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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8/01/23 글로리아 GV by Wolverine (2)
  3. 2008/01/18 사진 몇 장 by Wolverine
  4. 2008/01/13 악질경찰 - 관객과의 대화 by Wolverine
  5. 2008/01/10 수라 - 정성일의 영화 해설과 함께 보았습니다. by Wolverine (4)

수라 (修羅, Pandemonium, 1971)

감독 : 마츠모토 토시오
출연 : 나카무라 가츠오, 산조 야스코, 카라 주로

<수라>는 드물게 만날 수 있는 강렬한 비극으로, 이 영화는 일본판 <햄릿>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정성일 씨의 설명에 따르면 <주신구라>와 <토카이도 요츠야 괴담>을 합쳐 놓은(그러나 이러한 설명이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이 영화는 주군의 복수를 해야 한다는 집단적인 의지에 종속된 한 우유부단한 사무라이가 몰락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종종 한 컷을 여러 번 반복해서 보여주는 촬영은 그의 우유부단함은 물론 피하고 싶은 극한 순간까지 잡아 채서 보여준다. 이 영화의 흑백 화면은 어둠과 암흑 그 자체이다. 그리고 주인공인 겐고베가 칼질을 할 때마다 흩뿌려지는 피의 질감은 시뻘건 피보다 더 끈적거린다.
게이샤 코만이 겐고베에게 영원히 당신만을 사랑하겠다는 표식이라고 보여주는 맹세의 고다이리키는 그의 진짜 남편인 산고로가 몇 글자를 더 새기자 '산고로 사랑'이 되어 버리는데, 이 번역은 아주 재미있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우스운 장면들은 겐고베의 상상 장면에서 나타나는데, 그런 요소들 조차 겐고베 개인의 모순을 드러낸다.

악질 경찰 (Bad Lieutenant, 1992)

감독 : 아벨 페라라
출연 : 하비 케이틀, 프랭키 쏜, 빅터 아르고

오승욱 감독의 말처럼 <악질 경찰>은 일년에 하루 쯤, 그동안 지은 죄를 뉘우치고 싶은 날에 보면 좋을 영화다. 마약과 도박에 쩔어 있고, 운전면허증도 없이 아빠 차 몰고 나온 여자애들 협박해서 그 앞에서 자위나 하는 막장 형사의 인생은 뉴욕 메츠가 월드시리즈 3연패 뒤 기적같이 LA 다저스를 한 게임, 한 게임씩 꺾어가면서 종말로 치닫는다. 형사가 마약 딜러에게 무슨 돈인지 3만 달러를 받고 계단을 걸어 내려오는 장면은 그의 두려움과 고통을 너무 실감나게 전달해 주고, 범인들을 보낸 후 울면서 걸어가는 그의 뒷 모습을 묵묵히 보여주는 데에 이르게 되면 그 숭고함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게 된다. 누군가의 말대로 <악질 경찰>의 형사는 사람이 왜 이렇게 살까 한숨을 쉬게 만드는 사람이지만, 그의 행보를 통해서 인생에 대한 한가닥 희망의 끈을 남겨준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이 형사가 과연 구원받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데, 이 대답은 사람마다 다를 것 같다.
이 영화에서 마약을 하는 장면은 거의 리얼타임이었다고 들었다. 반대로 멜빌의 영화에서는 옷을 갈아입는 장면이 리얼타임으로 나온다. 그리고 대사가 좋다. 극중 마약 중독자로 나오는 조 타멀리스가 말하길, "흡혈귀는 좋겠어. 남의 피를 빨아먹으니까. 우린 우리의 살을 씹어먹어야 해."

퓨너럴 (The Funeral, 1996)

감독 : 아벨 페라라
출연 : 크리스토퍼 워큰, 크리스 펜, 빈센트 갈로, 아나벨라 시오라, 베니치오 델 토로, 이자벨라 로셀리니

쟁쟁한 배우가 워낙 많이 나오는 영화지만 그 중에서도 눈에 뜨이는 것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둘째 체자리노 역으로 나오는 크리스 펜. 저렇게 대단한 배우가 있었나? 자신의 타고난 폭력 성향을 억누르는 크리스 펜의 연기나 'Tonight will be the night'을 열창하는 크리스 펜의 모습은 머릿속에서 지우기 힘들다. 그러나 이해하기 쉬운 영화는 아니었다. 오승욱 감독의 평에 따르면 이 영화가 <대부>보다 낫다는데, 나는 <대부>를 보지 못했으므로, 그리고 이 영화를 다 이해하지 못했으므로 판단은 보류.

복수의 립스틱 (Ms.45, 1981)

감독 : 아벨 페라라
출연 : 조 타멀리스, 알버트 신키스, 달린 스투토

뉴욕에서 재단사로 일하고 있는 데나는 말을 하지 못하는 여성으로 퇴근길에 괴한에게 강간을 당하고 간신히 집으로 돌아가지만 숨어서 기다리고 있던 강도가 그녀를 강간하려 한다. 강도를 다리미로 때려 죽인 데나는 분노와 공포를 이기지 못한 나머지 남자가 갖고 있던 총을 들고 복수를 한다. 이 복수는 백인 사진작가, 흑인 남성(빚쟁이? 포주?), 사우디 아라비아 사업가, 애인과 히히덕거리는 동양인 청년(실패!) 등 인종과 계급을 가리지 않고 이어지더니 나중에는 할로윈 파티장에서의 학살극으로 마무리된다. 어둡고 공포스러운 분위기 속에서도 황당한 아이디어와 활력이 넘치는 영화인데, 이제까지 총도 한번 안 잡아본 것 같은 데나가 갑자기 명사수로 변하고, 또 암시장이라도 알고 있었는지 총알도 어디선가 잘도 구해온다. 갱들은 쌍절곤을 휘두르고(킹 뉴욕에서는 로렌스 피쉬번이 주윤발처럼 쌍권총을 쥐고 싸운다) 데나가 갱에게 총을 쏘는 장면의 박력은 최고.
주연인 조 타멀리스는 <악질 경찰>의 각본가로 <악질 경찰>에서 하비 케이틀이 마약을 하는 장면에서도 잠깐 나온다. 아주 매력적이고 재능있는 여성이었으나 일찍 세상을 떠났다.

