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라 (修羅, Pandemonium, 1971)
감독 : 마츠모토 토시오
출연 : 나카무라 가츠오, 산조 야스코, 카라 주로
<수라>는 드물게 만날 수 있는 강렬한 비극으로, 이 영화는 일본판 <햄릿>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정성일 씨의 설명에 따르면 <주신구라>와 <토카이도 요츠야 괴담>을 합쳐 놓은(그러나 이러한 설명이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이 영화는 주군의 복수를 해야 한다는 집단적인 의지에 종속된 한 우유부단한 사무라이가 몰락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종종 한 컷을 여러 번 반복해서 보여주는 촬영은 그의 우유부단함은 물론 피하고 싶은 극한 순간까지 잡아 채서 보여준다. 이 영화의 흑백 화면은 어둠과 암흑 그 자체이다. 그리고 주인공인 겐고베가 칼질을 할 때마다 흩뿌려지는 피의 질감은 시뻘건 피보다 더 끈적거린다.
게이샤 코만이 겐고베에게 영원히 당신만을 사랑하겠다는 표식이라고 보여주는 맹세의 고다이리키는 그의 진짜 남편인 산고로가 몇 글자를 더 새기자 '산고로 사랑'이 되어 버리는데, 이 번역은 아주 재미있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우스운 장면들은 겐고베의 상상 장면에서 나타나는데, 그런 요소들 조차 겐고베 개인의 모순을 드러낸다.
악질 경찰 (Bad Lieutenant, 1992)
감독 : 아벨 페라라
출연 : 하비 케이틀, 프랭키 쏜, 빅터 아르고
오승욱 감독의 말처럼 <악질 경찰>은 일년에 하루 쯤, 그동안 지은 죄를 뉘우치고 싶은 날에 보면 좋을 영화다. 마약과 도박에 쩔어 있고, 운전면허증도 없이 아빠 차 몰고 나온 여자애들 협박해서 그 앞에서 자위나 하는 막장 형사의 인생은 뉴욕 메츠가 월드시리즈 3연패 뒤 기적같이 LA 다저스를 한 게임, 한 게임씩 꺾어가면서 종말로 치닫는다. 형사가 마약 딜러에게 무슨 돈인지 3만 달러를 받고 계단을 걸어 내려오는 장면은 그의 두려움과 고통을 너무 실감나게 전달해 주고, 범인들을 보낸 후 울면서 걸어가는 그의 뒷 모습을 묵묵히 보여주는 데에 이르게 되면 그 숭고함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게 된다. 누군가의 말대로 <악질 경찰>의 형사는 사람이 왜 이렇게 살까 한숨을 쉬게 만드는 사람이지만, 그의 행보를 통해서 인생에 대한 한가닥 희망의 끈을 남겨준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이 형사가 과연 구원받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데, 이 대답은 사람마다 다를 것 같다.
이 영화에서 마약을 하는 장면은 거의 리얼타임이었다고 들었다. 반대로 멜빌의 영화에서는 옷을 갈아입는 장면이 리얼타임으로 나온다. 그리고 대사가 좋다. 극중 마약 중독자로 나오는 조 타멀리스가 말하길, "흡혈귀는 좋겠어. 남의 피를 빨아먹으니까. 우린 우리의 살을 씹어먹어야 해."
퓨너럴 (The Funeral, 1996)
감독 : 아벨 페라라
출연 : 크리스토퍼 워큰, 크리스 펜, 빈센트 갈로, 아나벨라 시오라, 베니치오 델 토로, 이자벨라 로셀리니
쟁쟁한 배우가 워낙 많이 나오는 영화지만 그 중에서도 눈에 뜨이는 것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둘째 체자리노 역으로 나오는 크리스 펜. 저렇게 대단한 배우가 있었나? 자신의 타고난 폭력 성향을 억누르는 크리스 펜의 연기나 'Tonight will be the night'을 열창하는 크리스 펜의 모습은 머릿속에서 지우기 힘들다. 그러나 이해하기 쉬운 영화는 아니었다. 오승욱 감독의 평에 따르면 이 영화가 <대부>보다 낫다는데, 나는 <대부>를 보지 못했으므로, 그리고 이 영화를 다 이해하지 못했으므로 판단은 보류.
