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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8/09/24 매드 디텍티브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by Wolverine
  3. 2008/09/18 이누가미 일족 by Wolverine
  4. 2008/09/14 하얀 비키니의 복수 by Wolverine (2)
  5. 2008/09/14 타이완 블랙 무비를 말하다 by Wolverine


외톨이 (2008)

감독 : 박재식
출연 : 고은아, 정유석, 채민서, 정영숙, 이다인, 이은



<외톨이>는 부지런히 많이 찍고 또 부지런히 잘라낸 것 같은 영화다. 이 영화에는 왜 들어가 있는지 알 수 없는 장면들이 꽤 많은데, 그것들은 대부분 온전한 한 씬을 이루고 있는 게 아니라 툭툭 끊어져 있다. 가령 뭐 하러 찍었는지 알 수 없는 정신과 의사 최윤미(채민서)의 히키코모리 남학생 상담 장면. 치료받으러 온 학생이 아무 이유 없이 자해를 하는 잔인한 장면인데, 그 학생을 최윤미가 바라보는 부분에서 갑자기 툭 끊어진다. 무슨 뜻일까. 감독은 이 장면을 왜 넣었고 왜 여기서 끊었을까. 보고 나면 뭔가 느껴지기보다는 공허해진다. 부지런히 찍은 만큼 많은 것들이 부글부글 끓어 넘치지만 정작 꼭 있어야 되는 건 없는 영화가 <외톨이> 같다.

<외톨이>의 줄거리는 이렇다. 학급의 반장이자 엄청나게 부유한 집 여식인 수나(고은아)에게는 하정(이다인)이라는 절친한 친구가 있는데, 어리바리하고 겁 많은 하정은 불량한 은희(이은)와 그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은희의 협박으로 옷가게에서 옷을 훔치다 주인에게 잡혀 심한 모욕을 당한 하정은 히키코모리가 되고, 결국 집안에서 자살한다. 하정이 옷가게 주인을 피해 숨어 있던 때 할머니(정영숙), 삼촌인 세진(정유석)과 같이 태평하게 음악 감상을 하고 있던 수나는 그녀가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된다. 수나가 놓고 간 핸드폰을 주운 학급 친구가 도움을 요청하는 하정에게 매정한 문자를 보냈고, 그게 하정을 절망에 빠뜨린 것이다. 죄책감에 슬퍼하던 수나도 히키코모리가 되어 간다.
하정이 저주할 거라고 이를 악물면서 죽어간 만큼 뭔가 뒤끝이 있을 것 같은데, 하정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다. 말하자면 하정은 수나가 히키코모리가 되도록 이끄는 영화의 밑밥에 불과하고, 영화는 거의 대부분 수나네 집안의 비밀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세진은 윤미와 사귀고 있지만 송이(이연수)라는 여인과 뭔가 관계가 있는 것 같은데, 할머니는 무슨 이유에선지 그녀를 세진에게서 떼어놓으려고 한다. 이들의 비밀은 영화 초중반 무렵에 (일찌감치) 수나의 입으로 폭로되는데, 수나는 세진의 조카가 아니라 딸이었고 그 엄마는 송이였다는 것이다. 수나의 히키코모리 증세가 심해지면서 집안 식구들이 하나씩 미치거나 죽게 된다.

이 영화에서 넘치는 것 중 하나는 음악이다. 별로 개성도 없는 음악이 시도 때도 없이 흘러나온다. <외톨이>는 음악 영화? 감독이 영화를 다 찍은 다음 고민하다가 음악으로 때우려 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 정도로 정말 많이 나온다. 결말 부분에서도 이런 점은 그대로 드러나는데, 감상적인 음악이 계속 흘러나오면서 관객들의 눈물을 쥐어짜려고 용을 쓴다. 결말이 장황하고 계속 늘어지기 때문에 아쉽게도 별로 슬프게 느껴지지 않지만. 반면 시각적으로 무서워할만한 장면은 거의 보이지 않는데, <링>의 아류 영화들에서 볼 수 있는 긴 머리카락을 이용한 공포 효과들이 넘쳐난다. 주인공 앞으로 무언가 휙 지나가는 트릭도 남발되는 것 같고. 히키코모리 영화라면서 왜 귀신 영화 흉내를 내고 그럴까. 비유하자면 <외톨이>는 건더기는 거의 없고 조미료만 잔뜩 뿌린 찌개 같은 영화다.
무엇보다도 실망스러웠던 건 이 영화의 리듬감이 형편없다는 것이다.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신경을 조이고, 나중에는 놀라게 하거나 충격을 줄 수 있도록 어떤 컷이 전체 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나 길이랄까, 그런 것들이 조절되어야 할 텐데 그런 게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귀에 거슬리는 효과음 같은 것들만 쉴 새 없이 꽝꽝 때려댈 뿐이다. 예를 들어 세진이 지하 주차장에서 낯선 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듣는 장면은 쓸데없이 길고, 또 어떤 장면들은 앞서 말한 대로 찍다가 만 것 같다.

