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에 해당되는 글 8건

  1. 2008/07/23 머신 걸 by Wolverine
  2. 2007/02/18 신 외팔이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by Wolverine
  3. 2006/12/25 망령의 괴묘저택 by Wolverine
  4. 2006/12/24 친절한 금자씨 두 번째 감상기 by Wolverine
  5. 2006/12/24 친절한 금자씨 by Wolverine

머신 걸

영화 리뷰 2008/07/23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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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신 걸 (The Machine Girl, 片腕マシンガ―ル, 2008)

감독 : 이구치 노보루
출연 : 야시로 미나세, 아사미, 시마즈 겐타로, 호노카

<머신 걸>의 제작사는 <도쿄잔혹경찰>을 만든 바로 그 회사이다. <머신 걸> 또한 <도쿄잔혹경찰>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신체 훼손 장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머신 걸>이 <도쿄잔혹경찰>과 다른 점은, 더 웃긴다는 것이다.
휴가 아미는 운동을 좋아하는 소녀로, 그녀의 부모는 살인 누명을 쓰고 자살했다. 그 때문에 아미는 주위 사람들에게 오해와 따돌림을 받는다. 아미의 동생인 유우는 겉으로는 명랑해 보이지만 친구와 함께 불량소년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불량소년들의 우두머리는 기무라 쇼라는 녀석인데, 그의 부모는 야쿠자 우두머리로, 핫토리 한조의 후손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자기들은 야쿠자로 살아가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닌자라는 것이다.
기무라 쇼는 유우가 반항하자 그냥 살해해버린다. 폭력은 나쁜 것이라고 믿었던 아미는 동생의 죽음 앞에서 분노하여 복수를 다짐하고, 기무라 쇼의 집까지 쳐들어가지만 붙잡혀서 팔을 잘리고 만다. 고문당하고 살해당할 처지였으나 간신히 탈출한 그녀는 미키네 집에 숨게 되는데, 미키는 유우와 같이 죽음을 당한 친구의 엄마로, 전에는 아미를 살인자의 자식이라고 멸시해 왔지만 남편과 함께 그녀를 보살펴주게 된다. 자동차 정비업을 하는 미키 부부는 아미의 팔에 머신 건을 달아준다.
<머신 걸>과 <도쿄잔혹경찰>은 본질적으로 신체 변형을 테마로 한 액션/고어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머신 걸>의 시나리오와 캐릭터는 당연하지만 일관성이 없는데, 불량학생들 중 한 명의 부모는 아미에게, 우리 집은 대대로 경찰집안이었는데 너희 같은 살인자 가족들이 어디서 우리 집안에게 누명을 씌우냐며 호통을 치다가 갑자기 가문의 명예를 지키겠다며 그녀를 죽이려 한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배우들의 연기도 과장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이며, 연기가 과장되면 과장될수록 영화는 더 재미있어진다. 게다가 분장. 특히 기름을 뒤집어 쓴 아미의 손 분장은 대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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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외팔이 (新獨臂刀, New One-Armed Swordsman, 1971)

감독 : 장철
출연 : 강대위, 적룡, 이청, 곡봉, 정뢰

두 자루 장단쌍도로 최근 반년간 강호를 뒤흔든 원앙도 뇌력은 용이지의 표적이 된다. 삼절곤의 고수 용이지는 대협으로 명성이 높지만 암계를 써서 젊은 고수들을 여럿 제거해 왔다. 그들이 더 자라면 자신의 명성을 해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용이지는 제자로 하여금 원성표국의 총표두인 하위의 동생을 죽이게 하고 뇌력에게 누명을 씌운다. 그리고 오해를 받아도 개의치 않는 뇌력의 오만함은 용이지에게 패해 팔 하나를 잃고 그의 명성을 높여주는 댓가를 치른다.
용이지는 뇌력이 피하지 않을 것을 알고 대결을 시작하기 전에 자신이 패하면 오른팔을 자르고 강호를 떠나겠다는 미끼를 던졌으며, 쌍도를 격파할 수 있는 초식을 연마해서 싸움에 대비하고 있었다. 반면 뇌력은 모든 일이 용이지의 음모라는 사실도, 그가 나타나리라는 것도 전혀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스스로 오른팔을 자른 뇌력의 몸이 비탈을 구르고 카메라는 그 치욕과 고통의 순간을 천천히 보여준다. 나무에 꽂힌 칼에 꿰인 그의 오른팔은 어느덧 다 썩어 없어지고 하얀 뼈만 남아...

