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외팔이 (新獨臂刀, New One-Armed Swordsman, 1971)
감독 : 장철
출연 : 강대위, 적룡, 이청, 곡봉, 정뢰
두 자루 장단쌍도로 최근 반년간 강호를 뒤흔든 원앙도 뇌력은 용이지의 표적이 된다. 삼절곤의 고수 용이지는 대협으로 명성이 높지만 암계를 써서 젊은 고수들을 여럿 제거해 왔다. 그들이 더 자라면 자신의 명성을 해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용이지는 제자로 하여금 원성표국의 총표두인 하위의 동생을 죽이게 하고 뇌력에게 누명을 씌운다. 그리고 오해를 받아도 개의치 않는 뇌력의 오만함은 용이지에게 패해 팔 하나를 잃고 그의 명성을 높여주는 댓가를 치른다.
용이지는 뇌력이 피하지 않을 것을 알고 대결을 시작하기 전에 자신이 패하면 오른팔을 자르고 강호를 떠나겠다는 미끼를 던졌으며, 쌍도를 격파할 수 있는 초식을 연마해서 싸움에 대비하고 있었다. 반면 뇌력은 모든 일이 용이지의 음모라는 사실도, 그가 나타나리라는 것도 전혀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스스로 오른팔을 자른 뇌력의 몸이 비탈을 구르고 카메라는 그 치욕과 고통의 순간을 천천히 보여준다. 나무에 꽂힌 칼에 꿰인 그의 오른팔은 어느덧 다 썩어 없어지고 하얀 뼈만 남아...
2년 후 마교진이라는 작은 마을의 객잔. 이곳의 점소이 노릇을 하고 있는 뇌력은 손님들에게 외팔이라며 조롱을 당한다. "가서 네 엄마한테 오른팔도 낳아달라고 해라! 하하하하!" 대장장이의 딸인 파초만이 뇌력이 조롱당하는 것을 안타까워할 뿐이다. 이 무렵 강호에서는 쌍도를 쓰는 또 다른 고수 봉준걸이 맹활약하고 있었는데, 용이지는 자신이 뒤에서 조종하는 호위산장을 이용하여 봉준걸을 제거할 계책을 세우고 마침 객잔에 들른 봉준걸은 뇌력이 호위산장 대두목들의 비위를 거슬려 구타를 당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무술을 할 줄 아는 뇌력이 저항하지 않는 것을 본 봉준걸은 그를 비범하게 여긴다.
<신 외팔이>는 왕우 주연의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보다 훨씬 입체적이고 인간적이며, 더 나아가 쇼 브라더스 시절 홍콩 무협 영화는 물론 80, 90년대 홍콩 느와르와도 전혀 다른 정서를 보여주는 영화다. 우선 <신 외팔이>를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에 비교해 보면 두 주인공의 깊이가 다르다.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의 방강은 사부의 딸에게 팔이 잘렸지만 사부에 대한 본분을 잊지 않고, 그의 인간적인 감정은 평면적으로, 비교적 단순하게 드러난다. 팔이 잘리기 전이나 잘린 다음이나 방강은 방강이며, 중요한 것은 그가 역경을 이겨내고 고수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 외팔이>에서 팔이 잘리기 전의 건방진 뇌력과 팔이 잘린 후, 화려한 과거를 그리워하면서도 패배감에 젖은 뇌력, 그리고 봉준걸이 죽은 후 복수심에 불타 검을 집어드는 뇌력은 서로 다른 감정의 지배를 받는다. 뇌력은 방강처럼 외곬로 어떤 가치를 추구하지도 못하고 흔들리는 사람이다. <신 외팔이>는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처럼 영웅이 시련을 극복하고 고수로 거듭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러한 점이 내가 <신 외팔이>를 입체적이고 인간적이며 여타 영화들과 다른 정서를 갖고 있다고 보는 이유이다. 이 영화는 죽음을 향해 돌진하는 주인공이 있지만 죽음 따윈 아무 것도 아니라는 식의 허무주의에서 벗어나 있고, 비장미가 있으되 그것이 주인공의 수치심, 패배감, 당혹감을 덮지 않는다.
특히 압권인 것은 뇌력과 용이지의 마지막 대결 시퀀스. 나무 다리에서 마주 선 두 사람이 짧게 대화를 나눈다.
"너는 외팔이가 되어서도 본분을 지키지 않는구나."
"외팔이가 된 이후로 본분을 지키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네가 봉준걸을 죽였으니 그 복수를 해야겠다."
"허허... 네가 두 팔이 멀쩡할 때도 나를 이기지 못했는데 한 팔로 무엇을 하겠느냐? 복수가 아니라 그와 함께 죽으러 온 것이지."
용이지의 비웃음에 대해 뇌력은 할 말이 없다. 봉준걸은 그의 초식에 당하고 나서야 그를 이길 비책을 깨달았지만 뇌력의 머릿속에는 아직 그를 이길 방책이 없다. 적을 이길 수 없다는 너무나 자명한 사실에 수치심과 패배감을 느끼는 뇌력이 말한다.