이렇듯 관객의 심장을 조이는데 실패했기 때문에 최대한 잔인하게 가는 게 공포영화로서 <외톨이>에게 남은 유일한 길이었던 것 같다. 손목을 커터로 긋거나 다리를 칼로 북북 찔러서 피를 내는 것 같은 잔인한 장면들이 많지만(벌레 싫어하는 사람들은 바퀴벌레가 사람 몸을 타고 올라가는 장면에 질색을 할 테고), 그거 갖고 뭐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더 잔인한 장면들도 잘 보니까. 문제는 영화가 등장인물들을 대하는 태도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짜증났던 부분은 수나가 집안일을 돌보는 파주댁(정하연)에게 린치를 가하는 장면이었다. 끔찍한 일을 당한 파주댁은 정신이 이상해지는데, 수나가 그녀에게 린치를 가한 이유는 파주댁이 자기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있으면서도 가르쳐주지 않은 위선자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다음에 방에 틀어박혀서 혼잣말처럼 기쁘지 않니? 이러면서 훗, 웃는데 와... 도대체 그 아주머니가 뭘 잘못했는데? 잘못한 게 없는데 그놈의 복수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은 파주댁 혼자만이 아니다.
선량한 사람이 죽거나 고통 받는 영화는 많다. 보통은 영화를 보면서 일일이 그런 걸 생각하지는 않는데, <외톨이>에서는 유달리 그런 점이 거슬리고 신경 쓰인다. 왜 그럴까? 글을 쓰면서 다시 느낀 거지만 나는 하정에게 심하게 짜증이 났다. 하는 짓이나 분장이 너무 바보처럼 보였으니까. 그녀의 고난에 대해 슬퍼하고 감정이입하기보다는 마주대하기도 싫을 정도로. 옷가게 주인은 거리에서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그녀를 때리고 도둑년이라 몰아붙이며 심지어는 옷까지 벗기는데, 보통 상점에서 절도하는 학생들을 잡으면 길에서 해결하기보다는 가게에 잡아놓고 경찰에 신고한다거나 부모에 이른다거나 하는 식으로 겁을 주는 게 대부분 아닐까? 왜 하정을 묘사하는 부분이 그렇게 과장되었을까 생각하다 내린 결론은 이거다. <외톨이>는 착한 사람들이 세상으로부터 왜 박해를 받는 것인지에 대해서 무지하며, 그들의 처지나 고통에 대해 연민이나 분노를 느끼기보다는 그들을 학대하고 괴물로 만드는 데서 공포를 끌어내는 영화라고(하정이 미치는 장면을 떠올리면 그런 생각이 더 확실해진다). 제대로 된 치료를 받고 세상으로 다시 복귀해야 할 히키코모리들은 <외톨이>에서 자해 중독자 혹은 복수심에 넘치는 잠재적인 살인자 취급을 받는다.


그리고 반전.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반전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을 했을 테고, 그래서 마지막에 반전이 하나 있긴 있는데 그다지 충격적이라거나 허를 찌른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반전이 맞긴 할까? 영화를 보면 대충 눈치 챌 수 있는 것들인데. 수나의 방에 뭔가 있다는 것쯤 영화를 보면 다 알 수 있는 것이고 그게 무엇이든지 간에 관객들에겐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 한마디로 너무 약하다. 그리고 반전대로라면 수나의 행동은 모두 쇼인 셈인데, 그러면 그녀는 히키코모리인가 아닌가? 게다가 그녀가 마지막에 정신병원으로 들어가는 건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다. 정신병원에서 수나는 사건의 경위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지 않은가? 정신도 멀쩡한 것 같은데 쟤는 정신병원에 왜 들어가는 거야?

사람들이 영화를 보면서 많이 웃었다고 들었는데, 혼자 봐서 그런지 별로 우습지는 않았다. 연기는 황당한 구석이 많다. 가장 기억나는 건 수나네 반 담임 선생님. 은희가 하정이를 괴롭혔다는 걸 알고 하정이네 집에 찾아가서 사과하라고 하는데, 말하는 투가 뭐 그따위냐. 사과하지 않으면 아빠 불러오라고 할 거야~ 온 몸으로 얄미움을 떨면서 지시봉으로 몸을 콕 찌르는데 속으로 저게 선생 맞는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은의 연기도 그렇게 좋지는 않지만 특히 고은아가 사랑하는 사람한테 버림받는 아픔을 아냐고 꽥꽥거릴 때는(그것도 몇 번이나) 너는 뭘 아는데 그러냐고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다. 정유석이나 정영숙은 베테랑이니까 가끔 좋을 때도 있다. 채민서는 캐릭터가 워낙 겉돌아서 뭐라고 말할 것도 없다. 주인공 중 하나인데 실제로 하는 일은 없는 장식품에 불과한 캐릭터.

이 영화를 좀 더 재미있게 만들 수 있는 길은 없었을까? 맞을지 틀릴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나 제안해보고 싶다. 뭐냐면, 수나와 세진이 서로를 대하는 장면을 보면 그게 예사로워보이지는 않는데 그 점을 이용하자는 것이다. 초반에 보면 세진이 잠든 수나의 뺨에 키스하는 장면이 있는데 아빠(혹은 삼촌)가 딸에게 키스하는 게 아니라 꼭 연인에게 하는 것처럼 보인다(고등학생인 딸의 뺨에 뽀뽀하는 아빠가 세상에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수나가 이유 없이 윤미를 싫어하는 게 삼촌을 떠나보내지 않으려는 마음의 발로일까? 아니면 자기도 눈치 채지 못한 이성적인 감정 때문일까? 시시한 반전을 아예 버리고, 영화의 방향을 근친상간 쪽으로 잡아갔으면 어땠을까? 개봉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지만 만약에 개봉을 했더라면 지금보다는 흥행 성적이 더 좋지 않았을까?


알고 보니 은희 역으로 나온 배우가 봉태규의 여자친구인 이은이었다. 이번 영화는 좀 아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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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 디텍티브 (神探; Mad Detective, 2007)

감독 : 두기봉, 위가휘
출연 : 유청운, 안지걸, 임가동, 임희뢰, 이국린, 이채저, 임설


영화가 시작되면 카메라는 탁자 위에 길게 늘어놓은 다양한 종류의 칼들을 쭉 훑고 있는데, 번 형사(유청운)는 그 중 하나를 잡고 매달아놓은 돼지 시체를 난자하고 있다. 뭐하는 짓일까? 그의 눈빛이 좀 이상해 보인다. 도중에 들어온 신입 호 형사(안지걸)에게 다른 형사들은, 번 형사가 범행을 재연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어서 번 형사는 호 형사로 하여금 자신을 가방에 담아 계단에서 떨어뜨리도록 한다. 피해자의 입장이 되어 본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번 형사는 가방에서 나오자마자 범인을 지목하고 사건은 해결된다. 비록 이틀 동안 같이 일한 것뿐이지만 호 형사는 번 형사의 수사 방식에 깊은 인상을 받은 모양이다. 5년 후, 형사직에서 쫓겨난 그를 찾아가서 왕국주 형사(이국린) 실종 사건 수사를 부탁한 것을 보면. 두 사람은 왕 형사가 실종되던 날 그와 함께 고철도둑을 잡으러 잠복 근무를 했던 형사 치와이(임가동)의 뒤를 캐게 된다.

