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3'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08/03/31 존 휴스턴 회고전에서 본 영화들 이야기 by Wolverine
  2. 2008/03/28 시에라 마드레의 보물 by Wolverine (2)
  3. 2008/03/24 시네마테크 부산의 월드시네마 V 관람기 by Wolverine (2)
  4. 2008/03/17 플래닛 테러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by Wolverine (3)
  5. 2008/03/17 기담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by Wolverine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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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휴스턴. 1미터 88의 키에 20승이 넘는 전적을 가진 훌륭한 권투 선수이자 모험가인 사나이 중의 사나이. 5번의 결혼을 한 남자. 도박과 사냥에 미치기도 했으며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남는 시간에 영화를 찍었다는, 그래서 프랑스 평론가들에게는 외면당했다는 사람. 잭 니콜슨조차 상대가 되지 않았다고 하는 재능있는 배우. 스튜디오에서 원하는 영화를 찍었을 때는 흥행하고, 자신이 간절히 만들고 싶은 영화를 찍었을 때는 망했다는 감독.
 
아주 간단하게 리뷰를 끄적거린 <시에라 마드레의 보물> 이외에도 며칠 동안 <키 라르고>, <미스터 앨리슨>, <팻 시티>, <이구아나의 밤>, <죽은 자들>을 보았다. 일요일 <죽은 자들> 상영 후 김영진 평론가와 김성욱의 프로그래머의 대담을 보았는데, 대담에서 나온 얘기에 따르면 존 휴스턴 감독의 영화에서는 감독의 고유한 색을 찾기 힘들고, 특히 명장면이라고 부를만한 것을 찾기 힘들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평론가들은 존 휴스턴 영화의 특징 같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내가 본 영화들만 가지고 이야기하자면 그 안에서 보이는 게 몇 가지 있었다.

<키 라르고>의 제임스 템플(라이오넬 배리모어)은 아들을 전쟁에서 잃고, 미망인이 된 며느리 노라(로렌 바콜)와 함께 키 라르고 섬에서 라르고 호텔을 운영한다. 그는 키 라르고 인근의 인디언들과 가깝게 지내는데, 노라가 프랭크(험프리 보가트)에게 말한 바에 따르면 그 인디언들에게는 제임스 템플이 미국이나 마찬가지다. 한편 키 라르고 호텔에 묵게 된 자니 로코(에드워드 G. 로빈슨)는 미국에서 추방된 전설적인 갱스터로, 그에 따르면 미국의 권력, 권력자들은 모두 그를 비롯한 어둠의 세계이다. 두 개의 미국이 한 호텔방에 갇히고, 밖에서는 압도적인 허리케인이 몰아친다.

말하자면 그런 것들이었다. 다른 종족과 문화를 영화에 끌어들이고 그것을 예의바르게 관찰하고 주시하는 탐험가로서의 시선. <미스터 앨리슨>에서 해병 앨리슨(로버트 미첨)은 날생선을 못 먹는 안젤라 수녀(데보라 카)를 위해 일본군 막사에 숨어들어 음식을 훔치는데, 일본군의 눈을 피해 막사의 구석에 숨은 그는 일본군 병사들끼리 다정하게 바둑을 두고, 즐거이 정종을 나눠 마시는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게 된다. 앨리슨은 일본군을 적으로 간주하지만, 그 장면은 적을 보는 시선과는 거리가 멀었다. <시에라 마드레의 보물>과 <키 라르고>는 인디언들의 생활을 관찰하는 듯 바라보며, <이구아나의 밤>에서도 섀넌 목사(리차드 버튼)가 버스를 세우고 인디언들의 빨래터를 바라보는 장면이 있었다. 그것은 여행자의 시선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었다. 타문화에 대한 관용적이고 호의적인, 들러리로 취급하지 않는 따뜻한 시선. 이런 요소는 모험가였던 존 휴스턴의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하나의 표지로 보이고, 좀 더 근본적인 것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키 라르고>와 <미스터 앨리슨>, <시에라 마드레의 보물>에서 인간들은 압도적인 자연력(<키 라르고>의 허리케인이나 <시에라 마드레의 보물>의 혹독하고 척박한 환경), 혹은 불가항력적인 외부의 힘(<미스터 앨리슨>의 일본군)에 부딪친다. 그 자연력은 사람들의 마음까지 흔들어버리기도 하는데, 그 힘과 마주친 인간들은 한 공간으로 들어가고, 같은 공간 안에 머무르게 된 그들은 극도로 이질적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닮아 있기도 하다. 서로 이질적일 때는 <키 라르고>나 <시에라 마드레의 보물>처럼 충돌을 일으키고, 이질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동일하다는 걸 발견할 때는 <미스터 앨리슨>처럼 융화한다. 미국이라는 나라, 미국 사람들의 두 얼굴.
내가 본 범주 내에서 <키 라르고>와 <미스터 앨리슨>, <시에라 마드레의 보물>을 한 묶음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면, <죽은 자들>과 <팻 시티>, <이구아나의 밤>은 한 가지로 이야기할 수 없는, 서로 다른 영화들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들에는 쇠락과 죽음이 드러나 있었고, 특히 죽음을 의식하고 있었다.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을 영화화한 <죽은 자들>은 묘지 위에 눈이 내리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산소마스크를 쓰고, 촬영장에 의사가 대기하는 상태에서 엄숙하게 찍은 영화.

