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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3/24 시네마테크 부산의 월드시네마 V 관람기 by Wolverine (2)
  2. 2007/09/30 빅 히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by Wolverine

시네마테크 부산에 들른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지난 여름에 들렀을 때와 내부 시설이 약간 달라졌다. 보다가 잠들어버린 그런 영화들을 빼면 이번에 관람한 영화는 8편이었다. 8편 중에서 프리츠 랑의 <빅 히트>를 빼면 모두 처음 보는 영화들이었고.

욕망 (Blowup, 1966)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저개발의 기억 (Memories of Underdevelopment, 1968) 토마스 쿠니예레스 알레아
우든 클로그 (The Tree of Wooden Clogs, 1978) 에르마노 올미
과거로부터 (Out of the Past, 1947) 자크 투르뇌르
슬픔은 그대 가슴에 (Imitation of Life, 1959) 더글라스 서크
밀라노의 기적 (Miracle in Millan, 1951) 비토리오 데 시카
빅 히트 (The Big Heat, 1953) 프리츠 랑
가스등 (Gaslight, 1944) 조지 쿠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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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이나 <우든 클로그>는 처음엔 볼 생각이 없었는데, 보고 놀랐다. <욕망>은 살인 사건을 이런 식으로 다루는 영화가 있다는 점에서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주인공인 사진작가 토마스(데이비드 헤밍스)는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확대(Blowup)한 뒤 그곳에 시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직접 공원으로 찾아가서 시체를 발견하지만 돌아왔을 때 시체는 이미 사라져 버린 뒤였다. 너무나 평범하고 흔한 경험과 심상치 않은 사건의 조합! 그리고 토마스의 카메라에 그대로 드러나는 갈망과 허기. <우든 클로그>는 처음엔 180분이 넘는 긴 상영시간이 부담스러웠는데, 정말 보지 않았으면 후회했을 것이다. 19세기 말 이탈리아 농부들의 일상 생활을 정밀하게 묘사하는 이 영화는 그 당시 농부들의 노동을 정밀하게 묘사한 기록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우든 클로그> 같이 노동하는 장면을 길고 자세하게 그린 영화를 보지 못했다. 조용한 전개, 예측하지 못한 슬픈 결말, 19세기 농촌의 매혹적인 풍경. 이 영화에는 농부가 돼지를 도살하는 장면이라든가, 거위의 목을 싹둑 자르는 장면이 그대로 나오는데, 그러면서도 영화는 전혀 선정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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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저개발의 기억> 같은 영화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전체적인 감상은 '저 남자 불쌍하다' 정도. 주인공인 세르지오(세르지오 코리에리)는 주변의 부르주아들과는 달리 혁명의 정당함도 알고 양심도 있으나 혁명 이후의 쿠바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득세하는 쿠바에서 그는 작가가 되지도 못할 것이고, 그대로 소모되고 마모될 것이다. 자크 투르뇌르 감독의 <과거로부터>는 '과거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을 줄인 영화처럼 보였다. 로버트 미첨과 커크 더글라스가 나오는 영화이니만큼 재미가 없을 수 없다. 굳이 부자지간이라고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 볼 수 있을 만큼 커크 더글라스와 마이클 더글라스는 닮았는데, 나는 선역을 할 때나 악역을 할 때나 항상 능글맞고 눈빛도 날카로우며 왠지 벼랑 끝에 몰린 것 같은 커크 더글라스가 지쳐 보이는 마이클 더글라스보다 훨씬 더 좋다.

<슬픔은 그대 가슴에> 같은 영화는 굉장히 많이 기대를 했는데, 기대했던 것보다는 약간 아쉬웠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영화였고, 라나 터너도 좋았다. 보면서 놀란 것 하나. 로라 메레디스(라나 터너)의 딸인 수지(테리 버냄)가 로라에게 묻는다. 예수는 흑인이에요, 아니면 백인이에요? 애니(주아니타 몬로)의 딸인 흑백 혼혈아로 백인이 되기를 열망하는 사라 제인(캐린 디커)은 예수는 틀림없이 백인이었을 거라고 답한다. 말콤 X가 교도소 시절에 한 질문을 이미 다른 사람들도 하고 있었다.

