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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 온다

영화 리뷰 2006/12/24 00:53

귀신이 온다 (鬼子來了, 2000)

감독 : 강문
출연 : 강문, 카가와 데루유키

지금은 어떤가 잘 모르겠지만 옛날 아이들이 제일 무서워하던 것은 귀신이나 어둠, 이런 것들이었다. 내가 무서워하던 것은 귀신. 겁이 많았는지 바보 같았는지 어릴 땐 간지럼 귀신이 찾아온다는 말도 믿었다. 대략 발을 내놓고 자면 간지럼 귀신이 찾아와서 간지럼 태운 다음 데리고 가서 잡아먹는다고. 그래서 발을 내놓지 않고 자는 습관은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아... 밤 12시에, 방문 밖에서 귀신 흉내내던 녀석은 누구였을까. 그 녀석 덕분에 애들한테 나는 진짜로 귀신을 본적이 있다고 얼마나 우겼는지 모른다.

강문(姜文)의 <귀신이 온다>를 2년 만에 다시 비디오로 본다. 여기 나오는 귀신이 그 귀신인가? <귀신이 온다> 영화정보 20자평 코너를 보니 누군가, 별 반개 주고 귀신 나오나? 이렇게 써놓긴 했는데. 사실 그런 20자평, 그다지 좋지 않게 보이지만 그냥 자유라고 해둔다.

<귀신이 온다>에 나오는 귀신은 입술에 피 흘리며 곡하는 처녀귀신이 아니라, 총검으로 무장하고 중국인들의 따귀를 때려야 닭고기가 나온다고 믿는 뀌즈(鬼子)다. 만주에서, 남경에서 가릴 것 없이 중국인들을 때려잡던 일본군인들 말이다.

오랫동안 중국 대륙을 먹어들어가던 일본은 드디어 1937년 노구교 사건을 빌미로 본격적인 침략을 개시한다. 일본군은 공비(共産匪賊)들을 토벌하기 위해 모두 죽이고 빼앗고 불태운다는 소위 삼광작전(三光作戰)을 전개하는 한편 남경에서 역사에 길이 남을 규모의 대학살을 자행한다. 그러나 일본군은 기껏해야 중국 대륙의 ‘점과 선’을 지배할 수 있었을 뿐이며 공산당은 대신 드넓은 ‘면’을 차지하고 일본군에 저항하며 중국 혁명의 완수를 노리게 된다.

이것이 <귀신이 온다>의 역사적 배경이 되는데, 소재를 보면 한 편의 훌륭한 항일 영화가 나올 것도 같았지만 이 영화는 결국 중국 정부 당국에 의해 상영 금지 조치를 받았다. 감독인 강문에게도 7년간 작품활동 금지라는 철퇴가 떨어졌고.

<귀신이 온다>와 같은 시대를 다룬 작품으로 장예모(張藝謀) 감독의 <붉은 수수밭>이 있는데, <붉은 수수밭>은 중국의 유명 소설가 모옌(莫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붉은 수수밭>을 보신 분, 그리고 모옌의 원작을 읽으신 분, 그것을 보고 <귀신이 온다>를 보신 분들은 당국이 <귀신이 온다>를 왜 이렇게 엄히 다뤘는지 느낄 수 있으실 터이다. 같은 시대를 다룬 영화라도 <붉은 수수밭>과 <귀신이 온다>의 관점은 너무 다르다. <붉은 수수밭>이 민중의 항일 의지와 생명력을, 수수와 고량주, 태양, 흐르는 피의 붉고 선명한 이미지로 아름답게 그려냈다면 <귀신이 온다>는 민중들의 우매함과 전쟁의 어처구니없음이 빚어낸 잔인한 비극을 우스꽝스럽고 통렬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건 중국에서건 모든 심의는 코미디다. 두 영화의 관점은 다르지만 공평하게 보면 두 작품 모두 진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영화를 본 것이 2001년, 그러니까 2년 전 여름 무렵이었다. 다른 영화를 많이 보지 못했지만 <레퀴엠>과 함께 2001년도 관람작 중 가장 충격적인 영화였으며, 처음엔 웃다가 나중엔 결국 입을 다물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마다산의 목이 굴러가는 부분에서는 내 영혼과 육체가 함께 굴러가는 기분이었다.

