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트시네마'에 해당되는 글 12건

  1. 2008/04/04 용서받지 못할 자 by Wolverine (2)
  2. 2008/03/31 존 휴스턴 회고전에서 본 영화들 이야기 by Wolverine
  3. 2007/06/04 <악의 손길> 상영 후 질리언 그레이버와의 대화 : 6월 3일 아트시네마에서 by Wolverine (8)
  4. 2007/04/27 극장가서 찍은 사진 몇 장 by Wolverine (2)
  5. 2007/02/10 구로사와 기요시 영화학교 by Wolver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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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받지 못할 자 (The Unforgiven, 1960)

감독 : 존 휴스턴
출연 : 버트 랭카스터, 오드리 헵번, 릴리언 기쉬


<용서받지 못할 자>는 맹목적인 등장인물들이 일직선으로 달려가는 뜨끈뜨끈하고 잔인한 영화다. 줄거리 설명부터. 허리에 칼을 찬 이상한 노인이 그들 주변을 돌아다니면서부터 외딴 서부 시골 마을에 살고 있는 재커리 가족에게 재앙이 닥친다. 과거에 아들을 잃어버린 일로 재커리 집안에 원한을 품은 켈시 노인은 재커리 가족의 수양딸인 레이첼이 인디언인 카이오와 부족 출신이라는 사실을 폭로하고(아버지 재커리가 인디언 학살 도중에 갓난아기인 그녀를 발견하여 데리고 왔다), 재커리 가족은 마을 백인들로부터 버림받는다. 강인하고 근면한 첫째 아들 벤과 레이첼은 마음 속으로 서로 좋아하지만 벤은 그 감정을 애써 누르고 있었는데, 켈시를 통해 레이첼의 소재를 알게 된 카이오와 인디언들이 찾아와 자기 부족 출신인 그녀를 돌려달라고 요구하면서 재커리 가족은 인디언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게 된다.
<용서받지 못할 자>는 다른 문화에 대해 관대하고 타자를 넉넉히 지켜볼 줄 아는 주인공들이 나오던 존 휴스턴의 몇몇 영화와는 정말 다르다. 이 영화에서 인디언들의 습속은 우스꽝스럽게 묘사된다. 백인들의 카이오와 인디언에 대한 적개심은 너무 크고, 그것은 재커리 가족도 마찬가지. 영화를 통해 보이는 여러 가지 정황상 인디언과 백인 사이에 평화로운 수단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몇몇 인물들은 인디언들과 싸우겠다는 자들을 말리기도 하지만 그것도 사실은 전략적인 판단일 뿐. <용서받지 못할 자>의 서부는 겉으론 카우보이가 소를 몰고 다니는 목가적인 곳이지만 속으론 백인들과 인디언들 사이의 깊은 증오가 반드시 피를 보고야 마는, 그런 지옥이나 다름 없다. 이 영화의 결말은 사실은 너무나 참혹한데도 해피 엔딩으로 위장되어 있다. 피를 나눈 형제를 죽임으로써, 혹은 죽어가는 것을 눈앞에서 지켜봄으로써 이제껏 자신이 가족이라고 생각했던 집단 안에 받아들여지게 되었다는 것. There will be blood. 재미있지만, 보고 나서 지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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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휴스턴. 1미터 88의 키에 20승이 넘는 전적을 가진 훌륭한 권투 선수이자 모험가인 사나이 중의 사나이. 5번의 결혼을 한 남자. 도박과 사냥에 미치기도 했으며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남는 시간에 영화를 찍었다는, 그래서 프랑스 평론가들에게는 외면당했다는 사람. 잭 니콜슨조차 상대가 되지 않았다고 하는 재능있는 배우. 스튜디오에서 원하는 영화를 찍었을 때는 흥행하고, 자신이 간절히 만들고 싶은 영화를 찍었을 때는 망했다는 감독.
 
아주 간단하게 리뷰를 끄적거린 <시에라 마드레의 보물> 이외에도 며칠 동안 <키 라르고>, <미스터 앨리슨>, <팻 시티>, <이구아나의 밤>, <죽은 자들>을 보았다. 일요일 <죽은 자들> 상영 후 김영진 평론가와 김성욱의 프로그래머의 대담을 보았는데, 대담에서 나온 얘기에 따르면 존 휴스턴 감독의 영화에서는 감독의 고유한 색을 찾기 힘들고, 특히 명장면이라고 부를만한 것을 찾기 힘들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평론가들은 존 휴스턴 영화의 특징 같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내가 본 영화들만 가지고 이야기하자면 그 안에서 보이는 게 몇 가지 있었다.

