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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3/06 바벨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by Wolverine (4)
  2. 2007/01/08 수면의 과학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by Wolverine (2)
  3. 2006/12/22 나쁜 교육 by Wolver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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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 (Babel, 2006)

감독 :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출연 : 브래드 피트, 케이트 블란쳇,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아드리아나 바라자, 엘 패닝, 기쿠치 린코, 야쿠쇼 코지


<바벨>은 모로코로 여행을 떠난 미국인 리처드와 수잔 부부, 모로코 소년 유세프와 그의 형 아흐메드, 멕시코인 보모 아멜리아와 그녀가 맡고 있는 백인 남매인 마이크와 데비, 일본인 여고생 치에코 등의 이야기를 느슨하게 연결시켜 놓은 영화이다. 치에코의 아버지 야스지로는 모로코로 사냥 여행을 가서 현지인 가이드 핫산에게 안내를 정성껏 잘 해주었다며 총을 주고, 핫산은 그 총을 압둘라에게 판다. 압둘라는 두 아들인 아흐메드와 유세프에게 (염소를 지키기 위해) 자칼을 잡으라며 총을 맡기는데 사격을 잘 하는 유세프는 형과 경쟁을 하다 관광 버스에 총을 쏘아 버스 안에 타고 있던 수잔이 총상을 입는다. 마이크와 데비는 리처드와 수잔의 아이들로, 아멜리아는 아들의 결혼식에 가기 위해 이들을 데리고 멕시코 국경을 넘는다. 아이들을 맡길 데가 없었던 것이다. 이들을 데리고 가는 사람은 아멜리아의 조카 산티아고다.

<바벨>이라는 제목은 인간이 거대한 탑을 만들었다가 신의 노여움을 사 언어가 갈라지게 되었다는 옛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고 실제로 각 주인공들은 서로 다른 나라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언어 때문에 곤란을 겪는 일은 거의 없다. 모로코의 리처드에게는 통역을 해주는 관광 가이드 안와르가 있고 아멜리아는 영어를 할 줄 안다. 농아인 일본인 청소년 치에코도 불편하지만 의사소통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수화를 하거나, 필담을 하거나.

영화를 본 나는 <바벨>이라는 제목에서 갈라진 언어가 아니라 고대인들이 쌓아 올리던 거대한 탑 그 자체를 떠올리게 되었다. 이 영화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같은 시간에 동시에 벌어지는 일들이 아니다. 그 한 예로 영화 초반 마이크가 처음 등장해서 (그때는 아직 누구인지 관객들이 알 수 없는) 아버지와 전화통화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영화 마지막에 가서야 관객들은 그 아버지가 리처드였음을 알게 된다. 이 영화의 구조는 마치 짧은 거리를 돌아서 가는 나선계단을 밟고 거대한 탑에 오르는 것 같이 비틀려 있다. 보면서 굉장히 답답했는데 특히 아멜리아가 사막을 헤매는 장면이 그랬다. 탑을 오르는 것을 보면서 나도 현기증이 난 것 같다.(그런 답답함과 희망을 느껴 보라고 만든 영화겠지만.)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미국이라는 제1세계가 쌓아 올린 탑을 힘겹게 오르고 있다. 미국인들은 외부인들을 불신하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관료주의라는 높은 성벽을 쌓아 올렸다. 미국 대사관에서는 모로코 측에서 총격 사건이 테러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잔을 호송하기 위한 헬기 출발을 지연시키고(절차상 문제가 있다는 명목으로), 아멜리아 일행은 지나치게 까다로운 신분 검사 때문에 밀입국자가 된다. 이렇게 미국/다른 세계의 관점으로 본다면 다른 이야기들과 아주 느슨하게(사실은 거의 억지로) 연결된 일본 에피소드가 왜 등장하는지 납득할 수 있다. 일본은 아시아권이면서도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경제 대국으로 군림하고 있으므로 두 세계가 만나는 곳이다.

