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리아>는 존 카사베츠 감독이 정말 싫어하는 영화였고, 반대로 존 카사베츠 감독의 아내이자 영화의 주연이었던 지나 롤랜즈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였다고 합니다(지나 롤랜즈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존 카사베츠 감독은 <글로리아>가 너무 상업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존 카사베츠 감독은 로버트 알드리치 감독의 <더티 더즌>,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악마의 씨> 같은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였는데, (최동훈 감독의 말에 따르면) 그 당시 감독들은 모두 성질이 더러웠고 존 카사베츠 감독도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존 카사베츠에게는 친구도 별로 없었다고 하고요(이쯤에서 감독님이 그걸 어떻게 아시느냐는 반응이). 그는 마틴 리트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고 난 뒤 영화를 홍보하는 자리에서 영화 홍보는 제쳐놓고 내가 감독하면 이런 것보다 더 잘 만들 수 있다고 불만을 털어놓다가 스튜디오로부터 노여움을 사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만든 영화에 출연할 수 없게 되었고, 자신의 말을 지키기 위해 감독이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로버트 알드리치 같은 삐딱한 감독들은 신경쓰지 않고 그를 배우로 기용했습니다.
존 카사베츠의 전작들인 <페이스>, <영향 아래의 여자>, <차이니즈 부키의 죽음>, <오프닝 나이트> 같은 영화들을 만들면서 존 카사베츠에게는 얼마간의 빚이 생겼고, 돈을 벌기 위해 그는 <글로리아>의 시나리오를 써서 팔았습니다. 당시 리키 슈로더가 출연한 영화가 인기를 모으고 있었는데, 그래서 영화사에서 아역 배우가 출연하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필요로 했던 것입니다. 존 카사베츠는 시나리오만 썼을 뿐 감독에는 원래 뜻이 없었는데, 그가 영화의 감독으로 결정된 뒤 연락을 받았다고 합니다. 최동훈 감독에 따르면,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좋은 소식 한 가지와 나쁜 소식 한 가지가 있다. 뭔데? 좋은 소식은 지나 롤랜즈가 <글로리아>의 주인공으로 발탁되었다는 것이고, 나쁜 소식은 네가 감독으로 정해졌다는 것이다. 원래 <글로리아>의 주인공 역으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물망에 올라 있었는데 그는 존 카사베츠 감독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최동훈 감독은 70년대 미국 감독들에게 끌린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 시절 감독들은 미치광이나 다름 없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감독에게 편집권이 없던 시절, 감독이 필름을 몰래 차에 싣고 외딴 집으로 도주해서 편집을 하다가 (광란의) 파티 같은 데서 하룻밤 놀다 오면 스튜디오에서 쳐들어와서 필름을 가져가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러면 감독은 권총 들고 사장실로 들어가서 난리를 피우던 그 시절이 최동훈 감독은 그립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후 <글로리아>의 주연이었던 아역 배우는 이후 단 한편의 영화에도 출연하지 않았고, 나중에 그 사람을 누가 봤는데 소호에 있는 당구장에서 매니저를 하고 있더라, 이런 이야기에 이르러서는 도대체 감독님께서는 그런 할리우드 비사를 어디에서 들었느냐며 박장대소하는 분위기에 이르렀습니다.