셜록 주니어 (Sherlock Jr. 1924)

감독 : 버스터 키튼
출연 : 버스터 키튼, 캐트린 맥과이어, 조 키튼

이번 <셜록 주니어>는 연주 상영이었는데, 영화가 활기차고 우스꽝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몽라 씨가 연주하는 음악은 우울하고 구슬펐다. 왜 코미디 영화에 그런 슬픈 연주를? 연주를 듣고 되짚어서 생각해 보니, 버스터 키튼은 영화 속에서 거의 웃지 않는다. 그 한결같은 우울한 표정이라니.
이 영화에는 버스터 키튼 특유의 스턴트가 펼쳐지며 그와 더불어 놀라운 장면도 있는데, 영사기를 돌리다 잠이 든 버스터 키튼의 영혼이 자신의 몸에서 빠져 나와 스크린 속으로 들어간다. 그는 거기서 명탐정 셜록 주니어가 된다. 꿈과 현실은 물론 스크린과 스크린 밖의 세계가 하나가 된다.

라탈랑트 (L'Atalante, 1934)

감독 : 장 비고
출연 : 장 다스테, 디타 파를로, 미셸 시몽

<라탈랑트>는 파리와 그 외 도시들을 오가는 바지선인 라탈랑트 호의 선장인 장과 그의 젊은 아내 줄리엣의 이야기다. 시골 출신인 줄리엣은 라디오를 통해 들은 파리를 동경하고, 줄리엣이 떠나갈까봐 노심초사하던 장은 줄리엣이 몰래 파리에 외출하자 분노한 나머지 그녀를 두고 떠난다. 왜 이 영화를 특별하다고들 하는 걸까 좀 의아해 하면서 봤지만 정말 아름다운 장면이 하나 있었다. 줄리엣은 장에게 얼굴을 물 속에 집어넣고 눈을 뜨면 진정한 사랑을 볼 수 있다는 낭만적인 이야기를 하고, 나중에 줄리엣을 버린 뒤 그녀가 보고싶은 나머지 폐인이 다 된 장은 물속에 뛰어든다. 물속에 뛰어든 장이 열심히 헤엄을 치면, 줄리엣이 춤을 추는 모습이 환영처럼 나타난다.

우묵배미의 사랑 (A Short Love Affair, 1990)

감독 : 장선우
출연 : 박중훈, 최명길, 유혜리

<우묵배미의 사랑> 같은 영화를 만들었던 장선우 감독은 분명히 범상한 감독이 아니었던 것 같다. 불과 30대 중반의 나이에 이 걸출한 두 번째 연출작을 만들었던 장선우 감독은 이제는 연락을 하려고 했는데 연락처를 아는 사람이 없어서 하지 못했다(시네마테크 관계자의 전언)는 사연의 주인공이 되어 버렸다.
도시 빈민으로 살다가 다시 도시 주변의 시골로 밀려난 배일도의 '폼나게 살아보자'는 열망과 남루한 삶에 대한 한탄을 보면, 멀리 사라져버린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모두 80년대와 70년대의 아이들이며 그 시절의 열망이 아직도 우리의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허풍치기 좋아하는 건달인 배일도나 남편을 윽박지르는 그의 억척스런 아내, 심지어는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민공례의 남편까지 누구 하나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영화. 박중훈의 건달 연기는 지금 봐도 정말 재미있다.

뽕 (Bulberry, 1985)

감독 : 이두용
출연 : 이미숙, 이대근, 이무정

에로물의 대명사로 알려진 <뽕>은 굉장히 풍부한 영화였다. (특히 마을에서 쫓겨나게 된 안협집이 진사를 유혹하는 장면에서 보이듯) 해학적이지만 비극적인 울림까지 갖고 있는 영화로 안협집이 마을 아낙들에게 몰매를 맞는 장면이나 결말 부분이 특히 그렇다. 이두용 감독은 대사 한 마디 쓰지 않고도 안협집의 남편이 실은 독립운동가이며, 앞으로도 계속 일경의 감시를 받으며 살아갈 처지임을, 그리고 안협집이 앞으로도 마을 남자들에게 웃음을 팔며 살아가야 함을 암시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재미있는 것 중 한 가지는 인물을 묘사하는 방식이다. 이대근이 연기한 머슴 삼돌이가 처음 등장할 때 그가 돌절구를 들어올리기 위해 일어서자 소 울음소리가 들려오는데, 그는 소같은 인물이지만 영화 내내 근면하게 일하는 대신 발정이 난 것처럼 군다.