1. <키 라르고>에 나오는 어느 장면. 자니 로코 때문에 몹시 화가 난 로라가 그에게로 바싹 다가선다. 따귀를 때릴 듯한 포스로 전광석화같이, 그의 가슴을 두 손으로 토닥토닥 두들기는데 웃겨 죽는 줄 알았다.

2. 일전에 구로자와 기요시가 우리나라에 왔을 때, 인생 막장에 몰린 권투선수 두 명이 나오는 영화 이야기를 했는데 나는 지금까지 그 영화가 <팻 시티>인 줄 알았다. 그런데 <팻 시티>를 보니 구로자와 기요시의 설명과 줄거리가 달랐다. 젊은 권투선수 한 명이 시합하다가 죽고, 그 선수를 돌보던 권투선수 출신 코치가 컴백해서 자기 선수를 죽인 상대 선수와 시합을 하는데 사실은 둘 다 모두 조금만 충격을 받으면 죽게 될 몸이고 경기가 시작하면서 끝난다는 영화는 과연 어떤 작품인가?

3. <차이나타운>에서 노아 크로스 역으로 나왔다는 사람이 존 휴스턴이라는 건 생각 못했다. 대담 도중에 <할리우드 영화사>라는 책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 책 1장이 <차이나타운>에 출연한 존 휴스턴 이야기란다. 찾아서 읽고 싶다.

4. 이마무라 쇼헤이에 대한 이야기가 대담 도중에 나왔다. 이마무라 쇼헤이가 죽기 얼마 전에 인터뷰를 했는데, 인터뷰 도중에 졸기도 하고, 방금 한 말도 잊어버릴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노인이 갑자기 어느 순간에 눈을 번쩍 뜨면서 나는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일본 사회를 인정해본 적이 없다고 일장 연설을 하더란다. 그리고 다시 정신줄을 놓으시더라는. 훌륭한 영화감독 혹은 예술가가 가질 수 있는 결기.

5. <이구아나의 밤>을 보니 박찬욱이나 오승욱 같은 감독들이 이야기하던 불균질함이란 게 뭔지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불안정한 영혼을 가진 성공회 목사(리차드 버튼)의 자기파멸적인 이야기로 시작하더니 육덕진 미성년자가 목사를 유혹하고 그 주변에 여자들이 나타나는 로맨틱 코미디로 이어지고, 다시 철학적인 성찰로 마무리되는 영화. 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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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라 마드레의 보물 (The Treasure of the Sierra Madre, 1948)