2년 후 마교진이라는 작은 마을의 객잔. 이곳의 점소이 노릇을 하고 있는 뇌력은 손님들에게 외팔이라며 조롱을 당한다. "가서 네 엄마한테 오른팔도 낳아달라고 해라! 하하하하!" 대장장이의 딸인 파초만이 뇌력이 조롱당하는 것을 안타까워할 뿐이다. 이 무렵 강호에서는 쌍도를 쓰는 또 다른 고수 봉준걸이 맹활약하고 있었는데, 용이지는 자신이 뒤에서 조종하는 호위산장을 이용하여 봉준걸을 제거할 계책을 세우고 마침 객잔에 들른 봉준걸은 뇌력이 호위산장 대두목들의 비위를 거슬려 구타를 당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무술을 할 줄 아는 뇌력이 저항하지 않는 것을 본 봉준걸은 그를 비범하게 여긴다.

<신 외팔이>는 왕우 주연의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보다 훨씬 입체적이고 인간적이며, 더 나아가 쇼 브라더스 시절 홍콩 무협 영화는 물론 80, 90년대 홍콩 느와르와도 전혀 다른 정서를 보여주는 영화다. 우선 <신 외팔이>를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에 비교해 보면 두 주인공의 깊이가 다르다.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의 방강은 사부의 딸에게 팔이 잘렸지만 사부에 대한 본분을 잊지 않고, 그의 인간적인 감정은 평면적으로, 비교적 단순하게 드러난다. 팔이 잘리기 전이나 잘린 다음이나 방강은 방강이며, 중요한 것은 그가 역경을 이겨내고 고수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 외팔이>에서 팔이 잘리기 전의 건방진 뇌력과 팔이 잘린 후, 화려한 과거를 그리워하면서도 패배감에 젖은 뇌력, 그리고 봉준걸이 죽은 후 복수심에 불타 검을 집어드는 뇌력은 서로 다른 감정의 지배를 받는다. 뇌력은 방강처럼 외곬로 어떤 가치를 추구하지도 못하고 흔들리는 사람이다. <신 외팔이>는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처럼 영웅이 시련을 극복하고 고수로 거듭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러한 점이 내가 <신 외팔이>를 입체적이고 인간적이며 여타 영화들과 다른 정서를 갖고 있다고 보는 이유이다. 이 영화는 죽음을 향해 돌진하는 주인공이 있지만 죽음 따윈 아무 것도 아니라는 식의 허무주의에서 벗어나 있고, 비장미가 있으되 그것이 주인공의 수치심, 패배감, 당혹감을 덮지 않는다.
특히 압권인 것은 뇌력과 용이지의 마지막 대결 시퀀스. 나무 다리에서 마주 선 두 사람이 짧게 대화를 나눈다.
"너는 외팔이가 되어서도 본분을 지키지 않는구나."
"외팔이가 된 이후로 본분을 지키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네가 봉준걸을 죽였으니 그 복수를 해야겠다."
"허허... 네가 두 팔이 멀쩡할 때도 나를 이기지 못했는데 한 팔로 무엇을 하겠느냐? 복수가 아니라 그와 함께 죽으러 온 것이지."

용이지의 비웃음에 대해 뇌력은 할 말이 없다. 봉준걸은 그의 초식에 당하고 나서야 그를 이길 비책을 깨달았지만 뇌력의 머릿속에는 아직 그를 이길 방책이 없다. 적을 이길 수 없다는 너무나 자명한 사실에 수치심과 패배감을 느끼는 뇌력이 말한다.
"난... 그와 함께 죽으러 왔다!"

이 장면에서 레이리의 일그러진 표정은 마치 이 영화의 도장과 같다. 어떤 상황에서도 적에게 두려움을 비치지 않으며 웃으면서 죽음으로 걸어 들어가는 주인공이 아니라, 내가 질 거라고 생각하고 그 사실에 절망하고 수치스러워 하면서도 어떻게든 끝까지 싸워 이겨야 하는 상황에서의 그 표정. 만약 이런 표정과 감정을 보여주는 홍콩 액션 영화가 또 있다면 기꺼이 그 영화를 보겠다. 그렇다고 주인공이 있는대로 폼을 잡는 영화가 시시하고 후지다는 건 아니다. 그건 또 그 나름대로의 재미와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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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액션은 유래하고 장쾌한데 같은 외팔이 시리즈지만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보다 크게 발전한듯 보인다. <신 외팔이>의 대결 장면은 수십 명이 모여서 기껏 한 명씩 덤비는 시시한 액션이 아니라 적들이 한꺼번에 달려들면 검객이 한 칼에 서너명씩 베며 질풍같이 그 사이를 헤쳐가는 시원시원한 액션이다. 그렇게 한 칼질을 하고 나면 쓰러진 시체들 너댓 구가 경사진 다리를 탕탕탕 굴러가는 것이다. 영화의 오프닝은 뇌력이 말을 타고 달려오며 적을 베는 것인데 이 오프닝도 멋지다. 오늘 케이블로 극장판 <의천도룡기>를 조금 봤는데 그런 액션은 이 영화에 비하면 얼마나 시시하고 멋이 없는지.