<키 라르고>의 제임스 템플(라이오넬 배리모어)은 아들을 전쟁에서 잃고, 미망인이 된 며느리 노라(로렌 바콜)와 함께 키 라르고 섬에서 라르고 호텔을 운영한다. 그는 키 라르고 인근의 인디언들과 가깝게 지내는데, 노라가 프랭크(험프리 보가트)에게 말한 바에 따르면 그 인디언들에게는 제임스 템플이 미국이나 마찬가지다. 한편 키 라르고 호텔에 묵게 된 자니 로코(에드워드 G. 로빈슨)는 미국에서 추방된 전설적인 갱스터로, 그에 따르면 미국의 권력, 권력자들은 모두 그를 비롯한 어둠의 세계이다. 두 개의 미국이 한 호텔방에 갇히고, 밖에서는 압도적인 허리케인이 몰아친다.

말하자면 그런 것들이었다. 다른 종족과 문화를 영화에 끌어들이고 그것을 예의바르게 관찰하고 주시하는 탐험가로서의 시선. <미스터 앨리슨>에서 해병 앨리슨(로버트 미첨)은 날생선을 못 먹는 안젤라 수녀(데보라 카)를 위해 일본군 막사에 숨어들어 음식을 훔치는데, 일본군의 눈을 피해 막사의 구석에 숨은 그는 일본군 병사들끼리 다정하게 바둑을 두고, 즐거이 정종을 나눠 마시는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게 된다. 앨리슨은 일본군을 적으로 간주하지만, 그 장면은 적을 보는 시선과는 거리가 멀었다. <시에라 마드레의 보물>과 <키 라르고>는 인디언들의 생활을 관찰하는 듯 바라보며, <이구아나의 밤>에서도 섀넌 목사(리차드 버튼)가 버스를 세우고 인디언들의 빨래터를 바라보는 장면이 있었다. 그것은 여행자의 시선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었다. 타문화에 대한 관용적이고 호의적인, 들러리로 취급하지 않는 따뜻한 시선. 이런 요소는 모험가였던 존 휴스턴의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하나의 표지로 보이고, 좀 더 근본적인 것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키 라르고>와 <미스터 앨리슨>, <시에라 마드레의 보물>에서 인간들은 압도적인 자연력(<키 라르고>의 허리케인이나 <시에라 마드레의 보물>의 혹독하고 척박한 환경), 혹은 불가항력적인 외부의 힘(<미스터 앨리슨>의 일본군)에 부딪친다. 그 자연력은 사람들의 마음까지 흔들어버리기도 하는데, 그 힘과 마주친 인간들은 한 공간으로 들어가고, 같은 공간 안에 머무르게 된 그들은 극도로 이질적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닮아 있기도 하다. 서로 이질적일 때는 <키 라르고>나 <시에라 마드레의 보물>처럼 충돌을 일으키고, 이질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동일하다는 걸 발견할 때는 <미스터 앨리슨>처럼 융화한다. 미국이라는 나라, 미국 사람들의 두 얼굴.
내가 본 범주 내에서 <키 라르고>와 <미스터 앨리슨>, <시에라 마드레의 보물>을 한 묶음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면, <죽은 자들>과 <팻 시티>, <이구아나의 밤>은 한 가지로 이야기할 수 없는, 서로 다른 영화들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들에는 쇠락과 죽음이 드러나 있었고, 특히 죽음을 의식하고 있었다.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을 영화화한 <죽은 자들>은 묘지 위에 눈이 내리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산소마스크를 쓰고, 촬영장에 의사가 대기하는 상태에서 엄숙하게 찍은 영화.

1. <키 라르고>에 나오는 어느 장면. 자니 로코 때문에 몹시 화가 난 로라가 그에게로 바싹 다가선다. 따귀를 때릴 듯한 포스로 전광석화같이, 그의 가슴을 두 손으로 토닥토닥 두들기는데 웃겨 죽는 줄 알았다.

2. 일전에 구로자와 기요시가 우리나라에 왔을 때, 인생 막장에 몰린 권투선수 두 명이 나오는 영화 이야기를 했는데 나는 지금까지 그 영화가 <팻 시티>인 줄 알았다. 그런데 <팻 시티>를 보니 구로자와 기요시의 설명과 줄거리가 달랐다. 젊은 권투선수 한 명이 시합하다가 죽고, 그 선수를 돌보던 권투선수 출신 코치가 컴백해서 자기 선수를 죽인 상대 선수와 시합을 하는데 사실은 둘 다 모두 조금만 충격을 받으면 죽게 될 몸이고 경기가 시작하면서 끝난다는 영화는 과연 어떤 작품인가?