감독 : 존 휴스턴
출연 : 험프리 보가트, 월터 휴스턴, 팀 홀트

이 영화에서 보물(Treasure)이란 곧 황금이다. 낯선 멕시코에서 같은 미국인들에게 돈이나 구걸하면서 살아가던 돕스는 금을 찾는 일로 일생을 보낸 노인 하워드를 만난다. 돕스는 하워드에게 자기는 금을 보더라도 결코 욕심을 내지 않을 것이라고 자부하지만 욕심과 망상 때문에 일을 망치고 동료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바로 그 자신. 험프리 보가트는 악역으로 여러 번 출연했지만(예를 들면 <포효하는 20년대> 같은 영화) 그 중에서도 이렇게 찌질하게 나오는 작품은 찾기 힘들 것 같다.
특이한 관점이랄까, <시에라 마드레의 보물>에서 금을 찾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지만 모두 착한 사람들이며 게다가 현명하기까지 하다. 특히 하워드는 처음에는 일생을 금에 바치고 몰락한 노인으로 나오더니 나중에는 달관한 현인이 된다. 특히 그가 산에 고마움을 표시해야 한다며 채굴 현장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떠나는 장면은 주목할 수 밖에 없는데, 40년대 서양인들 중에서 저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었을까? 하워드의 사고방식은 왠지 동양적인 것처럼 보이지 않나? 돕스가 금 욕심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지른 뒤, 하워드는 운 좋게 살아남은 커틴에게 돕스는 악한 사람이 아니라 지나치게 (자기 욕심에) 솔직한 사람이었을 뿐이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는데, 그런 부분에서도 하워드의 통찰력이 빛난다.
무엇보다도 돕스와 하워드는 멕시코 사람들, 원주민들을 어떻게 대하느냐는 면에서 가장 크게 갈리는 것 같다. 하워드와 돕스 모두 스페인어를 할 줄 알지만 하워드가 말을 걸면 대화가 이뤄지고 돕스가 말을 걸면 싸움이 난다. 이 영화에 나오는 스페인어 대사는 자막도 나오지 않았으므로 스페인어를 모르는 관객들은 하워드를 통해 그 뜻을 걸러 들을 수밖에 없지만, 감독이 멕시칸 배우들을 단순한 엑스트라로 취급하지 않았다는 것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런 것들을 보면 이 영화의 정신은 정말로 높이 평가받아야 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멕시코 산적들이 마지막에 금을 버리다시피 한 건, 금이 뭔지 몰라서였을까, 아니면 그들에게 금이란 쓸모없는 물건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어느 쪽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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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 부산에 들른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지난 여름에 들렀을 때와 내부 시설이 약간 달라졌다. 보다가 잠들어버린 그런 영화들을 빼면 이번에 관람한 영화는 8편이었다. 8편 중에서 프리츠 랑의 <빅 히트>를 빼면 모두 처음 보는 영화들이었고.

욕망 (Blowup, 1966)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저개발의 기억 (Memories of Underdevelopment, 1968) 토마스 쿠니예레스 알레아
우든 클로그 (The Tree of Wooden Clogs, 1978) 에르마노 올미
과거로부터 (Out of the Past, 1947) 자크 투르뇌르
슬픔은 그대 가슴에 (Imitation of Life, 1959) 더글라스 서크
밀라노의 기적 (Miracle in Millan, 1951) 비토리오 데 시카
빅 히트 (The Big Heat, 1953) 프리츠 랑
가스등 (Gaslight, 1944) 조지 쿠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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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이나 <우든 클로그>는 처음엔 볼 생각이 없었는데, 보고 놀랐다. <욕망>은 살인 사건을 이런 식으로 다루는 영화가 있다는 점에서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주인공인 사진작가 토마스(데이비드 헤밍스)는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확대(Blowup)한 뒤 그곳에 시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직접 공원으로 찾아가서 시체를 발견하지만 돌아왔을 때 시체는 이미 사라져 버린 뒤였다. 너무나 평범하고 흔한 경험과 심상치 않은 사건의 조합! 그리고 토마스의 카메라에 그대로 드러나는 갈망과 허기. <우든 클로그>는 처음엔 180분이 넘는 긴 상영시간이 부담스러웠는데, 정말 보지 않았으면 후회했을 것이다. 19세기 말 이탈리아 농부들의 일상 생활을 정밀하게 묘사하는 이 영화는 그 당시 농부들의 노동을 정밀하게 묘사한 기록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우든 클로그> 같이 노동하는 장면을 길고 자세하게 그린 영화를 보지 못했다. 조용한 전개, 예측하지 못한 슬픈 결말, 19세기 농촌의 매혹적인 풍경. 이 영화에는 농부가 돼지를 도살하는 장면이라든가, 거위의 목을 싹둑 자르는 장면이 그대로 나오는데, 그러면서도 영화는 전혀 선정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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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저개발의 기억> 같은 영화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전체적인 감상은 '저 남자 불쌍하다' 정도. 주인공인 세르지오(세르지오 코리에리)는 주변의 부르주아들과는 달리 혁명의 정당함도 알고 양심도 있으나 혁명 이후의 쿠바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득세하는 쿠바에서 그는 작가가 되지도 못할 것이고, 그대로 소모되고 마모될 것이다. 자크 투르뇌르 감독의 <과거로부터>는 '과거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을 줄인 영화처럼 보였다. 로버트 미첨과 커크 더글라스가 나오는 영화이니만큼 재미가 없을 수 없다. 굳이 부자지간이라고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 볼 수 있을 만큼 커크 더글라스와 마이클 더글라스는 닮았는데, 나는 선역을 할 때나 악역을 할 때나 항상 능글맞고 눈빛도 날카로우며 왠지 벼랑 끝에 몰린 것 같은 커크 더글라스가 지쳐 보이는 마이클 더글라스보다 훨씬 더 좋다.