다른 장철 영화에서 흔히 그런 것처럼 <신 외팔이>에서도 고수들은 칼로 배를 찔려 죽는다. 용이지는 치명상을 입은 봉준걸에게 목숨만은 살려주겠다고 제안하지만 봉준걸은 끝까지 싸우다 죽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기적적으로 뇌력이 용이지를 쓰러뜨렸을 때, 카메라는 봉준걸의 무덤을 한 번 비추고 멀리서 뇌력을 향해 달려오는 파초의 모습을 잡는다. 파초의 아버지인 파 대장장이가 한 고수의 죽음을 회상하는 시퀀스에서도 그런데 이 영화는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듯 하다. 많지는 않지만 내가 본 장철 영화, 특히 적룡과 강대위가 나오는 영화 중에서 둘 중 한 사람이 살아남았던 건 이게 처음이다.
더 나아가 봉준걸은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여 뇌력의 충고를 무시했기 때문에 죽음에 이르게 되었고, 반면 뇌력이 오만함을 버렸기 때문에 살아남은 거라고 본다면 이 영화는 당혹스럽게도 아주 도덕적이고 교훈적인 영화가 된다. 어쩌면 이 메시지가 다른 장철 영화들에서도 이어진다고 생각을 하면... 하긴 장철 영화에서 사람들이 우수수 한칼에 쓰러지는 장면이 나오면 됐지 다른 게 더 뭐 필요있겠는가. 좀 억지스럽고 매끄럽지 못한 설정이 있지만 이 정도면 정말 훌륭한 액션 영화라고 할 만하다. 특히 봉준걸과 뇌력이 각자 말을 몰고 호위산장으로 장면은 이 영화를 dvd로 봐야 하는 걸 못내 아쉽게 만든다. 경치가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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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 뇌력의 복장이 변하는데, 싸울 때는 흰옷, 점소이일 때는 검은 옷이다.

난 그와 함께 죽으러 왔다는 뇌력의 말은 어떻게 보면 뇌력이 봉준걸을 향한 애정을 노골적으로 고백하는 것처럼 들린다. 이 대사 외에도 영화 중반부에 서로 벗이 되기로 한 뇌력과 봉준걸, 그리고 파초가 함께 걷는 씬이 있는데 뇌력과 봉준걸이 서로 찰싹 붙어있으며 파초는 그들 사이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웹서핑을 하다가 홍콩 동인녀들이 이 영화를 대표적인 동인 걸작으로 꼽는다는 말을 들었는데 오승욱 감독이 장철 감독의 무협 영화를 남성들 사이의 멜로드라마라고 불렀던 것과는 다른 맥락에서 미묘한 해석이 가해지고 있는 것 같다.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블루스 하프>에는 평범한 클럽의 뮤지션(이 남자가 주인공)이 나오고 그 남자를 짝사랑하는 야쿠자가 있으며, 그 야쿠자에게 충성하고 의리를 지키는 부하가 있는데 알고 보니 이 부하의 의리는 의리가 아닌 애정이었다. 그 사실이 드러나는 장면이 영화에서 가장 웃기는 부분이었다.

뇌력을 중국어로 말하면 레이리가 되는 것 같은데 이 글에서 주인공의 이름을 나는 뇌력이라고 쓰고 레이리라고 읽는다. 몽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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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령의 괴묘저택(亡靈怪猫屋數, 1958)

