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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1/31 꿈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by Wolverine

꿈 (The Dream, 1990)

감독 : 배창호
출연 : 안성기, 황신혜, 정보석, 최종원


<꿈>은 좀 이상한 영화다. 이 영화는 <삼국유사>에 실린 조신 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이 설화의 내용은 비참하다. 스님이 어떤 아가씨에게 반해서 그녀와 함께 도망쳤지만 심한 가난에 시달린 끝에 가정도 찢어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설화는 이 모든 것이 꿈이었으니 너희들도 인생의 무상함을 좀 깨달아 보라고 읽는 이의 기를 죽인다.
이 영화의 직접적인 원작이 된 것은 조신 설화를 각색한 춘원 이광수의 소설 <꿈>인 것 같은데, 꼼꼼하게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줄거리를 보면 설화의 내용과 주제에서 크게 벗어난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배창호 감독의 <꿈>은, 설화나 소설과 마찬가지로 정말 비참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도 극도로 탐미적이어서 영화를 보다가 이게 비참한 것인 줄을 잊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이상하다는 것이다.

<꿈>은 아름다운 영화다. <꿈>에서 특히 눈에 뜨이는 것은 여러 장면에서 자연광을 이용하여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등장 인물들은 종종 오랫동안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고, 빛에 의해 얼굴의 음영이 변하면서 관객들은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게 된다. 이러한 기법은 시간의 흐름을 깨닫게 할 뿐 아니라 빛과 사물의 아름다움도 보여주는데, 황신혜 같은 배우의 얼굴에 그늘이 지다가 다시 햇살이 드는 것을 보면 누구라도 아름다움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달례(황신혜)가 사랑하지도 않는 조신(안성기)에게 추적자인 모례아손(정보석)을 피해 도망치자고 말할 때, 얼굴의 반쪽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운 그녀의 얼굴은 이게 사람인지 일러스트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다. 또, 나병에 걸린 것을 깨달은 후 남편을 떠날 때 달례는 보라색 두건을 쓰고 있는데, 그 얼굴이 아침 햇살로 붉게 빛나면... 물론 이런 기교가 과용되었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조신이 모례아손 앞에 무릎을 꿇고 그 상태에서 시간이 흐르는 장면 같은 것은 그렇다. 배창호 감독 역시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서 지금 영화를 만든다면 그 장면은 다르게 찍었을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이 영화에는 탁월하게 아름다운 장면이 많지만, 그 중에서 조신이 옛친구 평목(최종원)을 살해하는 장면은 어떤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아내가 다른 남자들과 바람을 피우는 상황 속에서 그 울분을 친구에게 푸는 조신의 비뚤어진 마음과, 자신은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현상금이 걸려 있는 도망자라는 비참한 자기 인식이 함께 담겨 있는 장면이다. 조신이 평목의 등에 칼을 꽂으면 평목은 염색물이 담겨 있는 항아리에 고개를 박고 처참하게 죽는데, 그때 평목의 등을 보면 일부러 그렇게 한 것처럼 몸의 왼쪽만 반듯하게 물이 들어 있다. 진짜 피처럼 거무스름하지 않고 산뜻한 붉은물을 들인 것처럼 보인다. 등에 칼을 맞고 죽은 사람의 몸이 저렇게 고울 수 있을까? 카메라가 이 장면을 롱 쇼트로 잡고 있기 때문에, 강조하지 않으면서도 은근히 아름답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달례 때문에 울분이 쌓인 조신이 술을 마시는 주막으로 카메라가 들어가기 전에 거리를 잠시 보여주는 장면은, 비가 그친 뒤에 푸르게 빛나는 거리와 가게마다 달려 있는 색등이 대조를 이루어 대단히 인상적으로 보인다.

이렇게 빛과 색의 아름다움에 취한 채 영화를 보다 보면, 결국 조신은 아내와 자식을 모두 잃고 거지가 되어 자기가 옛날에 있던 절로 돌아간다. 그는 법당의 관음보살 앞에서 울고 절하다가 힘이 다해 죽는데, 깨어나 보면 모든 것이 꿈이었음이 밝혀진다. 그런데 이 장면에는 정말 수상한 구석이 있다. 조신이 달례를 처음 볼 때의 상황을 순서대로 정리하자면,

1. 조신과 평목이 법당 앞에서 청소를 한다. 얼마 전에 심부름을 갔다가 달례를 본 평목이 달례의 외모는 "두견새가 하얀 비단에 피를 토해 놓은 것 같다"고 잡담을 한다.
2. 그들은 잡담을 하다 주지(태일)에게 들켜서 잔소리를 듣는다.
3. 불공을 드리러 온 달례에게서 고개를 돌리지 못하는 조신에게 큰스님(윤문식)이 꿀밤을 놓는다. 그 모습을 본 달례가 웃는다. 이 일은 법당 앞에서 일어난다.
4. 다음 날 새벽, 조신은 관음보살 앞에서 하루만이라도 그녀와 연분을 맺게 해 달라고 울며 기원한다.