복수의 립스틱 (Ms.45, 1981)
감독 : 아벨 페라라
출연 : 조 타멀리스, 알버트 신키스, 달린 스투토
뉴욕에서 재단사로 일하고 있는 데나는 말을 하지 못하는 여성으로 퇴근길에 괴한에게 강간을 당하고 간신히 집으로 돌아가지만 숨어서 기다리고 있던 강도가 그녀를 강간하려 한다. 강도를 다리미로 때려 죽인 데나는 분노와 공포를 이기지 못한 나머지 남자가 갖고 있던 총을 들고 복수를 한다. 이 복수는 백인 사진작가, 흑인 남성(빚쟁이? 포주?), 사우디 아라비아 사업가, 애인과 히히덕거리는 동양인 청년(실패!) 등 인종과 계급을 가리지 않고 이어지더니 나중에는 할로윈 파티장에서의 학살극으로 마무리된다. 어둡고 공포스러운 분위기 속에서도 황당한 아이디어와 활력이 넘치는 영화인데, 이제까지 총도 한번 안 잡아본 것 같은 데나가 갑자기 명사수로 변하고, 또 암시장이라도 알고 있었는지 총알도 어디선가 잘도 구해온다. 갱들은 쌍절곤을 휘두르고(킹 뉴욕에서는 로렌스 피쉬번이 주윤발처럼 쌍권총을 쥐고 싸운다) 데나가 갱에게 총을 쏘는 장면의 박력은 최고.
주연인 조 타멀리스는 <악질 경찰>의 각본가로 <악질 경찰>에서 하비 케이틀이 마약을 하는 장면에서도 잠깐 나온다. 아주 매력적이고 재능있는 여성이었으나 일찍 세상을 떠났다.
셜록 주니어 (Sherlock Jr. 1924)
감독 : 버스터 키튼
출연 : 버스터 키튼, 캐트린 맥과이어, 조 키튼
이번 <셜록 주니어>는 연주 상영이었는데, 영화가 활기차고 우스꽝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몽라 씨가 연주하는 음악은 우울하고 구슬펐다. 왜 코미디 영화에 그런 슬픈 연주를? 연주를 듣고 되짚어서 생각해 보니, 버스터 키튼은 영화 속에서 거의 웃지 않는다. 그 한결같은 우울한 표정이라니.
이 영화에는 버스터 키튼 특유의 스턴트가 펼쳐지며 그와 더불어 놀라운 장면도 있는데, 영사기를 돌리다 잠이 든 버스터 키튼의 영혼이 자신의 몸에서 빠져 나와 스크린 속으로 들어간다. 그는 거기서 명탐정 셜록 주니어가 된다. 꿈과 현실은 물론 스크린과 스크린 밖의 세계가 하나가 된다.
라탈랑트 (L'Atalante, 1934)
감독 : 장 비고
출연 : 장 다스테, 디타 파를로, 미셸 시몽
<라탈랑트>는 파리와 그 외 도시들을 오가는 바지선인 라탈랑트 호의 선장인 장과 그의 젊은 아내 줄리엣의 이야기다. 시골 출신인 줄리엣은 라디오를 통해 들은 파리를 동경하고, 줄리엣이 떠나갈까봐 노심초사하던 장은 줄리엣이 몰래 파리에 외출하자 분노한 나머지 그녀를 두고 떠난다. 왜 이 영화를 특별하다고들 하는 걸까 좀 의아해 하면서 봤지만 정말 아름다운 장면이 하나 있었다. 줄리엣은 장에게 얼굴을 물 속에 집어넣고 눈을 뜨면 진정한 사랑을 볼 수 있다는 낭만적인 이야기를 하고, 나중에 줄리엣을 버린 뒤 그녀가 보고싶은 나머지 폐인이 다 된 장은 물속에 뛰어든다. 물속에 뛰어든 장이 열심히 헤엄을 치면, 줄리엣이 춤을 추는 모습이 환영처럼 나타난다.