<슬픔은 그대 가슴에> 같은 영화는 굉장히 많이 기대를 했는데, 기대했던 것보다는 약간 아쉬웠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영화였고, 라나 터너도 좋았다. 보면서 놀란 것 하나. 로라 메레디스(라나 터너)의 딸인 수지(테리 버냄)가 로라에게 묻는다. 예수는 흑인이에요, 아니면 백인이에요? 애니(주아니타 몬로)의 딸인 흑백 혼혈아로 백인이 되기를 열망하는 사라 제인(캐린 디커)은 예수는 틀림없이 백인이었을 거라고 답한다. 말콤 X가 교도소 시절에 한 질문을 이미 다른 사람들도 하고 있었다.

<밀라노의 기적>은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네오 리얼리즘 영화 운운했기 때문에 그런 영화일줄만 알고 봤다가 완전히 뒤통수를 맞았다. 재미있으면서도 여러 모로 생각해봐야할 영화였다. 세상과 인간을 무한히 긍정하는 토토는 고아원을 나와서 빈민가로 흘러 들어가는데, 땅주인 및 경찰들과 대립하다가 천국에 있는 그의 양어머니로부터 소원을 들어주는 거위를 받는다. 리얼리즘이 극에 이르면 동화를 닮는다? 혹은 동화로 탈주한 리얼리즘? 추운 겨울 천막을 치고 추위를 피하던 빈민들이, 햇살이 나자 거기로 일제히 몰려드는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다.
여기도 흑백 인종 간의 관계를 은유하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여기서는 로맨스로 치장이 되어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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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히트>야 예전에 재미있게 봤던 영화이지만 무엇보다도 이번에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는 가스등. 보고 나오길 잘 했다. 폴라(잉그리드 버그만)의 남편 그레고리(샤를 보와이에)는 부정적인 암시를 불어넣으며 그녀를 정신적으로 학대하고 미친 사람으로 몰아가는데, 그 과정이 무섭다. 이 영화의 백미는 마지막 부분. 길게 얘기할 순 없지만 정말 최고였다.

경상도 남자들이 무뚝뚝하다는 얘기야 처음 들어본 게 아니지만 적어도 시네마테크 부산 직원들은 다들 친절하고 싹싹한 사람들이었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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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닛 테러 (Planet Terror, 2007)

