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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3/31 존 휴스턴 회고전에서 본 영화들 이야기 by Wolver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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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휴스턴. 1미터 88의 키에 20승이 넘는 전적을 가진 훌륭한 권투 선수이자 모험가인 사나이 중의 사나이. 5번의 결혼을 한 남자. 도박과 사냥에 미치기도 했으며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남는 시간에 영화를 찍었다는, 그래서 프랑스 평론가들에게는 외면당했다는 사람. 잭 니콜슨조차 상대가 되지 않았다고 하는 재능있는 배우. 스튜디오에서 원하는 영화를 찍었을 때는 흥행하고, 자신이 간절히 만들고 싶은 영화를 찍었을 때는 망했다는 감독.
 
아주 간단하게 리뷰를 끄적거린 <시에라 마드레의 보물> 이외에도 며칠 동안 <키 라르고>, <미스터 앨리슨>, <팻 시티>, <이구아나의 밤>, <죽은 자들>을 보았다. 일요일 <죽은 자들> 상영 후 김영진 평론가와 김성욱의 프로그래머의 대담을 보았는데, 대담에서 나온 얘기에 따르면 존 휴스턴 감독의 영화에서는 감독의 고유한 색을 찾기 힘들고, 특히 명장면이라고 부를만한 것을 찾기 힘들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평론가들은 존 휴스턴 영화의 특징 같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내가 본 영화들만 가지고 이야기하자면 그 안에서 보이는 게 몇 가지 있었다.

<키 라르고>의 제임스 템플(라이오넬 배리모어)은 아들을 전쟁에서 잃고, 미망인이 된 며느리 노라(로렌 바콜)와 함께 키 라르고 섬에서 라르고 호텔을 운영한다. 그는 키 라르고 인근의 인디언들과 가깝게 지내는데, 노라가 프랭크(험프리 보가트)에게 말한 바에 따르면 그 인디언들에게는 제임스 템플이 미국이나 마찬가지다. 한편 키 라르고 호텔에 묵게 된 자니 로코(에드워드 G. 로빈슨)는 미국에서 추방된 전설적인 갱스터로, 그에 따르면 미국의 권력, 권력자들은 모두 그를 비롯한 어둠의 세계이다. 두 개의 미국이 한 호텔방에 갇히고, 밖에서는 압도적인 허리케인이 몰아친다.

말하자면 그런 것들이었다. 다른 종족과 문화를 영화에 끌어들이고 그것을 예의바르게 관찰하고 주시하는 탐험가로서의 시선. <미스터 앨리슨>에서 해병 앨리슨(로버트 미첨)은 날생선을 못 먹는 안젤라 수녀(데보라 카)를 위해 일본군 막사에 숨어들어 음식을 훔치는데, 일본군의 눈을 피해 막사의 구석에 숨은 그는 일본군 병사들끼리 다정하게 바둑을 두고, 즐거이 정종을 나눠 마시는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게 된다. 앨리슨은 일본군을 적으로 간주하지만, 그 장면은 적을 보는 시선과는 거리가 멀었다. <시에라 마드레의 보물>과 <키 라르고>는 인디언들의 생활을 관찰하는 듯 바라보며, <이구아나의 밤>에서도 섀넌 목사(리차드 버튼)가 버스를 세우고 인디언들의 빨래터를 바라보는 장면이 있었다. 그것은 여행자의 시선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었다. 타문화에 대한 관용적이고 호의적인, 들러리로 취급하지 않는 따뜻한 시선. 이런 요소는 모험가였던 존 휴스턴의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하나의 표지로 보이고, 좀 더 근본적인 것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키 라르고>와 <미스터 앨리슨>, <시에라 마드레의 보물>에서 인간들은 압도적인 자연력(<키 라르고>의 허리케인이나 <시에라 마드레의 보물>의 혹독하고 척박한 환경), 혹은 불가항력적인 외부의 힘(<미스터 앨리슨>의 일본군)에 부딪친다. 그 자연력은 사람들의 마음까지 흔들어버리기도 하는데, 그 힘과 마주친 인간들은 한 공간으로 들어가고, 같은 공간 안에 머무르게 된 그들은 극도로 이질적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닮아 있기도 하다. 서로 이질적일 때는 <키 라르고>나 <시에라 마드레의 보물>처럼 충돌을 일으키고, 이질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동일하다는 걸 발견할 때는 <미스터 앨리슨>처럼 융화한다. 미국이라는 나라, 미국 사람들의 두 얼굴.
내가 본 범주 내에서 <키 라르고>와 <미스터 앨리슨>, <시에라 마드레의 보물>을 한 묶음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면, <죽은 자들>과 <팻 시티>, <이구아나의 밤>은 한 가지로 이야기할 수 없는, 서로 다른 영화들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들에는 쇠락과 죽음이 드러나 있었고, 특히 죽음을 의식하고 있었다.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을 영화화한 <죽은 자들>은 묘지 위에 눈이 내리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산소마스크를 쓰고, 촬영장에 의사가 대기하는 상태에서 엄숙하게 찍은 영화.

1. <키 라르고>에 나오는 어느 장면. 자니 로코 때문에 몹시 화가 난 로라가 그에게로 바싹 다가선다. 따귀를 때릴 듯한 포스로 전광석화같이, 그의 가슴을 두 손으로 토닥토닥 두들기는데 웃겨 죽는 줄 알았다.

2. 일전에 구로자와 기요시가 우리나라에 왔을 때, 인생 막장에 몰린 권투선수 두 명이 나오는 영화 이야기를 했는데 나는 지금까지 그 영화가 <팻 시티>인 줄 알았다. 그런데 <팻 시티>를 보니 구로자와 기요시의 설명과 줄거리가 달랐다. 젊은 권투선수 한 명이 시합하다가 죽고, 그 선수를 돌보던 권투선수 출신 코치가 컴백해서 자기 선수를 죽인 상대 선수와 시합을 하는데 사실은 둘 다 모두 조금만 충격을 받으면 죽게 될 몸이고 경기가 시작하면서 끝난다는 영화는 과연 어떤 작품인가?

3. <차이나타운>에서 노아 크로스 역으로 나왔다는 사람이 존 휴스턴이라는 건 생각 못했다. 대담 도중에 <할리우드 영화사>라는 책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 책 1장이 <차이나타운>에 출연한 존 휴스턴 이야기란다. 찾아서 읽고 싶다.

4. 이마무라 쇼헤이에 대한 이야기가 대담 도중에 나왔다. 이마무라 쇼헤이가 죽기 얼마 전에 인터뷰를 했는데, 인터뷰 도중에 졸기도 하고, 방금 한 말도 잊어버릴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노인이 갑자기 어느 순간에 눈을 번쩍 뜨면서 나는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일본 사회를 인정해본 적이 없다고 일장 연설을 하더란다. 그리고 다시 정신줄을 놓으시더라는. 훌륭한 영화감독 혹은 예술가가 가질 수 있는 결기.

5. <이구아나의 밤>을 보니 박찬욱이나 오승욱 같은 감독들이 이야기하던 불균질함이란 게 뭔지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불안정한 영혼을 가진 성공회 목사(리차드 버튼)의 자기파멸적인 이야기로 시작하더니 육덕진 미성년자가 목사를 유혹하고 그 주변에 여자들이 나타나는 로맨틱 코미디로 이어지고, 다시 철학적인 성찰로 마무리되는 영화. 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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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lver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