우묵배미의 사랑 (A Short Love Affair, 1990)
감독 : 장선우
출연 : 박중훈, 최명길, 유혜리
<우묵배미의 사랑> 같은 영화를 만들었던 장선우 감독은 분명히 범상한 감독이 아니었던 것 같다. 불과 30대 중반의 나이에 이 걸출한 두 번째 연출작을 만들었던 장선우 감독은 이제는 연락을 하려고 했는데 연락처를 아는 사람이 없어서 하지 못했다(시네마테크 관계자의 전언)는 사연의 주인공이 되어 버렸다.
도시 빈민으로 살다가 다시 도시 주변의 시골로 밀려난 배일도의 '폼나게 살아보자'는 열망과 남루한 삶에 대한 한탄을 보면, 멀리 사라져버린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모두 80년대와 70년대의 아이들이며 그 시절의 열망이 아직도 우리의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허풍치기 좋아하는 건달인 배일도나 남편을 윽박지르는 그의 억척스런 아내, 심지어는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민공례의 남편까지 누구 하나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영화. 박중훈의 건달 연기는 지금 봐도 정말 재미있다.
뽕 (Bulberry, 1985)
감독 : 이두용
출연 : 이미숙, 이대근, 이무정
에로물의 대명사로 알려진 <뽕>은 굉장히 풍부한 영화였다. (특히 마을에서 쫓겨나게 된 안협집이 진사를 유혹하는 장면에서 보이듯) 해학적이지만 비극적인 울림까지 갖고 있는 영화로 안협집이 마을 아낙들에게 몰매를 맞는 장면이나 결말 부분이 특히 그렇다. 이두용 감독은 대사 한 마디 쓰지 않고도 안협집의 남편이 실은 독립운동가이며, 앞으로도 계속 일경의 감시를 받으며 살아갈 처지임을, 그리고 안협집이 앞으로도 마을 남자들에게 웃음을 팔며 살아가야 함을 암시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재미있는 것 중 한 가지는 인물을 묘사하는 방식이다. 이대근이 연기한 머슴 삼돌이가 처음 등장할 때 그가 돌절구를 들어올리기 위해 일어서자 소 울음소리가 들려오는데, 그는 소같은 인물이지만 영화 내내 근면하게 일하는 대신 발정이 난 것처럼 군다.
최후의 증인 (The Last Witness, 1980)
감독 : 이두용
출연 : 하명중, 정윤희, 최불암, 이대근
검열로 난장판이 되었다는 이 영화는 권력을 가진 자들의 탐욕에 찢긴 부역자 출신 황바우와 손지혜의 일생을 그려낸다. 살인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면서 아울러 이들의 존재와 그 생을 알게 되는 인물은 하명중이 연기하는 오병호 형사인데, 엘리트 출신의 오병호 형사는 이미 아내를 잃은 상태이며 영화가 진행될수록 점점 죽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황바우와 손지혜의 자취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는데, 이동하는 내내 끄덕끄덕 졸고 있다.
황바우가 지나칠 정도로 순박하고 어질며(아예 손지혜나 오병호가 황바우를 황바우님이라고 부른다. 감독의 황바우라는 인간형에 대한 숭배가 드러나는 부분이랄까) 그가 어떤 인물인지가 다른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직설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감독이 시대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면서 오히려 황바우가 입체감을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보면서 우는 관객들도 많았지만 영화적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나는 오히려 이두용 감독의 다른 영화를 들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냉전과 반공 이데올로기로 얼룩진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정직하게(어쩌면 가장 정직하게) 보여주고 있는, 마땅히 재평가되어야 하는 영화라는 점에는 이의가 없다. 이 영화의 주연인 하명중은 굉장히 매력적인 배우인데, 시간이 흘러가면서 영화 출연이 뜸해졌던 것 같다.