번 형사의 수사 철학을 알 수 있는 장면 하나를 이야기해보자. 두 형사는 치와이를 따라 식당에 갔다가 그와 다툰 후 밖으로 나오는데, 차를 몰던 번 형사는 이 사건은 총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왕 형사가 잃어버린 총이 범행(편의점 강도사건 및 현금수송차 강탈사건, 도박판의 강도사건)에 사용되었다고 호 형사가 대답하자, 번 형사는 답답하다는 듯 머리로 생각하지 말고 가슴으로 느껴보라고 말한다. 수사를 할 때 직관을 중시하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셈인데, 사실 번 형사의 수사는 직관을 넘어선, 초직관의 영역에 속해 있다. 아무리 뛰어난 직관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범인과 피해자의 흉내를 내는 것만으로 사건의 진상을 알아내기란 불가능한 법이니까. 번 형사의 또 다른 능력은 사람의 내면에 있는 다른 인격, 소위 다중인격을 보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번 형사의 이 능력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영화의 설정은 해리성정체장애를 바르게 묘사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번 형사에 따르면 세상 사람들 중에서 다른 인격을 지니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고(인격이 하나 뿐인 과장의 퇴직 선물로 번 형사는 자기 귀를 준다. 존경의 표시라나), 그 인격은 영혼처럼 홀로 방황하기도 하며 자기 존재를 인식하고 있다. 번 형사는 심지어 그 인격을 다른 사람에게서 떼어내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존재를 보고,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번 형사라는 존재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무당 아닐까? 번 형사는 낮에 비가 내리는 것을 보고 수사의 방향이 올바르다는 신의 계시라며 기뻐한다. 편의점에서 물건을 훔치려는 소녀에게 나는 네가 보인다며 고함을 치는 것, 무장 경호원들 앞에서 총질하는 시늉을 하는 것 등등의 행동 전부가 그를 신들린 사람처럼 보이게 한다. 그럼 그를 보는 다른 사람들은 그에게서 무엇을 느끼는가? 이것이야말로 내겐 영화의 핵심으로 보인다. 번 형사의 주변 인물인 메이(임희뢰)와 호 형사의 경우를 통해 그 점을 한번 살펴보자.

번 형사의 전처 메이는 그의 능력을 자기 수사에 이용하지만 그를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실은 번 형사를 통해 자기가 맡은 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내려고 왔으면서도, 메이는 번 형사가 병원에 가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찾아왔다며 그를 거세게 몰아붙인다. 메이의 이런 태도는 번 형사에 대한 혐오 혹은 두려움의 발로 아닐까? 번 형사가 보는 메이의 다른 인격(진혜산)은 마치 귀신 같이 무섭고 신경질적으로 보인다. 이 장면은 누구나 알 수 있게끔 정확하게 표현되지 못한 것 같지만. 호 형사가 번 형사에게 사건 수사를 의뢰하러 왔을 때, 그는 번 형사를 존경하고 있었다. 호 형사는 번 형사의 능력을 사건 해결에 이용하는 것과 아울러 그를 닮고 싶은 의지를 드러낸다. “번 형사님이라면 이런 경우에 어떻게 수사하셨을까 생각해 봤죠.” 그러나 번 형사는 호 형사에게 말한다. “자넨 내가 아니야.” 번 형사와 함께 수사를 하면 할수록 호 형사에게 남는 것은 번 형사가 실은 그냥 미친 것 아닐까 하는 의구심, 그리고 광기를 대할 때 자연스럽게 생기는 두려움이다. 특히 번 형사가 걸려오지도 않은 전화를 받는 장면, 그런 그를 지켜보는 호 형사의 모습은 가슴에 와서 박히는 것 같지 않는가? 호 형사의 두려움은 몇 번에 걸친 죽음의 위기와 어우러져 점차 커지고, 마침내 파국을 이끌어낸다.


치와이에게는 인격이 일곱 개 있다. 어느 인터뷰에선가, 감독이 인간의 일곱 가지 죄악을 묘사하기 위해 치와이에게 일곱 개의 인격이 존재하는 것으로 설정했다는 이야기를 읽은 것 같다. 정확하게 읽은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설정이 정확히 영화에 조응하는 것 같지는 않다. 치와이에게는 함부로 살인을 일삼는 폭력적인 인격이 있으니 그것은 분노를 대변한다고 쳐도, 상황을 판단하고 모든 일을 조종하는 냉철한 여성의 인격(유금령)은 어떤 악을 대변한다는 말일까? 치와이의 일곱 인격 중 영화에서 가장 주목하고 있는 것은 탐식이라는 악을(그게 악이라면) 상징한다고도 할 수 있는 뚱보(임설)의 인격인 것 같다. 번 형사가 화장실에서 치와이의 난폭한 인격(장조휘)에게 공격을 당했을 때, 치와이의 다른 인격들은 번 형사를 쏘려는 그를 뒤에서 잡아 말린다.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냉철한 여성의 인격과 쏘지 말라면서 당황하는 뚱보의 인격을 빼면. 그런데 번 형사는 다른 인격들을 제쳐두고 뚱보에게 묻는다. “왜 쏘지 말라고 했지?” 뚱보는 대식가이기도 하지만 가장 소심하고 겁이 많은 인격이기도 하다. 그게 사실은 치와이 본연의 모습에 가장 가까운 것이 아닐까? 번 형사는 그것을 꿰뚫어 보았기 때문에 뚱보에게 질문을 던진 것이고. 두려움과 나약함이야말로 악의 근원이며, 그것은 인간의 인격을 분열시키고 다른 악을 불러온다. <매드 디텍티브>에 메시지가 있다면 그런 이야기 아닐까?

