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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8/11 박쥐성의 무도회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by Wolver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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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성의 무도회 (The Fearless Vampire Killers, 1967)

감독 : 로만 폴란스키
출연 : 로만 폴란스키, 잭 맥고런, 샤론 테이트, 퍼디 메인, 알피 바스


이 영화는 어렸을 때 KBS 토요명화에서 처음 봤습니다. 중간부터 봤지만 이 영화를 오랫동안 잊지 못했던 것은 당시로서는 몹시 무서웠던 결말 때문이었죠. 이 영화를 기억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다가 작년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호러 영화 파티 행사를 할 때 다시 봤습니다. 그때 뭔가 끄적여보려다 만 것은 영화 내용에 대한 오해가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여자 주인공 두 사람을 착각했습니다. 나중에 흡혈귀가 된 여관 주인 샤갈이 하녀를 집적거린 것인데, 딸을 집적거린 것으로 오해한 것이죠. 제가 생각해도 뭔가 이상했고 쓰지 말아야겠다 싶었습니다. 어제 EBS에서 다시 보았는데 공중파에서 몇 년 만에 방영한 것인지...

아브론시우스 교수는 박쥐 연구자이자 흡혈귀 전문가입니다. 동료 교수들에게는 따돌림을 당하는 것 같은데, 조수인 알프레드를 데리고 트랜실바니아 지역을 여행하고 있습니다. 이 여관 곳곳에는 마늘이 잔뜩 달려 있고, 사람들은 뭔가 숨기고 있습니다. 알프레드는 여관 주인 샤갈의 어여쁜 딸인 사라에게 반하는데, 사라는 여관에 나타난 폰 크롤록 백작에게 잡혀 갑니다. 아브론시우스 교수와 알프레드는 흡혈귀를 퇴치하고 사라를 구출하기 위하여 새벽에 그들의 성을 찾아가는데, 마침 그날 밤은 1년에 한 번 흡혈귀들의 무도회가 열리는 밤이었습니다.

뱀파이어 킬러(?)인 두 사람의 캐릭터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흡혈귀라는 존재에 대해 학문적인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아브론시우스 교수는 <드라큘라>의 반 헬싱에 필적하는 존재지만 그보다 훨씬 경박하고 현실 감각이 없는 사람입니다. 게다가 둔하죠. 흡혈귀들에게 쫓기는 와중에도 왕박쥐를 보고 감탄한다는 게 어쩌면 반 헬싱보다 더 학자다운 면모라고 할 수 있겠지만, 긴장감이 없고 주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눈치를 채지 못하는 것 등은 뱀파이어 킬러로서는 실격입니다. 탑 꼭대기에서 탈출하는 장면 등을 보면 원래 머리가 나쁜 사람 같지 않아요. 그의 제자인 알프레드는 지나치게 마음이 약한 사람이라 역시 실격입니다. 그가 폰 크롤록 백작의 심장에 제대로 말뚝을 박았다면 모든 일이 잘 풀렸을 텐데 말입니다. 알프레드가 사랑하는 사라도 별로 영리하지는 않고, 그저 목욕을 좋아하는 철없는 아가씨로 그려집니다. 마지막에 그녀가 아브론시우스 교수와 알프레드를 따라 나선 것도 햇볕이 잘 비치는 아름다운 이탈리아의 휴양지에 대한 동경이 컸겠죠. 사라는 교육을 잘 받은 것 같은데, 샤갈은 마을 사람들 모두가 두려워하는 흡혈귀에 대해서 사라에게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러니 사라가 백작의 하인인 쿠콜의 눈에 띄게 되었죠. 마그다는 재빨리 숨었는데 말입니다.
하여튼 뱀파이어 킬러로서는 실격인 두 사람이 흡혈귀를 잡는다고 나섰으니 당연히 잡히는 흡혈귀가 있을 리 만무합니다.

이 두 사람이 비하면 흡혈귀들은 전형적인 귀족들입니다. 폰 크롤록 백작과 그의 아들인 헤르베르트는 좀 다르지만 나머지 흡혈귀들은 굉장히 무력한 존재로 그려지는데(아브론시우스와 알프레드조차 그들을 제압하고 옷을 뺏어서 갈아입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에 비하면 서민 출신인 흡혈귀 샤갈은 훨씬 활기차고 영리합니다. 샤갈은 폰 크롤록 백작에게 종속되어 있지만 그의 명령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하지도 않고, 굉장히 독립적이에요. 그런 장면도 있는데, 흡혈귀가 된 샤갈이 백작의 성으로 찾아와서 백작이 자는 방에 관을 두고 같이 자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쿠콜이 샤갈을 빛이 잘 드는 마구간으로 내쫓죠. 그런데 나중에 알프레드가 헤르베르트의 관을 열어 보니 샤갈이 그 위에서 자고 있습니다. 샤갈은 흡혈귀가 된 후에도 아브론시우스 교수와 알프레드를 피해 도망치고, 마지막에는 자신을 폰 크롤록으로 가장한 아브론시우스 교수의 협박에 꼴딱 넘어가는 우스꽝스러운 존재입니다. 그는 전통 민담에 등장할법한 흡혈귀인 것 같습니다.
샤갈과 그에게 죽음을 당한 하녀 마그다, 그리고 새로 흡혈귀가 된 사라와 알프레드는 고성에 틀어박힌 채로 "비쩍 마른 나무꾼 한 명을 두고 절망하는" 사멸해 가는 귀족 출신 흡혈귀들 대신 새로운 세계를 열어갈 것입니다. 생각해 보니 무섭기도 하고, 또 은근히 활기차고 민주적인 결말인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샤갈처럼 사라에게도 십자가가 안 통하겠네요.

