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트 (The Mist)
감독 : 프랭크 다라본트
출연 : 토마스 제인, 로리 홀든, 마샤 게이 하든
<미스트>를 보고 나오는 길에 같은 영화를 본 누군가가 '이런 허망한 영화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싶다'고 큰 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제 생각과는 다르지만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갑니다. 사람들이 극장에 와서 보고 싶어하는 건 이런 비통한 영화는 아닐 테지요. 그래도 저는 이 영화가 근래 개봉작 중에서 가장 통렬한 결말을 지닌, 대단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미스트>를 되짚어 생각하면서 놀라는 것은, 이 영화가 정말 풍부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안개 때문에 마트에 갇힌 뒤 그 안개 속에 괴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 그 뒤로 마트 안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사건들은 진부한 해석일지도 모르지만 9/11 이후 바깥 세계가 자신들에게 적대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 미국인들의 공포와 히스테리를 그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스티븐 킹의 원작은 언제 출간되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미국의 이야기일까요? 거짓말 부문에 있어서는 혀를 내두를만한 대통령이 탄생한 대한민국에서 2008년을 보낼 저에게도 이 영화는 낯설어보이지 않았습니다. 신문 지상을 통해 불쑥 불쑥 나오는 몇 가지 이야기들은 이 사회가 사람들이 편안하게 자신의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기름값 인상이나 지구 온난화 같은, 우리가 기반하고 있는 문명과 환경의 불안정함을 보여주는 불길한 징조들도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 만난 택시 기사 아저씨는 금값이 계속 오르는 건 정말 심각한 현상이라고 한탄하시던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안개가 자욱히 낀 <미스트>의 세계와 같이 위험하며 불확실해 보입니다. 그 안에 과연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 갇힌 우리들이 어떻게 해야 계속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사회적인 맥락을 떠나서, <미스트>의 마트 안에서 벌어지는 광신자 카모디 부인과 드라이튼 등의 대결은 인류 역사의 한 주제였던 광기와 이성의 오랜 투쟁을 생각하게 합니다. 광기는 어떻게 사람들에게 퍼져 나가는가? 광기가 어떻게 이성을 누르고 득세하게 되는가? 그런 이야기가 <미스트> 중반부의 주제가 됩니다. 특히 카모디 부인(마샤 게이 하든)은 안개는 신의 징벌이라고 말한 것에서 시작하여 인류의 달 착륙이나 줄기세포, 낙태 같은 일들이 신의 노여움을 불렀다고 말하는 장면이 놀라웠는데, 보통의 SF 영화에서 누군가 사건이 크게 번진 뒤에 반성한답시고 인류의 어리석음과 오만 운운하면 유치해 보이지만 <미스트>에서는 이야기의 맥락도 다르거니와 그게 카모디 부인이 보여주는 광기의 절정을 이뤄서 정말 대단하게 보입니다.
<미스트>는 또한 인간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인간이 극한 상황에서 자신들로서는 필연적인, 최선의 선택을 하더라도 그게 반드시 최선의 결과로 이어질 수는 없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최악이 되기도 하겠지요. 마치 안개 속을 걷는 것처럼, 인간은 자신의 앞날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미스트>의 주인공 드레이튼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고, 그의 마지막 선택도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최악이었으며 그 선택은 앞으로 남은 그의 삶마저 찢어버릴 것입니다. 그게 불확실성에 갇힌 인간이라는 존재의 한계인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찢겨 나가는 인간의 모습도 그렇거니와, 제일 어리석은 선택을 했던 사람이 가장 최선의 결과를 얻었다는 사실(군용 트럭 위에 타고 있던 생존자 중의 한 사람은 8살 된 아이가 있다며 안개가 처음 끼었을 때 마트를 당당히 걸어나갔던 젊은 여자였죠)은 아이러니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스타일 면에서 <미스트>에서 재미있었던 부분은 간간이 이용되는 헨드헬드 카메라와 줌인이었습니다. 다시 확인을 해야겠지만 안개가 끼기 전까지 마트에 모인 사람들을 보여줄 때 이런 기법이 자주 사용되는 것 같은데, 다른 재난 영화와는 달리 막상 괴물이 마트를 공격할 때는 이런 기법이 쓰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건 특기할만한 점으로 보입니다.
추신
가장 기가 막혔던 건 마트에 대형 곤충들이 몰려오던 장면. 드레이튼은 앞에서 벌레가 불을 보고 모여드니 빨리 불을 끄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놀란 마트 직원들은 오히려 불을 켜면서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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