안지걸의 연기도 좋지만, 자기 능력을 세상을 향해 쓰려는 열망과 아울러 외로움에 지친 번 형사 역을 맡은 유청운의 연기가 특히 훌륭하다. 유청운이 오토바이에 메이의 인격을 태우고 달리는 장면이나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며 피곤한 얼굴로 주저앉는 장면이 좋다. 그리고 허를 찌르는 마지막 장면, 그 장면에서의 유청운의 표정은 영화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좋았다. 무섭기도 했고. 많은 사람들이 <매드 디텍티브>의 명장면으로 꼽는 수많은 거울을 배경으로 한 총격 장면은, 물론 스타일이 두드러지고 주제의식을 드러내고 있긴 하지만 쾌감을 주는 액션이라고 보긴 힘든 것 같다. 오히려 그런 면에서는 <익사일> 같은 영화가 훨씬 재미있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매드 디텍티브>는 인간의 내면을 잘 드러낸 훌륭한 심리 드라마로 <익사일>과 완전히 같은 차원에서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분명한 것은, <매드 디텍티브>가 스크린에서 눈을 떼기 힘들 만큼 재미있는 영화라는 것이다.

추신

1. 치와이의 일곱 개의 인격 중에서 셋을 빼면, 나머지 넷의 역할은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영화 초반에 치와이는 왕형사의 지갑에서 천 달러를 훔치는데, 그렇다면 분명히 넷 중 하나는 도둑의 인격이라는 얘기가 된다. 편의점 강도는 난폭한 인격이 한 짓이 분명하지만 도박판을 강탈한 것은 누가 그랬는지 확실치 않다. 어쩌면 뚱보가 아닐 수도 있다. <매드 디텍티브>에는 이렇게 불명확한 점이 몇 군데 있는데 그게 매력으로 다가올 때도 있다.

2. 마지막 장면이 이해가 안 되어 유튜브에서 동영상을 찾아서 다시 봤다. 어느 정도 알만 하지만 그래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남는다. 현장에 남은 총알의 강선까지 조작할 수는 없을 텐데? 총을 감춘다 해도 다른 총에서 발사된 총알이 있다는 것쯤은 충분히 찾아낼 수 있다. 물론 사건의 진상이 조작되리라는 것 자체로도 무섭긴 하지만.

3. 번 형사는 메이의 인격 중에서 맘에 드는 부분을 떼어내는데, 진짜 전처의 인격을 떼어낸 것인가, 아니면 번 형사가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인가? 어쨌든 메이의 인격이 번 형사의 앞날을 예견했다는 건 생각해보면 무섭다.

4. <푸른 이끼>에서도 그랬는데, <매드 디텍티브>에서도 인도인 범죄자가 등장한다. 외국인들이 홍콩 사회로 편입되는 모습이 이렇게 영화를 통해 드러나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년 후 동남 아시아인들이 악역이든 선역이든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영화가 나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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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가미 일족 (犬神家の一族, The Inugami Family, 1976)

감독 : 이치가와 곤
출연 : 이시자카 코지, 시마다 요코, 다카미네 미에코



이번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가 뜻깊었던 건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와 <블레이드 러너> 같은 명작을 스크린으로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가장 즐거웠던 건 <이누가미 일족> 때문이었다. 영화가 얼마나 재밌었는지 보고 나서도 흐뭇해서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중에서 처음 읽은 <팔묘촌>은 실망스러웠고, 사실은 그때문에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영화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같은 시간에 하는 <매드 디텍티브>를 보려다 <이누가미 일족>을 추천하는 말들을 듣고 마음을 바꿨는데, 이건 최고의 선택이었다. <매드 디텍티브>도 꼭 보고 싶은 영화지만 그건 내일 개봉하니까.

<이누가미 일족>은 이누가미 사헤이의 사망으로 시작한다. 제약업으로 거부가 된 이누가미 사헤이에겐 딸 셋과 그 딸들이 낳은 세 명의 손자, 한 명의 손녀가 있다. 이 사람들이 사헤이의 유산을 상속받을 후계자들이고, 그 외에 사헤이의 은인의 딸인 노노미야 타마요가 있다. 사생아인 시즈마의 존재는 나중에 밝혀지고. 이누가미 사헤이의 유언은 유산 상속 대상자들이 모두 모이기 전에는 공표할 수 없도록 되어 있는데, 장녀인 마츠코의 아들 이누가미 스케키요는 전쟁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이누가미 일가의 변호사인 와카바야시는 사립탐정 긴다이치 코스케를 고용한다. 누군가 유언장을 몰래 뜯어보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그렇게 긴다이치 코스케는 사건의 무대가 되는 나스 시에 도착한다.