최후의 증인 (The Last Witness, 1980)

감독 : 이두용
출연 : 하명중, 정윤희, 최불암, 이대근

검열로 난장판이 되었다는 이 영화는 권력을 가진 자들의 탐욕에 찢긴 부역자 출신 황바우와 손지혜의 일생을 그려낸다. 살인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면서 아울러 이들의 존재와 그 생을 알게 되는 인물은 하명중이 연기하는 오병호 형사인데, 엘리트 출신의 오병호 형사는 이미 아내를 잃은 상태이며 영화가 진행될수록 점점 죽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황바우와 손지혜의 자취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는데, 이동하는 내내 끄덕끄덕 졸고 있다.
황바우가 지나칠 정도로 순박하고 어질며(아예 손지혜나 오병호가 황바우를 황바우님이라고 부른다. 감독의 황바우라는 인간형에 대한 숭배가 드러나는 부분이랄까) 그가 어떤 인물인지가 다른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직설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감독이 시대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면서 오히려 황바우가 입체감을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보면서 우는 관객들도 많았지만 영화적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나는 오히려 이두용 감독의 다른 영화를 들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냉전과 반공 이데올로기로 얼룩진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정직하게(어쩌면 가장 정직하게) 보여주고 있는, 마땅히 재평가되어야 하는 영화라는 점에는 이의가 없다. 이 영화의 주연인 하명중은 굉장히 매력적인 배우인데, 시간이 흘러가면서 영화 출연이 뜸해졌던 것 같다.

피막 (The Hut, 1980)

감독 : 이두용
출연 : 유지인, 남궁원, 황정순

무당 옥화가 강씨 집안에 쓰인 액을 쫓기 위해 굿을 하면서 과거 이 집안의 며느리와 피막지기 삼돌이를 죽이는 데 관련되어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죽어나간다. 영화는 신비한 분위기를 잘 이끌어가다가 갑자기 모든 죽음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을 하고 싶어하며, 그러면서 아주 이상하게 끝났다. 피막에서 기도를 하고 있던 옥화의 정체가 밝혀지는 장면에서의 음악도 아예 동떨어진 음악을 쓰고. <피막>은 많이 아쉬웠지만 형편없다고 할만한 영화는 절대 아니다. 특히 유지인의 신비로운 아름다움은 최고.

내시 (Eunuch, 1986)

감독 : 이두용
출연 : 안성기, 이미숙, 남궁원, 길용우, 변희봉, 현길수

이두용 감독의 영화 가운데 <내시>가 가장 재미있었다. 이 영화의 왕은 아마 연산군을 모델로 한 것 같은데 역사적 사실과 관련이 있는 건 아니다.
이 영화가 재미있는 것은 1980년대 중반에 나온 영화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전복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 어떤 장면이 있느냐면, 후궁으로 들어온 자옥 대신에 하녀인 길녀가 왕과 잠자리를 같이하게 되고 자옥은 왕의 잠자리를 지키는 입직상궁 노릇을 하게 되는데, 같은 날 입직상궁 노릇을 하게 된 다른 궁녀는 왕의 신음소리가 들리자 흥분해서 자옥의 손을 꼭 잡는다. 이렇게 동성애적 감정을 노골적으로 묘사한 작품이 이전 한국영화에서 또 있었을까? 또한 왕의 약을 지어올리는 내시인 변희봉이 내시감 남궁원의 품에서 숨을 거두는 장면도 있다. 게다가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남궁원이 비인간적인 제도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왕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는 내시라니, 그 당시 상황에서 꽤 아슬아슬한 내용 아닌가?

글로리아 (Gloria, 1980)

감독 : 존 카사베츠
출연 : 지나 롤랜즈, 존 아담스, 톰 누난

2008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중에서 단 한 편을 고르라면 <글로리아>를 선택하겠다. 화질 나쁜 비디오로 볼 때는 그렇게 생각 안 했지만 스크린으로 보니 얼마나 재미있던지. <복수의 립스틱>과 <글로리아>는 모두 여자가 총을 쏘는 여자고, 또 최고로 박진감 있는 사격씬을 가진 영화이기도 하다. 심지어 <복수의 립스틱>에서 데나가 흑인 갱에게 마지막 사격을 할 때는 박수를 치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그리고 둘 다 필름이 약간 붉게 변색되어 있었다. <글로리아>는 세계적으로 프린트가 몇 벌 남아있지 않았는데 정말 힘들게 구했다고 들었다.
전과가 있는 중년 여성 글로리아(영화에서 내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보고 있으면, 글로리아의 본명이 진짜 글로리아인지 문득 의심하는 마음이 든다)는 부모를 마피아에게 잃은 여섯 살짜리 필을 데리고 도망치게 된다. 영화에 나오는 대사처럼 마피아 조직이라는 시스템에 맞서 유유히 도망치는 둘의 모습은 엄청난 쾌감을 준다. 특히 두 장면에 놀랐는데, 처음의 우발적인 총격장면, 그리고 글로리아와 필이 피츠버그로 가는 열차를 타려다 갱들과 만나는 장면이다. 필과 글로리아가 식당에 앉아서 음식을 시키고 덩치 큰 웨이트리스가 두 번 왔다가면 화면 한 쪽의 빈 자리에 어느새 갱들이 앉아 있다. 이 장면을 보면서 놀랐다.
또, 글로리아가 필을 묘지로 데려가 가족들에게 인사하게 하는 장면도 좋았다. 필이 아무 묘지나 붙잡고 죽은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고 오면 글로리아는 묘지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는데, 이 장면을 보면 글로리아의 과거가 느껴진다.

