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장 (Burying Old Alive, 1963)
감독 : 김기영
출연 : 김진규, 주증녀, 김보애, 이예춘, 석금성, 박암
1960년대인 현재, 방청객들과 학자들이 인구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한 역사학자가 옛날에 늙은이를 버리는 고려장이라는 풍습이 있었다고 말하고(고려장이라는 말은 역사학자 이병도의 책에 처음 등장하고 그 이전의 어떤 문헌에도 나오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곧 먼 옛날 고려장 풍습이 있던 어느 마을을 무대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나이 70이 되면 밥그릇을 넘겨주고 선인봉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어느 날 다섯 번째 장가를 든 한 남자가 아내를 데리고 마을로 돌아옵니다. 전에 시집 온 여자들은 가난을 견디지 못해 다 도망쳤기 때문에 이 남자는 다섯 번이나 결혼을 해야 했는데, 무당이 고목나무를 지나가려면 정성을 들여야 한다고 돈을 요구합니다. 남자가 돈이 없다고 거절하자 무당은 앙심을 품습니다.
남자가 지금 맞아들인 아내 역시 가난으로 식구들을 잃은 채 남은 아이 구령만 데리고 다시 시집을 왔는데 모두 먹고 살기 위해서입니다. 남자에게는 전처에게서 얻은 열 명의 아들이 있고 이들은 구령이 밥을 먹는 걸 보고 분하게 여깁니다. 마침 앙심을 품은 무당은 구령이 장차 이들 십형제의 목숨을 앗아갈 것이라는 점괘를 남기고, 아이들은 이 말을 다 듣습니다. 아이들은 구령을 뱀에게 물리게 하여 구령은 불구가 되며 어머니는 구령을 데리고 그 집을 떠나는데...
영화는 이후 십형제와 구령의 수십 년에 걸친 갈등을 보여줍니다. 십수 년을 몇 번에 걸쳐 훌쩍 뛰어넘으면서 보여주기 때문에 좀 오래 끈다는 느낌도 있습니다만. 십형제는 구령의 벙어리 아내를 겁탈하고 구령을 압박하여 그녀를 죽이도록 만들뿐만 아니라 간난이의 딸 연이(간난이는 구령이의 옛 애인이었으며 곰보인 연이는 잠시 구령이네 집 민며느리로 있기도 했음)를 무당이 죽여 새태님(점치는 귀신)으로 만들도록 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구령의 어머니는 누명을 쓰고 십형제에게 죽게 된 구령을 구하기 위해 선인봉에 올라갈 것을 자청하는데, 구령이 지금껏 살아온 이유는 바로 어머니 때문이었습니다. 구령은 억지로 어머니를 지게에 담아 올라가는데...
영화 앞부분에 역사학자가 나오지만 이 영화의 무대가 되는 마을은 역사적 무대가 아니라 극단적인 가난이 지배하는 탈역사적, 설화적 무대입니다. 십형제와 구령의 갈등, 하나가 다른 이들을 죽이게 되어 있는 운명, 간절한 기원을 통해 비를 내린다는 설정 등에 그런 요소가 담겨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예를 들어 십형제와 구령의 갈등은 마치 부여 왕자들과 주몽의 이야기를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런 반면 그 신화적 무대의 인간들은 마치 카프 소설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극단적인 가난 아래서 최고로 비참한 생활을 하는 인간들이 등장하는데, 어느 정도냐면 가뭄이 심해지면서 사람들이 물을 못 마십니다. 쥐들은 새끼를 낳는 대신에 먹을 것이 부족해지면 서로 잡아먹어 개체를 조절한다는 학자의 말은 바로 고려장 풍습과 연결되지요.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은 동물과 다를 바 없다, 그런 감독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김기영 감독이 의대를 나왔기 때문에 그 경험이 반영되었다는 얘기도 들었지만 그것 보다는 감독의 인간관이 더 많이 반영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학자들은 쥐의 번식력에 대해 논하고 영화 중반부에서도 쥐가 새끼를 몇 마리 낳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식욕, 성욕, 자손을 남기려는 욕망 같은 생물의 가장 기본적인 본능과 욕구가 영화에 충만하며 갈등의 큰 원인이 됩니다. 십형제와 구령이 어릴 때는 구령이 밥을 먹는 모습을 보고 십형제가 구령을 미워하게 되지만 세월이 흐른 후에는 구령이 장가를 간 것 때문에 장가를 못 간 십형제가 구령과 그의 아내를 괴롭힙니다.
이런 주제의식에 조금도 뒤지지 않게 영화는 생생한 장면들을 많이 보여주는데, 구령이 마지 못해 아내를 죽이는 장면도 처절하거니와 간난이의 아이들이 자기 할아버지, 할머니를 덮쳐서 감자를 뺏고 싸우는 장면은 또 얼마나 놀라운지 모르겠습니다. 단지 구령과 어머니가 이별하는 장면이 긴 것 같습니다. 충분히 그럴만한 개연성이 있지만 조금 더 줄였으면 어땠을까 모르겠군요.
결국 구령이 십형제(들 중의 일부)를 살해하고 모든 비극의 씨앗인 무당을 죽이게 됩니다. 마을의 수호신이라던 고목 나무도 잘리고요. 마지막 장면은 구령이 간난의 아이들을 데리고 씨뿌리러 가자는 말을 하는 것인데, 이것으로 설화와 신화의 시대가 끝나고 근대, 혹은 역사적 시대가 시작됩니다. 영화 중반에 구령이 마을 사람들의 감자를 받고 억지로 땅을 빼앗아가는 장면은 의미심장한데, 구령은 나중에 지주가 되지 않았을까요? 지주-농민의 전근대적 농촌 사회 관계가 무당과 강한 자가 지배하는 원시적 관계를 딛고 일어섭니다.
10권의 필름 중 3권과 6권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없는 부분은 줄거리를 자막으로 알려주고 넘어갔습니다. 십형제가 구령의 아내를 납치하는 장면, 연이가 구령이네 집으로 온 뒤 구령의 어머니가 산에 올라갔다가 구령이 데려오는 이야기 등이 빠져 있는데 특히 나중에 구령을 따르는 근이가 6권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나중에 볼 때는 좀 뜬금없이 보였습니다. 쟤는 언제 어디서 나온 거지? 무엇보다 연이 역을 맡은 배우가 당돌하고 귀여웠습니다. 연이가 대사를 할 때 관객들이 많이 웃었지요.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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