하지만 와카바야시는 여관에서 독살당하고, 긴다이치 코스케는 다른 변호사인 후루다테의 의뢰로 나스 시에 남게 된다. 때마침 스케키요가 귀환하는데, 그는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전쟁 중에 얼굴을 심하게 다친 것이었다. 마침내 당사자들이 모이자 유언장이 공개되는데... 유산의 상속자는 놀랍게도 노노미야 타마요였다. 다만 노노미야 타마요가 유산을 상속받으려면 사헤이의 손자인 스케키요, 스케타케, 스케토모 세 사람 중 한 사람과 결혼을 해야 되는데, 손자들이 모두 죽었을 때는 타마요가 유산을 상속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고 유언장에 끼어든 인물 중 하나는 시즈마였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얽힌 가운데, 상속자가 사망했을 경우 유산의 행방을 밝힌 유언장은 살인을 부추긴다. 와카바야시가 첫번째로 살해당했으며, 타마요는 계속 위협을 받고 있었다. 이미 긴다이치 코스케는 나스 시에 도착한 날 배를 타다 누군가가 뚫어놓은 구멍 때문에 위기에 처한 타마요를 구해준 적 있었다. 그녀는 이전에 두 번이나 위기를 넘긴 적이 있었고... 두 번째 희생자는 이누가미 스케타케였다.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 지세연 프로그래머에 따르면 <이누가미 일족>은 이치가와 곤의 독특한 편집을 맛볼 수 있는 영화로,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봐야 할 영화라고 한다. <이누가미 일족>의 독특한 오프닝 크레딧도 당시 화제가 되었다고 하고. 하지만 영화를 공부하지 않는 내 눈으로 보면 <이누가미 일족>의 오프닝 크레딧은 별로 특이할 것도 없고, 편집의 어떤 점이 다른 영화와 틀린지(독특하다고 할 수 있는지) 말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내 눈에도 선명한 인상을 남기는 장면들이 있다. 가령 타마요가 탄 배에 물이 들어가서 그녀가 호수 한복판에서 위기에 처했을 때 긴다이치 코스케는 배를 몰아서, 하인 사루조는 헤엄을 쳐서 그녀를 구하러 간다. 두 사람이 힘을 합해서 그녀를 배에 태우는 장면은 정지된 컷을 여러 개 이어붙여서 멈춰졌다 이어지는 느낌을 주고 있는데, 사실은 이건 단순히 여성을 배 위로 끌어올리는 장면이라 평범한 연출이었다면 큰 감흥을 못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장면이 정지화면처럼 연출되면서 긴장감과 박력을 주고 있다. 그리고 다른 장면. 스케타케는 타살당하던 날 전망대에서 타마요를 겁탈하려다 사루조에게 호되게 당했다. 이 장면은 사건 당시를 떠올리는 회상 장면인데, 흑백에다 독특한 색감과 질감을 보여준다. 이누가미 사헤이의 과거를 보여주는 장면 역시 흑백으로 독특하고 아름답게 처리하고 있다. 다만 몇년 후에 제작된 <병원 비탈길에 목매달린 집> 같은 영화를 보면, 이치가와 곤 감독은 <이누가미 일족>에서 완성된 화면 구성, 편집, 캐릭터 등등을 다른 긴다이치 코스케 영화에서도 반복하고 있는 것 같다(물론 <팔묘촌>이나 <악마의 공놀이 노래> 같은 영화들을 확인해봐야 더 확실히 말할 수 있겠지만). <이누가미 일족>에는 지극히 평범하고 사건의 진상과 동떨어진 추리를 자신있게 내놓는 다치바나 경감이 등장하는데, <병원 비탈길에 목매달린 집>에서는 같은 배우가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또 전편을 패러디했다는 사실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그건 <이누가미 일족> 자체의 결함도 아니고, <병원 비탈길에 목매달린 집>도 꽤 재미있어서 불만을 품을 여지가 별로 없다.

<이누가미 일족>은 이렇게 인상적인 장면과 더불어 매력적인 캐릭터를 가진 영화다. 일본옷을 입은 긴다이치 코스케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때마다 말을 더듬고, 머리를 긁으면 비듬이 우수수 떨어지는 굉장히 소박한 탐정이다. 그는 수사를 주도하고 다치바나 경감의 엉터리 추리에 반박하기보다 남들 몰래 조용히 사건의 진상을 캐고, 할 말이 있을 때도 머뭇거리면서 사건 해결의 열쇠를 던진다. 여관의 귀여운 종업원인 하루는 원작에 없는 캐릭터라고 하는데, 나중에는 긴다이치 코스케를 좋아하게 된 것처럼 보여서 내심으로는 둘이 이어지기를 바랐다. 다른 영화에도 출연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 없는 이상하고 터프한 하인 사루조나 신비한 아름다움을 지닌 노노미야 타마요도 흥미로웠고(사실은 <병원 비탈길에 목매달린 집>에 출연한 사쿠라다 준코가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스케타케와 남매사이인 손녀 사요코는 굉장히 철없는 캐릭터인데, 나중에는 <햄릿>의 오필리어처럼 되어 가는게 또 재미있었다. 트릭도 <이누가미 일족>의 매력을 더하는데, 이 영화에서 사건의 진상을 감추고 있는 트릭은 일부러 복잡하게 만든, 트릭을 위한 트릭이 아니다. <이누가미 일족>의 트릭은 등장 인물들의 관계와 우연을 절묘하게 이용하고 있으므로 드라마에 부합하는데다, 일어날 법 하면서도 쉽게 진상을 파악할 수 없는 굉장히 멋진 것이었다. 게다가 복선도 적절하고 절묘하게 깔려 있다. 군부와 재벌의 결합이라는 일본 사회의 어두운 면, 어두운 역사를 슬쩍 걸고 넘어진 점도 멋지다(소설에서는 어떻게 나왔는지 아직 자세히 읽어보지 않았지만, 영화에서는 군부가 대륙에 살포할 아편을 사헤이의 회사에서 제조해준 것으로 나온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결말이다. 영화에서는 그 뒷이야기가 조금 더 진행된다는 점이 소설과 다르지만, 사건의 진상이 밝혀진 뒤 범인이 자살한다는 건 같다. 소설과 영화 모두 긴다이치 코스케가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기 때문에 자살을 막지 못했던 것으로 묘사한다. 그 자체는 억지스러운 게 아닌데, 마음에 걸린다는 것은 이런 점이다.
긴다이치 코스케의 손자로 설정되어 있는 <소년탐정 김전일> 시리즈의 김전일이 살아남으려면 피해야 되는 탐정으로 불리는 것은 물론 우스개지만, 여기에는 일관성이 있다. 탐정들은 죽음을 막지 못한다. 두 탐정들이 무능하거나 잘난 척 하거나 게으름을 피워서 그런 건 아니다. 여기엔 죽음을 해결책으로 여기는 어떤 태도가 있는 것 같다.
<이누가미 일족>에서 이누가미 가의 몇몇 손자들은 타마요를 불행하게 할 사람들이라 없어지는 것이 타마요의 인생이 피는 길이다(물론 영화는 사헤이 회장이 생전에 모든 것을 내다보고 계획한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이누가미 사헤이의 손자와 딸들은 자기 몫을 스스로 포기할 사람들이 아니므로 이들이 사라질 가장 유력하고 편리한 방법은 죽음이다. <소년탐정 김전일>에서 살해당하는 희생자들은 대부분 과거에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이라 마땅히 벌을 받아야 되는데, 이들은 대부분 공소시효가 지나서 감옥에 갈 수 없으므로 가장 손쉬운 장르적인 해결책은 역시 죽음이다. 그렇더라도 살인은 정당화될 수 없는 범죄라 저지르면 그 죄값을 치러야 하는데, 그래서 범인들은 죽음으로서 속죄하거나 감옥에 간다. 작가는 벌해야 될 자를 벌하는 도덕적이고 전지적인 신이자 섭리이며 범인은 그의 도구(쓰고 나면 사라질), 탐정은 방관자이다. 이것이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를 만든 일본 문화의 특징인지, 추리물이라는 장르의 특성인지는 잘 모르겠다. 죽을 만한 사람들이 다 죽은 다음에 진상을 밝히는 탐정들은 한둘이 아니고, 범인이 자살하는 작품도 마찬가지로 많이 있으니까. 다만 <이누가미 일족>의 범인의 자살은 집안 사람들에게 폐를 끼친 것을 사과하겠다는 속죄의 의미가 더 강한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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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비키니의 복수 (女性的復仇; Woman Revenger, 1981)


