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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3/24 시네마테크 부산의 월드시네마 V 관람기 by Wolverine (2)

시네마테크 부산에 들른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지난 여름에 들렀을 때와 내부 시설이 약간 달라졌다. 보다가 잠들어버린 그런 영화들을 빼면 이번에 관람한 영화는 8편이었다. 8편 중에서 프리츠 랑의 <빅 히트>를 빼면 모두 처음 보는 영화들이었고.

욕망 (Blowup, 1966)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저개발의 기억 (Memories of Underdevelopment, 1968) 토마스 쿠니예레스 알레아
우든 클로그 (The Tree of Wooden Clogs, 1978) 에르마노 올미
과거로부터 (Out of the Past, 1947) 자크 투르뇌르
슬픔은 그대 가슴에 (Imitation of Life, 1959) 더글라스 서크
밀라노의 기적 (Miracle in Millan, 1951) 비토리오 데 시카
빅 히트 (The Big Heat, 1953) 프리츠 랑
가스등 (Gaslight, 1944) 조지 쿠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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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이나 <우든 클로그>는 처음엔 볼 생각이 없었는데, 보고 놀랐다. <욕망>은 살인 사건을 이런 식으로 다루는 영화가 있다는 점에서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주인공인 사진작가 토마스(데이비드 헤밍스)는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확대(Blowup)한 뒤 그곳에 시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직접 공원으로 찾아가서 시체를 발견하지만 돌아왔을 때 시체는 이미 사라져 버린 뒤였다. 너무나 평범하고 흔한 경험과 심상치 않은 사건의 조합! 그리고 토마스의 카메라에 그대로 드러나는 갈망과 허기. <우든 클로그>는 처음엔 180분이 넘는 긴 상영시간이 부담스러웠는데, 정말 보지 않았으면 후회했을 것이다. 19세기 말 이탈리아 농부들의 일상 생활을 정밀하게 묘사하는 이 영화는 그 당시 농부들의 노동을 정밀하게 묘사한 기록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우든 클로그> 같이 노동하는 장면을 길고 자세하게 그린 영화를 보지 못했다. 조용한 전개, 예측하지 못한 슬픈 결말, 19세기 농촌의 매혹적인 풍경. 이 영화에는 농부가 돼지를 도살하는 장면이라든가, 거위의 목을 싹둑 자르는 장면이 그대로 나오는데, 그러면서도 영화는 전혀 선정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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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저개발의 기억> 같은 영화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전체적인 감상은 '저 남자 불쌍하다' 정도. 주인공인 세르지오(세르지오 코리에리)는 주변의 부르주아들과는 달리 혁명의 정당함도 알고 양심도 있으나 혁명 이후의 쿠바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득세하는 쿠바에서 그는 작가가 되지도 못할 것이고, 그대로 소모되고 마모될 것이다. 자크 투르뇌르 감독의 <과거로부터>는 '과거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을 줄인 영화처럼 보였다. 로버트 미첨과 커크 더글라스가 나오는 영화이니만큼 재미가 없을 수 없다. 굳이 부자지간이라고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 볼 수 있을 만큼 커크 더글라스와 마이클 더글라스는 닮았는데, 나는 선역을 할 때나 악역을 할 때나 항상 능글맞고 눈빛도 날카로우며 왠지 벼랑 끝에 몰린 것 같은 커크 더글라스가 지쳐 보이는 마이클 더글라스보다 훨씬 더 좋다.

<슬픔은 그대 가슴에> 같은 영화는 굉장히 많이 기대를 했는데, 기대했던 것보다는 약간 아쉬웠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영화였고, 라나 터너도 좋았다. 보면서 놀란 것 하나. 로라 메레디스(라나 터너)의 딸인 수지(테리 버냄)가 로라에게 묻는다. 예수는 흑인이에요, 아니면 백인이에요? 애니(주아니타 몬로)의 딸인 흑백 혼혈아로 백인이 되기를 열망하는 사라 제인(캐린 디커)은 예수는 틀림없이 백인이었을 거라고 답한다. 말콤 X가 교도소 시절에 한 질문을 이미 다른 사람들도 하고 있었다.

<밀라노의 기적>은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네오 리얼리즘 영화 운운했기 때문에 그런 영화일줄만 알고 봤다가 완전히 뒤통수를 맞았다. 재미있으면서도 여러 모로 생각해봐야할 영화였다. 세상과 인간을 무한히 긍정하는 토토는 고아원을 나와서 빈민가로 흘러 들어가는데, 땅주인 및 경찰들과 대립하다가 천국에 있는 그의 양어머니로부터 소원을 들어주는 거위를 받는다. 리얼리즘이 극에 이르면 동화를 닮는다? 혹은 동화로 탈주한 리얼리즘? 추운 겨울 천막을 치고 추위를 피하던 빈민들이, 햇살이 나자 거기로 일제히 몰려드는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다.
여기도 흑백 인종 간의 관계를 은유하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여기서는 로맨스로 치장이 되어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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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히트>야 예전에 재미있게 봤던 영화이지만 무엇보다도 이번에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는 가스등. 보고 나오길 잘 했다. 폴라(잉그리드 버그만)의 남편 그레고리(샤를 보와이에)는 부정적인 암시를 불어넣으며 그녀를 정신적으로 학대하고 미친 사람으로 몰아가는데, 그 과정이 무섭다. 이 영화의 백미는 마지막 부분. 길게 얘기할 순 없지만 정말 최고였다.

경상도 남자들이 무뚝뚝하다는 얘기야 처음 들어본 게 아니지만 적어도 시네마테크 부산 직원들은 다들 친절하고 싹싹한 사람들이었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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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lver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