피막 (The Hut, 1980)
감독 : 이두용
출연 : 유지인, 남궁원, 황정순
무당 옥화가 강씨 집안에 쓰인 액을 쫓기 위해 굿을 하면서 과거 이 집안의 며느리와 피막지기 삼돌이를 죽이는 데 관련되어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죽어나간다. 영화는 신비한 분위기를 잘 이끌어가다가 갑자기 모든 죽음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을 하고 싶어하며, 그러면서 아주 이상하게 끝났다. 피막에서 기도를 하고 있던 옥화의 정체가 밝혀지는 장면에서의 음악도 아예 동떨어진 음악을 쓰고. <피막>은 많이 아쉬웠지만 형편없다고 할만한 영화는 절대 아니다. 특히 유지인의 신비로운 아름다움은 최고.
내시 (Eunuch, 1986)
감독 : 이두용
출연 : 안성기, 이미숙, 남궁원, 길용우, 변희봉, 현길수
이두용 감독의 영화 가운데 <내시>가 가장 재미있었다. 이 영화의 왕은 아마 연산군을 모델로 한 것 같은데 역사적 사실과 관련이 있는 건 아니다.
이 영화가 재미있는 것은 1980년대 중반에 나온 영화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전복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 어떤 장면이 있느냐면, 후궁으로 들어온 자옥 대신에 하녀인 길녀가 왕과 잠자리를 같이하게 되고 자옥은 왕의 잠자리를 지키는 입직상궁 노릇을 하게 되는데, 같은 날 입직상궁 노릇을 하게 된 다른 궁녀는 왕의 신음소리가 들리자 흥분해서 자옥의 손을 꼭 잡는다. 이렇게 동성애적 감정을 노골적으로 묘사한 작품이 이전 한국영화에서 또 있었을까? 또한 왕의 약을 지어올리는 내시인 변희봉이 내시감 남궁원의 품에서 숨을 거두는 장면도 있다. 게다가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남궁원이 비인간적인 제도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왕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는 내시라니, 그 당시 상황에서 꽤 아슬아슬한 내용 아닌가?
글로리아 (Gloria, 1980)
감독 : 존 카사베츠
출연 : 지나 롤랜즈, 존 아담스, 톰 누난
2008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중에서 단 한 편을 고르라면 <글로리아>를 선택하겠다. 화질 나쁜 비디오로 볼 때는 그렇게 생각 안 했지만 스크린으로 보니 얼마나 재미있던지. <복수의 립스틱>과 <글로리아>는 모두 여자가 총을 쏘는 여자고, 또 최고로 박진감 있는 사격씬을 가진 영화이기도 하다. 심지어 <복수의 립스틱>에서 데나가 흑인 갱에게 마지막 사격을 할 때는 박수를 치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그리고 둘 다 필름이 약간 붉게 변색되어 있었다. <글로리아>는 세계적으로 프린트가 몇 벌 남아있지 않았는데 정말 힘들게 구했다고 들었다.
전과가 있는 중년 여성 글로리아(영화에서 내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보고 있으면, 글로리아의 본명이 진짜 글로리아인지 문득 의심하는 마음이 든다)는 부모를 마피아에게 잃은 여섯 살짜리 필을 데리고 도망치게 된다. 영화에 나오는 대사처럼 마피아 조직이라는 시스템에 맞서 유유히 도망치는 둘의 모습은 엄청난 쾌감을 준다. 특히 두 장면에 놀랐는데, 처음의 우발적인 총격장면, 그리고 글로리아와 필이 피츠버그로 가는 열차를 타려다 갱들과 만나는 장면이다. 필과 글로리아가 식당에 앉아서 음식을 시키고 덩치 큰 웨이트리스가 두 번 왔다가면 화면 한 쪽의 빈 자리에 어느새 갱들이 앉아 있다. 이 장면을 보면서 놀랐다.
