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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12/24 뮌헨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by Wolverine

뮌헨 (Munich, 2005)

감독 :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 에릭 바나, 다니엘 크레이그, 키에런 하인즈, 마티유 지소비츠, 한스 지슐러, 제프리 러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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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외전에 방황하는 유대인 아하스 페르츠 이야기가 나온다. 아하스 페르츠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향하던 예수가 잠깐 쉬게 해 달라고 청했을 때, 그 부탁을 거절했다가 저주를 받아 최후의 심판 때까지 방황하게 되었다는 인물이다. 아하스 페르츠의 전설은 오랜 세월 조국 없이 방황한 유대인들의 운명을 드러내기도 하는데,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요원들은 또 다른 아하스 페르츠이다. 영화 어디에도 아하스 페르츠 이야기를 차용한 흔적은 없지만 방황이라는 아하스 페르츠의 운명은 유대인들의 역사, 그리고 이스라엘 요원들의 처지와도 너무나 잘 어울리는 것이다.

1972년 뮌헨 올림픽 당시 팔레스타인 무장 조직 검은 9월단이 팔레스타인 정치범 200여명의 석방을 요구하며 이스라엘 선수 11명을 인질로 잡는다. 이 인질극은 인질로 잡힌 이스라엘 선수들의 전원 사망이라는 비극을 낳고, 이스라엘 측에서는 보복을 결심한다. 이미 무장 단체의 캠프에 공격을 가해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좀 더 눈에 띄고, 적들에게 분명한 교훈을 전해줄 수 있는 방법으로 결정된 것은 사건의 배후 인물들 암살이었다.

<뮌헨>의 주인공인 애브너는 이스라엘의 정보기구인 모사드 요원으로 어린 시절을 키부츠에서 보냈다. 애브너의 부모는 조국을 위해 싸우느라 그를 돌보지 못하고 키부츠에 맡겼다는데, 맡겼다기 보다는 버렸다는 투로 애브너의 아내 다프나는 말한다. 다프나의 출산이 임박하고 완전한 한 가정이 막 만들어지려는 찰나에 애브너는 암살 임무를 맡게 된다. 이스라엘 정부가 공식적으로 부정하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그는 모사드 요원 신분을 버려야 하며, 더 나아가서 가족을 떠나야 한다. 영화에서 잊을 만하면 상기시키는 집과 가족을 그는 잃어버리게 되었으며 이로써 어린 시절에 이은 그의 방황이 시작된다.
 
애브너는 도주와 폭발물 제작, 문서 위조 등을 담당하는 다른 요원들과 함께 암살 작전을 개시한다. 암살 대상자들이 모두 한 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애브너는 정보원에게 돈을 주고 얻은 정보로 로마, 런던, 네덜란드, 그리스 등지에 흩어져 있는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을 찾아내야 한다. 애브너와 그의 동료들은 유럽 전역을 떠돌아다녀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확신과 사명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방랑자처럼 피로해 하진 않는다. 영화 속에서 요리를 잘 하는 것으로 묘사되는 애브너는 동료들을 위해 요리를 만들며 그들은 처음엔 마치 가족처럼 화목하게 지낸다. 작전이 전개되며 대원들 사이의 갈등도 차츰 드러나게 되지만.