<밀라노의 기적>은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네오 리얼리즘 영화 운운했기 때문에 그런 영화일줄만 알고 봤다가 완전히 뒤통수를 맞았다. 재미있으면서도 여러 모로 생각해봐야할 영화였다. 세상과 인간을 무한히 긍정하는 토토는 고아원을 나와서 빈민가로 흘러 들어가는데, 땅주인 및 경찰들과 대립하다가 천국에 있는 그의 양어머니로부터 소원을 들어주는 거위를 받는다. 리얼리즘이 극에 이르면 동화를 닮는다? 혹은 동화로 탈주한 리얼리즘? 추운 겨울 천막을 치고 추위를 피하던 빈민들이, 햇살이 나자 거기로 일제히 몰려드는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다.
여기도 흑백 인종 간의 관계를 은유하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여기서는 로맨스로 치장이 되어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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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히트>야 예전에 재미있게 봤던 영화이지만 무엇보다도 이번에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는 가스등. 보고 나오길 잘 했다. 폴라(잉그리드 버그만)의 남편 그레고리(샤를 보와이에)는 부정적인 암시를 불어넣으며 그녀를 정신적으로 학대하고 미친 사람으로 몰아가는데, 그 과정이 무섭다. 이 영화의 백미는 마지막 부분. 길게 얘기할 순 없지만 정말 최고였다.

경상도 남자들이 무뚝뚝하다는 얘기야 처음 들어본 게 아니지만 적어도 시네마테크 부산 직원들은 다들 친절하고 싹싹한 사람들이었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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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lver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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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히트 (The Big Heat, 1953)

감독 : 프리츠 랑
출연 : 글렌 포드, 리 마빈, 글로리아 그레이엄, 조슬린 브랜도

이번 '프리츠 랑의 아메리카 특별전' 상영작 10편 중 네 편을 봤는데, 아직 <공포의 내각>이 남아 있긴 하지만 <빅 히트>를 가장 재미있게 봤다. 제목이 비슷한 하워드 혹스의 <빅 슬립>보다도 훨씬 좋았다. 서울 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김성욱 씨가 어떤 글에서 <빅 히트>를 가리켜 '필름 누아르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 나오는 영화라고 했던 것 같은데, 스포일러를 볼까봐 글을 자세히 읽지는 않았다.

먼저 영화 줄거리. 경찰 조서담당부서의 국장 톰 던컨이 권총으로 머리를 쏴 자살한다. 시신을 처음 발견한 그의 부인은 별로 슬퍼하는 기색도 없이 마이크 라가나라는 남자에게 전화를 건다. 그 전화를 받은 마이크 라가나는 다시 빈스 스톤이라는 남자에게 연락을 하고, 던컨 부인은 남편이 남긴 유서를 집어들었다 내려놓는다.
다음 날 경찰들이 사망 현장을 조사하는데, 유서는 이미 그 자리에 없다. 그리고 던컨 부인은 자신을 조사하러 온 강력반의 배니언 형사 앞에서 울며 남편이 건강 문제로 자살했을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톰 던컨의 애인이었던 루시 채프먼은 배니언을 만나서 그는 건강했으며 절대 자살할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톰 던컨의 죽음이 확실한 자살이었으므로 배니언은 그녀의 이야기를 믿지 않는데, 루시 채프먼은 바로 그날 밤 납치되어 고문을 받은 뒤 살해당한다. 배니언은 사건을 파헤치려 하지만 윗선에서 압력이 들어오고, 악당들도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는다. 급기야 그의 집에 누군가 협박 전화를 걸자 배니언은 도시의 모든 범죄와 부패의 흑막인 마이크 라가나를 찾아가서 그를 윽박지르지만 오히려 누군가 배니언의 차에 폭탄을 설치하고 그의 아내가 폭사하게 된다. 그는 범인을 체포하려고 하지만 라가나와 결탁한 경찰 간부 히긴스에 의해 정직 처분을 받는다.