택시 드라이버 (Taxi Driver, 1976)

감독 : 마틴 스콜세지
출연 : 로버트 드 니로, 조디 포스터, 시빌 셰퍼드, 하비 케이틀

트래비스 비클은 위험한 사이코다. 그가 베트남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창녀나 뚜쟁이, 마약 중독자 같은 도시의 쓰레기들을 쓸어버려야 된다고 믿고 있다. 그는 여자도 증오한다(여자들은 다 똑같다). 유영철과 다른 점이 있다면 트래비스 비클은 타인을 구함으로써 자신의 고독을 극복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Bonnie and Clyde, 1967)

감독 : 아서 펜
출연 : 워렌 비티, 페이 더너웨이, 진 해크먼, 마이클 J. 폴라드, 에스텔 파슨스, 진 와일더

어설프기 짝이 없는 은행강도인 클라이드 배로우와 보니 파커는 자신의 형과 C.W. 모스 같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면서 '배로우 갱'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들이 의적도 아닌데 가난한 사람들은 이들의 편이다. 자신들을 대신하여 은행에 손해를 입히는 데서 만족을 느꼈는지, 아니면 이런 사람들이 대공황기에는 일종의 스타였는지.
이들이 유진 그리자드의 차를 훔치면서 가끔 신경질적이긴 했지만 유쾌했던 영화의 분위기가 바뀐다. 이들과 동행하게 된 유진 그리자드는 자신의 직업이 장의사라고 답하는데, 그 말을 들은 보니 파커는 유진과 그 애인 벨마 데이비스를 차에서 내리게 한다. 그때부터 영화에는 종말과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부드러운 살결 (La Peau douce, 1964)

감독 : 프랑수아 트뤼포
출연 : 장 드사이, 프랑수아 도를레악, 넬리 베네데티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프랑수아 트뤼포 영화는 재미없다는 선입견을 버리게 됐다. 이렇게 통속적이면서도 섬세한 이야기를 하는 감독이었다니. TV에도 출연하고 지방으로 강연도 다니는(영화에서는 그가 앙드레 지드를 두 번 만난 것으로 되어 있다) 저명한 지식인인 피에르 라쉐니는 젊은 스튜어디스인 니콜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유부남이자 명사인 그가 위험한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다. 영화는 피에르와 니콜, 그리고 피에르의 아내인 프랑카의 사랑과 고통을 그대로 전한다. 누구 하나 편들 수 없으면서도, 누구 하나 비난할 수 없는 영화.
재미있는 장면 하나. 피에르가 비행기에서 니콜을 처음 보게 됐을 때 그녀가 신발 갈아신는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게 되는데, 나중에 호텔에서 그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갈 때 방 문앞마다 신발이 놓여 있다.

이웃집 여인 (La Femme d'à côté, 1981)

감독 : 프랑수아 트뤼포
출연 : 제라르 드 파르디유, 파니 아르당, 앙리 가르생

8년 전 헤어진 연인이 나란히 옆집에 살게 되고, 그들 사이에 옛 감정이 되살아나면서 결국 파멸해 간다는 이야기다. <부드러운 살결>과 유사한 요소를 몇 개 발견할 수 있는데, 불륜 혹은 두 사람의 과거의 관계가 발각되는 것은 사진 때문이다. 화면이 갑자기 멈추는 이미지가 결정적인 순간에 쓰이고, 주인공의 배우자 혹은 주인공은 상대방의 흐트러진 침대를 보면서 옛 기억을 떠올리거나 고통을 받는다.
다만 <부드러운 살결>이 삼각 관계였다면 <이웃집 여인>은 더 넓어졌다는 차이가 있다. 영화는 주브 부인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하는데 그녀의 고통스러운 사랑은 영화의 주요한 모티브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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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lverine

글로리아 GV

영화 잡담 2008/01/23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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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리아>는 존 카사베츠 감독이 정말 싫어하는 영화였고, 반대로 존 카사베츠 감독의 아내이자 영화의 주연이었던 지나 롤랜즈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였다고 합니다(지나 롤랜즈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존 카사베츠 감독은 <글로리아>가 너무 상업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존 카사베츠 감독은 로버트 알드리치 감독의 <더티 더즌>,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악마의 씨> 같은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였는데, (최동훈 감독의 말에 따르면) 그 당시 감독들은 모두 성질이 더러웠고 존 카사베츠 감독도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존 카사베츠에게는 친구도 별로 없었다고 하고요(이쯤에서 감독님이 그걸 어떻게 아시느냐는 반응이). 그는 마틴 리트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고 난 뒤 영화를 홍보하는 자리에서 영화 홍보는 제쳐놓고 내가 감독하면 이런 것보다 더 잘 만들 수 있다고 불만을 털어놓다가 스튜디오로부터 노여움을 사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만든 영화에 출연할 수 없게 되었고, 자신의 말을 지키기 위해 감독이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로버트 알드리치 같은 삐딱한 감독들은 신경쓰지 않고 그를 배우로 기용했습니다.

존 카사베츠의 전작들인 <페이스>, <영향 아래의 여자>, <차이니즈 부키의 죽음>, <오프닝 나이트> 같은 영화들을 만들면서 존 카사베츠에게는 얼마간의 빚이 생겼고, 돈을 벌기 위해 그는 <글로리아>의 시나리오를 써서 팔았습니다. 당시 리키 슈로더가 출연한 영화가 인기를 모으고 있었는데, 그래서 영화사에서 아역 배우가 출연하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필요로 했던 것입니다. 존 카사베츠는 시나리오만 썼을 뿐 감독에는 원래 뜻이 없었는데, 그가 영화의 감독으로 결정된 뒤 연락을 받았다고 합니다. 최동훈 감독에 따르면,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좋은 소식 한 가지와 나쁜 소식 한 가지가 있다. 뭔데? 좋은 소식은 지나 롤랜즈가 <글로리아>의 주인공으로 발탁되었다는 것이고, 나쁜 소식은 네가 감독으로 정해졌다는 것이다. 원래 <글로리아>의 주인공 역으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물망에 올라 있었는데 그는 존 카사베츠 감독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최동훈 감독은 70년대 미국 감독들에게 끌린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 시절 감독들은 미치광이나 다름 없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감독에게 편집권이 없던 시절, 감독이 필름을 몰래 차에 싣고 외딴 집으로 도주해서 편집을 하다가 (광란의) 파티 같은 데서 하룻밤 놀다 오면 스튜디오에서 쳐들어와서 필름을 가져가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러면 감독은 권총 들고 사장실로 들어가서 난리를 피우던 그 시절이 최동훈 감독은 그립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후 <글로리아>의 주연이었던 아역 배우는 이후 단 한편의 영화에도 출연하지 않았고, 나중에 그 사람을 누가 봤는데 소호에 있는 당구장에서 매니저를 하고 있더라, 이런 이야기에 이르러서는 도대체 감독님께서는 그런 할리우드 비사를 어디에서 들었느냐며 박장대소하는 분위기에 이르렀습니다.