처음 영화를 볼 때는 왜 마다산의 목이 아홉 번 구르고 눈을 세 번 깜빡이는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다시 보니 앞에 대사가 있었다. 마다산과 마을 사람들은 하나야를 차마 제 손으로 죽일 수 없으니 사람 목을 치는 솜씨가 좋다는 영감을 불러오는데, 영감을 소개해준 대장간 총잡이에 따르면 영감의 실력이 하도 좋다 보니 편안하게 죽여준 것에 대해 그 자손들까지 찾아와 감사를 표하는데, 죽은 자의 목은 아홉 번 구르고 눈을 세 번 깜박이며, 한쪽 입가엔 미소를 지은 채 자신을 편안하게 죽여준 것에 감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홉 번 구르고 세 번 깜박이며 한쪽 입가에 미소를 짓게 되는 목의 임자는 결국 하나야에게 살해당하는 마다산이다. 진실로 잔인하고 우스꽝스러우며 통렬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귀신이 온다>는 사람에 따라서 하나의 우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영화이며(이 영화의 후반부, 영화의 무대인 철건리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몇 줄로 요약하면 그렇게 보일 것이다), 유머가 넘친다. 광에 갇힌 하나야와 통역관 동한천의 대화를 보자. “일본군인답게 죽겠다(하나야).” “돌대가리 같으니(동한천, 중국어로).” “뭐라고 그랬어?” “현명한 선택이라고 했습니다(이번엔 일본어로).” “빠가야로.” <귀신이 온다>에서는 상황이 기대를 배반하고, 행동은 원하던 것과 반대의 결과를 가져다 준다. 일본군이 자신을 구하러 왔다고 기뻐하는 하나야, 그러나 일본군 대신 뛰어들어온 이웃 농부가 그에게 따귀 세례를 날린다. 마다산을 모욕하려던 하나야가 세상에서 가장 야비한 표정으로 내뱉은 욕은 사실 어르신의 만수무강을 바라는 덕담이다(이 장면에서 극장 안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재미있는 장면 중 하나였다).

이런 엇나감과 역설의 힘이 중반까지는 유머를 만들어내지만, 어느 순간 이후부터는 한편의 강력한 희비극으로 영화를 이끈다. 영화는 등장 인물들을 배반한 것처럼 편하게 영화를 지켜보던 관객들을 배반한 것이다.

국민당 장교는 마다산의 처형을 그의 원수인 일본군에게 맡기며 사람 좋은 일본군 장교는 동네 아이를 귀여워하게 되고, 결국 그것 때문에 아이를 제 손으로 죽이게 된다. 손에 들어온 일본군을 어쩌지 못해 울부짖던 마다산은 결국 살인자가 되며 그를 처형하는 일은 하나야의 몫이 된다. <유주얼 서스펙트>와 <식스 센스> 이후 반전이 나오지 않는 영화는 영화 취급도 받지 못하는 판이며 <귀신이 온다>의 후반부에도 반전이 있기는 하지만 이 영화를 지배하는 것은 반전이 아닌 역설이며, 그 역설은 반전보다 강력하다는 생각이 든다. 큭!

좁은 의미에서의 뀌즈는 일본군을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사실 마다산과 마을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모두가 뀌즈였다. 하나야와 동한천을 맡겨놓고 사라진 괴한, 일본군, 나중에 온 국민당 군대까지. 속고만 살아온 사람들에게 뀌즈 아닌 것이 어디 있을까.

- 2003. 11. 20

Posted by Wolver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