3. <차이나타운>에서 노아 크로스 역으로 나왔다는 사람이 존 휴스턴이라는 건 생각 못했다. 대담 도중에 <할리우드 영화사>라는 책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 책 1장이 <차이나타운>에 출연한 존 휴스턴 이야기란다. 찾아서 읽고 싶다.

4. 이마무라 쇼헤이에 대한 이야기가 대담 도중에 나왔다. 이마무라 쇼헤이가 죽기 얼마 전에 인터뷰를 했는데, 인터뷰 도중에 졸기도 하고, 방금 한 말도 잊어버릴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노인이 갑자기 어느 순간에 눈을 번쩍 뜨면서 나는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일본 사회를 인정해본 적이 없다고 일장 연설을 하더란다. 그리고 다시 정신줄을 놓으시더라는. 훌륭한 영화감독 혹은 예술가가 가질 수 있는 결기.

5. <이구아나의 밤>을 보니 박찬욱이나 오승욱 같은 감독들이 이야기하던 불균질함이란 게 뭔지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불안정한 영혼을 가진 성공회 목사(리차드 버튼)의 자기파멸적인 이야기로 시작하더니 육덕진 미성년자가 목사를 유혹하고 그 주변에 여자들이 나타나는 로맨틱 코미디로 이어지고, 다시 철학적인 성찰로 마무리되는 영화. 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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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손길>의 한 장면. 제일 왼쪽이 행크 퀸란 역의 오손 웰즈. 제일 오른쪽이 미구엘 바르가스 역의 찰튼 헤스턴.


오손 웰즈의 <악의 손길>은 언젠가 꼭 보고 싶던 영화고 이번 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특별전에서는 <악의 손길> 주말 상영이 한 번 밖에 없었기 때문에 부랴부랴 달려가서 봤습니다. 이번 상영 때에는 LA에서 오슨 웰즈 필름 아카이브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는 질리언 그레이버가 참가하는 관객과의 대화 시간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토요일의 <진실과 거짓> 상영 때도 관객과의 대화 시간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자세히는 못 들었지만 필름 아카이브 관계자인 것으로 보이는 글렌 제이콥슨이라는 사람이 함께 왔습니다. 그 사람은 객석 맨 앞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악의 손길>은 영화도 재미있었고, 특히 타락한 경찰 행크 퀸란을 연기한 오손 웰즈는 그때 나이가 40대였다는 데 영화에서는 적어도 60이 넘어 보입니다. 그는 늙고 뚱뚱한 데다 다리까지 저는 형사로 나오는데, 얼굴에 반창고 같은 것을 붙이고 옷에 패드를 넣어서 그렇게 만든 겁니다. 깜박 속았어요. 질리언 그레이버의 말마따나 그는 연기를 할 때 자신을 멋지게 보이는 데 관심이 있던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마를레네 디트리히나 자넷 리, 찰튼 헤스턴도 좋았고요. 영화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따로 적어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악의 손길에 버전이 세 가지 있다는 사실은 영화를 보고 나서 알았습니다. 1958년 개봉 버전이 있고(러닝타임 93분), 70년대 중반에 발견되었다는 108분짜리 버전(dvd로 출시되기 전의 버전), 오손 웰즈의 메모 등을 토대로 재편집하여 복원한 버전(지금 dvd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이 버전) 등입니다. 이번에 아트시네마에서 상영한 것은 1958년 개봉 당시의 버전이었습니다. 무슨 차이가 있는 건지 궁금했는데 마침 관객 중 한 명이 질리언 그레이버에게 질문을 했어요. 그러니까 질리언 그레이버는 사실 버전들의 차이는 영화를 열 번쯤 본 사람들 아니면 눈치채지 못할 만큼 미세한 건데, 평론가들이 "창살에 비쳐 들어오는 광선의 줄 수 까지 센다"면서 너무 해석하는 데 집착하는 것 아니냐는 투로 얘기하더군요.