"난... 그와 함께 죽으러 왔다!"
이 장면에서 레이리의 일그러진 표정은 마치 이 영화의 도장과 같다. 어떤 상황에서도 적에게 두려움을 비치지 않으며 웃으면서 죽음으로 걸어 들어가는 주인공이 아니라, 내가 질 거라고 생각하고 그 사실에 절망하고 수치스러워 하면서도 어떻게든 끝까지 싸워 이겨야 하는 상황에서의 그 표정. 만약 이런 표정과 감정을 보여주는 홍콩 액션 영화가 또 있다면 기꺼이 그 영화를 보겠다. 그렇다고 주인공이 있는대로 폼을 잡는 영화가 시시하고 후지다는 건 아니다. 그건 또 그 나름대로의 재미와 가치가 있다.
이 영화의 액션은 유래하고 장쾌한데 같은 외팔이 시리즈지만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보다 크게 발전한듯 보인다. <신 외팔이>의 대결 장면은 수십 명이 모여서 기껏 한 명씩 덤비는 시시한 액션이 아니라 적들이 한꺼번에 달려들면 검객이 한 칼에 서너명씩 베며 질풍같이 그 사이를 헤쳐가는 시원시원한 액션이다. 그렇게 한 칼질을 하고 나면 쓰러진 시체들 너댓 구가 경사진 다리를 탕탕탕 굴러가는 것이다. 영화의 오프닝은 뇌력이 말을 타고 달려오며 적을 베는 것인데 이 오프닝도 멋지다. 오늘 케이블로 극장판 <의천도룡기>를 조금 봤는데 그런 액션은 이 영화에 비하면 얼마나 시시하고 멋이 없는지.
다른 장철 영화에서 흔히 그런 것처럼 <신 외팔이>에서도 고수들은 칼로 배를 찔려 죽는다. 용이지는 치명상을 입은 봉준걸에게 목숨만은 살려주겠다고 제안하지만 봉준걸은 끝까지 싸우다 죽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기적적으로 뇌력이 용이지를 쓰러뜨렸을 때, 카메라는 봉준걸의 무덤을 한 번 비추고 멀리서 뇌력을 향해 달려오는 파초의 모습을 잡는다. 파초의 아버지인 파 대장장이가 한 고수의 죽음을 회상하는 시퀀스에서도 그런데 이 영화는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듯 하다. 많지는 않지만 내가 본 장철 영화, 특히 적룡과 강대위가 나오는 영화 중에서 둘 중 한 사람이 살아남았던 건 이게 처음이다.
더 나아가 봉준걸은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여 뇌력의 충고를 무시했기 때문에 죽음에 이르게 되었고, 반면 뇌력이 오만함을 버렸기 때문에 살아남은 거라고 본다면 이 영화는 당혹스럽게도 아주 도덕적이고 교훈적인 영화가 된다. 어쩌면 이 메시지가 다른 장철 영화들에서도 이어진다고 생각을 하면... 하긴 장철 영화에서 사람들이 우수수 한칼에 쓰러지는 장면이 나오면 됐지 다른 게 더 뭐 필요있겠는가. 좀 억지스럽고 매끄럽지 못한 설정이 있지만 이 정도면 정말 훌륭한 액션 영화라고 할 만하다. 특히 봉준걸과 뇌력이 각자 말을 몰고 호위산장으로 장면은 이 영화를 dvd로 봐야 하는 걸 못내 아쉽게 만든다. 경치가 정말 좋았다.
영화를 보면 뇌력의 복장이 변하는데, 싸울 때는 흰옷, 점소이일 때는 검은 옷이다.
난 그와 함께 죽으러 왔다는 뇌력의 말은 어떻게 보면 뇌력이 봉준걸을 향한 애정을 노골적으로 고백하는 것처럼 들린다. 이 대사 외에도 영화 중반부에 서로 벗이 되기로 한 뇌력과 봉준걸, 그리고 파초가 함께 걷는 씬이 있는데 뇌력과 봉준걸이 서로 찰싹 붙어있으며 파초는 그들 사이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웹서핑을 하다가 홍콩 동인녀들이 이 영화를 대표적인 동인 걸작으로 꼽는다는 말을 들었는데 오승욱 감독이 장철 감독의 무협 영화를 남성들 사이의 멜로드라마라고 불렀던 것과는 다른 맥락에서 미묘한 해석이 가해지고 있는 것 같다.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블루스 하프>에는 평범한 클럽의 뮤지션(이 남자가 주인공)이 나오고 그 남자를 짝사랑하는 야쿠자가 있으며, 그 야쿠자에게 충성하고 의리를 지키는 부하가 있는데 알고 보니 이 부하의 의리는 의리가 아닌 애정이었다. 그 사실이 드러나는 장면이 영화에서 가장 웃기는 부분이었다.
뇌력을 중국어로 말하면 레이리가 되는 것 같은데 이 글에서 주인공의 이름을 나는 뇌력이라고 쓰고 레이리라고 읽는다. 몽땅.
Posted by Wolver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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