김혜수 씨는 전문가-배우로서의 이야기보다는 관객으로서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크게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타짜> 이야기가 나왔는데 거기서도 쟁쟁한 배우들이랑 일하는데 자기만 못하는 것 같아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런 지나치게 겸손하다 싶은 이야기를 늘어놓았고요. 다만 주인공 글로리아가 처음 등장할 때 안에 파자마를 입고 있다는 것이나 보스인 탄지니를 만나러 갈 때의 옷차림을 언급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확실히 옷차림이나 패션을 보는 눈은 관심 없는 사람이 배울 게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나 롤랜즈는 <글로리아>에 출연하면서 여자 리 마빈이라는 말을 들었다는데, 그녀는 이 영화를 통해 많은 감독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왕가위의 <중경삼림>에서 임청하의 스타일은 지나 롤랜즈에게서 나온 거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도 영향을 미쳤던 것 같습니다. 지나 롤랜즈가 그렇듯 존 카사베츠 감독은 다른 감독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는데, 올리버 스톤 감독이 베트남에서 제대한 후 한참 어렵게 지내던 시절 존 카사베츠 감독을 찾아가서 내가 뭘 하면 될 것 같으냐고 물어봤을 때, 그는 네가 잘 모르는 건 하지 말고 잘 아는 걸 하라는 충고를 해 줬고, 올리버 스톤 감독은 아, 그렇지, 내가 가장 잘 아는 거라면 마약 이야기다, 그걸 깨닫고 <미드나잇 익스프레스>의 시나리오를 썼다고 합니다.

이후에 아역 배우 이야기도 나왔는데, <글로리아> 당시 아역 오디션을 볼 때, 300명 정도 되는 아이들을 한 방에 몰아넣고 총소리를 들려줬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굳건하게 버티고 있던 아이를 뽑았다고 합니다. 물론 연기는 어색합니다(찾아보니 이 여섯 살 짜리 소년은 그해 래즈베리 어워드 후보에도 올랐더군요). 김혜수 씨가 <열한번째 엄마>에서 아역 배우와 같이 연기했던 경험을 들려줬는데, 다른 무엇보다도 완성된 영화의 질이 시나리오보다 하락했다는 데 대한 아쉬움이 있는 것 같았고, 상대역이었던 아역 배우가 요새 아역 배우들처럼 지나치게 영악하지 않아서 좋았다는 식으로 얘기하더군요. 이것과 관련되는 이야기가 존 카사베츠의 연기 지도 방식인데, 존 카사베츠 감독은 배우들에게 디렉션을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배우들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부여하는 방식이었으며 김혜수는 같이 영화를 만들어 본 최동훈 감독이나 김지운 감독도 이런 스타일이었다고 얘기를 합니다. 그러나 막상 결과물을 보면 배우의 연기와 영화에 어울리는 이미지가 나오는 것이 놀라웠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최동훈 감독은 시나리오를 쓰면 혼자서 일일이 연기를 해본다고 합니다. 잘못 쓴 대사를 현장에서 배우들이 지적해주면 자신은 고친다고 하더군요. 최동훈 감독은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서 이런 식으로 지적하는 것 같습니다. "혜수 씨, 지금 대사 하는데 1분 걸렸는데 조금만 빨리 해 주세요. 40초 안에 끝내 주세요."

최동훈 감독은 존 카사베츠가 인디펜던트 감독인데 비해 자신은 디펜던트 감독이라고 농담을 던집니다. 결국은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흥행을 목적으로 만든 <글로리아>에서도 존 카사베츠 감독은 끝까지 글로리아와 필을 절대 부모-가족 관계로 묶지 않는 뚝심을 보여주고, 그게 자기 집에서, 가족과 친구들을 출연시켜서 영화를 찍어 온(그래서 글로리아 촬영 당시 계약 조건에는 너희 가족을 출연시키지 말라는 것도 있었다고 합니다) 감독에게 어울린다는 것이 GV를 지켜 본 저의 소감입니다.

- 최동훈 감독이 <타짜>를 만든 후에 감독과 프로듀서 등이 정산을 해 보니 제작비가 남았더라고 합니다. 흔치 않은 일인데. 최동훈 감독은 <타짜>의 제작비도 결코 많이 들어간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 최동훈 감독 이야기로 존 카사베츠 감독은 뛰어난 각본가였다고 하는데, 글로리아가 버스에 탔을 때 갱을 만나는 장면은 꼭 우연히 그렇게 된 것 같이 보이고 자신은 영화를 공부할 때 절대 그렇게 만들면 안 된다고 배웠지만, 다시 영화를 보면 우연히 그렇게 된 게 아니라고 하는데, 영화를 다시 본다면 그 장면을 유의해서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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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몇 장

