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Happiness, 2007)
감독 : 허진호
출연 : 황정민, 임수정, 공효진, 류승수, 박인환, 신신애
<행복>은 전형적이고 소박한 영화입니다. 방탕한 생활을 하던 영수는 간경변에 걸린 후에 희망의 집이라는 이름의 요양원으로 내려가고, 이곳에서 폐농양을 앓는 은희라는 여자를 만나게 됩니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게 되어 희망의 집에서 나와 동거를 시작하지만, 옛 애인을 다시 만나면서 마음이 흔들린데다 단조로우며 앞날을 알 수 없는 시골 생활에 싫증이 난 영수는 은희를 버리고 맙니다. 서울로 올라간 영수는 예전의 타락한 생활로 돌아간 뒤에 몰락하는데, 요양원 원장이 그를 찾아와 죽어가는 은희와 재회하게 합니다. <행복>은 이렇게 전형적인 멜로영화이지만 사랑의 비극보다는 어느 나쁜 남자의 개심기로도 읽힙니다. <파이란> 처럼요.
영수를 여러 모로 살펴보면 그가 나쁜 인간, 혹은 나쁜 남자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영수는 희망의 집으로 떠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외국으로 유학을 간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그의 어머니가 금방 알아차렸듯 뻔한 거짓말이며 자존심, 혹은 상대에게 호감을 사기 위한 것이지 그 외에 거짓말을 할만한 사정이 있는 건 아닙니다. 영수는 얼마 전에 헤어진 애인 수연, 예쁘게 생긴 약사, 오랜만에 만난 어머니에게는 거짓말을 하지만 친구인 동준에게는 사실을 숨기지 않습니다. 혹은 동준이 미리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죠. 어쨌거나 친구인데다가 자기가 가지고 있던 클럽을 그에게 넘겼으니 숨기기 힘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영수는 여자와 술을 밝히며 그의 어머니에 따르면 1년 반만에 집에 찾아왔으니 주위 사람들에게도 무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헤어지자는 것 같은 불편한 이야기를 자기가 아니라 여자가 말하도록 떠넘기는 것도 그렇죠.
그러나 영수는 요양원에서 은희를 만난 후에 달라지게 되는데, 사실 그를 바꾼 계기는 은희보다는 그와 같은 방을 쓰던 나이 든 폐암 환자 석구였던 것 같습니다. 삶에 대한 한가닥 희망을 붙잡고 있던 석구는 그동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살아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자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나는 잘 죽는다. 너는 잘 살아라. 라듸오(분명히 이렇게 쓰여있었습니다) 비싼 거다." 석구에게서 자신의 미래를 보고 두려움과 절망감을 느끼는 영수에게 '아픈 것도 두려운 것도 없어 보이는' 은희는 구원의 여신이나 다름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뿐만이 아니라 은희와의 삶이 보장하는 소박한 사랑의 행복에도 마음이 끌렸겠죠. 영수와 은희는 화려하진 않지만 노동과 사랑에서 작은 행복을 얻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은희와 영수가 서로 사랑을 느끼게 되는 과정과 두 사람의 동거 생활은 따뜻하고 즐거워 보입니다.
하지만 방탕한 영수의 성정은 결국 그 소박한 행복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영수는 병이 거의 나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질병과 죽음에 대한 불안감에서 해방되고 그후 영수와 은희의 동거는 파국을 맞게 됩니다. 결정적인 계기는 동준과 수연이 영수의 집으로 찾아온 것이죠. 수연은 영수가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동준은 서울로 올라온 영수에게 자기가 새로 개업한 가게를 맡아 달라는 부탁을 합니다. 그리고 영수는 서울에서 수연과 며칠 동안 같이 지내게 됩니다. 영수가 서울에서 어디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은희는 영수의 마음이 자기에게서 떠났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유원지에서 놀이기구를 타고 발악하는 영수를 지켜보던 은희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슬프죠. 남은 일은 서로의 사랑이 깨졌음을 확인하는 것뿐...
이 영화의 첫 장면은 영수가 차를 몰고 가는 장면인데, 이때 카메라는 그의 옆얼굴을 비추고 있습니다. 영수가 은희와 헤어지고 그녀와 같이 살던 집에서 떠나는 시퀀스가 끝난 후에 그가 차를 몰고 가는 장면이 또 다시 나오는데, 이때도 카메라는 여전히 그의 옆얼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두 장면을 통해 보여지는 영수의 옆얼굴은 영수가 망가졌다는 느낌을 줍니다. 영수의 처지는 그의 얼굴을 통해 나타납니다.
도시에서 타락하고 거친 생활을 하는 영수와 시골에서 노동과 요양에 힘쓰는 영수의 얼굴 분장은 서로 다릅니다. 서울에 있을 때 영수의 얼굴은 거무튀튀한 갈색에다 거칠어 보이는 반면 시골에 있을 때는 깨끗하고 건강합니다.
서울에 돌아온 영수는 동준과 갈라지게 되고 수연과도 다시 헤어집니다. 그의 얼굴은 처음 희망의 집에 내려가기 전보다 더 추레헤지고, 얼굴에는 어디서 얻었는지 모를 상처까지 생깁니다. 얼굴에는 수염이 덥수룩하며 머리는 헝클어져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를 구원하는 것은 은희의 소식이었습니다.
결국, 내가 죽을 때 영수 씨가 옆에 있어 달라는 은희의 부탁은 이루어집니다. 행복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지만 영화는 그것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얻을 수 있는 마지막 행복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은희의 죽음의 순간을 길게 보여주지 않습니다. 죽어가는 은희가 영수의 손을 잡고 영수가 그녀의 품에 얼굴을 기대는 짤막한 장면에 이어(여기서 은희가 바로 죽었는지 나중에 죽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은희의 시신에 수의를 입히는 장면, 영수가 은희의 유골함을 들고 산을 오르는 장면이 차례로 이어집니다. 영화는 은희의 죽음의 순간에서 관객들을 살짝 밀어내고 거리를 두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로써 이 전형적인 영화는 상투적이고 신파적인 결말을 피하고, 관객들은 영수가 진심으로 슬퍼하고 뉘우치는 모습을 바라보게 됩니다.
영수는 마지막에 희망의 집으로 다시 돌아오며 그때 눈이 내립니다. 영수가 서울의 병원에 있을 때 창살 사이로 손을 내밀어 내리는 눈을 받는 장면이 있는데, 눈은 여름(은희와 헤어지고 서울로 돌아온 영수가 자동차를 몰고 있을 때 라디오에서는 열대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했죠)에서 겨울로 계절이 바뀌었음을 알려주는 동시에 영수 자신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영수 스스로가 깨닫게 해줍니다. 그러니 눈은 깨달음과 참회의 상징이죠. 돌아온 탕아인 영수가 눈을 맞으며 희망의 집 입구로 들어서는 장면은 거룩하기까지 합니다. 영화가 아무리 단순하고 전형적이라 해도 이런 장면이 있으면 미워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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