감독 : 로베르토 로드리게스
출연 : 로즈 맥고완, 프레디 로드리게스, 조쉬 브롤린, 말리 셸튼, 브루스 윌리스, 마이클 빈


<플래닛 테러>는 영화의 쾌감이 뭔지 아는 사람이 만든 작품이라고나 할까? 들인 돈으로 보아서는 절대 B무비라고 할 수 없는 이 영화는 노골적인 B무비 스타일과 B무비스러운 아이디어를 과시하는데, 그런 감각은 체리와 엘 레이의 정사장면을 도중에 끊어먹고 미싱 릴로 처리하는 부분에서 절정에 달한다. 불타는 필름은 불타는 벽난로만큼이나 뜨겁다.
<플래닛 테러>는 미국 변두리 작은 마을에서 사람들이 좀비가 되어 다른 사람을 잡아먹게 되고, 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싸운다는 이야기를 기둥 줄거리로 삼고 있다. 설정을 보면 군에서 만든 화학무기에 감염된 인간이 좀비가 된다는 것, 좀비에게 물리면 역시 좀비가 된다는 것 등으로 장르를 비튼 흔적은 잘 보이지 않는다(군대와 좀비를 연결시키는 발상은 <바탈리언>이나 <리빙 데드 3> 같은 영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좀비에 물리면 좀비가 된다는 설정은 거의 모든 좀비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플래닛 테러>는 생각해보면 놀랄 만큼 단순하고 전형적인데, 다만 곳곳에 숨은 아이디어와 유머, 잔인함, 황당한 연출이 지루하게 여길 틈을 주지 않는다. 물론 잔인하고 황당한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플래닛 테러>도 우베 볼의 <하우스 오브 데드> 같은 조잡한 작품과 마찬가지겠지만.
이 영화에서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음험한 남편을 버리고 애인과 같이 도망가려는 의사 다코타(말리 셸튼)와 그녀를 응징하려는 남편 블록(<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그 조쉬 브롤린!)의 이야기인데, 다코타와 그녀의 아버지인 얼 맥그로우 보안관(마이클 파크스)은 타란티노 감독이 만든 <데쓰프루프>에도 잠깐 나왔다. 특히 이 얼 맥그로우 보안관은 <킬 빌>에도 등장하는데, <플래닛 테러>에서는 <데쓰프루프>처럼 단지 사건을 추리하는 것뿐 아니라 직접 싸우는 처지가 된다. 그런데 <플래닛 테러>에서 미국이란 나라는 (아마도 좀비들 때문에) 망해 버렸으니, 얼 맥그로우 보안관이라는 캐릭터가 앞으로 타란티노 / 로드리게스 감독의 영화에 다시 나타날 수 있을까? 마치 <플래닛 테러>는 타란티노 / 로드리게스 감독이, 이제껏 자신들이 그려왔던 세계를 스스로 멸망시킨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것은 그들이 앞으로 어떤 세계를 만들어 나갈지 더욱 기대가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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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란티노 감독이 만든 <데쓰프루프>와 <플래닛 테러>는 서로 다른 줄거리를 갖고 있으면서도 살짝 연결되어 있다. 얼 맥그로우 보안관 부녀의 존재뿐만 아니라 <데쓰프루프>에서 사망했던 정글 줄리아의 추모 방송이 라디오에서 나온다든지 하는 것 등에서 그런 것들을 찾을 수 있다. 타란티노가 군인 역으로 출연한다는 것, <데쓰프루프>의 주인공인 조이 벨이 좀비 역으로 나온다는 것 등, <플래닛 테러>는 타란티노와 로드리게스의 영화를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플래닛 테러>는 워낙 흥미로운 요소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반드시 두 감독의 팬이 아니더라도 이 영화를 재미있게 즐기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주인공인 체리와 엘 레이 커플은 도전적이고 강하며, 아름답기까지 한 보기 드문 커플이다. 세상에 맞선 두 사람이라니! 뭔가 엄청난 인물이었음이 분명한 엘 레이의 과거는 미싱 릴에 담겨 있어서 관객들은 그저 추리할 수밖에 없을 뿐인데, 특히 병원에서 보여주는 엘 레이의 액션이 정말 멋지고, 헬리콥터를 탈취하기 위해 체리가 군인들을 공격하는 장면도 황당하지만 엄청난 에너지를 보여준다. 두 장면은 모두 관객들에게 강렬한 쾌감을 전해준다. 엘 레이 역을 맡은 프레디 로드리게스가 보여주는 허스키한 저음 발성은 얼마나 멋있는지! 감독이 일부러 추구한 B무비 스타일은 거친 화면과 편집, 색이 변하는 필름 등에서 여실히 드러나며, 앞서 말했듯 옛날 영화처럼 미싱 릴을 가장하여 한 부분을 건너뛰는 발상 같은 것은 가히 최고라 부르고 싶어질 정도다. 또한, <플래닛 테러>는 관객이 가장 긴장할만한 지점에서 뜻밖의 유머를 선보이고 있기도 한데, J.T.(제프 파헤이)가 소시지를 들고 쓰러져 있는 장면, 이가 부러진 다코타가 놀라서 거울을 보는 장면, 엘 레이가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장면 등은 보고 웃지 않을 도리가 없다. <플래닛 테러>는 비록 잔인한 것을 싫어하는 관객들의 구미에는 맞지 않을지 모르지만, 오락영화로서는 최상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유희정신은 심지어 도발적이기까지 하다.

