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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1/10 수라 - 정성일의 영화 해설과 함께 보았습니다. by Wolverine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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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이 이번 2008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상영작으로 <수라>만 고른 것은 아니고, 그가 고른 영화중에는 몬테 헬만 감독의 작품도 있었지만 몬테 헬만은 2007년 부천에서 이미 소개된 터라 이 영화가 상영되게 되었습니다.
정성일이 영화 찍다가 엎어졌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는 처음 영화 소개를 시작하면서, 자신이 만든 영화를 갖고 이 자리에 오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하게 되어 다른 영화를 소개하게 됐다는 식으로 얘길 하더라고요. 그리고 자기는 이 자리에서 다른 영화를 소개하고 싶었는데, 그것은 자신이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중에서 이 영화를 본 사람은 열 명도 못 만나봤기에 그 수를 늘리고 싶지 않아서(물론 농담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가 취향의 영화이기 때문이랍니다. 그것은 그의 말에 따르면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는 영화라는 뜻입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영화를 두 가지로 구분했는데, 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이나 장 르누아르의 <게임의 규칙>,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 타르코프스키의 <거울> 등등의 영화들은 의무감에서라도 한번쯤 봐 줘야 하는 영화, 혹은 "나는 이 영화가 정말 싫다"고 말하는 사람을 보지 못한 '친구들의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은 영화들이 나오는 더 세분화된 이야기였지만 이것밖에 기억을 못 합니다. 한 가지 이의가 있다면 정성일 씨 주변이 아니라면 그런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꽤 많을 것 같다는 사실). 반면 누군가 "나는 1년에 한번쯤은 <살로, 소돔>을 보고 싶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저 사람과 계속 친구로 지내야될지 고민하게 되고, 또 이탈리아 영화를 좋아한다면 카를로스 베네(누군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제가 잘못 알아들었던지)에서 시작해야(정확한 표현이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며 그런 영화를 '취향의 영화'라고 불렀습니다. 자신이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고를 영화는 앞으로도 취향의 영화가 될 것 같다는 말도 했고요. 정성일은 도쿄에 갔다가 <수라>를 보았다고 하는데, 일본의 한 여성 영화평론가 앞에서 이 영화가 너무 좋다는 얘기를 했다가 그가 자신을 기묘한 눈초리로 바라보자 "이 사람과는 친구가 되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얘기합니다.

정성일에 따르면 <수라>를 보면 어떤 사람은 이 영화를 정말 싫어하게 될 것이고, 반면 어떤 사람은 기립박수를 치며 이 영화를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누군가 이 영화를 싫어하더라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서요.
<수라>라는 영화는 말하자면 <주신구라>와 <토카이도 요츠야 괴담>을 결합한 영화인데, 실제로 영화를 보면 이런 설명은 의미가 없을 거라고 정성일은 말합니다. 영화는 처음에 컬러로 시작했다가 곧 먹을 뿌린 것 같은 흑백으로 전환하며, 밤만 끝없이 계속됩니다. <수라>는 일본 개봉 당시 흥행 참패했고, 관객들은 물론 평단의 반응도 그렇게 좋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수라>는 거의 잊혀진 영화가 되어 몇몇 해외 평론가들의 일본 영화 관련 서적에 등장하거나 소수의 관객들 사이에서만 기억되었습니다.