다만 일본 에피소드는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근원적인 현대 문명의 문제로 돌아가는데, 치에코는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지만(주인공이 농아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타인과 다르기 때문에 외면받을 거라는 근본적인 불안을 갖고 있다. 이 이야기는 설득력이 있어서 특히 몰입해서 볼 수 있었는데, 사람들은 불안 때문에 바보같은 짓을 저지르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남자들에게 자신의 성기를 보여주는 치에코의 행동은 파격적이긴 하지만 이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리처드가 안와르와 헤어지는 장면, 그리고 아버지와 딸이 고층 아파트(바벨탑!)에서 서로 포옹하고 있는 장면은 아직 탑이 무너지지 않았고, 언어도 갈라지지 않았다는 안도감을 불러 일으킨다. 서로 말을 건네고 연대감을 가진다면 언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극장에서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산티아고 역)이 어두운 방에 숨어 있는 사진을 봤는데, 막상 영화에서 산티아고의 행방은 밝혀지지 않는다. 이 부분은 dvd로 확인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치에코가 남자들에게 자신의 성기를 보여주는 장면은 잘리지 않고 나왔는데, 세상이 바뀐 걸 감사하게 여길 뿐이다. 만약 저 장면이 잘렸다면 "털 많은 괴물을 보여주겠다."는 대사가 무슨 뜻인지 내 어찌 알리?

다코타 패닝의 동생이었던가, 난 되려 언니보다 귀엽다는 생각이 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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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의 과학 (La Science des rêves, 2006)

감독 : 미셸 공드리
출연 :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샤를로트 갱스부르, 알랭 사바, 미우 미우

다음은 이 영화에서 제일 재미있었던 장면 중 하나.
스테판은 욕조에서 목욕을 하다 잠이 들고, 옆집 여자 스테파니에게 꿈 속에서 편지를 쓴다. 목욕물이 차가워지면서 깨어난 스테판은 자기가 진짜로 횡설수설하는 내용의 편지를 써서 스테파니네 집 문 밑으로 밀어넣었다는 것을 깨닫는데... 편지를 꺼내 온 스테판은 스테파니가 자신이 알몸으로 편지를 밀어넣는 것을 봤다는 사실, 그녀가 편지를 읽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스테파니가 친구 조이에게 말한 편지의 내용은 대략 이런 것이다. "이웃, 너는 매력적이지만 나는 네 친구 조이에게 더 끌린다. 난 네 이웃이고 거짓말쟁이다. 조이 연락처 가르쳐 줄래?"

<수면의 과학>에서 스테판은 자기가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남자는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더 많이 속는데, 예를 들어 스테파니의 친구 조이는 다친 스테판의 손에 무좀약을 발라 주기도 하고, 스테파니가 음반 기획 일을 한다고 (재미로) 거짓말을 한다. 스테판의 어머니 크리스틴도 스테판을 불러들이면서 그가 어떤 일을 하게 될 것인지는 솔직히 알려주지 않았다. 스테판의 상사 기도 "네 전임자는 2주 전 자살했다"는 농담이나 늘어놓고... 스테판은 주위 사람들에게 이리 저리 속고, 자신이 속은 것을 알고는 불평을 늘어놓지만 결코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심하게 원망하지는 않는다.
스테판은 기껏 꿈에서 아버지에게 "사실은 듀크 엘링턴이 아니라 덕 엘링턴"이라고 하는 정도, 그리고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스테파니에게 옆집에 산다고 말 못하고 다른 데 사는 사람인 척 하는 정도 밖에는 다른 사람을 속이지 못한다. 대단한 거짓말도 아니잖아. 그런데 왜 이 남자는 자기를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는 다른 사람보다는 자신을 더 많이 속이기 때문이다.
스테판은 자기가 책임져야 할 일을 끊임없이 스테파니의 책임으로 돌리고 그에 따라 현실을 왜곡시킨다. 스테파니가 파멸학 달력 성공 기념 파티에서 다른 남자와 야한 춤을 추는 것은 스테판의 상상일 뿐이다. 사실 스테판이 보는 것은 실제 스테파니가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조이와 기가 춤을 추던 모습을 이상하게 바라봤던 기억, 즉 스테파니는 저러면 안 된다는 그의 무의식적인 걱정을 형상화시킨 것 뿐이다.
멕시코로 돌아간다면서 스테파니의 집을 찾은 스테판이 그녀에게 끝없는 음담패설을 늘어놓는 것, 뻔히 집에 없는 스테파니네 집 문을 머리로 들이받는 자학적인 장면도 그런 모습의 일부로 보였다. 영화 후반부로 가면서 기가 스테파니에 대해, 그녀는 상처받기 싫어 남을 외면하면서 그 상처가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모른다는 식으로 말하는 대목이 있는데 사실 그 이야기는 스테파니가 아니라 스테판에게 돌아가야 한다. 영화의 다른 장면들도 스테판의 자아가 얼마나 미숙한지 잘 보여주고 있다.