감독 : 나카가와 노부오
주연 : 호소카와 토시오, 사츠케 후지, 시바타 신


깊은 밤 어느 병원의 제3병동, 랜턴 불빛이 병원 구석구석을 비추며 계단을 올라오면 의사인 테츠이치로는 정체 불명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6년 전에 있었던 괴이한 사건을 떠올립니다. 테츠이치로는 결핵을 앓는 아내 요리코의 요양을 위해 그녀의 고향인 큐슈로 이사를 합니다. 도중에 검은 고양이 때문에 큰 사고를 당할 뻔하고... 인근에서 유령나오는 집이라는 말을 듣는 이 저택은, 오래 전부터 비어 있었기 때문에 구조는 튼튼하지만 황폐한데다 불길하게 까마귀들이 맴돌고 있어요. 그리고 요리코는 맷돌을 돌리는(왜 맷돌을 돌리는지 모르겠지만) 정체불명의 노파를 목격합니다. 집 안에는 선명한 사람 발자국이 있는데 중간에 갑자기 끊겨 있고...
테츠이치로는 이 폐가를 잘 정리해서 의원을 차리는데, 정체불명의 노파가 요리코를 공격합니다. 목을 조르는데 힘이 약해서 그런지 숨을 끊지는 못하고... 이 노파는 다른 사람 목소리를 꾸며서 테츠이치로를 왕진 보내놓은 다음에 요리코를 다시 공격하고, 간호원도 노파를 목격했기 때문에 요리코가 헛것을 봤다고 할 수 없게 되자 처남이 그쯤에서 적절하게, 사실은 이 집에 사연이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두 사람이 찾아간 스님은 과거 저택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주는데...

사무라이 쇼겐은 3천석의 녹봉을 받는 높은 신분의 사무라이지만 성격이 지나치게 급합니다. 집안의 하인인 사헤지에게 별 것 아닌 일로 죽인다고 칼을 휘두르거나, 바둑 선생이 늦는다고 바둑알을 팽개치거나, 좀 우스꽝스러워 보입니다. 반대로 쇼겐의 아들인 신노조는 총명하고 점잖은 젊은이입니다. 신노조는 쇼겐이 바둑 선생인 고킨고에게 무례를 범할까 걱정하는데, 아니나다를까... 쇼겐이 신노조를 베게 됩니다. 이거 꼭 한 수만 물러달라고 했다가 짜증난 고켄고에게 이렇게 야비한 사람과는 바둑을 두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열받은 나머지... 이렇게 별 것 아닌 이유로 고킨고를 죽인 쇼겐은 그 광경을 목격한 사헤지를 협박해서 시체를 집의 벽 뒷편에 있는 공간에 묻어 버립니다. 다음 날 벽으로 피가 새어나오자 벽을 발라서 눈에 안 띄도록 하고...

한편 고킨고에게는 아끼는 고양이가 있었는데(그런데 이 고양이는 검은 고양이가 아닙니다) 그 고양이는 고킨고가 쇼겐의 집으로 바둑을 두러 갈때 그것을 걱정하는 듯 울었습니다. 고킨고의 망령은 앞을 못보는 자기 어머니 미야지에게 나타나 죽기 전에 쥐고 있던 쇼겐의 옷자락을 주고 갑니다. 거기에는 쇼겐의 문장인 겹친 세모꼴 세 개가 있었고... 미야지는 칼을 품고 쇼겐에게 찾아갔다가 오히려 그에게 겁탈을 당합니다(예전에 쇼겐이 미야지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미야지는 집에서 목숨을 끊기 전에 쇼겐에게 복수하고 그 집안의 대가 끊어질 때까지는 눈을 감을 수 없노라며 고양이에게 복수를 부탁합니다. 죽은 미야지의 피를 고양이가 받아 먹고는 고양이 귀신이 되죠.

귀신은 집안에 쳐들어가서 일단 쇼겐의 늙은 어머니를 죽입니다. 그리고 쇼겐 어머니의 모습으로 변신하죠. 그 다음에 쇼겐 부자를 이간질합니다. 신노조는 집안의 하녀인 야에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는데, 고양이 귀신은 쇼겐이 야에를 부르는 것처럼 속여(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낼 줄 압니다) 밤 중에 야에를 쇼겐의 침소로 유인하고 쇼겐은 야에를 범합니다. 그 담에 고양이 귀신은 그 사실을 신노조가 알게 만들죠. 이렇게 부자의 사이가 갈라지고, 차츰 미쳐가던 쇼겐은 고양이 귀신이 집안 사람들을 죽이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신노조를 고킨고로 잘못 보고 서로 싸우다 둘 다 죽게 됩니다. 그럼 현재 고양이 귀신은 왜 요리코를 공격하느냐? 테츠이치로가 사헤지의 후손이었던 거죠. 낄낄낄낄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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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야에, 신노조, 고양이 귀신

