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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2/10 구로사와 기요시 영화학교 by Wolverine

기대했던 것보다 많이 실망스러웠습니다. 애초에 알려지기로는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자신의 연출론에 대해 관객들에게 설명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했지만 그는 몇 년 전 서울 아트시네마에서 자신의 회고전 당시 설명했던 부분이라며 그 대신 자신에게 영향을 끼쳤던 작품이 어떤 것들인지 시대별로 나열했고, 구로사와 감독이 지나치게 낯선 영화가 언급되는 것을 피했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는 미지의 영화들 대신 잘 알려진 작품들의 목록이 맴도는 데 그쳤습니다. 물론 그 영화 제목을 안다는 것과 실제로 보았다는 건 서로 다른 얘기긴 합니다. 구로사와 기요시 영화학교 기획이 안이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많이 아쉬웠지만 그날 정리한 것들을 옮겨 보도록 하죠. 그날 노트에 끄적거린 것을 옮겨 적었는데 잘못된 점이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다 알고 계시죠? 그 자리에 계셨던 분들 중에서 이 내용은 당신이 잘못 들은 것 같다, 내가 듣기엔 저런 뜻이 아니었다, 이런 점을 지적해 주신다면 감사드리겠습니다.


구로사와 기요시 영화학교

- 2007. 1. 26


몇 년 전에 서울 아트시네마에서 연출론 등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했고 오늘은 준비해 온 것이 없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영화, 영향을 많이 받은 영화 중심으로 얘기를 하겠다. 아까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프로그램을 보다가 사무엘 풀러의 <빅 레드 원>이 있는 것을 봤는데 <빅 레드 원>은 모든 전쟁 영화 중에서 최고작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제일 처음에 본 영화는 <모스라>였다. <모스라>는 <고지라>의 후속작으로 도시가 파괴되고 사람들이 도망다니는 모습이 정말 무서웠다. 뭐가 그렇게 무서웠을까 나이 들고 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우선 도망다니는 사람들의 얼굴이 무서웠다. 살지 죽을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의 얼굴이기 때문에 무섭다는 것을 최근에야 깨달았다. 요새 만들어진 괴수 영화들은 별로 안 무서운데 그건 도망다니는 사람들의 표정이 무섭지 않기 때문이다.
괴수 영화가 무서운 두 가지 요인이 있었다. 하나, 당시 <모스라> 등이 만들어지던 시기는 1960년 전후였다. 영화 속에서 도망다니던 사람들에게 전쟁의 기억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연기가 아닌 진짜 공포감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다른 하나, 최근 괴수 영화의 괴수는 번화한 도시에 나타나지만 옛날의 고지라 등은 시골에도 나타났다. 시부야 같은 번화가가 파괴되어도 거기에 있던 사람들은 도망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시골에서는 거기에 자신들의 집이 있기 때문에 파괴되면 그들은 갈 곳이 없다.
세상에 무서운 것은 많이 있지만 집이 없어진다는 게 나는 제일 무서운 것 같다. 어렸을 때 본 영화가 공포에 대한 개념을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 같다. 전쟁이 주는 공포에도 갈 곳이 없어진다는 것과 갈 곳이 없어진 사람들을 대량 생산해 낸다는 요소가 있다. 최근 영화 중에서 그런 공포를 잘 표현한 게 스티븐 스필버그의 <우주 전쟁>이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는데 주로 미국 영화를 보았다. 이 시기는 70년대 전반기였는데 60년대 후반부터 미국의 아메리칸 뉴시네마가 사라지기 시작했고 70년대 중반에 스티븐 스필버그가 <죠스>를 만들었다. 내가 그 사이에 영화를 많이 본 것이다. 그때 본 영화로는 <더티 해리>나 돈 시겔 감독의 영화, 로버트 알드리치의 <북극의 제왕>, 샘 페킨파의 <관계의 종말> 등이 있었다. 돈 시겔이나 로버트 알드리치 등은 40년대나 50년대 등장했던 베테랑 감독들이었으며 70년대 전반기에는 꽤 오래 전부터 활동했던 감독들로 분류될 수 있었다.
60년대의 혼란기를 거치면서 고전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을 동시에 갖춘 영화들이 나왔는데 그런 영화 중에는 오소독스한 부분이 지켜지는 것도 있고, 그런 게 완전히 파괴되기도 했다. 결말이 없는 대담한 영화도 있었다. 존 휴스턴이 71년에 찍은 <팻 시티>라는 영화가 있는데 어둡고 불행하기 짝이 없는 권투 영화였다. 이 영화에는 젊은 복서를 키우는 나이 든 트레이너가 나오는데, 그가 키운 선수는 첫 시합에서 상대 선수에게 맞아 바로 사망하고 만다. 이에 트레이너는 자신이 선수로 다시 복귀하여 자기 선수를 죽인 상대와 시합을 하려고 노력하는데, 열심히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나 인맥을 이용한다. 그런 노력 끝에 선수로 시합을 치르게 되지만 기쁘면서도 한편 불안하기 짝이 없다. 그는 연습을 안 했기 때문에 한 방을 맞고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트레이너와 시합을 치르게 된 챔피언도 너무 많이 맞아서 한 대 더 맞으면 죽을 수도 있는 상태였다. 이렇게 서로 불안해 하는 두 사람이 링에 오르고 공이 울리면서 영화가 끝난다.
이런 영화는 <록키>와 전혀 다르지만 이런 게 70년대에는 오락 영화라고 개봉되었다. 젊어서 주로 그런 영화를 봐서 그런지 몰라도 영화는 사람이 죽거나 좋은 일이 하나도 없는 거라고, 그런 생각이 침투한 것 같다. 이런 영화를 보면서 중학 시절을 보냈다.
70년대 중반 고등학생 때는 유럽이나 일본 영화에 관심을 가졌다. 유럽 영화 중에서 그 당시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던 것은 이탈리아 영화였다. 페데리코 펠리니,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루키노 비스콘티 등... 이탈리아 사람들 이름을 그때는 열심히 외웠다. 그 중에서 생각나는 영화 중 하나가 페데리코 펠리니의 <로마>였는데 배우들이 화면에 여러 명이 나오면 그 중에 꼭 한 사람은 카메라를 보고 있다. 나중에 보니 펠리니 영화는 다 그랬다. 미국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었다. 펠리니 영화의 이러한 특징은, 관객들에게 감독과 스탭, 카메라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고 의식하게 하는 것이다.
이때쯤 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8mm로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영화를 찍고 싶다고 생각한 데에는 펠리니의 영향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 무렵 일본 영화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기도 해서 다시 보게 되었는데 이때 자극받았던 감독은 후카사쿠 긴지나 오시마 나기사 등이다.