영화는 좋았지만, 질리언 그레이버와의 대화는 실망스러웠습니다. 오손 웰즈와 그의 촬영 감독이었던 게리 그레이버는 확실히 비범한 사람들이겠죠. 제가 이렇다 저렇다 논할 수 있는 수준이 못되지만 질리언 그레이버의 얘기는 온통 오손 웰즈에 대한 칭찬, 거기에 더해서 자기 남편이기도 한 게리 그레이버에 대한 칭찬 뿐이었습니다. 물론 오손 웰즈에 대한 칭찬이 훨씬 많았지만요. 문화의 차이인가요, 아니면 제가 과민하게 반응하는 건가요? 낯선 관객들이 모인 자리에서 세상을 떠난 자기 남편의 인품이 얼마나 훌륭한지를 늘어놓는 그녀의 얘기를 듣자니 남사스럽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번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는 이 얘기에 더해서 오손 웰즈의 유작이며 몇 백만 달러가 모자라서 완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The Other Side of the Wind>에 대한 얘기가 주를 이뤘습니다. 물론 중요한 얘기라는 건 알지만 그것 말고는 다른 얘기가 별로 없을 정도였으니, 필기를 하려고 열심히 폼을 잡다가 펜을 내려 놓고 말았습니다. 그렇잖아도 많지 않은 관객들이 모인 그날 오후 자리에, 질리언 그레이버가 말을 끝내고 나니까 질문을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전날에는 질문이 넘쳐서 진행하기가 힘들 정도였다고 하더니. 분위기가 그쯤 돼서야 질리언 그레이버가 다른 얘기를 꺼내더군요. 그때 나온 얘기는 흥미로웠습니다. 그 얘기가 끝나고서야 질문하는 사람이 있었고요.

질리언 그레이버가 나중에 한 얘기 중에 <악의 손길>의 도입부 롱테이크 얘기가 있었습니다. <악의 손길>은 누군가 들고 있는 다이너마이트를 클로즈업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괴한이 다이너마이트를 어느 차 트렁크에 넣고, 한 남자가 여자를 데리고 그 차에 올라탄 후 자동차가 폭발할 때까지를 컷 없이 3분이 넘게 따라갑니다. 그 장면은 자동차 뒤에 카메라를 달고 찍은 것이라고 하더군요. 자동차 뒤에 카메라를 달고 찍은 시도는 오손 웰즈가 처음이었다고 질리언 그레이버는 설명합니다. 롱테이크를 처음 시도한 게 누군지, 어느 정도 수준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악의 손길>의 첫 시퀀스는 문외한인 제가 봐도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필요한 주제를 모두 말하고 있는데 그게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고 있어요.

확실히 처음 말할 때보다는 나중에 얘기할 때가 흥미로운 주제가 많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손 웰즈는 <우주 전쟁> 라디오 방송 사건으로 전국적인 유명인이 되었고 20대 때부터 거의 사생활이 없을 지경이었는데, 정상에서 시작하여 차츰 내리막길을 걸은 사람입니다. 질리언 그레이버는 강연 초반에 오손 웰즈가 자기 스스로를 매버릭이라고 불렀다고 했는데, 그녀에 따르면 그건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오손 웰즈의 유작인 <The Other Side of the Wind>는 말하자면 할리우드 영화 사업을 풍자하는 내용인데, 영화 속에 영화가 있는 형식입니다. 이건 오손 웰즈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도 하는데, 유명한 감독인 존 휴스턴이 정해진 시나리오 없이 영화를 찍는다는 사실을 스튜디오의 간부가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습니다. 당시 프로듀서에 따르면 이 영화가 두 시간 분량이었다고 하는데, 지금 필름 아카이브에 보관되어 있는 것은 40분 정도의 분량입니다. 이 영화에는 피터 보그다노비치 등 당대의 감독, 유명인 100여명 등이 출연하고 있습니다.

<The Other Side of the Wind>는 2~3백만 달러의 돈이 없어서 완성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손 웰즈 필름 아카이브 측에서는 스티븐 스필버그나 올리버 스톤, 마틴 스콜세즈 등의 감독들과 접촉을 했으나 영화 스타일이 지나치게 실험적이라는 것, 혹은 다른 이유로 감독들이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질리언 그레이버는 스필버그가 <시민 케인>에 나오는 로즈 버드 썰매는 사면서 그런 데는 돈을 대지 않는다고 가볍게 한 마디 하고 넘어갑니다. 관객 중 한 사람은 2~3백만 달러라면 디카프리오가 며칠 일해서 벌어들이는 돈에 불과하다고도 하는데요. 오손 웰즈가 AFI 평생공로상을 수상했을 때, 그는 처음에 수상을 거부했다가 <The Other Side of the Wind>의 제작비를 지원해줄 후원자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 영화의 일부를 상영해주는 댓가로 수상을 수락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오손 웰즈를 존경하면서도 그 영화에 돈을 대지는 않아서 오손 웰즈는 실망했다고 합니다.