줄거리를 쭉 얘기했는데, 읽으면서 다 아셨겠지만 <망령의 괴묘저택>의 설정은 우리나라의 60-70년대 공포영화들과 놀랄만큼 비슷합니다! 이용민 감독의 <살인마>(1965)와 <여곡성>(1986)과의 공통점을 보자면 귀신은 집안에서 가장 서열이 높은 여자(여곡성에서는 여자 주인공의 시어머니)를 죽이고 그 행세를 합니다. 귀신이 흡혈귀로서의 특성을 보이는 것도 똑같고요. 김인수 감독의 <원한의 공동묘지>(1983)에서는 여자가 죽어가면서 그 피를 먹이고 고양이에게 복수를 맡깁니다! 도대체 <망령의 괴묘저택>이 이 영화들에 얼마나 영향을 끼친 것일까요? (물론 <살인마>는 독특한 특성과 완성도를 갖고 있지만...) 아니면 <망령의 괴묘저택>도 오리지널은 아니라, 다른 영화나 설화에서 모티브를 빌려 온 것인지, 이런 설정이 일본 및 다른 나라의 공포영화에서도 흔한 것이었는지, 지금으로서는 알기 어렵습니다. 이 무렵 공포영화들을 더 봐야겠죠.

현대 관객의 시선으로 보자면 밋밋하고 어설픈 부분도 많지만 <망령의 괴묘저택>은 재미있습니다. 고양이 귀신이 쇼겐과 신노조 부자를 싸우게 만들어 복수한 것도 좋은 설정이었다고 생각하며, 특히 고양이 귀신의 살인과 흡혈을 묘사하는 장면이 재미있습니다. 고양이 귀신이 희생자의 피를 빨아 먹는 모습을 문에 비친 그림자를 통해 보여주는데, 흡혈하기 직전 귀신의 고양이와 비슷한 움직임은 묘하게 섬찟하고... 고양이는 염력 같은 특기를 갖고 있는데, 줄을 잡고 끌어당기는 듯한 움직임을 취하면 사람이 끌려옵니다. 고양이가 그렇게 사람을 움직이는 장면을 아무 장치도 없이 두 배우의 움직임만으로 표현하는데, 마임이나 일본 고전 연극에서 영향을 받은 것일까요?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는 벼락이 치고 거센 비바람이 부는 가운데 집안의 벽이 무너져 내리는데, 거기에 오랜 세월 파 묻혀 있었던 고킨고의 뼈가 드러납니다. 고양이 귀신이 그리로 천천히 걸어들어가죠. 이건 말할 것도 없이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의 카피입니다만, 동양과 서양의 고양이에 대한 미신과 공포가 이렇게 서로 만나는건 참 드문 일이겠습니다.

앞서 <원한의 공동묘지>를 언급했는데, <원한의 공동묘지>에는 노골적인 고양이 대량 학살 장면이 나옵니다. 살아 있는 고양이를 (진짜로) 한 마리 한 마리씩 칼로 찔러 죽이고, 그 장면을 쭉 보여주는 거에요. DJUNA님이 이 영화를 언급하면서 "원한의 공동묘지가 좋은 호러 영화가 되지 못한 건 살아있는 생명체들을 고문하고 죽이면서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무감각함 때문" 이라고 얘기했던 적이 있습니다. <망령의 괴묘저택>에서도 고양이 귀신이 파닥거리는 연못의 잉어를 잡는데, 그 잉어를 고양이가 잡아먹는 장면은 나오지 않습니다. 검열 때문이었는지, 원래 그렇게 찍을 생각이었는지, 생명에 대한 배려였는지, 나중에 그 잉어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만, 적어도 <망령의 괴묘저택>이 <원한의 공동묘지>보다 좀 더 나은 품격을 보여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일본의 고양이에 얽힌 괴담을 찾아봐야겠습니다. 참고가 될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에도 고양이 귀신은 나옵니다만 그건 원한을 품은 고양이가 주인에게 복수한다는 얘기였습니다. 주인의 피를 마시고 주인 대신 복수한다는 건 아니었어요. 그리고 충성심 많은 개가 고양이를 죽이고 자신도 목숨을 잃죠. <망령의 괴묘저택>에서도 개가 나오는데 고양이 귀신에게 맥없이 죽습니다.

- 2006.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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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금자씨를 다시 보고 왔습니다. 처음 봤을 때보다 훨씬 더 재미있었습니다. 처음 봤을 때 잘못 생각했던 부분도 많았고요.