감독 : 구양준
출연 : 양혜산, 유덕개, 막사성, 마사, 장영진



<하얀 비키니의 복수>는 1970년대 말부터 타이완 영화계에서 유행했던 소위 사회영화 중의 한편으로, 야쿠자들과 맞서 싸우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액션물이다. 주인공 꾸링링(양혜산)이 친구인 양메이화가 보낸 편지를 읽는 장면으로부터 영화가 시작되는데, 두 사람은 같은 고아원에서 자란 듯하다. 그 편지는 자신이 지금까지 고아원으로 보낸 돈은 정직하게 일을 해서 번 돈이 아니라 야쿠자 조직에서 일을 하면서 번 돈으로, 야쿠자들이 자신의 동생인 양메이펑을 노린다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메이화는 편지를 통해 싼랑이라는 친구가 일본에서 너를 도울 것이라며,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메이펑을 구해달라고 부탁한다. 곧 메이화는 온천에서 알몸으로 목욕을 하다가 야쿠자들에게 살해된다.

메이화가 살해된 것을 안 링링은 일본으로 건너가 싼랑을 만나고, 싼랑과 함께 메이펑을 찾기 시작한다. 그들은 어렵사리 메이펑을 찾아내지만 메이펑은 노구치라는 남자에게 푹 빠져 있어서 링링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러나 노구치야말로 메이화를 죽인 원흉이었다(메이화를 직접 살해한 까오차오라는 인물은 태국으로 피신했다 살해당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메이화는 조직을 빠져나가기 위해서 노구치가 맡은 헤로인을 훔쳐냈으며, 그 헤로인을 찾지 못하면 노구치는 야쿠자 우두머리인 까오펑 회장에게 죽임을 당할 처지였다. 그래서 노구치는 메이펑과 링링, 싼랑을 필사적으로 괴롭힌다. 노구치가 하는 또 다른 일은 인신매매로, 잘 생긴 노구치는 여성들을 유혹해서 자신에게 빠져들게 한 뒤 유인 납치하여 몸을 팔 것을 강요하고 있었다. 링링은 메이펑이 노구치의 마수에 걸려든 것을 알고 그녀를 구하려 한다.

너무 웃겨서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것들을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사라진 메이펑을 찾기 위해 애쓰던 싼랑이 말한다.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야.” 일본에서 왠 서울의 김서방? 웃기지만 이건 번역상의 문제라서 그냥 넘어가기로 하고. 악당들의 소굴에서 까오펑 회장을 만난 링링은 그와 불꽃 튀기는 설전을 펼친다. “네가 예쁘지 않았다면 진작 너를 쫓아냈을 거야.” “회장님은 도박에 그렇게 자신이 있다죠? 그럼 내기를 하죠. 저는 저를 걸 테니, 회장님은 메이펑을 거세요.” 야쿠자들과 도박을 해서 어떻게 이기겠다는 거지?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있어? 걱정이 된 싼랑이 링링에게 묻는다. 그러자 링링이 대답하기를.

“우리 아빠는 타짜였어.”
“우리 아빠는 타짜였어.”
“우리 아빠는 타짜였어.”
“우리 아빠는 타짜였어.”


이 대목에서 관객들은 뒤집어졌다. 아빠가 타짜였다고 딸까지 도박의 고수라는 이 참신한 설정. 다음 장면은 더 웃긴다. 링링은 원래 체조 선수 출신에다 쿵푸 고수였는데 이런 사람이 도박을 하면 어떤 수를 낼 수 있는지 보자. 링링과 야쿠자 나카무라가 하는 도박은 통 안에 주사위 세 개를 넣고 흔들다가 통을 탁 놓으면 주사위가 나오는데, 나온 숫자가 정해진 수에 가까운 쪽이 이기는 것이다. 링링이 말하길, “두 판 다 비기면 제가 지는 걸로 하죠.” 배짱도 좋다. 처음엔 큰 수가 나오는 쪽이 이기는 것으로 한다. 나카무라의 주사위는 6-6-6, 링링의 주사위도 6-6-6. 비겼다. 한 번만 더 비기면 나카무라가 이긴다. 다음엔 작은 수가 나오는 쪽이 이기는 것. 나카무라의 주사위는 1-1-1. 이보다 더 작은 수가 나올 수 없으니 나카무라가 이긴 셈인데, 이때 링링이 통에 주사위를 넣고 굴리면서 말한다. “제가 이겼습니다.”어떻게 이겼다는 거지? 모두가 의아하게 지켜보고 있는데 링링이 통을 탁 놓자 주사위가 나온다. 놀랍게도 주사위 셋 중 하나가 두 쪽으로 갈라지고 주사위 표면이 닳아 없어진 것이었다. 1-1이 나왔으니 링링이 이긴 것이다. 도대체 어떤 방법을 쓴 거지? 궁금한 싼랑이 나중에 링링에게 묻자 그녀가 대답한다.

“내공을 써서 주사위 하나를 부셔버렸어.”
“내공을 써서 주사위 하나를 부셔버렸어.”
“내공을 써서 주사위 하나를 부셔버렸어.”
“내공을 써서 주사위 하나를 부셔버렸어.”