오손 웰즈는 <시민 케인>을 만들어서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에 브라질로 쫓겨났습니다. 오손 웰즈 스스로는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를 모델로 했다는 것을 부인했다고 합니다. 허스트와 정치가들이 오손 웰즈를 쫓아낸 것은 그가 정치를 할까봐 무서워했기 때문이라는데, 질리언 그레이버에 따르면 이 일에 대해서 오손 웰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배우가 정치가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로널드 레이건 같은 사람을 빼면."

오손 웰즈는 소싯적에 바람둥이였다고 하는데, 어느 날 잡지에서 리타 헤이워드의 사진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오손 웰즈는 리타 헤이워드를 만난 적도 없었는데, 대뜸 이 여자와 결혼을 하겠다고 말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결혼은 오래 가지 못했고, 대신 오손 웰즈의 연인으로 30여년을 함께 했던 사람이 오야 코다르였습니다. 이 여자는 이미 결혼을 했던 모양인데, 남편이 이혼에 동의하지 않아서 두 사람은 끝내 결혼을 하진 못했다고 합니다. imdb에는 폴라 모리라는 여성의 이름이 Spouse란에 적혀 있는데 그건 또 어떻게 된 일인지. 하여튼 질리언 그레이버에 따르면 오야 코다르를 만난 다음부터 오손 웰즈는 플레이보이 노릇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손 웰즈는 로버트 카일라일의 말을 빌려서 "무엇이든지 잘 살펴보면 뮤지컬 같고, 그건 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가 뮤지컬 같지 않다면 영화가 아니다." 그런 말을 남겼습니다. 질리언 그레이버가 관객과의 대화 시간 내내 되풀이해서 얘기했던 것은 오손 웰즈가 창조자이며 천재였다는 것이죠. 그는 환상을 현실로 만드는 사람이었으며, <악의 손길>에서 타냐(마를레네 디트리히)가 행크 퀸란(오손 웰즈)을 가리켜 "He was some kind of a man." 즉 특별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오손 웰즈는 정말로 그 말이 어울리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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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아트시네마로 파졸리니 회고전 보러 가서 찍은 사진. 내가 본 영화는 마태복음이었고 영화 몹시 좋았다. 목요일날 한번 더 보려고 했으나 극장에 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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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 명동 CQN으로 <플루토에서 아침을> 보러 갔다. 명동 CQN은 이날 처음 가봤다. 극장 로비에 있는 <우리 학교> 포스터를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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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토에서 아침을> 포스터. 킬리언 머피는 아마 현존하는 배우 중에서 여장이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 아닐까. <플루토에서 아침을>은 경쾌한 팝 음악이 귓가를 가득 채우는 영화였다. 월요일 상영이 평일 오후 상영으로는 마지막이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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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일 감독의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 포스터. 곧 개봉할 모양이다. 최양일 감독이 일본에서 찍은 영화 중에서 야쿠자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누아르 영화가 있다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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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찾기 힘들었던 CQN 입구. 명동역에서 건물을 끼고 한번 돌았는데 입구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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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했던 것보다 많이 실망스러웠습니다. 애초에 알려지기로는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자신의 연출론에 대해 관객들에게 설명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했지만 그는 몇 년 전 서울 아트시네마에서 자신의 회고전 당시 설명했던 부분이라며 그 대신 자신에게 영향을 끼쳤던 작품이 어떤 것들인지 시대별로 나열했고, 구로사와 감독이 지나치게 낯선 영화가 언급되는 것을 피했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는 미지의 영화들 대신 잘 알려진 작품들의 목록이 맴도는 데 그쳤습니다. 물론 그 영화 제목을 안다는 것과 실제로 보았다는 건 서로 다른 얘기긴 합니다. 구로사와 기요시 영화학교 기획이 안이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많이 아쉬웠지만 그날 정리한 것들을 옮겨 보도록 하죠. 그날 노트에 끄적거린 것을 옮겨 적었는데 잘못된 점이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다 알고 계시죠? 그 자리에 계셨던 분들 중에서 이 내용은 당신이 잘못 들은 것 같다, 내가 듣기엔 저런 뜻이 아니었다, 이런 점을 지적해 주신다면 감사드리겠습니다.


