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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6/04 <악의 손길> 상영 후 질리언 그레이버와의 대화 : 6월 3일 아트시네마에서 by Wolverine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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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손길>의 한 장면. 제일 왼쪽이 행크 퀸란 역의 오손 웰즈. 제일 오른쪽이 미구엘 바르가스 역의 찰튼 헤스턴.


오손 웰즈의 <악의 손길>은 언젠가 꼭 보고 싶던 영화고 이번 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특별전에서는 <악의 손길> 주말 상영이 한 번 밖에 없었기 때문에 부랴부랴 달려가서 봤습니다. 이번 상영 때에는 LA에서 오슨 웰즈 필름 아카이브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는 질리언 그레이버가 참가하는 관객과의 대화 시간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토요일의 <진실과 거짓> 상영 때도 관객과의 대화 시간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자세히는 못 들었지만 필름 아카이브 관계자인 것으로 보이는 글렌 제이콥슨이라는 사람이 함께 왔습니다. 그 사람은 객석 맨 앞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악의 손길>은 영화도 재미있었고, 특히 타락한 경찰 행크 퀸란을 연기한 오손 웰즈는 그때 나이가 40대였다는 데 영화에서는 적어도 60이 넘어 보입니다. 그는 늙고 뚱뚱한 데다 다리까지 저는 형사로 나오는데, 얼굴에 반창고 같은 것을 붙이고 옷에 패드를 넣어서 그렇게 만든 겁니다. 깜박 속았어요. 질리언 그레이버의 말마따나 그는 연기를 할 때 자신을 멋지게 보이는 데 관심이 있던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마를레네 디트리히나 자넷 리, 찰튼 헤스턴도 좋았고요. 영화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따로 적어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악의 손길에 버전이 세 가지 있다는 사실은 영화를 보고 나서 알았습니다. 1958년 개봉 버전이 있고(러닝타임 93분), 70년대 중반에 발견되었다는 108분짜리 버전(dvd로 출시되기 전의 버전), 오손 웰즈의 메모 등을 토대로 재편집하여 복원한 버전(지금 dvd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이 버전) 등입니다. 이번에 아트시네마에서 상영한 것은 1958년 개봉 당시의 버전이었습니다. 무슨 차이가 있는 건지 궁금했는데 마침 관객 중 한 명이 질리언 그레이버에게 질문을 했어요. 그러니까 질리언 그레이버는 사실 버전들의 차이는 영화를 열 번쯤 본 사람들 아니면 눈치채지 못할 만큼 미세한 건데, 평론가들이 "창살에 비쳐 들어오는 광선의 줄 수 까지 센다"면서 너무 해석하는 데 집착하는 것 아니냐는 투로 얘기하더군요.

영화는 좋았지만, 질리언 그레이버와의 대화는 실망스러웠습니다. 오손 웰즈와 그의 촬영 감독이었던 게리 그레이버는 확실히 비범한 사람들이겠죠. 제가 이렇다 저렇다 논할 수 있는 수준이 못되지만 질리언 그레이버의 얘기는 온통 오손 웰즈에 대한 칭찬, 거기에 더해서 자기 남편이기도 한 게리 그레이버에 대한 칭찬 뿐이었습니다. 물론 오손 웰즈에 대한 칭찬이 훨씬 많았지만요. 문화의 차이인가요, 아니면 제가 과민하게 반응하는 건가요? 낯선 관객들이 모인 자리에서 세상을 떠난 자기 남편의 인품이 얼마나 훌륭한지를 늘어놓는 그녀의 얘기를 듣자니 남사스럽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번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는 이 얘기에 더해서 오손 웰즈의 유작이며 몇 백만 달러가 모자라서 완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The Other Side of the Wind>에 대한 얘기가 주를 이뤘습니다. 물론 중요한 얘기라는 건 알지만 그것 말고는 다른 얘기가 별로 없을 정도였으니, 필기를 하려고 열심히 폼을 잡다가 펜을 내려 놓고 말았습니다. 그렇잖아도 많지 않은 관객들이 모인 그날 오후 자리에, 질리언 그레이버가 말을 끝내고 나니까 질문을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전날에는 질문이 넘쳐서 진행하기가 힘들 정도였다고 하더니. 분위기가 그쯤 돼서야 질리언 그레이버가 다른 얘기를 꺼내더군요. 그때 나온 얘기는 흥미로웠습니다. 그 얘기가 끝나고서야 질문하는 사람이 있었고요.