잡담 2008/01/18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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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3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킹 뉴욕>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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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4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셜록 주니어> 연주상영 후. 왼쪽 분은 연주자인 몽라 씨. 오른쪽 분은 서울아트시네마 관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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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6일 인천 차이나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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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과자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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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 조계지 경계계단. 뒷편에 보이는 것이 공자의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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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 올라가서 바라 본 인천 앞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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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가 귀여운 자동차가 있어서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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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저녁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애니 홀 상영 후. 장준환 감독은 뭘 찍냐는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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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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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벨 페라라 감독은 관객과의 대화 같은 행사에서 게스트의 질문을 '생까는' 일도 많고, 무작위로 관객들을 지목하여 영화를 어떻게 보았는지 묻는다고 합니다. 오승욱 감독이나 김성욱 프로그래머 모두 아벨 페라라 감독이 안 온 걸 상당히 아쉬워했어요. 오승욱 감독은 아벨 페라라 감독이 왔으면, 자신은 커튼 뒤에 숨어 있었을 거라고 말하기도 하고, 아벨 페라라가 왔으면 이거 물어볼 수 있었을 텐데, 아벨 페라라가 왔으면 이거 얘기할 수 있었을 텐데, 아벨 페라라 식으로 관객들한테 질문을 하는 게 어떨까? 오늘 대담은 아벨 페라라 씹는 걸로 시작하자고 하지 않았나? 그런 식으로 몇 마디 말이 나왔습니다. 오승욱 감독 말로는 아벨 페라라 감독이 알콜 중독도 있고, 약물 중독 같은 것도 있어서 못 오지 않을까 생각했다는데(누군가 널부러진 아벨 페라라를 본 적이 있다는 목격담도 있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대로 됐습니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김성욱 감독이 아벨 페라라 감독의 비서가 전달한 메시지를 읽어 줬는데, 아벨 페라라는 바이러스성 질환에 걸려 있고, 의사로부터 비행기를 타지 말라는 권고를 받았다고 합니다. 직접 편지를 쓸 수 없는 상태여서 비서가 대신 작성했고, 치료를 꾸준히 받고 있어 상태가 좋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아벨 페라라 감독도 굉장히 아쉽게 생각하고 있다는군요.

오승욱 감독이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은 1998년이었다고 합니다. 허진호 감독이 독일 갔을 때 오승욱 감독에게 이 비디오 테입을 가져다 주었는데, 우리나라에도 <악질경찰>이 출시되어있긴 하지만 많이 잘리고 주요한 부분에는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있습니다. 오승욱 감독은 김성욱 프로그래머에게 이 버전이 어떤 버전이냐고 물었는데, 비디오로 볼 때는 몇 장면이 더 있었던 것 같은데 오늘 봤을 때는 좀 짧게 느껴졌다고 하네요. 특히 하비 케이틀이 마약을 하는 장면은 거의 리얼타임으로 보이는데, 그 과정이 좀 짧아진 것 같다고 얘기합니다. 혹은 짧게 느껴졌든지.

오승욱 감독은 <악질경찰>이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을 쫓는 자베르 형사를 주인공으로 하여 만든 영화로 보이기도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특히 하비 케이틀이 성당에서 예수를 대면하는 장면은, 굉장히 강력한 장면이지만 관객들 입장에서는 코미디로 보일 수도 있겠다고 하면서, 자신감 없이는 이렇게 연출하기 어렵다는 말을 했던 것 같습니다. 구원을 말하고 속죄를 말하는데 이렇게 예수를 확 소환해버리는 방법도 있구나, 앞으로 자신이 영화를 계속 만들게 된다면 이런 장면을 한번 연출해보고 싶다고 말합니다.

두 사람은 계속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나가는데, 이 영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속죄하는 하비 케이틀에게 동화되는 느낌을 준다, 특별한 줄거리 없이 지옥에서의 삶을 살아가는 하비 케이틀을 보여주는 거다, 그런 이야기를 하다가 배우들이 연기를 참 잘했다고 말합니다. 특히 칭찬한 것은 수녀 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였습니다. 이 영화는 악질 경찰이자 약쟁이인 하비 케이틀이 속죄하고 회개하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그런 장면에서의 느낌에 진정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오승욱 감독은 나중에 다른 이야기를 하던 도중, 자신은 진정성이라는 말을 대단히 싫어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 그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는 식으로 말했던 것 같습니다.

오승욱 감독은 이어서 이 영화가 어떤 장면에서는 좀 덜컥거리는 느낌을 주는데, 그 다음 장면에서 강력한 에너지를 느끼게 한다고 말합니다. 나중에 이 영화의 불균질함에 대한 말이 나오는데 그것과 연결되는 내용인 것 같습니다. 아벨 페라라의 <악질경찰>에는 굉장히 이질적인 요소들이 어우러져 있다고 오승욱 감독은 얘기하는데, 그런 것들이 영화의 에너지를 만들어 냅니다. 오승욱 감독이 꼽은, 이 영화에서 가장 에너지 넘치는 장면은 하비 케이틀이 아버지 차를 면허도 없이 몰래 운전하던 여성들을 잡아서 그 앞에서 자위행위를 하는 장면과 하비 케이틀이 성당에서 예수를 만나는 장면입니다. 특히 자위 장면에는 거의 실제라고 느껴질 정도로 자연스럽고 생생한 배우의 반응과 하비 케이틀의 연기가 살아있습니다.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악질경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다양한 표정이 빚어내는 효과를 두고 이 영화를 '얼굴의 영화'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장 피에르 멜빌의 <레옹 모랭 신부>에는 '지옥에 빠진 인간이 가장 절실하게 구원을 바라는 법'이라는 대사가 나오는데(영화를 봤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오승욱 감독은 자신이 시나리오 작업에 참가했던 <역도산>의 역도산 같은 인물이 그런 인물이라며 마약에 중독되듯 인간이 자신이 휘두르는 폭력에 중독되고, 차츰 파멸해 가는 과정에서 인간의 어두운 면모가 가장 잘 드러난다고 이야기합니다. <악질경찰>에서 하비 케이틀이 맡은 형사도 그렇게 파멸해 가는 사람입니다. 오승욱 감독은, 자신은 그런 인물들에게 굉장히 매력을 느끼고, 또 남자의 로망 중 하나는 그렇게 완전히 파멸해버리는 것 아니냐며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이때 관객들이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는 뉴욕 메츠와 LA 다저스의 월드시리즈 시합에서 LA 다저스가 3대 0으로 앞서고 있던 시점에서 시작되어 메츠가 4대 3으로 역전 우승을 거두기까지 진행됩니다. 하비 케이틀은 갱들의 돈을 빌려 도박을 하지만 점점 배팅에 실패하면서 나락에 떨어지는데, 그걸 보면 이 영화는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의 주제곡을 부른 자니 에이스란 가수도 러시안 룰렛 게임을 하다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그가 죽은 것이 1950년대의 일인데 그때는 이런 식으로 죽는 사람들이 꽤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의 이런 면을 뒷받침하는 것 중의 하나는 잘 만들어진 대사인데, 조합이 특히 좋다고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14살 때부터는 총알도 나를 피해갔다. 나는 은총을 받은 몸이다." 총알이라는 말이 나오다 갑자기 종교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은총이라는 말이 나올 때의 그 달라지는 느낌, 그리고 이런 대사도 있습니다. 마약중독자의 대사인데, "흡혈귀들은 참 좋겠어. 남의 피를 빨아먹으니까. 우린 우리 살점을 뜯어먹어야 해."