구로사와 기요시 영화학교

- 2007. 1. 26


몇 년 전에 서울 아트시네마에서 연출론 등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했고 오늘은 준비해 온 것이 없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영화, 영향을 많이 받은 영화 중심으로 얘기를 하겠다. 아까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프로그램을 보다가 사무엘 풀러의 <빅 레드 원>이 있는 것을 봤는데 <빅 레드 원>은 모든 전쟁 영화 중에서 최고작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제일 처음에 본 영화는 <모스라>였다. <모스라>는 <고지라>의 후속작으로 도시가 파괴되고 사람들이 도망다니는 모습이 정말 무서웠다. 뭐가 그렇게 무서웠을까 나이 들고 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우선 도망다니는 사람들의 얼굴이 무서웠다. 살지 죽을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의 얼굴이기 때문에 무섭다는 것을 최근에야 깨달았다. 요새 만들어진 괴수 영화들은 별로 안 무서운데 그건 도망다니는 사람들의 표정이 무섭지 않기 때문이다.
괴수 영화가 무서운 두 가지 요인이 있었다. 하나, 당시 <모스라> 등이 만들어지던 시기는 1960년 전후였다. 영화 속에서 도망다니던 사람들에게 전쟁의 기억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연기가 아닌 진짜 공포감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다른 하나, 최근 괴수 영화의 괴수는 번화한 도시에 나타나지만 옛날의 고지라 등은 시골에도 나타났다. 시부야 같은 번화가가 파괴되어도 거기에 있던 사람들은 도망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시골에서는 거기에 자신들의 집이 있기 때문에 파괴되면 그들은 갈 곳이 없다.
세상에 무서운 것은 많이 있지만 집이 없어진다는 게 나는 제일 무서운 것 같다. 어렸을 때 본 영화가 공포에 대한 개념을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 같다. 전쟁이 주는 공포에도 갈 곳이 없어진다는 것과 갈 곳이 없어진 사람들을 대량 생산해 낸다는 요소가 있다. 최근 영화 중에서 그런 공포를 잘 표현한 게 스티븐 스필버그의 <우주 전쟁>이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는데 주로 미국 영화를 보았다. 이 시기는 70년대 전반기였는데 60년대 후반부터 미국의 아메리칸 뉴시네마가 사라지기 시작했고 70년대 중반에 스티븐 스필버그가 <죠스>를 만들었다. 내가 그 사이에 영화를 많이 본 것이다. 그때 본 영화로는 <더티 해리>나 돈 시겔 감독의 영화, 로버트 알드리치의 <북극의 제왕>, 샘 페킨파의 <관계의 종말> 등이 있었다. 돈 시겔이나 로버트 알드리치 등은 40년대나 50년대 등장했던 베테랑 감독들이었으며 70년대 전반기에는 꽤 오래 전부터 활동했던 감독들로 분류될 수 있었다.
60년대의 혼란기를 거치면서 고전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을 동시에 갖춘 영화들이 나왔는데 그런 영화 중에는 오소독스한 부분이 지켜지는 것도 있고, 그런 게 완전히 파괴되기도 했다. 결말이 없는 대담한 영화도 있었다. 존 휴스턴이 71년에 찍은 <팻 시티>라는 영화가 있는데 어둡고 불행하기 짝이 없는 권투 영화였다. 이 영화에는 젊은 복서를 키우는 나이 든 트레이너가 나오는데, 그가 키운 선수는 첫 시합에서 상대 선수에게 맞아 바로 사망하고 만다. 이에 트레이너는 자신이 선수로 다시 복귀하여 자기 선수를 죽인 상대와 시합을 하려고 노력하는데, 열심히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나 인맥을 이용한다. 그런 노력 끝에 선수로 시합을 치르게 되지만 기쁘면서도 한편 불안하기 짝이 없다. 그는 연습을 안 했기 때문에 한 방을 맞고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트레이너와 시합을 치르게 된 챔피언도 너무 많이 맞아서 한 대 더 맞으면 죽을 수도 있는 상태였다. 이렇게 서로 불안해 하는 두 사람이 링에 오르고 공이 울리면서 영화가 끝난다.
이런 영화는 <록키>와 전혀 다르지만 이런 게 70년대에는 오락 영화라고 개봉되었다. 젊어서 주로 그런 영화를 봐서 그런지 몰라도 영화는 사람이 죽거나 좋은 일이 하나도 없는 거라고, 그런 생각이 침투한 것 같다. 이런 영화를 보면서 중학 시절을 보냈다.
70년대 중반 고등학생 때는 유럽이나 일본 영화에 관심을 가졌다. 유럽 영화 중에서 그 당시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던 것은 이탈리아 영화였다. 페데리코 펠리니,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루키노 비스콘티 등... 이탈리아 사람들 이름을 그때는 열심히 외웠다. 그 중에서 생각나는 영화 중 하나가 페데리코 펠리니의 <로마>였는데 배우들이 화면에 여러 명이 나오면 그 중에 꼭 한 사람은 카메라를 보고 있다. 나중에 보니 펠리니 영화는 다 그랬다. 미국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었다. 펠리니 영화의 이러한 특징은, 관객들에게 감독과 스탭, 카메라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고 의식하게 하는 것이다.
이때쯤 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8mm로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영화를 찍고 싶다고 생각한 데에는 펠리니의 영향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 무렵 일본 영화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기도 해서 다시 보게 되었는데 이때 자극받았던 감독은 후카사쿠 긴지나 오시마 나기사 등이다.