추신

너는 총을 가지면 안 된다고 엘 레이를 윽박지르는 보안관의 모습을 보니, 아는 형이 자주 하던 농담이 생각났다. "내가 오른손을 쓰지 못하도록 인공위성에서 감시한다." 그 형은 농담이었지만, 엘 레이는 사실이었다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자신이 빈 라덴을 사살했다는 이야기를 아주 진지하게 늘어놓고 있는 브루스 윌리스를 보니, 로드리게스와 타란티노는 황당한 농담을 아주 태연히 하는 재주를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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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담 (Epitaph, 2007)

감독 : 정가형제
출연 : 진구, 이동규, 김태우, 김보경, 고주연, 지아, 전무송, 엄지원


<기담>을 보고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것은 시대와 영화가 정말 느슨하게 이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기담>의 주요한 시대적 배경이 되는 1942년 겨울과 그 뒷이야기에 해당하는 1979년 10월은 일제의 패망과 해방, 그리고 박정희의 죽음과 군사 쿠데타, 5공화국 등장이라는 격변을 눈앞에 둔 혼란한 때였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비쳐지는 시대상은 여유롭고 따뜻하기 그지없다. 가령, 대학 강의실에서 박정남 교수는 학생들에게 데모 나간 학생들 보면 시험 꼭 보라고 전해달라는 이야기를 하고, 수업을 끝낸 박정남 교수가 캠퍼스를 걸으면 그 근처에서 유신 철폐 따위의 피켓을 든 학생들이 꼭 소풍을 가는 것처럼 어슬렁거리는 게 보인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본 사람들이라면 학생들이 캠퍼스에 전단 몇 장 뿌리고 사복경찰에 쫓겨 도망가던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그때 대학 당국도 운동권 학생들을 곱게 다루지 않았으니 저런 느슨한 데모가 가능할 리 없는 것이다. 사건들을 하나로 이어붙이는 마지막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아키야마 소좌도, 일본 군인이 아니라 마치 탐정처럼 묘사되고 있다. 아키야마 소좌는 확실히 한국 영화가 보편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일본 군인들보다 훨씬 긍정적인 인물인데, 그건 아마 이 사람이 군인이 아닌 탐정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이 자국 군인 한 명이 살해당했다는 이유로 민간에서 벌어진 사건의 수사를 맡는다?

가만히 보면 이 영화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당시 시대 상황과 별 관련이 없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기담>의 시대적 배경이 반드시 1942년이었어야 할 이유는 없는 것 같은데, 굳이 1942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정한 것은 영화의 주제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말하기로 하자. 이 영화에서 또한 중요한 것은 감독이 시대를 빌어서 이때가 아니었으면 볼 수 없는 장면들을 그려내고 있다는 것인데, 그 중 특히 인상 깊은 하나는 기모노 입은 여인의 이미지였다. 안생병원의 원장은 딸의 영혼결혼식을 치르면서 엎드려 곡을 하는데, 그때 그녀의 옷차림은 꼭 달팽이가 집을 등에 얹은 것처럼 보인다. 달팽이라는 곤충은 특히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수시로 등장하며 영화의 주요한 모티브가 되는데, 등에 얹은 집처럼 결코 벗어던질 수 없는 끈끈한 집착과 애정이 달팽이를 빌어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달팽이는 영화의 기묘한 분위기와 썩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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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세 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으며, 앞의 두 에피소드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의 시간적 순서는 마지막 에피소드를 통해 분명해진다. 이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사건들을 모으면 병원의 주요 인물들이 며칠 사이에 죽음을 맞이하는, 안생병원 멸망기라고 부를 수 있는 이야기가 되지만, 그 죽음들이 어떤 필연적인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히 이 죽음들은 공통된 정서를 보여주고 있다. 각 에피소드 세 편의 주인공은 병원에 실려 온 죽은 소녀와 안생병원 학생인 박정남, 어머니의 죽음을 목격한 소녀 아사코와 의사 이수인, 안생병원의 의사 김동원과 김인영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쪽은 죽은 사람, 혹은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며 다른 한쪽은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한쪽이 외로움과 쓸쓸함을 느끼며 다른 한쪽에게 집착하는 구도가 반복되고 있으며, 그 집착과 쓸쓸함은 다른 한쪽의 죽음을 부르는 것이다. 죽은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의 남은 인생에 달팽이처럼 달라붙거나, 혹은 그를 곧장 데려온다. 그러나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는 이 구도가 하나의 허상으로 작동한다.