스테판은 자기 중심적이고 자아가 강하다. 그래서 자신을 잘 용납하지 못한다. 이러한 그의 강한 자아가 현실과 꿈을 뒤섞는 신경증의 원인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혹은 부모의 이혼이 원인?). 여하튼, 첫 장면에서 스테판이 자신의 꿈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하는 것 중의 하나가 파스타인데 그는 영화 중반부에서 "스파게티처럼 흐물흐물해지기 싫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꿈과 현실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거기에 대책 없이 휘둘리면서도 그런 상태를 좋아하진 않는다.
그런 반면 스테판은 자기 생각에 대한 확신과 자만심이 강해서 P.S.R. 이론(Parallel Synchronized Randomness)이나 스테파니와 자신이 연결되어 있다는 이론 등에 집착한다. 이 영화에서 스테판이 생각하고 말하는 수면의 과학이란 결코 대단한 게 아니다. 몇 가지 이론과 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자신의 독창적인 설명 정도. 그런데 스테판은 자기 꿈 속에서 대성공을 거두고 회사의 직원 세 명은 기꺼이 스테판의 발 밑에 무릎을 꿇는다. 실제로 그의 '파멸학' 달력은 성공을 거두지만 스테판의 꿈 속의 성공은 그 정도가 아니라 자기 편지 제목을 딴 베스트 셀러를 세우고 자기 이름을 딴 건물이 올라가는 과대망상적인 것이다. 스테판의 거침 없는 섹스에 대한 욕구 또한 오히려 그가 정신적으로 어리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그의 인간 관계가 서투르다는 것은 단적으로 그와 여성들의 관계를 보면 드러나는데, 스테판은 영화에 등장하는 세 명의 젊은 여성에게 모두 관심을 갖고 있었음이 드러난다(술집에서 춤추던 다른 여자와 키스하기도 한다.). 마르틴과는 꿈속에서 섹스하고, 조이에게도 관심을 보이며 최종적으로 그가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스테파니이다. 이것은 스테판이 이 여자 저 여자 집적거리고 다니는 걸 좋아하는 바람둥이라서가 아니라 감정 조절에 미숙하고 충동적이며 자기가 뭘 원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는 성숙한 관계를 맺기 위해 좀 더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스테판과 스테파니가 맺어지는 것이 필연적인 것은 세상에서 스테판을 사랑하고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은 스테파니뿐이기 때문이다. 스테파니는 스테판보다는 다정하고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이지만 어쨌든 그녀도 본질적으로 스테판과 같은 사람이다.
스테판은 스테파니가 자기 쪽지를 읽지도 않고 내용을 이해하고 있는 거라고 터무니 없는 오해를 하지만, 두 사람은 사실 꿈으로 연결되어 있다. 스테판이 꿈을 통해서 스테파니에게 구애를 할 때 스테파니는 꿈 속에서 그 모습을 지켜 보며 여기도 스테판, 저기도 스테판이 보인다고 불평을 한다. 스테판이 생쇼를 해 가면서 골든 포니 보이를 몰래 고쳤을때 스테파니는 스테판에게 전화를 하고, 스테판은 자신의 꿈 속에서 보이는 것을 스테파니에게 얘기해줄 수 있었다. 두 사람의 관계를 망치는 것은 스테판의 불안 때문이다. 스테판은 그녀가 아버지 같다고 얘기하는데, 그는 이미 아버지를 잃었다. 즉, 스테판은 스테파니를 (아버지 처럼) 다시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상처 입기 전에 상처 입히는 전략을 취함으로써 현실을 왜곡하는 한편 자신을 속이고 타인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히는 것으로 나아간다. 스테판은 비슷한 문제에 대해 이런 식으로 대처해 왔을 것이며, 스스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에 이르러 어렵사리 스테판은 자기의 진심을 털어놓는다. 그건 마치 유치한 성격의 천재가 불평하는 것같이 들리기도 하고, 앞으로 두 사람의 관계가 결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순 없겠지만 어쨌든 스테판과 스테파니는 그 순간 꿈속에서 행복한 것처럼 보인다. <수면의 과학>의 스테판은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고, 영화는 아기자기하다. 그 귀여운 상상을 걷어내면 이 영화는 구질구질하고 비참하겠지만.