내가 대학에 다니던 70년대 후반에는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를 많이 보았지만 이 시기 최대의 만남은 테오 앙겔로풀로스였고 그때 <유랑극단>을 보았다. 사실은 그때 영화를 찍었기 때문에 느낄 수 있던 것이었는데 한 컷이 오래 지속된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힘을 갖고 있는지, 그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게 지금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지금도 한 컷을 어디까지 지속시키면서 그 힘을 유지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앙겔로풀로스를 보지 않았더라도 감독은 한 컷이 지닌 매력에 사로잡히는 시기가 있는데 <올드보이>의 장도리씬 같은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8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비디오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영화는 극장에서 보는 것이었는데, 이제 극장에서 보기 힘든 고전이나 마이너 취향의 영화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면 고다르다. 고다르 영화들이 이 무렵 일본에서 개봉했는데 <열정>, <카르멘이라는 이름>, <탐정> 등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고다르는 컷과 컷이 충돌하게 만들거나 갑자기 음향이 끊기는 등 편집과 음향을 통해 아주 거친 영화를 만들었다. 헐리우드 영화와 달리 그는 컷과 컷의 원활한 연결을 의도적으로 파괴했고 나는 여기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80년대에 들어 나는 상업 영화를 찍게 되는데 이때는 앙겔로풀로스처럼 찍고 고다르처럼 편집하는 게 꿈이었다. 관객이나 제작사에 네 영화가 무슨 얘긴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야단을 맞은 적도 있었는데 83년에 첫 영화를 찍게 된다. 이제는 많이 교묘해져서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데 아직도 제작사에 들키지 않게 고다르처럼 편집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80년대에는 또한 미묘하지만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났는데 앙겔로풀로스나 고다르를 흉내낼 수는 있지만 그들과 똑같이 될 수는 없고 앞지를 수는 더더욱 없다는 걸 깨달으면서 다른 영화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8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나는 이제까지 몰랐던 영화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다른 영화광들도 그런 경향을 보였는데 에릭 로메르, 오즈 야스지로, 로베르 브레송, 존 카사베티스 등이 이때 인기가 많은 감독이었다. 이들의 영화는 공통적으로 금욕적이고 단순한 요소로 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즉 돈이 별로 안 들어 보이는 영화이다. 당시 일본의 영화광들은 이들의 영화를 보며, 이렇게 하면 나도 찍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또 비디오카메라가 보급되면서 이제 저렴하게 영상을 찍을 수 있게 되었다. 이때 영화광들이 하는 일은 존 카사베티스 흉내를 내는 것이었는데 그런 비디오 키드들이 많이 있있었다. 나도 그런 걸 좋아했지만 역시 흉내낸다고 똑같이 될 수는 없었다.
그때 예상치 못한 만남이 있었는데 바로 대만 영화와의 만남이었다. 허우 샤오시엔이나 에드워드 양의 영화는 놀라웠고 특히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큰 충격이었다. 일본에서는 영화를 좋아하는 청년들이 카사베티스 흉내를 낼 때 대만에서는 이미 앙겔로풀로스와 고다르를 섞은 영화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때쯤에도 자기가 뭘 해야 하는지 파악이 안 되던 시기였다. 이런 감독들의 영화를 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미국 영화는 늘 보고 있었다. 스필버그의 영화에서는 눈을 뗄 수 없었고 <백 투 더 퓨처>는 재미 없을 줄 알고 일부러 보러 갔지만 너무 재미있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미국 영화는 언제나 필두에 있었고 이때쯤 미국 영화 흉내를 내 보자고 대담하게 시도했던 것이 <스위트 홈>이었다. 그러나 흉내는 어디까지나 흉내일뿐 관객들을 재미있게 할 수는 없었고 이 영화는 실패였다.

