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얼굴의 천사 (Angels with Dirty Faces, 1938)
감독 : 마이클 커티즈
출연 : 제임스 캐그니, 팻 오브라이언, 험프리 보가트, 앤 셰리단
류승완 감독의 말에 따르면 이 영화에는 그가 좋아하는 요소들이 골고루 들어가 있습니다. 짝패가 있었는데 한 명은 아라한의 길을 걷고 다른 한 명은 갱이 되었다가 나중에는 죽거나 혹은 나쁜 결말을 맞이하는...
짝패인 록키 설리반과 제리 코널리는 어린 시절 화물 열차에 실려 있는 만년필을 훔치다가 발각되는데 제리는 발이 조금 더 빨라서 아슬아슬하게 도망치지만 록키는 잡힙니다. 록키를 면회하러 온 제리가 내가 솔직히 털어놓아야 되지 않느냐고 묻지만 록키는 괜찮다고, 네가 잡혔다고 해도 나는 솔직히 털어놓지 않았을 거라고, 그러니 당하고 살지 말라고 합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록키는 범죄에 깊이 물들고 유명한 갱으로 신문 머릿기사를 장식하는 반면 제리는 신부가 됩니다. 어떻게 신부가 된거지? 버스에 올라탔더니 성당이 보이더라고. 그것 뿐이야. 난 버스에 올라탔다가 6년 형을 받았는데.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다가 3년만에 출소한 록키가 15년 만에 제리를 다시 찾음으로써 두 사람은 재회합니다. 록키는 제리가 마음을 돌리려고 애쓰던 거리의 아이들을 만나 그들의 우상이 되지만 록키의 예전 변호사 프레이저와 도시를 장악한 보스 맥 키퍼는 록키가 프레이저에게 맡겼던 돈 10만 달러를 찾고 다시 예전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을 꺼려 그를 죽이려 합니다. 록키는 그들을 제압하는 데 성공하고 그가 범죄 조직으로 돌아가면서 거리의 아이들과 로리(어린 시절 록키와 제리의 앙숙이었으며 지금은 그들의 친구인 여인)까지 록키에게 물들게 되자 제리는 도시에서 범죄 조직을 뿌리뽑는 운동을 펼치기로 합니다.
이 영화는 결말 때문에 정말 싫었습니다. 제리는 사형 집행을 앞둔 록키를 찾아가서, 아이들이 아직도 너를 숭배하고 있다, 그러면 아이들이 바른 길로 가지 못할 것이니 죽음을 겁내는 것처럼 연기를 해라, 그게 신만이 알 수 있는 진정한 용기이다, 라고 설득을 합니다. 록키는 처음에는 너무 심한 부탁 아니냐고 화를 내지만 전기 의자 앞에서 쇼를 하면서 죽어갑니다. 신문과 사람들은 록키가 겁쟁이로 죽었다고 그를 비웃고, 록키가 진짜 그렇게 죽었느냐고 묻는 아이들에게도 제리는 진짜 사람들이 말하는 그대로 죽었다고 이야기하죠. 발이 빠르지 않았던 어떤 아이를 위해 기도를 하러 가자고 제리가 말하자 아이들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그를 따르며 영화가 끝.
제임스 캐그니의 영화를 보면 그가 맡은 주인공이 길거리에서 개처럼 죽어가더라도 사람들이 영웅임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영화 제목인 더러운 얼굴의 천사(영어 제목은 angel이 아니라 angels)란 어린 시절의 록키와 제리를 포함하여 얼굴에 더러운 것을 묻히고 다니는 불량 소년들을 이야기합니다(이 영화의 불량 소년들은 모두 얼굴이 지저분하죠. 농구 시합 장면에서도 다른 아이들은 얼굴이 깨끗합니다). 어쩌면 적들에게 한없이 잔혹하면서도 인간적으로 연민을 느끼게 하는 인물인, 친구에게는 배신당하고 허황된 꿈을 꾸기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영웅적인 범죄자인 제임스 캐그니가 연기하는 인물들 하나 하나가 모두 더러운 얼굴의 천사는 아닐지. 그래서 살아있을 때 영웅이었던 록키를 죽어서 웃음거리로 만든 이 영화가 저는 싫습니다.