이 영화는 신을 부정할수록 신 앞으로 나아가는, 굉장히 종교적인 영화(물질적이면서도 정신적인 영화라는 표현도 나왔습니다)라고 두 사람은 이야기하며, 이들이 아벨 페라라와 <악질경찰>에 대해 느끼는 경외감도 느껴졌습니다.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개인적으로 어제 상영한 <R/X마스>가 <아메리칸 갱스터>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고, 이 이야기를 들은 오승욱 감독은 자신은 <퓨너럴>이 <대부>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한다고 받았습니다. 그러자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같이 내기를 하자고 말했고, 이때도 사람들이 많이 웃었습니다. 오승욱 감독은 또한 이 영화의 시나리오가 정밀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며, 그래서 더 많은 게 담기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이야기하더군요. 스포일러가 되겠지만 말을 하자면, 마지막에 하비 케이틀이 차에서 총을 맞았을 때 처음에 지나가던 동양인 여성이 먼저 주위 사람들을 부르고, 백인들이 멀찌감치 떨어져 갈 길을 가는 동안 흑인들, 그리고 경찰들이 사건 현장에 모여들게 되는데 이 장면은 연출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오승욱 감독은 굉장히 궁금해 했습니다. 페라라가 왔으면 물어봤을 거라고.

관객들이 질문을 별로 안 했는데, 한 세 개 정도 나왔던 것 같습니다. 질문이라기보다는 감상이랄까, 그런 질문도 있고, 하비 케이틀이 마약 딜러의 집에서 3만 달러를 받아 돌아갈 때, 계단 장면에서 하비 케이틀이 몰려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연출이 언급된 질문도 있었고요. 또 어떤 관객은 이 영화는 아무래도 '믿는 자의 영화' 같다면서, 자신은 <악질경찰>을 좋아하지만 이 영화의 하비 케이틀을 보면 진짜 그러고 싶냐고 묻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얘기했습니다. 관객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이 영화에 동감하는 척 하는 것 밖에 없으니 죄책감을 느낀다고 하더군요. 오승욱 감독의 답변은 길었지만 이 영화는 관객을 정화시키는 영화라고 대답한 것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잘 기억이 안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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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이 이번 2008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상영작으로 <수라>만 고른 것은 아니고, 그가 고른 영화중에는 몬테 헬만 감독의 작품도 있었지만 몬테 헬만은 2007년 부천에서 이미 소개된 터라 이 영화가 상영되게 되었습니다.
정성일이 영화 찍다가 엎어졌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는 처음 영화 소개를 시작하면서, 자신이 만든 영화를 갖고 이 자리에 오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하게 되어 다른 영화를 소개하게 됐다는 식으로 얘길 하더라고요. 그리고 자기는 이 자리에서 다른 영화를 소개하고 싶었는데, 그것은 자신이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중에서 이 영화를 본 사람은 열 명도 못 만나봤기에 그 수를 늘리고 싶지 않아서(물론 농담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가 취향의 영화이기 때문이랍니다. 그것은 그의 말에 따르면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는 영화라는 뜻입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영화를 두 가지로 구분했는데, 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이나 장 르누아르의 <게임의 규칙>,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 타르코프스키의 <거울> 등등의 영화들은 의무감에서라도 한번쯤 봐 줘야 하는 영화, 혹은 "나는 이 영화가 정말 싫다"고 말하는 사람을 보지 못한 '친구들의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은 영화들이 나오는 더 세분화된 이야기였지만 이것밖에 기억을 못 합니다. 한 가지 이의가 있다면 정성일 씨 주변이 아니라면 그런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꽤 많을 것 같다는 사실). 반면 누군가 "나는 1년에 한번쯤은 <살로, 소돔>을 보고 싶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저 사람과 계속 친구로 지내야될지 고민하게 되고, 또 이탈리아 영화를 좋아한다면 카를로스 베네(누군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제가 잘못 알아들었던지)에서 시작해야(정확한 표현이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며 그런 영화를 '취향의 영화'라고 불렀습니다. 자신이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고를 영화는 앞으로도 취향의 영화가 될 것 같다는 말도 했고요. 정성일은 도쿄에 갔다가 <수라>를 보았다고 하는데, 일본의 한 여성 영화평론가 앞에서 이 영화가 너무 좋다는 얘기를 했다가 그가 자신을 기묘한 눈초리로 바라보자 "이 사람과는 친구가 되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얘기합니다.