네가 최고입니다. <하얀 비키니의 복수>의 화려한 대사는 이게 끝이 아니다. 헤로인을 찾지 못하고 메이펑과 링링을 회장이 풀어주고, 그들이 일본을 떠날 날이 다가오자 노구치는 부하들을 보내 그녀들을 기습한다. 마침 두 사람은 목욕을 하고 있었는데, 야쿠자가 목욕탕 안으로 들어오며 하는 말.

“등 좀 밀어줄까?”
“등 좀 밀어줄까?”
“등 좀 밀어줄까?”
“등 좀 밀어줄까?”


아니 야쿠자가 언제부터 때밀이가 됐단 말이냐.

<하얀 비키니의 복수>는 꽤 잔인한 영화다. 그러나 잔인한 장면들도 독특한 상상력을 보여주는데, 가령 노구치의 부하들이 말을 듣지 않는 여자들을 고문하는 장면이 있다. 사람 인 모양의 나무에 여자를 쇠사슬로 묶고 거꾸로 세운다. 그 다음에 꿀을 다리에 흘리면 개미가 꼬여드는 것이다. 그들은 이 고문 방법을 개미고문이라고 부르는데, 극중에서 이 고문을 당한 메이펑은 개미에 대한 공포증을 갖게 된다. 반대로 이번에는 여자들이 야쿠자를 응징하는 장면. 야쿠자 중 하나인 이시이를 유혹하는 데 성공한 여자들. 한 여자가 허리띠를 푸는데 그 허리띠는 튜브로 되어있었고 안에는 뱀이 들어있었다. 여자가 뱀을 이시이의 팬티 속에 넣는다!

<하얀 비키니의 복수>는 제목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복수 영화고, 당연히도 링링이 노구치에게 눈을 잃은 후 복수하는 일이 영화의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왼쪽 눈에 안대를 한 링링이 친구의 도장에 찾아가서 수련생들을 불러놓고 “나는 지금부터 양심도 없는 남자들을 응징하러 간다. 나는 내 목숨을 걸 것이다. 너희들은 나를 따르겠는가?”라고 말하면 모두들 머리를 숙이고 “예!”라고 외치는 엄숙하고도 멋진 장면이 있지 않은가(물론 생각해보면 웃기는 장면이긴 하다. 쿵푸를 배우러 온 사람들이 갑자기 결사대가 되다니). 그러나 아쉽게도 균형이 맞지 않는다. 복수는 너무 짧고 그 전까지의 과정은 너무 길다. 그래서 보고 나면 뭔가 아쉽고 허무한 느낌이 드는 걸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하얀 비키니의 복수>는 B무비의 재미란 무엇인지 유감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부류의 영화는 허접하고 선정적인 재미로 보는 것이지, 완벽을 기대하면 안 된다.

제목인 <하얀 비키니의 복수>는 물론 의역이지만 영화 내용과 완전히 동떨어진 것은 아니다. 노구치 일당은 여자들에게 하얀 비키니 같은 옷을 입힌 다음에 손님을 맞이하도록 한다. 나중에는 링링을 비롯한 쿵푸 도장 수련생들이 하얀 비키니를 입고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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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 블랙 무비를 말하다 (臺灣黑電影, Taiwan Black Movies, 2005)

감독 : 후계연
출연 : 천보원, 왕총광


<타이완 블랙 무비를 말하다>는 1970년대 말부터 타이완에서 크게 유행한 소위 사회영화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사회영화라는 명칭이 붙긴 했지만 이 영화들은 사실 범죄와 폭력을 다룬 B무비였는데, 그 시초는 1979년 제작된 구양준 감독의 <착오적제일보 錯誤的第一步>였다. <착오적제일보>는 한 범죄자가 자신의 범행을 뉘우치면서 시작하는데, 영화는 왜 이 남자가 타락하게 됐는지를 파고들고 있으며, 창으로 사람을 찔러 죽이는 등의 범행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다. <착오적제일보>의 성공으로 타이완에 현실주의 영화, 즉 범죄영화의 열풍이 불어 이후 수년 동안 100여 편이 넘는 작품들이 만들어졌다. 구양준 감독은 <착오적제일보>를 만들고 나서 경찰청에 불려갔는데 당시 타이완 경찰청은 우리나라의 과거 안기부에 비교될 정도로 무서운 곳이었다고 한다. 그는 경찰청에서 왜 감옥에 관한 영화를 만들었는지 질문을 받았고(<착오적제일보>에는 당시 타이완 영화에서는 최초로 수감자의 발에 채우는 족쇄가 등장했다고 한다), 다행히도 경찰청의 주요 인사로부터 이 정도로 만든 것은 괜찮다는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1970년대 중반부터 타이완은 거센 정치 사회적 변화를 겪었다. 바깥으로는 UN에서 퇴출되는 등 국제적으로 고립되기 시작했고, 내적으로는 민주화 요구와 사회질서를 유지하려는 움직임 사이에 심한 갈등이 벌어졌다. 반대로 경제는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었으므로,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한 인사의 표현에 따르면 이 시기는 가장 좋은 시대이자 가장 나쁜 시대였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억눌린 감정을 발산하고자 하는 대중들의 욕구는 영화 제작자들로 하여금 자극적인 영화를 만들도록 했다. 그때까지 타이완 사회는 순박하고 보수적인 분위기였으며, 뉴스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줄 수 있었다. 그래서 당시 시나리오 작가들은 실제 사건을 근거로 시나리오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탄생한 영화가 <풍광여살성 瘋狂女煞星>(1981), <상하이 사회 파일 上海社會檔案>(1981) 등이다. 또한 제작자들은 사회적 혹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소재에 선정성을 결합시켜서 영화를 흥행시킬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상흔문학을 소재로 한 어떤 반공영화는 그 흥행의 이유가 대여섯 번에 걸친 여성의 유두 노출이었다든가, <상하이 사회 파일>의 부제가 <소녀의 초야권>이었다든가 하는 것들이다. 당시 관객들에게는 타이완 영화는 뻔하지만, 헐리우드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여성의 노출과 쿵푸 장면이 있어서 보러 간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정권은 영화가 비록 선정적이라도 반공적인 영화라면 눈감아주었고, 소위 말하는 3S 정책과 비슷한 취지의 정책이 영화계에도 적용되었다. 세상 사람들의 관심이 선정적인 영화로 빠져나가도록 부추긴 측면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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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는 당시 제작 환경 등을 전해주는 일련의 에피소드를 말해주는데, 당시 만들어진 어떤 영화의 경우 감독에게 주어진 것은 주인공이 사회영화의 대스타였던 육소분이라는 것과 개봉일 뿐이었다. 육소분을 데리고 정해진 기간 안에 당시 인기를 끌던 사회영화를 만들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감독은 시나리오를 그날그날 써가면서 20일 만에 영화를 완성시켰고, 이 영화는 다행히도 꽤 흥행했다고 한다. 당시 영화계와 깡패들의 관계를 설명하는 부분도 흥미로운데, 그때 사회영화가 꽤 흥행하던 시절이라 별별 사람들이 다 영화판에 뛰어들었고, 그 중에는 깡패들도 있었다. 그때는 스타를 캐스팅하려면 반드시 깡패들과 협의를 해야 했다. 감독이 촬영장에서 깡패들에게 쫓겨 달아나는 일도 흔했고, 소위 촬영부대라는 것도 있었다. 깡패들이 차를 타고 돌아다니다가, 영화를 찍는 것을 보면 우루루 내려서 그 영화의 엑스트라나 조연 배우로 출연하는 것이다. 만약에 거부하면 촬영장이 피바다가 될 각오를 해야 했다. 깡패들은 그렇게 영화에 출연하고 한사람 당 5천 위안씩을 받아갔다고 한다. 1982년에는 사회영화의 열풍에 이어 도박 영화가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다큐멘터리에서는 인터뷰어의 입을 빌어 그때 타이완 영화에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당시 영화 검열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타이완 정부의 사전 검열은 매우 혹독한 수준이었는데, 사전 검열을 위한 상영회가 존재했다. 각계 유명 인사들로 구성된 검열위원들이 영화를 보다 문제가 될만한 장면이 나오면 그 자리에서 벨을 누르는 방식이었다. 그러면 영사기사가 종이 같은 것을 문제가 된 부분의 필름에 끼워 놓았는데, 영화 상영이 끝나고 보면 필름이 종잇조각으로 빼곡했다고 한다. 검열 때문에 해외 판본과 타이완 국내 판본이 다른 경우가 많았고, 삭제한 필름을 보관해뒀다가 다시 붙여서 몰래 상영하는 경우도 있었다. 애국과 반공이라는 주제는 앞서 말한 것처럼 에로틱하거나 폭력적인 영화의 보호막이 되었다.