모든 것이 꿈으로 밝혀진 후에는,
1. 조신은 관음보살 앞에서 깨어난다.
2. 조신은 평목이 법당 앞에서 청소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반가워 한다.
3. 법당에서 나오던 조신은 큰스님에게 꿀밤을 살짝 얻어맞는다.
4. 달례 일행이 절에서 돌아간다.
5. 떠나는 달례 일행을 바라보던 조신에게 평목이 달례는 아무리 봐도 "두견새가 하얀 비단에 피를 토해 놓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

여러 가지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잘은 모르지만 불공을 하루에 다 드리는 것이 아니라 며칠씩 나눠서 드리는 것일 수도 있고, 혹은 불공을 드린 다음 날 달례 일행이 우연히 나들이 삼아 절에 다녀갔을 수도 있다. 그리고 승려들의 일과는 비슷하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조신이 달례를 처음 만나는 장면과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서로 다르면서도 뭔가 되풀이된다는 느낌이 있다. 즉, 영화는 마치 조신이 꿈을 꾼 다음이 아니라 꿈을 꾸기 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보인다. 왜 조신은 그 무서운 꿈을 꾼 뒤에도 달례를 다시 보아야 하는가?
배창호 감독은 감독과의 대화 시간에, 마지막 장면에서의 조신의 표정을 쓸쓸한 표정이라고 했다. 조신은 달래 일행의 뒷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돌아가는데, 그때의 미묘한 표정은 쓸쓸한 표정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씁쓸한 표정으로 보이기도 한다. 감독의 의도에서 한발 더 나아가 해석하자면, 혹시 조신은 절을 떠나는 달례를 보면서 인생의 덧없음을 곱씹는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달례를 꿈에서처럼 비참하지 않게 차지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는 것 아닐까? 물론 지나친 해석일 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영화가 이야기하는 것은 인생의 덧없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꿈>은 번뇌와 인연이라는 게 얼마나 끊기 어려운 것인지, 인생의 허망함을 깨달았다고 한들 인간이 그에 대한 미련을 벗어던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묻고 있는 것 같다. <꿈>이 유달리 탐미적인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배창호 감독의 태도이자, 관객들이 조신의 미련과 번뇌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장치 아닐까?

자, 네가 바라던 대로 처음으로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너는 다시 그 길로 가게 될 것이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추신

죽은 평목의 귀신이 살아 생전의 모습으로 나타나 조신에게 아들에게 불길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일러주고는 떠난다. 아주 온화하고 점잖게. 배창호 감독은 귀신이라고 흉하고 이상하게 그리고 싶진 않았다고 말했고, 나는 이걸 보면서 귀신이 멀쩡한 사람처럼 나오는 작품이 있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신과 달례가 방 안에 있을 때 평목의 귀신이 그를 부르는데, 그때 달례를 가만히 보면 그녀도 평목의 목소리를 들은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다.

모례아손으로부터 도망친 뒤에 농사를 짓기 시작한 조신과 달례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기근 때문일 텐데, 이 영화는 그것을 말로 설명하는 대신 버려진 노파가 까마귀가 우글거리는 바위산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으로 보여준다. <글로리아>를 보면서 느낀 것이기도 한데, 구구절절하게 설명하지 않고도 관객들이 알 수 있도록 해야 된다.


* 31일 아트시네마로 <택시 드라이버>를 보러 갔는데 배창호 감독님이 오셨길래 여쭤봤더니, 조신이 꿈에서 깨어났을 때 태수 일행은 절에서 하룻밤을 묵고 돌아가던 길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영화의 시간적인 순서는 바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쭤보고 싶은 게 많았는데 그때는 잘 생각나지 않아서 영화가 너무 아름다웠다는 얘기만 하다 말았습니다. 감독님 또 오시면 여쭤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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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lver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