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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12/20 알포인트 by Wolverine

알포인트

영화 리뷰 2006/12/20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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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포인트 (R-Point, 2004)

감독 : 공수창
출연 : 감우성, 손병호, 오태경, 박원상, 이선균, 정경호, 기주봉, 안내상


알 포인트를 본지 시간이 꽤 지났네요. 한 2주, 3주? 재미가 없는 건 아니었는데, 어딘지 굉장히 미진한 느낌이었어요. 그게 뭔지 처음엔 잘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어렴풋하게 정리가 되는 것 같아요.

영화 초반에 CID 대장(기주봉)이 알 포인트의 생존자를 심문하는 장면이 있죠. 그때 그 생존자가 자신들은 귀신과 싸웠다고 울음을 터뜨립니다. 그걸 보고 나면 관객들은 앞으로 귀신들이 나와서 알 포인트 수색대원들을 조져버리겠구나 하고 짐작하게 되겠죠. 대다수의 관객들은 <에일리언>에서 노스트로모 대원들을 학살하는 외계 괴물처럼, 앞으로 등장할 귀신이 그런 역할을 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이 영화에서 귀신의 역할은 모호합니다.

<알 포인트>의 귀신들은 끊임없이 인간인 척 합니다. 이재필 상병(정경호)이었던가요? 그가 수색을 나가서 길을 잃어버렸다가 만나는 귀신들도, 나중에 죽은 것으로 밝혀지는 미군들도 병사들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죠. 수색대원들은 나중에야 그들이 귀신인 것을 알아챌 뿐인데, 말하자면 <알 포인트>의 초중반부는 타자와의 대결이라는 공포영화의 문법을 따르는 대신 전형적인 괴담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제작진은 이런 괴담의 형식 안에서 차츰 긴장감을 고조시켜 나가기로 한 것 같습니다.

병사들이 본격적으로 죽어나가는 중반부부터 본격적인 공포영화가 시작된다고 볼 수 있을텐데, 그때 병사들을 따라붙어 죽게 만드는 '귀신'들은 감우성앞에만 나타나는 아오자이 입은 여인의 귀신도 아니고, 밤마다 무전을 치는 죽은 프랑스 병사, 혹은 프랑스 군이나 중국군에게 죽었을 베트남인들의 귀신도 아닙니다. 그것들은 동료 병사들의 모습을 하고 있죠. 자신의 오발로 인해 사망하거나, 살아있을 때 절친한 사이였던 이들의 모습을 하고 다가옵니다. <알 포인트>에서 공포의 근원은 바로 죄책감이죠. 그건 전장에서 홀로 살아남은 이들의 죄책감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제작진의 무의식 중에는 베트남인에게 느끼는 한국인으로서의 죄의식이 깔려 있었을 것이라고 상상해봅니다.

귀신들린 진창록 중사가 나타나면서 살아남은 병사들은 서로 죽이기 시작합니다. 그건 병사들이 귀신에 들렸기 때문이라고 설명이 되지만, 제게는 이 부분도 굉장히 모호하게 느껴졌어요. 귀신들린 자들은 <이블 데드>같은 좀비들이 아니라 멀쩡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 제3자가 멀리서 그 광경을 봤다면 미친 병사들끼리 서로 죽였다고 생각했겠죠. 결론적으로 이 영화에서 귀신은 살아있는 사람에게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습니다. 그냥 서로 죽고 죽이게 만들 뿐이에요. 어느 날 프랑스 병사들이 한꺼번에 사라졌다는 괴담이나 알 포인트 수색대가 장영수 병장을 빼고 모두 행방불명 되었다는 하는 이야기를 통해 귀신이 대단한 힘을 지닌 것처럼 포장되어 있지만.

<알 포인트>는 잘 만든 영화지만 저는 이 영화가 전형적인 공포 영화에서 많이 벗어나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죄책감에 대한 심리극이랄까요. 물론 그런 공포 영화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알 포인트>는 이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이 기대하고 있던 것과도 많이 다른 작품 아니었을까요? 앞에서 말했듯 영화 초반부에 언급한 영화의 방향과 전개가 달랐고, 마케팅도 이 영화를 독특한 소재를 다룬 전형적인 공포 영화로 포장했죠. 제가 영화를 보면서 뭔가 미진하다고 느낀 게 있었다면 아마 이 부분이었을 겁니다. 생각하던 것과 다른 영화를 본 셈이니까요.
- 2004. 9. 9

Posted by Wolver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