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블루 (Perfect Blue, 1997)
감독 : 곤 사토시
출연 : 이와오 준코, 마츠모토 리카, 츠지 신파시
애니메이션을 보고 일본적 특성이 나오는 장면을 고르라는 숙제를 받았을 때, 아마 <수병위인풍첩(獸兵衛人風帖, 국내 개봉명 무사 쥬베이)>을 보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폭력적이며 선정적인데다 16세기 일본이 배경이라 일본색 짙고. <퍼펙트 블루>는 좀 뜻밖이었는데, 일본색은 적었지만 굉장히 재미있었다. 애니메이션으로는 드문 사이코 스릴러물에다 실사 영화로 만들어도 될 만큼 사실적인 작품이었다. 결말 부분에서 미마는 ‘이게 진짜 나야’라고 말하지만 그 모습은 굉장히 낯선 것이었다. 환상과 현실을 오가던 그녀, 지금까지 본 것이 과연 진짜 그녀의 모습이었는지? 또한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여겼던 것은 사람들의 작품에 대한 반응이었다. 개인적으로 잔인한 영화를 즐기는 편이라 그런지 <퍼펙트 블루>가 특별히 징그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의외로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눈을 찌른다든지 하는 몇몇 잔인한 장면들을 일본적인 특성이 나타난 것으로 평가할 것이다. 일본인들은 죽음을 가볍게 여기며 성과 폭력에 관대한 데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마징가 Z>의 나가이 고(永井 豪) 이래로 표현 수위를 높여 오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을 만들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뭔가 미진한 느낌이다. 다른 나라의 애니메이션들 가운데서도 강도 높은 하드고어는 존재하며 성과 폭력, 자극의 수위는 다들 높아지고 있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의 B급 호러영화 감독인 루치오 풀치의 영화 중에는 사람의 눈을 후비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표면적인 잔인함을 놓고 보면 피터 잭슨의 <데드 얼라이브>나 미이케 다카시의 <이치 더 킬러>는 별 차이가 없으며, 루치오 풀치의 <비욘드> 같은 영화를 일본적인 것이라 주장하는 논리적 오류를 저지르게 될 것이다.
<퍼펙트 블루>가운데 제일 인상 깊었으며 일본적인 특성이 잘 드러난다고 생각하는 장면은, 사진작가가 미마의 누드사진을 찍는 씬이다. 며칠 전까지 아이돌 스타였는데, 얼마나 됐다고 강간 연기에 헤어누드 사진인가.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한 아이돌 출신 배우를 다루는 태도가 놀라웠다고나 할까, 약간 충격 같은 것을 받기도 했다. 보통 일본 만화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속옷을 훔치거나 탈의실을 엿보는 행위, 이 장면에서는 사진을 찍는 것이 마치 그런 행위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요새 경쟁적으로 여배우들이 누드 사진을 찍고 있지만 아직 미성년자인 배우의 경우는 사람들이 상상도 못할뿐더러 용납되지도 않을 것이다. <춘향뎐>에서 주연 배우가 미성년이었기 때문에 영화가 구설수에 올랐던 일도 그렇고 성인 배우들이라 해도 체모가 노출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데,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이돌 스타였던 미마는 과감히 사진을 찍고 그것을 표지에 실은 잡지가 버젓이 팔린다. <퍼펙트 블루>가 1996년 작품이라는 걸 생각하면 한일 양국의 문화 차이를 느끼고, 아울러 일본인들의 탐미주의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 외에 일본적 특성이 드러난 장면을 찾는다면 제일 처음 등장하는 파워트론의 액션. 소위 말하는 전대물로, 일본에서 굉장히 발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인터넷에 미마의 방을 연재하는 미마니아. 극중 이름은 우치다로 알고 있는데, 그를 미마 오타쿠(お宅)라 부를 수 있는가 하는 점이 일본적 특성을 찾는 데 있어 고민거리가 되었다. 오타쿠란 한 가지를 잘하는 것을 중시하는 일본의 특성이 드러난 전형적인 일본적 현상이라고 많이들 얘기하며 매니아가 발달하면 오타쿠가 된다는 내용의 글도 읽은 바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매니아와 오타쿠의 구분은 상당히 애매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우치다의 행동도 세밀하게 살펴봐야 할 것이다. 하여튼, 이 살인극의 범인으로 나는 기꺼이 미마를 지목하는 바, 증거는 없지만 그게 더 짓궂지 않은가?
- 2004. 9. 10
* 문학과 문화 수업에서 과제로 제출했던 글. <퍼펙트 블루>에서 드러나는 일본 문화의 특성에 대해 논하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