정성일에 따르면 <수라>를 보면 어떤 사람은 이 영화를 정말 싫어하게 될 것이고, 반면 어떤 사람은 기립박수를 치며 이 영화를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누군가 이 영화를 싫어하더라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서요.
<수라>라는 영화는 말하자면 <주신구라>와 <토카이도 요츠야 괴담>을 결합한 영화인데, 실제로 영화를 보면 이런 설명은 의미가 없을 거라고 정성일은 말합니다. 영화는 처음에 컬러로 시작했다가 곧 먹을 뿌린 것 같은 흑백으로 전환하며, 밤만 끝없이 계속됩니다. <수라>는 일본 개봉 당시 흥행 참패했고, 관객들은 물론 평단의 반응도 그렇게 좋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수라>는 거의 잊혀진 영화가 되어 몇몇 해외 평론가들의 일본 영화 관련 서적에 등장하거나 소수의 관객들 사이에서만 기억되었습니다.

정성일은 수라가 개봉하고 나서 오시마 나기사와 이 영화의 감독인 마츠모토 토시오 사이에 벌어졌던 논쟁을 소개하는데, 오시마 나기사는 이 영화를 비판하는 장문의 글을 쓰면서 마지막을 이런 말로 끝맺었다고 합니다. "마츠모토, 영화를 그렇게 만들면 안 된다." 그에 대한 마츠모토 토시오의 반론은 이런 말로 시작한다고 합니다. "관객을 버려두어라." 마츠모토 토시오가 이 영화를 만들기 2년 전인 1969년 일본에서는 야스다 강당 사건이 일어났지만(강당 벽에는 "질 줄 알면서도 해야 하는 싸움이 있다"라는 낙서가 있었다지요), 곧 일본의 학생 운동은 이상하게 변질되어 그 다음 해에는 적군파가 동지들을 린치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정성일이 소개하는, 마츠모토 토시오가 그 당시 이 사건에 대해 쓴 글을 보면 그는 심한 절망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정성일이 가감없이 소개하는 그 글의 첫머리는 ㅅ으로 시작하는 두 글자 욕설이며, 그 글의 결론은 "이제 공동체의 환상을 포기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정성일의 말을 들어보면 마츠모토 토시오는 그 좌절과 환멸의 연장선상에서 이 영화를 찍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는 <주신구라>의 충신들이 모두 복수에 참가하지는 않았을 것이며, 그 중 누군가에게는 개인적인 일이 더 중요했을 거라는 발상에서 전개됩니다. 그리고 마츠모토 토시오는 거의 자살하는 심정으로 이 영화를 찍어갔다고 합니다.

영화에 대한 설명을 정리하면서 정성일이 하는 얘기는 놀라웠는데, 그가 말하길 영화를 사랑하고 시네마테크를 찾는 관객들을 자신은 친구라고 생각하지만 그 중에서도 xx에서 몇 월 며칠에 왕빙의 <중국 여인의 연대기>를 관람한 xx명의 관객들(물론 메모를 해 오고, 말할 내용을 정리해 오긴 했지만, 정성일은 영화를 상영한 장소와 시간, 그리고 그 영화를 본 관객들의 숫자까지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물론 듣고 잊어버렸습니다), xx에서 몇 월 며칠에 알베르 세라의 <기사에게 경배를>을 관람한 xx명의 관객들, xx에서 몇 월 며칠에 하루 종일 <필리핀 가족의 진화>를 보고 피곤한 몸으로 극장을 나서던 xx명의 관객들을 자신은 동지라 부르고 싶다, 그리고 <오늘 <수라>를 보러 온 관객들, 보고 이 영화를 사랑하게 될 관객들도 동지라 부르고 싶다고 얘기하면서 끝을 맺었습니다.

정성일의 말대로 영화를 보고 나서 저는 의문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도대체 이런 영화를 어떻게 싫어할 수가 있는지. 저는 영화 초반부에서 잠깐 졸았는데(주인공인 겐고베가 거사에 쓰라고 주민들이 모아 준 100냥을 받는 장면, 그리고 그 100냥을 가지고 고만을 데리고 있는 패거리들을 찾아가는 장면까지), 깬 뒤로는 정말 정신없이 봤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겐고베는 일본의 햄릿입니다. 관객들을 압도하는 강렬한 비극, 커다란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떨어지는 오프닝부터 시작해서 흑백 화면과 끈적끈적한 피의 질감, 게다가 유머까지 보여주는 이 영화가 너무 대단하고 재미있어서, 이 영화에 비하면 나카가와 노부오 감독의 <토카이도 요츠야 괴담>도 조금 처지는 것 같이 보일 정도입니다.

올해 들어 저는 <밀양>, <아메리칸 갱스터>, <헨젤과 그레텔>, <다즐링 주식회사> 같은 영화를 봤는데 모두 훌륭한 영화들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수라>는 발견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감스러운 것은,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통틀어 이 영화는 단 두 번밖에 상영을 안 한다는 겁니다. 그 중에서 한번은 이미 지나갔고, 남은 분들은 27일 일요일 저녁에 하는 영화를 기다릴 수밖에 없을 겁니다. 정성일 같이 대단한 평론가가 관객들의 호오가 갈릴 영화라고 했지만 저는 오만하게도 이 영화를 놓치면 후회할 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영화가 마음에 안 들었다고 욕하신다면 엄숙하게 받아들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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