내가 대학에 다니던 70년대 후반에는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를 많이 보았지만 이 시기 최대의 만남은 테오 앙겔로풀로스였고 그때 <유랑극단>을 보았다. 사실은 그때 영화를 찍었기 때문에 느낄 수 있던 것이었는데 한 컷이 오래 지속된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힘을 갖고 있는지, 그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게 지금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지금도 한 컷을 어디까지 지속시키면서 그 힘을 유지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앙겔로풀로스를 보지 않았더라도 감독은 한 컷이 지닌 매력에 사로잡히는 시기가 있는데 <올드보이>의 장도리씬 같은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8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비디오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영화는 극장에서 보는 것이었는데, 이제 극장에서 보기 힘든 고전이나 마이너 취향의 영화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면 고다르다. 고다르 영화들이 이 무렵 일본에서 개봉했는데 <열정>, <카르멘이라는 이름>, <탐정> 등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고다르는 컷과 컷이 충돌하게 만들거나 갑자기 음향이 끊기는 등 편집과 음향을 통해 아주 거친 영화를 만들었다. 헐리우드 영화와 달리 그는 컷과 컷의 원활한 연결을 의도적으로 파괴했고 나는 여기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80년대에 들어 나는 상업 영화를 찍게 되는데 이때는 앙겔로풀로스처럼 찍고 고다르처럼 편집하는 게 꿈이었다. 관객이나 제작사에 네 영화가 무슨 얘긴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야단을 맞은 적도 있었는데 83년에 첫 영화를 찍게 된다. 이제는 많이 교묘해져서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데 아직도 제작사에 들키지 않게 고다르처럼 편집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80년대에는 또한 미묘하지만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났는데 앙겔로풀로스나 고다르를 흉내낼 수는 있지만 그들과 똑같이 될 수는 없고 앞지를 수는 더더욱 없다는 걸 깨달으면서 다른 영화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8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나는 이제까지 몰랐던 영화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다른 영화광들도 그런 경향을 보였는데 에릭 로메르, 오즈 야스지로, 로베르 브레송, 존 카사베티스 등이 이때 인기가 많은 감독이었다. 이들의 영화는 공통적으로 금욕적이고 단순한 요소로 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즉 돈이 별로 안 들어 보이는 영화이다. 당시 일본의 영화광들은 이들의 영화를 보며, 이렇게 하면 나도 찍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또 비디오카메라가 보급되면서 이제 저렴하게 영상을 찍을 수 있게 되었다. 이때 영화광들이 하는 일은 존 카사베티스 흉내를 내는 것이었는데 그런 비디오 키드들이 많이 있있었다. 나도 그런 걸 좋아했지만 역시 흉내낸다고 똑같이 될 수는 없었다.
그때 예상치 못한 만남이 있었는데 바로 대만 영화와의 만남이었다. 허우 샤오시엔이나 에드워드 양의 영화는 놀라웠고 특히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큰 충격이었다. 일본에서는 영화를 좋아하는 청년들이 카사베티스 흉내를 낼 때 대만에서는 이미 앙겔로풀로스와 고다르를 섞은 영화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때쯤에도 자기가 뭘 해야 하는지 파악이 안 되던 시기였다. 이런 감독들의 영화를 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미국 영화는 늘 보고 있었다. 스필버그의 영화에서는 눈을 뗄 수 없었고 <백 투 더 퓨처>는 재미 없을 줄 알고 일부러 보러 갔지만 너무 재미있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미국 영화는 언제나 필두에 있었고 이때쯤 미국 영화 흉내를 내 보자고 대담하게 시도했던 것이 <스위트 홈>이었다. 그러나 흉내는 어디까지나 흉내일뿐 관객들을 재미있게 할 수는 없었고 이 영화는 실패였다.