사회영화가 명색이 사회라는 말이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사회영화에는 타이완의 흔적이 없었다. 그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비단 사회영화뿐만 아니라 당시 타이완 영화에 전반적으로 적용되는 것들이다. 당시 타이완 영화는 동남아에 대부분 선판매되었기 때문에 타이완적인 요소를 빼는 것이 해외에서의 흥행에는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검열. 검열은 타이완의 특색, 타이완이란 무엇인가를 말해주는 요소를 영화에서 지워버렸다. 당시 사회영화는 겉으로는 타이완 사회를 잘 설명해준 것 같지만 검열에 의해서 이런 요소들은 실제로는 거세되었고, 남은 것은 선정성뿐이었다. 사회영화들은 사회에서 밀려나고 상처 입은 주인공들을 등장시켰지만 이들이 사회에서 왜 밀려났는가, 왜 상처를 입었는가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그 원인을 지극히 단순화시켰다. 한 인터뷰어는 진정한 사회영화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은 <착오적제일보>와 <새벽 6시의 총성 凌晨六點槍聲>(1979)뿐이라고 말한다. 소위 사회영화들이 다룬 사회 현상은 일반적인 사회 현상이 아니었고, 전에 볼 수 없었던 폭력이나 조폭 등의 소재를 등장시킨 것이었을 뿐이었으므로 결국 새로운 장르로 대체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사회영화들에 담긴 페미니즘 요소이다. 사회영화들 중에는 남성에게 처절하게 강간당하고 그 복수를 실행하는 여성들이 등장하는 영화가 많았는데, 이는 당시 증가하는 여성의 사회참여를 바라보는 남성들의 우려와 불안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많은 영화가 나오다보니, 그 중에서는 형식적으로 새로운 실험을 한 영화들도 간혹 생겨났는데, 예를 들어 <신용여살성 神勇女煞星>(1982) 같은 영화에는 네거티브 필름을 사용한 장면이 있었다(인터뷰를 한 감독은 <신용여살성>을 굉장히 참신한 영화로 묘사하는데, 이 영화는 아벨 페라라 감독의 <복수의 립스틱>과 내용면에서 거의 흡사한 것으로 보인다. 둘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서 나온 영화라 어느 쪽이 어느 쪽의 영향을 받았는지 말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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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당시 타이완에서는 영화에 현실을 담아낼 방법이 없었고, 현실에 만족하지 못할 때 영화는 도피하거나, 관객들을 선정적으로 자극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것이 소위 사회영화라 불리는 블랙 무비로 나타난 것이었다. 그러면서 다큐멘터리는 1979년 메이리다오 사건, 좌파의 독서회 조직, 따이광화 사건, 린이슝 일가 몰살사건 등 당시에 일어났던 유명한 정치 사회적 사건들을 거론하고 있다. 타이완 영화들은 사회는 물론 정치도 건드릴 수 없었다.

사회영화가 타이완 영화에 궁극적으로 미친 영향은, 이 영화들이 그때까지 타이완 영화계를 이끌어왔던 영화 제작 시스템의 몰락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사회영화처럼 빠른 시간 안에 찍어내는 값싼 영화들은 영화 제작진과 배우들에게 일정한 일거리를 줌으로써 그들의 생계를 유지하게 하며 제작 시스템을 돌아가게 했다. 결과적으로 사회영화의 출현은 소위 말하는 타이완 뉴웨이브 영화 탄생에 공헌하게 되었는데, 타이완 뉴웨이브 영화는 작가 영화였고, 개인적 창작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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