1. 백선생의 이름은 백한상입니다. 그 이름은 왠지 오래 전에 있었던...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어떤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만 별 의미 없이 사용한 거라고 봐야겠죠.
백선생은 절대악에 가까운 인물로 여겨지는데, 절대악? 혹은 순수악? 어느 쪽이라도 말은 되겠지만 악이라기 보다는 백선생의 본성 자체가 동물에 가까운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금자의 꿈에 나온 백선생이 개의 몸통을 갖고 있는 건 어쩔 수 없이 <올드보이>를 떠올리게 하지만 밥상에서 아내를 강간하는 행동은 인간의 그것은 아니죠.
만약 백선생이 목표가 있는 악당이라면 더 강했을 것 같은데 그렇진 않고, 뭔가 굉장히 공허해 보입니다. 자신의 욕망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숙고하고 제어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는 것이 그의 악행을 더욱 부추기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금자가 작은 강아지를 쏘아 죽이는 장면은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백선생은 타인을 능멸할 수 있는 인물인데, 금자와 제니의 대화를 통역하는 장면, (Yes, That's it!) 도 그렇지만 원모 엄마에게 한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는 거다"는 말은 완전한 조롱이더군요. 예고편과는 느낌이 너무 틀려서...
전도사 양반은 금자의 사진을 찍어주고 백선생에게서 돈을 받는데, "주님의 사업에 쓰겠습니다." 라고 말했을때 백선생이 한 장을 도로 가져가는 장면은 처음 봤을 땐 그 얘기를 조소하는 듯 보였습니다. 다시 보니 그 대사와는 크게 상관 없더군요. 원래 구두쇠라서.
애초부터 전도사가 백선생의 스파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만약 아니라면 그가 스파이로 변신한 건 금자가 "개종"했기 때문이겠죠?

2. 나중에 백선생에게 유괴된 아이의 가족들이 금자에게 계좌번호를 적어주는 장면에서 저는 순간 가족들이 사례금을 전달하는 거라고 생각했었거든요. 터무니없는 생각이었습니다. 금자는 백선생이 유괴로 번 돈을 모두 가족들에게 돌려준다고 했고, 계좌번호를 적어준 건 그 돈을 돌려받기 위해서였겠죠.
세연네 아버지가 프랑스에서는 이렇게 말이 막히는 순간에는 천사가 지나가는 것이라고 얘기했을 때, 샹들리에엔 연기가 자욱합니다. 그건 원모가 피우는 담배 연기겠죠? 영화가 이 가족들을 조소하고 있어서 불편하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런가요? 잘 모르겠습니다. 이 사람들이 특별히 이타적이거나 사려깊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에, 영화에서 이들을 속물적이고 약한 인물들로 묘사해도 저는 묵묵히 봐줄 수 있었습니다. 뭐... 이 정도면 딱 평범한 사람들이죠. 사실 영화에서 가장 가슴아팠던 부분은 자식들의 최후를 접한 이들의 비통한 반응이었습니다.

3. 금자의 내면으로 들어가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영화는 어려운 편이었습니다. 친절한 금자씨인지, 마녀 이금자인지. 그러나 금자가 교도소 동료들을 철저히 이용한 것은 틀림 없어 보입니다. 영화에는 그녀에게 결정적인 도움을 받은 사람들의 사연이 주로 나오지만 영화에서 말하듯 마녀를 죽인 후에는 누구도 그녀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고 하니... 정성일-박찬욱 대담에서도 언급하듯 그녀의 동료들은 복수를 도운 후에는 사라져 버립니다. 이용하고 버리는 셈인데... 특히 박이정을 다루는 방식은 참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금자는 박이정이 백선생에게 강간당하도록 방임하고, 그 이후에도 철저히 부려먹더군요.
금자가 감옥에서 도운 몇몇이 마녀와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보면, 마녀 역시 금자에게 이용당한 걸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마녀는 금자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군요. 금자는 마녀를 처리함으로써 마녀에게 당하던 이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한편 마녀의 지위를 물려받아 남들이 감히 자신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을 정도로 만들었죠. 마녀의 "난 빼빼 마른 년들이 싫다"는 말과 금자의 "무조건 예뻐야 된다"는 말은 정 반대의 뜻을 갖고 있지만 둘을 한 묶음으로 만듭니다. "걱정 마, 먹진 않을 테니까." 근식에서 금자가 하는 이 말은 마녀가 남편과 정부를 요리해서 먹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그런데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전도사에 대한 금자의 태도입니다. 전도사의 두부를 그렇게 엎어버린 까닭이 뭔지... 그 행동 자체를 하나의 상징으로 볼 수는 있겠지만, 거기에 뭔가 다른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4. 금자의 담당 형사 최반장은 금자의 복수를 돕는 인물입니다. 아마 죄책감 때문이었겠죠. 금자가 범인이라고 생각하든 말든, 현장검증까지 진행되는 이상 현장의 진행을 원활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을 겁니다. 아마 그 현장에서 범인이 아니라는 걸 확신했을 테고...
최반장은 유족들에게 어떻게 찔러야 되는지 가르쳐 주고, 차를 대접합니다. 경찰로서의 직분을 포기한 거라고도 볼 수 있겠죠.