애브너 팀의 첫 번째 암살 대상은 로마에서 아라비안 나이트를 번역한 팔레스타인 시인 자이아드 무차시이다.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힘든 일이며 자신이 죽이려는 사람과 서로 마주보고 있다면 더더욱 그럴 테지만 어쨌든 그들은 임무를 달성하고 중압감을 이겨낸다. 두 번째 암살작전에서 애브너의 팀은 암살 대상자의 집 전화에 폭탄을 장치하는데 그의 어린 딸이 전화를 받자 폭탄을 터뜨리려다 취소해 버린다. 애브너 팀은 최소한의 윤리를 지키고자 한다. 무고한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는 것, 민간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말라는 지령은 임무를 맡을 때 이미 내려진 적이 있지만 그것이 아니더라도, 그 원칙이야말로 그들을 무도한 살인자와 구별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작전에서 애브너와 그의 동료인 스티브는 소년 한 명을 죽이게 된다. 그 전에 이미 그들을 지탱하던 것들은 모두 사라졌고, 한 조각 남은 최소한의 정당성마저 망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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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작전에서 소년을 사살한 것은 최후의 오점이지만, 그 전부터 애브너는 자신의 임무에 차츰 회의를 느끼고 영화는 그 과정을 천천히 보여준다. 애브너는 나중에 자신이 죽인 사람들과 우연찮게 몇 차례 얘기를 나눈다. 어느 작전에서 애브너의 팀은 침대에 폭탄을 장치하고 암살 대상자가 침대에 눕기를 기다려 폭탄을 터뜨리려고 하는데, 암살 대상자의 옆 방 베란다에서 그의 동정을 살피던 애브너에게 바람을 쐬러 베란다로 나온 그 남자가 얘기를 건다. 낯선 이들 사이의 한담일 뿐이었지만 애브너는 적잖게 움츠러들고 당황한다. 그리스에서 작전을 펼치던 애브너 팀은 정보원 루이가 마련해준 거처를 찾아가는데 그곳에서 PLO 대원들과 마주친다. 애브너 팀은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고 애브너는 그 중 한 명과 얘기를 나누게 되는데, 그는 애브너에게 “너희들은 집 없는 설움을 모른다.” 라며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의 염원을 털어놓는다. 스티브가 라디오 채널을 놓고 PLO 대원 한 명과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은 팍팍하게 흘러가는 영화에 윤기를 내기도 하지만 PLO 대원들과 애브너 팀의 짧은 만남은 결국 작전 과정에서 애브너 팀이 PLO 대원들을 살해하는 것으로 결말이 난다. 자신과 이야기를 나눴던 남자가 천천히 주저앉아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애브너의 착잡한 얼굴을 카메라는 천천히 훑으며 지나간다. 죽여야 되는 자들이 극악무도한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사실이 애브너의 마음에 동요를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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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정부에 의해 풀려난 검은 9월단 테러리스트들이 TV에서 인터뷰를 하는 장면을 보며 애브너와 그의 동료들은 분노를 느낀다. 애브너 팀은 표적을 하나 둘씩 처리해 나가지만 애초에 제거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11인 이외에 추가된 다른 인물들도 제거하게 된다. 죽은 사람들을 대신해서 새로운 사람들이 자리를 채우고, 새로 들어선 인물들이 더욱 과격하고 잔인하다는 사실에 그들은 좌절한다. 애브너 팀이 저지른 작전에 대한 보복으로 또 다른 테러가 일어나며 더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다. 테러로 테러를 제압할 수 없다는 것, 피는 또 다른 피를 불러온다는 사실은 <뮌헨>의 핵심적인 주제의식으로 영화에 깊은 주름을 새긴다.

애브너의 정보원 루이와 그의 아버지인, 파파라 불리는 인물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했으며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지만 아마 알제리 출신 프랑스 인인 듯 하다. 그들은 드골과 프랑스 정부를 불신하며 어느 정부와도 함께 일하지 않는다고 못박는다. 루이는 여러 차례 애브너와 그의 동료들을 위험에 빠뜨리지만 이스라엘 정부의 공식적인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그의 정보가 없으면 임무를 수행할 수 없기에 애브너는 자신의 정보원에 대해 함구한다. 모사드가 정보원을 알아내기 위해 그를 윽박지르는 것도 애브너의 회의를 한층 깊게 한다.

누구의 소행인지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애브너 팀의 대원들은 하나 둘씩 살해된다. 그리스에서 KGB 요원을 사살한 것에 대한 소련 정보기관의 보복일 수도 있고, 파파가 암시한 대로 이스라엘 정부의 소행일 수도 있다. 살해하는 자에서 살해 당하는 자로, 쫓는 자에서 쫓기는 자로 입장이 뒤바뀌면서 애브너는 극심한 공포를 느낀다. 애브너의 동료들 중 하나인 한스는 폭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자 직접 뛰어들어가 수류탄을 투척할 정도로 저돌적인 인물이었지만 결국 벤치에 앉은 채로 살해된다. 애브너의 대원인 칼을 살해한 자에게 복수했을 때, 한스는 나체로 죽은 여자의 몸에 옷자락을 덮어주려는 애브너를 말린다. 그럴 가치가 없다며. 그러나 죽기 전에 한스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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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들의 죽음으로 거의 와해된 애브너 팀의 마지막 임무는 실패로 돌아가고, 애브너는 마침내 아내와 재회한다. 하지만 애브너의 불안은 풀리지 않으며 작전을 주관한 모사드 요원인 에프라임을 만나고 나서야 그의 방황은 막을 내린다. 애브너는 에프라임에게 자신의 집에서 식사를 같이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지만, 에프라임은 슬픈 얼굴로 애브너의 초대를 거절하며 자리를 떠난다. 집과 가족은 <뮌헨>의 등장인물들에게 소박하면서도 가장 절실한 가치이며 에프라임은 그것을 거부하고 떠남으로써 아하스 페르츠로 남는다. 애브너는 폭력을 포기하면서 안식을 얻지만 피로 피를 씻는 길을 선택한 에프라임과 이스라엘은 그것을 얻지 못하고 방황하게 되는 것이다. 국가를 건설했지만 유대인들은 지금도 쉬지 못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영화는 멀리 세계무역센터를 비추며 관객들에게 9/11을 상기시킨다.

- 2006. 2. 25

Posted by Wolver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