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枯嶺街少年殺人事件, 1991)
감독 : 양덕창
출연 : 장구주, 금연령, 왕주안, 장첸
한 세시 사십 분쯤 시작한 영화가 여덟 시가 다 되어서야 끝났습니다. 숨이 턱턱 막힐만큼 긴 작품이었는데 몰입하면서 볼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었습니다.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 같은 영화는 재미가 있었지만 이상하게 보면서 졸게 되던데. <고령가...>가 재미 없었다는 말은 절대 아니고요.
비슷 비슷한 얼굴들, 비슷 비슷한 이름들(샤오쯔, 샤오밍, 샤오촤이, 샤오만... 주인공인 샤오쯔의 본명은 장젠이지만 아명이나 애칭으로 저렇게 부르는 것 같아요. 하여튼.) 때문에 사건의 개요를 파악하는 데 힘이 들었고, 영화가 너무 길어서 그런지 주인공을 살인으로 몰고간 심리적인 동기나, 실마리(살쾡이가 여자와 만나고 있는 것을 샤오쯔가 목격하는 대목)를 잡아내는 데 조금 미흡했다고나 할까요... 글이라고 쓰지만 많이 틀릴 것 같습니다.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다면 바로잡아 주시길. 여하튼 이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다시 봐야 겠지만 이 길고 긴 이야기를 다시 볼 엄두가 지금으로선 나지 않는군요.
영화의 소재가 되는 살인사건은 실화로, 장개석이 대만으로 건너온 이래 최초의 소년 살인사건이라고 일컬어집니다. 대만 현대사에 대한 짧은 지식을 빌어 말하자면, 사건이 벌어진 1960년대 대만 사회를 움직이는 메커니즘은 우리나라와 아주 흡사합니다. 즉 우리나라가 이승만에서 박정희로 이어지는 반공 독재 체제를 내세우고 있던 것과 흡사하게 대만은 장개석 독재 - 계엄 - 반공주의를 유지하고 있었죠. 해서 영화에는 군인들이 전차를 몰고 지나가는 모습이 자주 나오는데, 남녀 주인공인 샤오쯔와 샤오밍이 얘기를 나눌 때 드륵드륵 전차가 지나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제 기억으로는 샤오쯔와 샤오밍이 처음 엇나가기 시작한 장면에서 그러지 않았나 싶습니다. 적절한 상징이죠. 그리고 2.28 사건에서 폭발한 본성인과 외성인의 갈등. 그러나 샤오쯔의 아버지는 본성인 출신이면서도 주변부로 밀려난 지식인입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자막을 통해, 이 시대의 대만 청소년들이 조직을 많이 만들었다는 얘기가 나오죠. 샤오쯔는 소공원파에 속해 있습니다. 소공원파의 우두머리는 허니라는 녀석이었는데 지금은 어디론가 숨어버린 상태고, 그 밑의 살쾡이와 제비가 조직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카리스마 넘치는 허니가 사라져버린 소공원파는 주위 패들에게 만만한 상대로 비칩니다. 소공원파는 공연장을 하나 갖고 있는데, 여기에서 샤오쯔의 친구(이름이?) 나 제비가 노래를 부르고, 살쾡이가 공연장의 수익을 관리하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공연장을 운영하는 것은 에츠라는 녀석.
허니에게는 여자친구 샤오밍이 있었는데, 샤오밍을 두고 라이벌인 217파 패거리와 허니 사이에 다툼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해서 허니가 217 패거리의 누군가를 찔러 죽이고 잠적했다는 소문이 돕니다. 소공원에 살던 샤오밍은 어찌 된 일인지 217 패거리에 속해 있던 것 같은데, 우연히 샤오쯔를 만나고 그와 친해집니다. 샤오쯔와 샤오밍이 만나는 모습이 217 패거리 눈에 띄는 바람에 곤욕을 치르기도 하고.
샤오쯔는 야간부 중학생인데, 국어 점수에서 낙제점을 받아서 주간부에 들어가지 못했죠. 영화의 오프닝을 보면 대만의 대학에 합격한 사람들 이름을 라디오 방송에서 호명하는데,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그렇습니다. 샤오쯔의 아버지는 이 작은 아들에게 무진장 기대를 걸었지만 결국 허사가 되어 버리고 말죠.
217파의 두목은 에츠를 협박하여 살쾡이와의 만남을 주선합니다. 그렇게 살쾡이를 꼬드겨서 공연장을 먹고 소공원파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하죠.
어디 숨어 있었는지 뒤늦게 돌아온 허니가 이 상황을 막아보려고 하지만 결국 그는 217파 두목의 비겁한 기습에 살해당하고 맙니다. 나중에는 217파 역시 태풍이 몰아치는 날 밤 기습을 받고 와해되고 말죠. 두목도 죽고, 목숨을 건진 살쾡이는 어디론가 도망쳐 버리고.
해서 조직을 둘러싼 분쟁은 막을 내리고, 영화는 샤오쯔 개인의 이야기를 풀어 나갑니다. 샤오쯔는 샤오밍에게 너의 친구가 되겠다고, 지켜주겠다고 말하고 둘은 사귀기 시작합니다만 우여곡절이 있습니다. 샤오쯔는 교장을 배트로 구타하고 학교에서 퇴학당하며 샤오밍은 샤오쯔의 친구인 샤오만의 집 하녀로 들어가는데, 이 녀석이 좀 골때립니다. 여자 문제는 우정에 개입시키지 말자며 친구 여자친구를 희롱하기도 하는 녀석이죠. 장군의 아들이자 부자이기 때문에 아무도 이 녀석을 건드리지 못합니다. 샤오쯔는 몇 년 만에 돌아온 살쾡이 때문에 샤오만이 샤오밍을 넘본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사이에 샤오쯔의 아버지는 비밀경찰에게 끌려가서 혹독한 조사를 받고, 직장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아마 그의 후원자였던 샤교수라는 사람이 좌익 사건과 뭔가 연루되어있었던 듯 합니다. 대만으로 같이 건너온 동창, 아들의 주간부 편입과 아내의 교사 자격증 건으로 부탁을 했던 친구가 사실은 밀고자였음이 암시되고 있지만... 뭐 사건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일일이 적어내리기가 버겁군요.