샤를로트 갱스부르의 모친 되시는 제인 버킨은 알랭 들롱과 함께 나온 <수영장(La Piscine, 1969)>이라는 영화에서 본 적이 있다. 적어도 <수면의 과학>에 나오는 샤를로트 갱스부르보다 제인 버킨은 훨씬 뇌쇄적인 배우였는데(그래도 샤를로트 갱스부르가 더 좋지만) 단 한 가지, 치열이 별로 고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수면의 과학>에서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이 샤를로트 갱스부르에게 "치아 교정 좀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장면을 보고 나는 이 모녀의 치열을 둘러싼 오래된 농담이 그 동네에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샤를로트 갱스부르 같은 여자 있으면 한 번 만나보고 싶다. 물론 영화 속 스테파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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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버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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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로트 갱스부르(스테파니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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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제일 재미있는 인물인 알랭 사바(기 역)와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스테판). 이 큰 손 나오는 장면보다 골판지로 만든 자동차 타고 도피하는 장면 쪽이 더 재미있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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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교육

영화 리뷰 2006/12/22 00:39

나쁜 교육 (La Mala Educacion, 2004)

감독 : 페드로 알모도바르
출연 :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펠레 마르티네즈, 다니엘 히메네즈 카초, 하비에르 카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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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교육>을 보고 온 날 후배에게 스페인 영화를 봤다고 하니까 "스페인 영화는 다 XX하다면서요?"라고 물어봅디다. 전부 다 그런건 아니라는 말은 싱겁기 짝이 없는 정답일 뿐이었겠죠. 누군가 그런 꿈을 꾸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진짜 특색없는 영화를 한번 보고 싶습니다.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배우들이 각자 자기네 말로 떠들고 특정 역사적, 사회적 요소를 탈색시킨, 헐리우드의 다국적 영화가 아닌 완전 무국적 영화. 그걸 전 세계에서 상영했을때 각자 다른 사회의 관객들이 공히 동감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면, 그것을 인류 보편의 감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그녀에게> 이후로 다시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를 극장에서 봅니다. <그녀에게>를 볼 때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깐느 영화제 개막작에다 예술영화 딱지가 붙은 <나쁜 교육>을 보면서도 이 감독이 난해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거나 이 영화가 굉장히 어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저로선 어디가 그런지 이해하기 힘들지만 코미디를 보는 것처럼 웃으면서 봤다는 사람들도 꽤 되는 것으로 압니다.
다만 영화를 보면서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주인공인 엔리케의 감정이 꼭 잡히지 않았다는 거였어요. 후안과 마뇰로 신부, 이냐시오의 욕망과 애증은 부글부글 생생히 끓어오르는데, 엔리케는 무엇을 욕망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그리움일 수도 있고 영화 감독이 된 지금으로서는 자기 영화에 대한 집착일 수도 있을 테죠. 여하튼 뚜렷해 보이진 않았어요. 어쩌면 그래서 엔리케는 이야기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처럼 휩쓸려들어가지 않았던 건지도 모르죠.