질리언 그레이버가 나중에 한 얘기 중에 <악의 손길>의 도입부 롱테이크 얘기가 있었습니다. <악의 손길>은 누군가 들고 있는 다이너마이트를 클로즈업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괴한이 다이너마이트를 어느 차 트렁크에 넣고, 한 남자가 여자를 데리고 그 차에 올라탄 후 자동차가 폭발할 때까지를 컷 없이 3분이 넘게 따라갑니다. 그 장면은 자동차 뒤에 카메라를 달고 찍은 것이라고 하더군요. 자동차 뒤에 카메라를 달고 찍은 시도는 오손 웰즈가 처음이었다고 질리언 그레이버는 설명합니다. 롱테이크를 처음 시도한 게 누군지, 어느 정도 수준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악의 손길>의 첫 시퀀스는 문외한인 제가 봐도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필요한 주제를 모두 말하고 있는데 그게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고 있어요.

확실히 처음 말할 때보다는 나중에 얘기할 때가 흥미로운 주제가 많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손 웰즈는 <우주 전쟁> 라디오 방송 사건으로 전국적인 유명인이 되었고 20대 때부터 거의 사생활이 없을 지경이었는데, 정상에서 시작하여 차츰 내리막길을 걸은 사람입니다. 질리언 그레이버는 강연 초반에 오손 웰즈가 자기 스스로를 매버릭이라고 불렀다고 했는데, 그녀에 따르면 그건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오손 웰즈의 유작인 <The Other Side of the Wind>는 말하자면 할리우드 영화 사업을 풍자하는 내용인데, 영화 속에 영화가 있는 형식입니다. 이건 오손 웰즈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도 하는데, 유명한 감독인 존 휴스턴이 정해진 시나리오 없이 영화를 찍는다는 사실을 스튜디오의 간부가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습니다. 당시 프로듀서에 따르면 이 영화가 두 시간 분량이었다고 하는데, 지금 필름 아카이브에 보관되어 있는 것은 40분 정도의 분량입니다. 이 영화에는 피터 보그다노비치 등 당대의 감독, 유명인 100여명 등이 출연하고 있습니다.

<The Other Side of the Wind>는 2~3백만 달러의 돈이 없어서 완성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손 웰즈 필름 아카이브 측에서는 스티븐 스필버그나 올리버 스톤, 마틴 스콜세즈 등의 감독들과 접촉을 했으나 영화 스타일이 지나치게 실험적이라는 것, 혹은 다른 이유로 감독들이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질리언 그레이버는 스필버그가 <시민 케인>에 나오는 로즈 버드 썰매는 사면서 그런 데는 돈을 대지 않는다고 가볍게 한 마디 하고 넘어갑니다. 관객 중 한 사람은 2~3백만 달러라면 디카프리오가 며칠 일해서 벌어들이는 돈에 불과하다고도 하는데요. 오손 웰즈가 AFI 평생공로상을 수상했을 때, 그는 처음에 수상을 거부했다가 <The Other Side of the Wind>의 제작비를 지원해줄 후원자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 영화의 일부를 상영해주는 댓가로 수상을 수락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오손 웰즈를 존경하면서도 그 영화에 돈을 대지는 않아서 오손 웰즈는 실망했다고 합니다.

오손 웰즈는 <시민 케인>을 만들어서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에 브라질로 쫓겨났습니다. 오손 웰즈 스스로는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를 모델로 했다는 것을 부인했다고 합니다. 허스트와 정치가들이 오손 웰즈를 쫓아낸 것은 그가 정치를 할까봐 무서워했기 때문이라는데, 질리언 그레이버에 따르면 이 일에 대해서 오손 웰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배우가 정치가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로널드 레이건 같은 사람을 빼면."

오손 웰즈는 소싯적에 바람둥이였다고 하는데, 어느 날 잡지에서 리타 헤이워드의 사진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오손 웰즈는 리타 헤이워드를 만난 적도 없었는데, 대뜸 이 여자와 결혼을 하겠다고 말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결혼은 오래 가지 못했고, 대신 오손 웰즈의 연인으로 30여년을 함께 했던 사람이 오야 코다르였습니다. 이 여자는 이미 결혼을 했던 모양인데, 남편이 이혼에 동의하지 않아서 두 사람은 끝내 결혼을 하진 못했다고 합니다. imdb에는 폴라 모리라는 여성의 이름이 Spouse란에 적혀 있는데 그건 또 어떻게 된 일인지. 하여튼 질리언 그레이버에 따르면 오야 코다르를 만난 다음부터 오손 웰즈는 플레이보이 노릇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손 웰즈는 로버트 카일라일의 말을 빌려서 "무엇이든지 잘 살펴보면 뮤지컬 같고, 그건 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가 뮤지컬 같지 않다면 영화가 아니다." 그런 말을 남겼습니다. 질리언 그레이버가 관객과의 대화 시간 내내 되풀이해서 얘기했던 것은 오손 웰즈가 창조자이며 천재였다는 것이죠. 그는 환상을 현실로 만드는 사람이었으며, <악의 손길>에서 타냐(마를레네 디트리히)가 행크 퀸란(오손 웰즈)을 가리켜 "He was some kind of a man." 즉 특별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오손 웰즈는 정말로 그 말이 어울리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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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lver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