90년대 전반에는 영화를 찍을 기회가 별로 많지 않았고, 94년 이후에야 많이 찍게 되었다. 이무렵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와 <양들의 침묵>에 강한 인상을 받았는데 키아로스타미는 그의 무엇에 끌렸는지 생각을 해 보면 그가 앙겔로풀로스, 고다르, 에드워드 양과도 다른 새로운 걸 보여줬기 때문인 것 같다. 그는 영상과 이야기의 새로운 관계를 보여줬다. 또 하나는 <양들의 침묵>인데 보고 나서 오래간만에 무서운 영화를 봤다고 생각했다. 공포영화는 좋아했다가 한때 거리를 뒀지만 이 작품을 보고 영화에서 무서운 것이란 무엇인지 추구하기로 결심했다. 친구 중에 다카하시 히로시(링과 주온의 각본가)가 있는데 그도 양들의 침묵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우리는 일본에서도 공포를 다시 찾아야 한다고 얘기했고, 재패니스 호러는 <양들의 침묵>의 영향을 받아 움직이기 시작한 것 같다.
90년대 중후반에는 영화를 많이 제작할 기회가 주어지고 그에 따라 볼 수 있는 영화들도 줄어들었다. 이제 주변 영화인들에게서 영향을 받는데 아오야마 신지, 시노지키 마코토, 시오타 아키히코, 각본가 다카하시 히로시 등을 들 수 있다. 아오야마나 시노자키에게 배운 것이 있다면 좋아하는 영화가 있다고 해도 영화에 반영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런 영화를 좋아한다, 저런 영화를 좋아한다고 얘기하지만 실제 만들어진 영화는 전혀 다르다. 비겁한 사람들이다. 나만 솔직해서 너무 손해를 봤다(웃음).

2000년대 이후에는 좋은 영화를 많이 봤지만 그게 나한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모르겠다. 감독 중에서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주목하고 있다. 나는 <미스틱 리버>에 감동을 받았다. 그러나 이걸 어떻게 내 영화에 반영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또 하나는 스필버그다. 여러 가지 비판도 있지만 스필버그 영화를 보면 그를 지지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주전쟁>은 물론 <뮌헨>도 훌륭한 영화이다. 작년에 본 영화 중에는 <멜키아데스 에스트라다의 세 번의 장례식>,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폭력의 역사> 등이 있는데 지금 거론한 몇 개의 영화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마지막에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황의 변화를 보여 주지만 어떻게 결말을 지어야 될지는 보여 주지 않는다. 현대 영화 중에서는 아주 성실하고 거짓이 없는 영화라 할 수 있으며 이것은 미국 영화의 전통에서 벗어나 있다. 모르면 모르겠다고 솔직히 말해야 하는데 미국 영화의 전통은 그렇지 않았다.

영화 감독은 많은 것을 보고 겪으며 그것이 영화에 반영된다. 영화 감독이란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관객과 대담 진행자의 질문 몇 가지

Q : 아메리칸 뉴시네마를 언급하면서 스콜세지와 드 팔마의 이름이 빠져 있다. 그들에게 특별한 매력을 느낀 적은 없는가?
A : 그런 식으로 얘기하면 빠진 사람이 셀 수 없는데, 스콜세지와 드 팔마는 좋은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와의 차이가 너무 크다. 코폴라도 그런 경우라 할 수 있다. 스타일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배신하곤 하는데, 요새는 드 팔마가 좋은 것 같다.

Q : 상업 영화의 러닝타임에 대하여
A : 영화를 촬영하는 시간 자체에는 규정이 없다. 그러나 만들어진 것은 두 시간 내외이다. 그런 점이 영화제작이 갖는 특성이다. 그러나 그 기간도 어느 정도 제한적이긴 한데 어디서 이것을 끝내야 할지, 며칠 동안 찍어야 될지 항상 고민하지만 만들어진 영화의 길이는 비슷한 것 같다.
상업영화의 시간이 길어지는 것은 배우의 이름이나 얼굴만 보고는 그 사람이 어떤 역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배우가 어떤 인물인지 설명을 해 주다 보니 길어지는 것이다.
그 배우를 보기만 해도 그가 어떤 역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가 설득력이 있다는 것이다. 배우를 믿는 것은 장르를 회복하는 데 필요하다.

Q : 공포의 요소에 대하여
A : 스크린에 투사되는 너머에 보이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확실한 세계가 존재한다고 믿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전혀 다른 세계의 모습이 감춰져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벽 너머, 문 너머에 전혀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이 가장 공포스러운 순간 중 하나이다.
공포 영화의 원칙이라면 뭔가 숨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찍는 것이다. 공포 영화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보이는 세계 바로 옆에 미지의 세계가 있는 것이 공통점이며 현실적으로 그것은 죽음이다. 잊고 다니지만 항상 곁에 붙어 있다.

(이하 질문은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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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lver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