영화에서 샤오쯔의 심정을 대변하는 사람은 허니입니다. 해군복을 입고 돌아온 허니는 샤오쯔를 불러 자신이 읽었던 책 이야기를 해주죠. 나는 숨어있는 동안 무협지만 줄창 읽었는데, 옛날의 무사들이 지금의 깡패들과 흡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에는 가장 두꺼운 무협지를 달라고 했는데, 그 무협지의 주인공은 다른 사람들에게 미쳤다는 소리를 듣지만, 도시가 불타고 모두 도망갔을 때 홀로 남아 나폴레옹을 저격하지만 실패한다. 그 무협지의 제목은 <전쟁과 평화> 였다.... <전쟁과 평화>도 무협지로 읽을 수 있군요. 하여튼 되게 낭만적인 인간형입니다. 해서 217파의 두목에게 죽는 처지가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샤오밍이 말하듯 뭔가 바꿔보겠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이며, 이러한 신념이 샤오쯔에게 전이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샤오쯔의 아버지. 그 아버지가 샤오쯔에게 가르쳐 준 것이라곤 최선을 다하면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이었죠.
에에, 그러고 보니 샤오쯔에게 뭔가 가르쳐준 사람들은 모두 패배자군요. 개인의 노력으로 뭔가를 바꿀 수 있으며 꿈을 이룰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 모든 것이 권력에 의해 좌우되며 강력한 국가 권력과 규율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 모두 이걸 알고 있습니다. 비교적 올곧은 사람인 샤오쯔의 아버지도 청탁에 의존하며, 공연장에서 국가가 울려퍼질 때 허니를 빼고는 아무도 움직이지 못한다든지... 수업 시간에 한자가 영어보다 훨씬 간단하다는 선생의 주장에 대해 我 보다 I가 더 쓰기 간단하지 않느냐고 했다가 벌을 받는 에피소드 등등... 너무도 많은 예를 들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세상에 대해 샤오쯔가 적대하고 살의를 품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일지도 모릅니다. 샤오쯔는 간섭하기 좋아하는 집주인 판씨 아저씨의 목숨을 구해주게 되지만 처음에는 살의를 품고 있었죠. 돌을 몰래 손에 움켜쥐고 가다가 물에 빠진 걸 보고 도와주니까요. 그리고 샤오쯔의 주변 여자들은 그의,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을 비웃고 그가 틀렸음을 알려줍니다. 그가 틀렸는지, 맞았는지는 여전히 말하기 힘들지만... 어쨌든 샤오쯔가 샤오밍을 찌르면서, 그의 신념과 약속, 그의 모든 세계는 파탄납니다. 샤오쯔는 쓰러진 샤오밍에게 일어서라고, 너는 다시 살아날 거라고 울부짖는데, 자아의 분열을 보여주는 장면으로는 아주 적절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한 개인의 극단적인 행위가 어떻게 그 사회와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아주 치밀하게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세상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는 류의 변명이 아니라 답답하고 막막한 한 사회를 길고 끈질기게 파헤칩니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대만은 일제의 잔재와 미국 대중 문화, 그리고 대륙적인 요소가 혼합된, 아주 독특한 사회이며 그렇게 여러 가지가 혼재되어 있다는 점에서 우리와 많이 닮은 것 같은데, 어쩐지 저는 <고령가>를 보면서 우리 나라의 여러 영화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일본도로 217 패거리들을 린치하는 장면에서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샤오쯔가 큼지막한 돌을 움켜쥐고 판씨 아저씨에게 다가가는 장면에서는 <공공의 적>을, 샤오쯔의 친구가 我자를 100번 쓰라는 벌을 받는 장면에서는 왠지 친구를.
천장을 뒤져보면 일본군이 남겨두고 간 무기가 나온다는 설정, 엘비스 프레슬리에 심취하는 샤오쓰의 친구, 주를 영접하고 구원을 받으라는 샤오쓰의 누나, 그 위에 드리우고 있는 군부독재의 그림자, 옛 협객을 닮고자 하는 깡패 허니. 여러 뒤섞인 것들, 그 가운데서 오래되고 올곧은 것들은 가장 먼저 사라집니다. 이 영화에서 무엇보다도 피부로 와닿았던 것은 그런 점이었습니다.
샤오쓰는 그러한 사회 조류를 거스르고 싶어하는 인물이지만 그의 대응 방식은 폭력적이며 아마 그건 주변과 사회로부터 직접 학습한 것이겠죠. 계란으로 바위치기이며 제대로 된 방향도 그는 알지 못합니다. 샤오밍은 샤오쓰가 바라던, 그런 여자가 아니었으며 힘과 권력을 쫓아 움직인다... 그런 누군가의 지적이 맞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보자면 이 영화에서 <물레방아> 같은 소설을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너무 길기 때문에 주변에 함부로 권하지는 못하겠습니다만, 한 번쯤은 꼭 볼만한 그런 영화였습니다.
- 2005.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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