정성일은 수라가 개봉하고 나서 오시마 나기사와 이 영화의 감독인 마츠모토 토시오 사이에 벌어졌던 논쟁을 소개하는데, 오시마 나기사는 이 영화를 비판하는 장문의 글을 쓰면서 마지막을 이런 말로 끝맺었다고 합니다. "마츠모토, 영화를 그렇게 만들면 안 된다." 그에 대한 마츠모토 토시오의 반론은 이런 말로 시작한다고 합니다. "관객을 버려두어라." 마츠모토 토시오가 이 영화를 만들기 2년 전인 1969년 일본에서는 야스다 강당 사건이 일어났지만(강당 벽에는 "질 줄 알면서도 해야 하는 싸움이 있다"라는 낙서가 있었다지요), 곧 일본의 학생 운동은 이상하게 변질되어 그 다음 해에는 적군파가 동지들을 린치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정성일이 소개하는, 마츠모토 토시오가 그 당시 이 사건에 대해 쓴 글을 보면 그는 심한 절망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정성일이 가감없이 소개하는 그 글의 첫머리는 ㅅ으로 시작하는 두 글자 욕설이며, 그 글의 결론은 "이제 공동체의 환상을 포기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정성일의 말을 들어보면 마츠모토 토시오는 그 좌절과 환멸의 연장선상에서 이 영화를 찍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는 <주신구라>의 충신들이 모두 복수에 참가하지는 않았을 것이며, 그 중 누군가에게는 개인적인 일이 더 중요했을 거라는 발상에서 전개됩니다. 그리고 마츠모토 토시오는 거의 자살하는 심정으로 이 영화를 찍어갔다고 합니다.

영화에 대한 설명을 정리하면서 정성일이 하는 얘기는 놀라웠는데, 그가 말하길 영화를 사랑하고 시네마테크를 찾는 관객들을 자신은 친구라고 생각하지만 그 중에서도 xx에서 몇 월 며칠에 왕빙의 <중국 여인의 연대기>를 관람한 xx명의 관객들(물론 메모를 해 오고, 말할 내용을 정리해 오긴 했지만, 정성일은 영화를 상영한 장소와 시간, 그리고 그 영화를 본 관객들의 숫자까지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물론 듣고 잊어버렸습니다), xx에서 몇 월 며칠에 알베르 세라의 <기사에게 경배를>을 관람한 xx명의 관객들, xx에서 몇 월 며칠에 하루 종일 <필리핀 가족의 진화>를 보고 피곤한 몸으로 극장을 나서던 xx명의 관객들을 자신은 동지라 부르고 싶다, 그리고 <오늘 <수라>를 보러 온 관객들, 보고 이 영화를 사랑하게 될 관객들도 동지라 부르고 싶다고 얘기하면서 끝을 맺었습니다.

정성일의 말대로 영화를 보고 나서 저는 의문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도대체 이런 영화를 어떻게 싫어할 수가 있는지. 저는 영화 초반부에서 잠깐 졸았는데(주인공인 겐고베가 거사에 쓰라고 주민들이 모아 준 100냥을 받는 장면, 그리고 그 100냥을 가지고 고만을 데리고 있는 패거리들을 찾아가는 장면까지), 깬 뒤로는 정말 정신없이 봤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겐고베는 일본의 햄릿입니다. 관객들을 압도하는 강렬한 비극, 커다란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떨어지는 오프닝부터 시작해서 흑백 화면과 끈적끈적한 피의 질감, 게다가 유머까지 보여주는 이 영화가 너무 대단하고 재미있어서, 이 영화에 비하면 나카가와 노부오 감독의 <토카이도 요츠야 괴담>도 조금 처지는 것 같이 보일 정도입니다.

올해 들어 저는 <밀양>, <아메리칸 갱스터>, <헨젤과 그레텔>, <다즐링 주식회사> 같은 영화를 봤는데 모두 훌륭한 영화들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수라>는 발견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감스러운 것은,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통틀어 이 영화는 단 두 번밖에 상영을 안 한다는 겁니다. 그 중에서 한번은 이미 지나갔고, 남은 분들은 27일 일요일 저녁에 하는 영화를 기다릴 수밖에 없을 겁니다. 정성일 같이 대단한 평론가가 관객들의 호오가 갈릴 영화라고 했지만 저는 오만하게도 이 영화를 놓치면 후회할 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영화가 마음에 안 들었다고 욕하신다면 엄숙하게 받아들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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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lver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