남자와 남자 사이의 얘기라서 특이해 보이지만 <나쁜 교육>은 기본적으로 치정극이며 아름다움과 순수한 사랑에 대한 추억의 묘사가 이 치정극을 감싸고 있습니다. 치정이란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더러운 것. 그리고 시시껍절하면서도 가장 뜨거운 것. 이 영화를 보면서 그것을 아주 강하게 느꼈어요. 어디에 방점을 두고 영화를 보느냐에 따라 영화가 달라보일수도 있지만 제게 <나쁜 교육>은 단연 치정극 중심의 후반부였습니다. 요약하자면 한 남자가 성공을 위해 사랑과 자신의 몸을 미끼로 타인을 이용하는데, 그와 관련된 다른 남자들은 그에게 당하거나 이용됩니다. 관찰자인 엔리케를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의 행보와 최후는 통속적이고 처절해요. 순수한 사랑, 육욕, 추억, 성공 등의 욕망 속에서 부침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실컷 보고 온 셈이죠.

제가 가장 공감할 수 있었던 인물은 파계한 신부 마뇰로였습니다. 그는 이냐시오가 신학교에 있던 시절 그를 사랑한 나머지 이냐시오와 엔리케를 갈라놓습니다. 그런데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이 연기하는 시나리오(La Vista) 속의 아름다운 여장남자 자하라와는 달리 마뇰로의 고백으로 드러나는 성장한 이냐시오는 약에 찌든 협박범이며 아름답지 않은 여장남자입니다. 마뇰로의 충격이 컸겠죠. 아마 그의 삶이 무너진 것은 후안에게 반했기 때문이 아니라 추하게 변한 이냐시오를 만났기 때문일 겁니다.

신부에게 충분히 감정이입할 수 있을 만큼 어린 시절의 이냐시오는 아름다웠는데 말로 얘기하는 것보다 가서 보시는 게 좋겠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많이 느꼈습니다.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소년들과 여장남자의 아름다움이죠. 제가 남성/이성애자라는 거 밝혀야 되겠죠? ^^;;; 마뇰로 신부의 기타 반주에 맞춰 '문 리버'를 부르는 이냐시오, 넘어졌을 때 그의 이마 위로 빨간 피가 흘러내리는 장면은 강렬하죠. 전 하리수를 보면서도 (물론 예쁘지만) 예쁘다는 걸 느낀 적은 별로 없지만 자하라는 정말 예쁘더군요. 현실에서는 엔리케가 너는 몸이 굵어서 안된다며 몇번 퇴짜를 놓았지만. X에 침을 바르는 여장남자를 보고 관능을 느끼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냐시오는 성형수술을 한 뒤 아름답게 되어 엔리케 앞에 나타나려고 합니다. 약도 끊으려 하고.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기 위해 마뇰로를 협박해서 돈을 뜯어내려고 하죠. 이냐시오가 엔리케에게 쓴 편지에 적혀있던 "사랑하는 엔리케, 난 해냈다."라는 말에서 앞서 얘기한 것들이 들어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추억과 사랑의 모든 면모를 보여주는 영화가 있다면 바로 <나쁜 교육>을 고르게 될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그 아름다움과 추함을 모두 드러내죠.

1)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이 수영장 바닥에 서 있는 장면에서 극중 인물의 내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좋은 장면이었죠.
2) <그녀에게>에서 베니그노 역을 맡았던 하비에르 카마라도 여장남자로 나오는데, 빈말로도 예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베니그노를 다시 보게 되다니 좋습니다.

Posted by Wolver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