또, 글로리아가 필을 묘지로 데려가 가족들에게 인사하게 하는 장면도 좋았다. 필이 아무 묘지나 붙잡고 죽은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고 오면 글로리아는 묘지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는데, 이 장면을 보면 글로리아의 과거가 느껴진다.
택시 드라이버 (Taxi Driver, 1976)
감독 : 마틴 스콜세지
출연 : 로버트 드 니로, 조디 포스터, 시빌 셰퍼드, 하비 케이틀
트래비스 비클은 위험한 사이코다. 그가 베트남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창녀나 뚜쟁이, 마약 중독자 같은 도시의 쓰레기들을 쓸어버려야 된다고 믿고 있다. 그는 여자도 증오한다(여자들은 다 똑같다). 유영철과 다른 점이 있다면 트래비스 비클은 타인을 구함으로써 자신의 고독을 극복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Bonnie and Clyde, 1967)
감독 : 아서 펜
출연 : 워렌 비티, 페이 더너웨이, 진 해크먼, 마이클 J. 폴라드, 에스텔 파슨스, 진 와일더
어설프기 짝이 없는 은행강도인 클라이드 배로우와 보니 파커는 자신의 형과 C.W. 모스 같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면서 '배로우 갱'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들이 의적도 아닌데 가난한 사람들은 이들의 편이다. 자신들을 대신하여 은행에 손해를 입히는 데서 만족을 느꼈는지, 아니면 이런 사람들이 대공황기에는 일종의 스타였는지.
이들이 유진 그리자드의 차를 훔치면서 가끔 신경질적이긴 했지만 유쾌했던 영화의 분위기가 바뀐다. 이들과 동행하게 된 유진 그리자드는 자신의 직업이 장의사라고 답하는데, 그 말을 들은 보니 파커는 유진과 그 애인 벨마 데이비스를 차에서 내리게 한다. 그때부터 영화에는 종말과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부드러운 살결 (La Peau douce, 1964)
감독 : 프랑수아 트뤼포
출연 : 장 드사이, 프랑수아 도를레악, 넬리 베네데티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프랑수아 트뤼포 영화는 재미없다는 선입견을 버리게 됐다. 이렇게 통속적이면서도 섬세한 이야기를 하는 감독이었다니. TV에도 출연하고 지방으로 강연도 다니는(영화에서는 그가 앙드레 지드를 두 번 만난 것으로 되어 있다) 저명한 지식인인 피에르 라쉐니는 젊은 스튜어디스인 니콜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유부남이자 명사인 그가 위험한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다. 영화는 피에르와 니콜, 그리고 피에르의 아내인 프랑카의 사랑과 고통을 그대로 전한다. 누구 하나 편들 수 없으면서도, 누구 하나 비난할 수 없는 영화.
재미있는 장면 하나. 피에르가 비행기에서 니콜을 처음 보게 됐을 때 그녀가 신발 갈아신는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게 되는데, 나중에 호텔에서 그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갈 때 방 문앞마다 신발이 놓여 있다.
이웃집 여인 (La Femme d'à côté, 1981)
감독 : 프랑수아 트뤼포
출연 : 제라르 드 파르디유, 파니 아르당, 앙리 가르생
8년 전 헤어진 연인이 나란히 옆집에 살게 되고, 그들 사이에 옛 감정이 되살아나면서 결국 파멸해 간다는 이야기다. <부드러운 살결>과 유사한 요소를 몇 개 발견할 수 있는데, 불륜 혹은 두 사람의 과거의 관계가 발각되는 것은 사진 때문이다. 화면이 갑자기 멈추는 이미지가 결정적인 순간에 쓰이고, 주인공의 배우자 혹은 주인공은 상대방의 흐트러진 침대를 보면서 옛 기억을 떠올리거나 고통을 받는다.
다만 <부드러운 살결>이 삼각 관계였다면 <이웃집 여인>은 더 넓어졌다는 차이가 있다. 영화는 주브 부인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하는데 그녀의 고통스러운 사랑은 영화의 주요한 모티브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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