5. 킬러들이 금자와 제니를 기습하는 장면은, 너무 어두웠습니다. 처음 볼 때는 금자가 송강호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제대로 알아채지도 못할 정도였으니까요.

6. 제니는 확실히 백선생의 아이는 아닌 것 같습니다. 처음 봤을 때는 금자가 백선생에게 일부러 거짓말을 하지 않나 생각했었는데요. 백선생이 임신시킬 능력이 없다고 얘기하는 걸 보면 백선생에게 얹혀 살면서 그와 관계를 맺었겠죠. 백선생의 가슴에 난 수북한 털... 은 10대 소녀인 금자의 성에 대한 무지와 두려움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였던 것 같고요.
제니는 너무 귀여웠습니다. 관대하지 않은 금자의 딸. 근식이 폐교에서 제니에게 아빠라는 말을 가르치는 것은 자신은 오빠이지만 네 엄마의 애인이므로 아빠도 될 수 있다, 뭐 이런 말을 하려던 것 같은데, 제니는 속으로 stupid... 라고 했죠.
그러고 보니 제과점 장씨도 금자에게 많이 뜯기네요. 가불이나 해주고. 그런데 새끼손가락이 끊어진 그 손으로 케잌을 만들 수 있을까요?

7. 윤진서 카메오는 굉장히 어색했습니다. 류승완은, 대사라도 한 마디 있었으면 좋았을 겁니다.

8. 금자와 고선숙이 대화할 때, 비슷한 발음을 이용한 개그가 있죠. 닦고요, 닭고기. 이 영화에서 제일 웃겼던 장면은 뭐, 그 도끼 장면이었겠지만 이 개그도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법구경에서 어떻게 권총의 도면이 나온 건지, 그걸 알 수 없어요. 고선숙이 그려둔 걸까요? 그렇게 생각하기엔 뭔가 어색합니다만...

9. 이 영화는 재미있고, 의미도 풍부합니다만 아직도 뭔가 제대로 잡히지 않는 게 있어요. 나중에 틈나는 대로 꺼내 먹으면 맛있을 것 같아요. 뒀다 먹기는 아니고... 아껴서 먹는 거죠.

- 2005. 8. 15

Posted by Wolverine
친절한 금자씨 (Symphathy for Lady Vengence, 2005)

감독 : 박찬욱
출연 : 이영애, 최민식, 권예영, 김시후, 남일우, 김병옥, 오달수, 이승신, 라미란, 김부선, 고수희, 서영주, 김진구, 박명신, 이용녀, 오광록, 송강호, 신하균, 유지태, 강혜정, 윤진서, 류승완, 이대연, 임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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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감옥에 간다는 뜻으로 콩밥먹는다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지만 실제 교도소의 주식은 보리밥이었습니다. 어쩌면 지역마다, 혹은 시기마다 다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아시는 분 계신가요? 수감자들이 보리밥을 먹는다는 사실은 출옥했을 때 두부를 먹는게 모자란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한 것이라는 관점과도 어울립니다. 교도소에서도 영양이 모자라서 수감자들이 곤란을 겪었던 것은 아주 오래 전의 이야기지만, 어쨌든 출소한 사람에게 두부를 먹여주는 관습은 아직 살아 있습니다.