<기담>에도 깜짝쇼는 있다. 그러나 다른 영화와 비교해보면 적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차분하게 감정을 쌓아 올려간다는 것이 <기담>에서 가장 좋은 점이다. 가령 노인이 된 박정남이 자신을 찾아온 딸과 함께 식사를 하는 장면을 보면, 교복을 입은 여고생이 얼굴을 보이지 않은 채 그들의 옆자리에 앉아 있다. 그 여고생의 정체는 영화가 진행되면서 밝혀지지만, 거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그 장면을 보는 사람은 누구나 그녀가 귀신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무 음악도 없이 덤덤하게 부녀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모습과 그 옆에 가만히 앉아 있는 귀신을 보여주는 연출은 굉장히 드문 것이 아닌가? 얼어붙은 호수의 얼음장 밑에 보이는 소녀의 시체 위로 붉은 심장 모양의 꽃잎이 날아오는 등의 아름다운 장면들도 좋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관객들이 뇌리에서 지울 수 없는 것은 두 번째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귀신이다. 아사코 엄마의 귀신과 그 뒤에 등장하는 할머니의 귀신은 영화의 다른 귀신들과 달리 실재하는지, 아니면 아사코의 환각인지 불분명하다. 그러나 그 귀신들은 아사코의 죄책감을 강력하게 반영하는 존재로, 특히 아사코 엄마의 귀신은 압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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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기담>의 마지막 에피소드는 혀를 내두를 만큼 좋지 않다. 심하게 말하면 영화를 망쳤다고 할 정도로. <기담>은 공포보다는 외로움이라는 정서를 전달하는 데 더 공을 들였다는 느낌이 드는데, 마지막 에피소드는 이상하리만치 반전과 살인에 집착하고 있다. 그 반전은 굉장히 산만하고 이상하여 말로 표현하기도 힘들 정도이며, 살인은 더더욱 그렇다. 부산에서 경성까지 문서를 전달하던 일본 군인이 살해당했기 때문에 군에서 수사에 나선 것으로 보이는데, 그 뒤로 희생된 사람은 조선인 탈영병, 거지 아이, 안생병원의 간호원 등이다. 그러면 일본군을 노린 살인이라는 가설은 폐기되어야 하고 수사는 경찰에서 맡게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왜 아키야마 소좌는 거지 아이의 시체를 두고 일본군을 노린 연쇄살인 운운하는 정신 나간 소리를 지껄이는가? 더욱 이상한 것은 동원-인영인데, 왜 그가 일본군은 물론 무고한 어린아이까지 살해하는지 도저히 짐작할 수가 없다. 몽유병?
또한 인영이 아키야마 소좌를 찌르는 장면에서 시끄럽게 울려퍼지는 <사이코>의 음악, 내 안에 인영이가 있다는 김동원의 말은 마지막 세 번째 에피소드를 재활용 영화처럼 보이게 한다. 이 영화의 반전은 배우(특히 김태우)의 연기까지 우스워보이게 만든다. 이 에피소드에서 인상적인 것은 그림자 없는 인영의 모습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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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담은 낭만적이고 나른하며 음울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그때 우리는 모든 것이 영원할 줄 알았다는 대사로 마무리되는데, 병원-구체제-구시대가 종말을 앞둔 마당에 모든 것이 영원하기를 꿈꾸었다니 허망하지 않은가? 영화도 전체적으로, 아름답지만 뭔가 공허하고 부유하는 듯한 분위기를 은근히 풍기고 있다. 그런 점에서 <기담>은 구세대에 대한 비판으로, 정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작품이다. 1942년, 즉 일제 말기가 시대 배경으로 선택된 것은 그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정남이 안생병원이 헐린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에 갈 때 계단을 보면 죽은 까치가 뒹굴고 있는데, 나중에 정남의 스케치북을 보면 까치 그림이 있다. 그러니 그 죽은 까치는 말할 것도 없이 정남 자신을 상징하는 것. 생각해 보면 영화 첫 부분에서 정남의 나레이션도 그가 죽은 후에 (아마도) 귀신이 되어 자신이 죽은 날을 회상하는 것일 텐데, 이 영화의 은근함은 이런 점에서도 빛난다.

추신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정남의 뒷모습이 빛에 왜곡되어 기묘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이 장면에서 마치 머리가 줄어든 사람처럼 보였다. 이것 또한 달팽이 이미지의 변형. 글을 쓰면서 앞머리에 올린 포스터는 티저 포스터로 알고 있는데, 달팽이 이미지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어서 본 포스터 대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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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lver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