내 기억으로 2003년 무렵 남한의 보수 진영은 정권 탈환 실패로 인한 위기를 이념 논쟁을 이용해서 탈출하려고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니까 이런 흐름 아래서는 순진한가 순진하지 않은가가 중요한 상황은 아니었던 것이다. 개인으로서는 예측하기 힘든 정치적인 흐름이 있었고, 그것은 송두율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알 수 없는 것이었다. 평생 남한에서 활동했던 김지하가 순진하고 어리바리해서 송두율에게 빨리 돌아오라고 했던 것인가? 여하튼 송두율 사건이 일어날 때 대한민국은 여당과 정부에 이념 공세를 취하던 당시 야당이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이라는 카드를 빼들고 그것 때문에 오히려 역풍을 맞아서 총선에서 대패하는 흐름으로 가게 되었고, 총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당시 여당에서 의지가 있었다면 국가보안법 철폐 문제도 진지하게 다뤄볼 수 있었을 테지만 흐지부지하고 만다. 현대건설 CEO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이 지배하는, 그리고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 거꾸로 다수당이 된 지금 사람들은 국가보안법이란 게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억눌린 진실이 귀환하는 날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는 송두율이라는 한 인간을 바닥까지 몰아붙였던 그런 나라다. 국가보안법과 극단적 반공주의가 엄존하는 우리 사회는 마치 공동묘지를 밀어내고 그 위에 학교를 세웠다는, 그래서 언제 귀신이 나올지 모르는 옛날 학교괴담의 배경이 될 법한 그런 곳이다. 그래서 [경계도시]라는 다큐멘터리는, 나는 그것이 감독 스스로가 주장하는 거리두기라는 원칙에 얼마나 충실했는지는 잘 모르겠고(1편과 비교해서 보면 얼마나 거리를 두고 있는지는 물론 확연하게 드러나지만) 심지어 다른 빼어난 다큐멘터리보다 더 재미있고 충격적이라고 느낀 것도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시점에서 나와야 하고 사람들이 봐야 하는 시의적절한 다큐멘터리, 충실한 기록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원칙은 이명박 정권 아래서 많이 후퇴했다. 개인적으로는 후퇴하는 것도 어느 선 이하로는 절대 내려가지 않을 것이고 길게 보면 후퇴와 전진을 반복하면서 천천히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민주주의와 개인의 자유가 후퇴했을 때 그 안에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어떠한지, 어느 선 이하로는 절대로 후퇴해서는 안 될 것인지 이정표가 필요하다. 이 다큐멘터리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