이 영화의 초반부는 대단하다. 군더더기 없는 진행은 저돌적이지만 가족들에게는 부드러운 배니언 형사와 그가 맞닥뜨린 사건(얼핏 보기엔 평범하지만 자세히 보면 수상한) 속으로 관객들을 빨아들인다. 아내와 어린 딸로 이루어진 배니언의 가정은 무척 단란하고 따뜻하게 묘사되며, 배니언이 전형적인 아일랜드 여자라고 이야기하는 그의 다정하면서도 강인한 아내는 정말 매력적이다. 그러므로 그녀의 죽음은 영화 전반에 걸쳐 깊은 상실감을 전해준다. 이건 비교하자면 <강철의 연금술사>에서 윈리 록벨이 초반에 죽는 거나(윈리 록벨이 초반에 죽지는 않지만) 마찬가지. 그러나 영화의 주조는 상실감보다는 공포와 폭력에 더 가깝다. 도시 전체에 뿌리내린 악의 그림자는 영화를 숨막히게 한다. 도시의 모든 사람들이 라가나와 그의 패거리를 두려워한다. 영화에서 가장 답답한 순간은, 배니언이 자동차에 폭탄을 장치한 자를 찾으러 자동차 정비소에 갔을 때, 정비소 주인이 협조를 거부하며 "나도 가족이 있다"고 말하는 장면. 또한 그를 돕는 악당 빈스 스톤과의 대화로 미루어봤을 때 라가나는 정계에까지 진출하려는 것 같다. 아니면 후원하는 정치가가 있든지.

이런 강고한 라가나의 세력을 무너뜨리는 것은 원한으로 뭉친 개인들의 연대(혹은 공모). 그 가운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빈스 스톤의 애인인 데비 마쉬다. 스스로 생각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고 말하는 바비 인형같은 그녀는 배니언을 따라 호텔로 들어갔다가 빈스 스톤에게 뜨거운 물 세례를 받는다. 김성욱 씨가 말했던 게 이 장면 같은데, 빈스 스톤은 보글보글 끓는 커피 포트를 집어들어 데비 마쉬의 얼굴에 끼얹는다(나중에 데비 마쉬도 빈스 스톤에게 똑같은 짓을 한다). 얼굴을 망친 그녀는 적극적으로 배니언을 돕기 시작하는데, 80년대나 90년대도 아니고 50년대 영화에서 이정도 수위의 폭력 장면이 나온다는 건 굉장한 것 같다. 빈스 스톤 역을 맡은 배우가 하필이면 리 마빈인데, 나는 리 마빈이 주인공으로 나올 줄 알았지, 이렇게 우둔하고 난폭하며 음험한 역을 맡을 줄은 생각을 못했다. 그리고 리 마빈은 이 영화에서 조연에 불과하다.

형사는 비록 사랑하는 아내를 잃지만 사건은 해결되고 그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이 영화가 비극으로 끝날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고 나는 그 가능성에 마음이 끌린다.
배니언은 던컨 부인이 라가나의 비리를 기록한 톰 던컨의 유서를 숨겨두고 라가나에게서 돈을 뜯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유서를 찾아내기 위해 그는 던컨 부인을 찾아가지만 간교한 던컨 부인의 술수에 말려 쫓겨난다(대단히 재미있는 장면 중 하나이다). 던컨 부인은 라가나 무리가 자신을 죽여 입을 막지 못하도록 자신이 죽으면 남편의 유언이 공개되도록 어떤 조치를 취해놓았다. 배니언은 그 사실을 눈치채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는데, 이때 데비 마쉬가 라가나 부인의 집을 찾아가 그녀를 사살한다. 그 총은 배니언이 준 것으로, 카메라는 죽은 던컨 부인 앞에 그 총이 툭 던져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데비 마쉬가 단순한 인물이긴 하지만, 만약 그녀의 성격이 좀 더 복잡했다면, 배니언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데비에게 원한을 사게 되었다면, 그래서 데비 마쉬가 장갑을 낀 채로 던컨 부인을 사살하고 그 총을 현장에 남겨 놓았다면 배니언은 꼼짝없이 범인으로 몰렸을 것이다. 더구나 배니언과 던컨 부인이 뭔가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것을 경찰들이 낮에 보았으므로 이건 빼도 박도 못하는 것이다. 거기에다 데비 마쉬가 죽어가면서 "던컨 부인을 잘 죽이셨어요" 이렇게 한 마디만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러면 라가나와 히긴스, 빈스 스톤은 물론 배니언까지 체포되었겠지. 그렇다면 어땠을까? 도시의 거악을 일소하고도 감옥으로 퇴장하는 형사의 이야기라면 모든 것이 잘 풀리는 이야기보다는 좀 더 아이러니컬하고 쓸쓸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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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lver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