90년대 전반에는 영화를 찍을 기회가 별로 많지 않았고, 94년 이후에야 많이 찍게 되었다. 이무렵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와 <양들의 침묵>에 강한 인상을 받았는데 키아로스타미는 그의 무엇에 끌렸는지 생각을 해 보면 그가 앙겔로풀로스, 고다르, 에드워드 양과도 다른 새로운 걸 보여줬기 때문인 것 같다. 그는 영상과 이야기의 새로운 관계를 보여줬다. 또 하나는 <양들의 침묵>인데 보고 나서 오래간만에 무서운 영화를 봤다고 생각했다. 공포영화는 좋아했다가 한때 거리를 뒀지만 이 작품을 보고 영화에서 무서운 것이란 무엇인지 추구하기로 결심했다. 친구 중에 다카하시 히로시(링과 주온의 각본가)가 있는데 그도 양들의 침묵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우리는 일본에서도 공포를 다시 찾아야 한다고 얘기했고, 재패니스 호러는 <양들의 침묵>의 영향을 받아 움직이기 시작한 것 같다.
90년대 중후반에는 영화를 많이 제작할 기회가 주어지고 그에 따라 볼 수 있는 영화들도 줄어들었다. 이제 주변 영화인들에게서 영향을 받는데 아오야마 신지, 시노지키 마코토, 시오타 아키히코, 각본가 다카하시 히로시 등을 들 수 있다. 아오야마나 시노자키에게 배운 것이 있다면 좋아하는 영화가 있다고 해도 영화에 반영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런 영화를 좋아한다, 저런 영화를 좋아한다고 얘기하지만 실제 만들어진 영화는 전혀 다르다. 비겁한 사람들이다. 나만 솔직해서 너무 손해를 봤다(웃음).

2000년대 이후에는 좋은 영화를 많이 봤지만 그게 나한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모르겠다. 감독 중에서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주목하고 있다. 나는 <미스틱 리버>에 감동을 받았다. 그러나 이걸 어떻게 내 영화에 반영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또 하나는 스필버그다. 여러 가지 비판도 있지만 스필버그 영화를 보면 그를 지지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주전쟁>은 물론 <뮌헨>도 훌륭한 영화이다. 작년에 본 영화 중에는 <멜키아데스 에스트라다의 세 번의 장례식>,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폭력의 역사> 등이 있는데 지금 거론한 몇 개의 영화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마지막에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황의 변화를 보여 주지만 어떻게 결말을 지어야 될지는 보여 주지 않는다. 현대 영화 중에서는 아주 성실하고 거짓이 없는 영화라 할 수 있으며 이것은 미국 영화의 전통에서 벗어나 있다. 모르면 모르겠다고 솔직히 말해야 하는데 미국 영화의 전통은 그렇지 않았다.

영화 감독은 많은 것을 보고 겪으며 그것이 영화에 반영된다. 영화 감독이란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관객과 대담 진행자의 질문 몇 가지

Q : 아메리칸 뉴시네마를 언급하면서 스콜세지와 드 팔마의 이름이 빠져 있다. 그들에게 특별한 매력을 느낀 적은 없는가?
A : 그런 식으로 얘기하면 빠진 사람이 셀 수 없는데, 스콜세지와 드 팔마는 좋은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와의 차이가 너무 크다. 코폴라도 그런 경우라 할 수 있다. 스타일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배신하곤 하는데, 요새는 드 팔마가 좋은 것 같다.

Q : 상업 영화의 러닝타임에 대하여
A : 영화를 촬영하는 시간 자체에는 규정이 없다. 그러나 만들어진 것은 두 시간 내외이다. 그런 점이 영화제작이 갖는 특성이다. 그러나 그 기간도 어느 정도 제한적이긴 한데 어디서 이것을 끝내야 할지, 며칠 동안 찍어야 될지 항상 고민하지만 만들어진 영화의 길이는 비슷한 것 같다.
상업영화의 시간이 길어지는 것은 배우의 이름이나 얼굴만 보고는 그 사람이 어떤 역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배우가 어떤 인물인지 설명을 해 주다 보니 길어지는 것이다.
그 배우를 보기만 해도 그가 어떤 역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가 설득력이 있다는 것이다. 배우를 믿는 것은 장르를 회복하는 데 필요하다.

Q : 공포의 요소에 대하여
A : 스크린에 투사되는 너머에 보이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확실한 세계가 존재한다고 믿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전혀 다른 세계의 모습이 감춰져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벽 너머, 문 너머에 전혀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이 가장 공포스러운 순간 중 하나이다.
공포 영화의 원칙이라면 뭔가 숨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찍는 것이다. 공포 영화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보이는 세계 바로 옆에 미지의 세계가 있는 것이 공통점이며 현실적으로 그것은 죽음이다. 잊고 다니지만 항상 곁에 붙어 있다.

(이하 질문은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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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lver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