<친절한 금자씨>의 전도사 양반은, 이 풍습에 정신적인 의미를 하나 덧붙입니다. 죄짓지 말고, 하얗게 살라고 하얀 두부를 먹인다는 것이죠. 그러나 갓 출소한 이금자 씨는 전도사가 건네주는 두부를 엎어 버림으로써 그를 처참하게 배반합니다. 이 장면은 감옥에서 열렬히 신앙 간증을 하고 동료들을 돕던 모습이 다 가장이었음을 암시하기도 하고(복수는 13년 전 이미 시작되었다고 히스테리컬하게 웃는 장면도 있죠), 진정 복수를 원한다면 기존의 윤리와 결별해야 한다는 뜻도 있을 겁니다. 사람 하나 죽이는 게 복수의 끝은 아니니까요. 금자가 13년 전 범행 현장 검증을 할 때 거기 몰려온 사람들 중에는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의 간판을 든 교인들이 많더군요. 그들은 13년전에 금자에게 돌을 던졌고, 감옥 안에서는 속죄를 강요했죠. 기독교는 감옥 안에서 금자가 내세운 윤리이기도 했지만, 이제 그 의미는 전혀 다릅니다. 출소해서도 금자는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기도를 하면서도 꿈에서는 복수를 하고...
실제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도 봤지만, 윤리적인 측면에서 이 영화를 보자면 불편해 하실 분들이 있을 겁니다. 감옥의 강간씬을 비롯하여 잔혹한 몇몇 장면이 있긴 하지만, 그와 상관 없이 이 영화는 기존의 윤리와 다른 차원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친절한 금자씨>는 중반부까지 코믹합니다. 그건 <복수는 나의 것>의 코미디와는 약간 다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복수는 나의 것>에서 신하균이 신장을 빼앗기는 장면은 공포영화의 그것처럼 보이지만 벌거벗은 신하균이 거리에서 차를 기다리며 벌벌 떠는 다음 장면은 굉장히 우스꽝스럽죠. 그런 식의 부조리와 웃음을 연결시키는 방식이 <친절한 금자씨>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 같아요.
코믹한 장면을 몇 가지 들자면, 금자는 용서를 빈답시고 원모의 부모를 찾아가 자기 손가락을 자르는 장면이 있겠죠. 나레이션에 따르면 수술비로 감옥에서 번 돈을 몽땅 날렸다죠. 민폐도 그런 민폐가 어디 있습니까. 심장이 약한 원모네 엄마는 놀라서 실려가기도 하고... 또 금자의 감방 동료 김양희가 감옥 안에서 기도하는 금자를 보는데 몸에서 빛이 나는 장면도 그렇고요. 고수희가 여자들에게 판다는 장식도 익살맞습니다. 아, 또 잊지 못할 코미디를 들자면 금자가 전도사에게 법구경을 들이대는 장면을 꼽을 수 있겠죠. "저 개종했어요!"

그런데 금자의 딸이 나타나면서 부터는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죄의식과 속죄의 의지가 자리잡으면서 영화가 방향을 바꾸는 거죠. 소위 말하는 복수 3부작의 전작인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의 주인공들은 기본적으로 잃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죠. <올드보이>에는 비록 반전이 있긴 하지만, 그것은 나중에 드러나는 사실이었습니다. <올드보이>와 <친절한 금자씨>가 결정적으로 갈라지는 부분은 자식에 대한 주인공의 결정 아닐까요. 오대수는 "그 새끼 잡아 죽인 다음에" 자식을 찾으러 가기로 결심하지만 금자는 먼저 제니를 찾습니다. 말도 한 마디 안 통하는, 고양이 같은 제니. 금자가 백선생에게 결행하는 복수의 의미는 제니에게 속죄하는 것으로 그 방향을 바꿉니다. 그리고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 속죄는 더욱 확대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지었으면 속죄를 해야 되는 거야. 큰 죄에는 크게, 작은 죄에는 작게."
이 영화에서 감옥의 금자를 지탱하고 있던 종교적 윤리는, 결국 절대악과 결탁하는 냉혹한 윤리임이 밝혀집니다. 그것이 아마 영화 초반부에 전도사가 금자에게 모욕을 당하는 진정한 이유겠죠. (전도사가 백선생에게 돈을 받는 장면이 있는데, 주님의 사업에 쓰겠다고 한 마디 했더니 백선생이 거기서 한 장을 다시 집어들죠. 얼마나 우습던지...) 그러나 죄의 인식, 속죄의 윤리는 끝까지 갑니다. 그것이 죄는 씻겨지지 않는다는 쓸쓸한 결말로 이어질지라도, 금자에게 마지막 남은 한 줌의 희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아닐지. 백선생이 남기는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말은, 피해자에 대한 조롱에 불과하지만 그것을 관객들이 금자씨에게 말할 때는 위안이자 진리가 됩니다. 그렇게 <친절한 금자씨>는 평범한 도덕적인 진리를, 복수라는 전근대적이고 원초적인 의식보다 우월한 새로운 희망으로 밀고 나갑니다.

추신) 하고 싶은 얘기도 많고, 영화가 약간 어려워서 아직 파악하지 못한 부분이 많습니다. 다시 보러 갈건데, 그때는 좀 더 세련된 얘기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여담이지만 금자는 감방 동료였던 박이정을 정말 끔찍하게 다루지 않습니까. 박이정이 백선생에게 강간을 당하는 장면도 그랬고, 바로 풀어줬어야 마땅한데 한참 놔두더군요. 운전까지 시키고.
유가족들이 금자에게 계좌번호를 건네는 장면은, 나중에 다시 얘기를 하겠습니다. 그런데 꼭 <오리엔트 특급살인>의 판박이 같지 않습니까.

- 2005. 7. 30

Posted by Wolver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