물론 이 영화의 결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양한 해석을 내리는 것이 가능합니다. 영화에 아주 섬세하고 미묘한 면이 있다는 건 인정해요. 박찬욱 감독은 록키가 겉으로 표를 내지 않았지만 죽음을 겁냈던 것을 제리 때문에 밖으로 드러낼 수 있었던 거고, 감독이 발버둥치며 죽어가는 록키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그림자로 처리한 것은 그를 배려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더군요. 류승완 감독은 록키가 죽음을 두려워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며 역시 결말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여깁니다. 만약 이 영화를 두 번째 봤을 때 두 사람의 내면에 묻힌 섬세한 감정들, 네가 우리들에 대해 뭘 아느냐고 울부짖는 뭔가가 보인다면 그땐 제 생각도 달라지겠죠. 그러나 그런 걸 과연 찾을 수 있을지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제리가 너무 싫어요.
어렸을 때 제리가 좀 더 빨리 도망갔기 때문에 록키는 소년원에 수감되어 나중에는 갱이 되었고, 록키가 갱으로 복귀했을 때 제리는 아이들을 지킨다는 명분을 내세워 그를 파멸로 몰아갑니다. 그게 록키와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럴 생각이었으면 록키를 설득해서 기도라도 하게 하든가. 록키가 기도하지 말랬다고 진짜 안 해요?
제리가 자신이 바라는 사회의 도덕성을 회복하기 위해 록키를 희생양으로 삼고 마지막 그의 죽음까지 이용한 것이 아니냐, 그런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아이들에게 록키가 그렇게 죽었다고 말할 때는 그 넓적한 얼굴에 물병이라도 던지고 싶었습니다. 그때 제리의 얼굴에는 언뜻 허무함과 고독이 비치지만 그건 중요한 때마다 친구를 사지로 몰아넣은 그 스스로가 자초한 것 아닐지.
기타)
평범한 과부로 지내던 로리는 록키때문에 잠시나마 화려한 생활을 맛보게 되는데(그러나 록키가 자신에게 적대적인 인물들이 우글거리는 갱들의 세계에 로리를 데리고 들어온 것은 좀 무모하고 지나친 것 같습니다. 다치면 어쩌려고!) 록키가 죽은 뒤 그녀의 인생이 어떻게 되었을지는 상상하는 수밖에 없겠죠. 록키가 로리를 데리고 창가에서 화려한 건물을 내다보며 언젠가 저걸 가질 거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어떤 애환과 슬픔 같은 것이 느껴지더군요. 이 장면의 정서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익숙할 거라고 생각해요.
남자들 사이의 멜로드라마라는 말을 저는 오승욱 감독이 60, 70년대 무협영화에 대해 쓴 책에서 읽었는데 어제 또 다시 들었습니다. 무협 영화나 갱스터 영화가 통하는 데가 있다면 그런 부분이겠죠. 남자들 사이의...
이 영화의 명대사라면 록키가 적진에 들어가자마자 툭 던지는 "안녕, 살인하기 좋은 날이야" ('Morning, gentlemen. Nice day for a murder.)와 두 친구가 만나서 나누는 버스 이야기를 뽑겠습니다. 버스 이야기는 원래 영어 대사를 모르겠네요.
그러고 보니 이 영화에 나오는 두 친구의 관계는 <모래시계>의 우석과 태수의 관계와 정말 비슷하군요. 한쪽은 끝까지 감싸고, 다른 한쪽은 안타깝다는 얼굴로 심판하고 파멸시키는. 그런데 모래시계 볼 때는 우석이 나쁜 놈이라는 생각은 안 했어요.
옛날 갱스터 영화, 범죄 영화에서 범죄자-갱이 옥상 같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건 곧 막장으로 간다는 뜻입니다. 이 영화에서도 제임스 캐그니가 경찰들과 대치하면서 옥상으로 올라가더군요.
험프리 보가트가 변호사 프레이저 역으로 나옵니다. 비겁한 악당이죠.
팻 오브라이언(왼쪽)과 제임스 캐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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