김혜수 씨는 전문가-배우로서의 이야기보다는 관객으로서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크게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타짜> 이야기가 나왔는데 거기서도 쟁쟁한 배우들이랑 일하는데 자기만 못하는 것 같아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런 지나치게 겸손하다 싶은 이야기를 늘어놓았고요. 다만 주인공 글로리아가 처음 등장할 때 안에 파자마를 입고 있다는 것이나 보스인 탄지니를 만나러 갈 때의 옷차림을 언급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확실히 옷차림이나 패션을 보는 눈은 관심 없는 사람이 배울 게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나 롤랜즈는 <글로리아>에 출연하면서 여자 리 마빈이라는 말을 들었다는데, 그녀는 이 영화를 통해 많은 감독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왕가위의 <중경삼림>에서 임청하의 스타일은 지나 롤랜즈에게서 나온 거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도 영향을 미쳤던 것 같습니다. 지나 롤랜즈가 그렇듯 존 카사베츠 감독은 다른 감독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는데, 올리버 스톤 감독이 베트남에서 제대한 후 한참 어렵게 지내던 시절 존 카사베츠 감독을 찾아가서 내가 뭘 하면 될 것 같으냐고 물어봤을 때, 그는 네가 잘 모르는 건 하지 말고 잘 아는 걸 하라는 충고를 해 줬고, 올리버 스톤 감독은 아, 그렇지, 내가 가장 잘 아는 거라면 마약 이야기다, 그걸 깨닫고 <미드나잇 익스프레스>의 시나리오를 썼다고 합니다.
이후에 아역 배우 이야기도 나왔는데, <글로리아> 당시 아역 오디션을 볼 때, 300명 정도 되는 아이들을 한 방에 몰아넣고 총소리를 들려줬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굳건하게 버티고 있던 아이를 뽑았다고 합니다. 물론 연기는 어색합니다(찾아보니 이 여섯 살 짜리 소년은 그해 래즈베리 어워드 후보에도 올랐더군요). 김혜수 씨가 <열한번째 엄마>에서 아역 배우와 같이 연기했던 경험을 들려줬는데, 다른 무엇보다도 완성된 영화의 질이 시나리오보다 하락했다는 데 대한 아쉬움이 있는 것 같았고, 상대역이었던 아역 배우가 요새 아역 배우들처럼 지나치게 영악하지 않아서 좋았다는 식으로 얘기하더군요. 이것과 관련되는 이야기가 존 카사베츠의 연기 지도 방식인데, 존 카사베츠 감독은 배우들에게 디렉션을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배우들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부여하는 방식이었으며 김혜수는 같이 영화를 만들어 본 최동훈 감독이나 김지운 감독도 이런 스타일이었다고 얘기를 합니다. 그러나 막상 결과물을 보면 배우의 연기와 영화에 어울리는 이미지가 나오는 것이 놀라웠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최동훈 감독은 시나리오를 쓰면 혼자서 일일이 연기를 해본다고 합니다. 잘못 쓴 대사를 현장에서 배우들이 지적해주면 자신은 고친다고 하더군요. 최동훈 감독은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서 이런 식으로 지적하는 것 같습니다. "혜수 씨, 지금 대사 하는데 1분 걸렸는데 조금만 빨리 해 주세요. 40초 안에 끝내 주세요."
최동훈 감독은 존 카사베츠가 인디펜던트 감독인데 비해 자신은 디펜던트 감독이라고 농담을 던집니다. 결국은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흥행을 목적으로 만든 <글로리아>에서도 존 카사베츠 감독은 끝까지 글로리아와 필을 절대 부모-가족 관계로 묶지 않는 뚝심을 보여주고, 그게 자기 집에서, 가족과 친구들을 출연시켜서 영화를 찍어 온(그래서 글로리아 촬영 당시 계약 조건에는 너희 가족을 출연시키지 말라는 것도 있었다고 합니다) 감독에게 어울린다는 것이 GV를 지켜 본 저의 소감입니다.
- 최동훈 감독이 <타짜>를 만든 후에 감독과 프로듀서 등이 정산을 해 보니 제작비가 남았더라고 합니다. 흔치 않은 일인데. 최동훈 감독은 <타짜>의 제작비도 결코 많이 들어간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 최동훈 감독 이야기로 존 카사베츠 감독은 뛰어난 각본가였다고 하는데, 글로리아가 버스에 탔을 때 갱을 만나는 장면은 꼭 우연히 그렇게 된 것 같이 보이고 자신은 영화를 공부할 때 절대 그렇게 만들면 안 된다고 배웠지만, 다시 영화를 보면 우연히 그렇게 된 게 아니라고 하는데, 영화를 다시 본다면 그 장면을 유의해서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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