이 영화에서 흡혈귀에 대한 이론은 정립되어 가는 상태고, 완벽하게 검증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각 영화에서 흡혈귀에 대한 설정이 서로 어떻게 다른지, 그걸 확인해 보는 것도 흡혈귀 영화를 보는 재미이지요. 아브론시우스 교수와 알프레드는 알리보리라는 사람이 쓴 것으로 보이는 책을 가지고 있는데, 그 책에 따르면 흡혈귀는 거울에 비치지 않습니다. 알프레드가 헤르베르트를 만났을 때 그가 거울에 비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그 이론이 맞다는 사실을 알게 되죠. 호기심이 지나친 아브론시우스 교수는 자기가 그걸 직접 확인해 봐야 된다고 안타까워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아브론시우스 교수는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며칠 요양하면 나을 거라고 사라에게 말하는데, 그 이론은 완전히 잘못 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서든 폰 크롤록 백작을 죽여야만 했어요.
재미있는 것은 다른 흡혈귀들에게는 십자가가 통하지만 샤갈에게는 십자가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인데(You got the wrong vampire!) 그건 샤갈이 유대인이기 때문입니다. 이건 영화에 직접 나오지 않습니다.

이렇게 이 영화에는 재미있는 설정들이 많은데, 우선 폰 크롤록 백작의 아들인 헤르베르트는 게이입니다. 상의만 입은 헤르베르트는 알프레드가 가진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100가지 방법이라는 책에 맞춰 그의 어깨에 손을 두르고 목을 물려고 하는데, 이 부분이 영화에서 가장 섬뜩하면서도 우스운 대목입니다. 간신히 도망친 알프레드가 어디 쳐다보지도 않고 회랑을 한 바퀴 돌아서 헤르베르트에게 돌아오는 장면도 있고, 헤르베르트가 음산한 음악에 맞춰 맹수처럼 달려드는 장면도 압권입니다.
옛 흡혈귀 전설, 그리고 많은 흡혈귀 영화에 따르면 사람이 흡혈귀가 되면 먼저 생전의 가족을 공격합니다. 여관 주인인 샤갈은 납치된 딸을 찾으러 갔다 흡혈귀가 됩니다. 당연히 돌아와서 아내를 흡혈귀로 만들어야 겠지만, 그는 아내의 눈을 몰래 피해서 하녀를 공격합니다. 죽은 다음에도 아내는 여전히 무섭고, 그래도 하녀랑 바람은 피워야겠고... 원래 샤갈에게 냉정하게 대하던 하녀는 일단 물리고 나자 눈이 맞았다고 해야 되나, 그런 사이가 됩니다.

이런 우스운 설정에 맞춰 여러 가지 재미있는 장면들이 있는데, 샤갈이 흡혈귀로 되살아나는 장면도 우스꽝스럽게 연출이 되어 있으며 아브론시우스 교수와 알프레드가 베게를 가지고 말뚝 박는 연습을 하는 장면도 재미있습니다. 다만 예측을 못했던 것은, 작년에 극장에서 볼 때 아브론시우스 교수와 알프레드가 칼을 빼들어 십자가를 만들어 흡혈귀들을 제압하는데 그 장면에서 사람들이 많이 웃더라고요. 일부러 우스꽝스럽게 연출한 장면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요. 하긴 작가의 의도가 관객들에게 달리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법입니다. 어쨌든 이 영화의 코믹한 장면들은 은근한 구식 스타일의 추격전과 관련된 설정들을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옛날 관객들에게는 당연히 잘 통했겠고, 그걸 식상하다고 여기는 시대에는 또 안 통했겠지만 이런 슬랩스틱이 귀한 지금 같은 시대에는 충분히 잘 통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우스운 영화라고 해도 마지막 장면의 공포스러움은 여전합니다. <박쥐성의 무도회>는 코미디와 호러를 거침없이 오가는 로만 폴란스키의 능력이 잘 발휘된 재미있는 영화이며, 또 이 영화를 찍으면서 만난 뒤에 결혼한 샤론 테이트와 로만 폴란스키의 비극적인 뒷이야기로도 잊을 수 없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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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lver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