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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2/27 추격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by Wolverine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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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격자 (The Chaser, 2008)

감독 : 나홍진
출연 : 김윤석, 하정우, 서영희, 김유정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꼽으라면 저는 엄중호가 지영민의 누나네 집을 찾아가는 장면을 들고 싶습니다. 엄중호는 지영민의 누나에게 아주머니 동생이 우리 아가씨들을 팔아 치웠는데 그동안 자기가 그 아가씨들에게 빌려준 돈을 다 어떻게 할 것이냐, 각서를 쓰자고 하죠. 그때 지영민의 어린 조카가 나타납니다. 그 아이는 머리를 다쳐서 백치가 된 것으로 보이며, 그건 지영민이 한 짓이었습니다. 이때가 영화의 전환점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때까지 엄중호는 미친 척 하는 것이라며 지영민의 이야기를 믿지 않았고, 미진을 찾으러 다닌 것도 돈 때문이었습니다. 지영민이 자기 조카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인지 보고 나서야 엄중호는 그가 매우 위험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그 순간은 엄중호는 물론 관객들이 지영민에게 진정으로 분노하게 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어떤 분들은 엄중호가 미진의 딸인 은지의 친아버지라고 해석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편의점에서 은지에게 컵라면을 사주면서 둘이 이야기를 할 때도, 아버지가 왜 없는지에 대해 은지에게 허술하게 둘러댄 미진에 대해 엄중호가 한심함을 느꼈다는 것 이상은 알 수 없습니다. 엄중호가 오토바이 사고를 당한 은지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을 때 간호사가 은지 아버님 되시죠, 라고 물으며 보호자 사인을 부탁하는데, 그때 사인을 해 주는 엄중호는 마치 내가 아버지는 아니지만 사인을 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엄중호가 미진과 그의 딸 은지에게 느끼는 감정은 자신이 여자들을 잃어버리면서 입은 막대한 손해와 성질머리가 뾰족한 아이에 대한 짜증에서 동정심과 연민, 죄책감으로 급격히 나아가며 그런 감정은 점차 증폭되는 것 같은데, 엄중호의 감정이 변화를 일으키는 기점에는 그가 지영민의 조카와 마주친 일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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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나홍진 감독은 그렇게 말하지 않겠지만, 해석의 자유를 믿는 한 관객으로서 감히 이야기하자면 어떤 면에서 <추격자>는 <살인의 추억>에 대한 응답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살인의 추억>의 그, 미칠 듯이 범인을 잡고 싶었지만 끝내 잡을 수 없었던 안타까움을 참을 수 없었던 나홍진 감독은 한발 더 나아가 연쇄살인마를 응징하는 이야기를 만든 것은 아닐까요? 그러나 결국 미진을 지켜내지 못했기 때문에 죄책감이나 안타까움은 그대로 남습니다. 그건 온전히 <살인의 추억>의 정서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추격자>에서는 <공공의 적>의 정서가 느껴지기도 하는데, <공공의 적>의 조규환은 부모도 무참히 죽이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살인마이며 잃어버릴 것도, 지켜야 할 것도 없는 강철중은 조규환을 붙잡아서 반드시 벌해야 한다는 강렬한 의지를 불태웁니다. 그렇게 보면 <공공의 적>에서 강철중이 차를 몰고 가면서 사람이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은 <추격자>에서 엄중호가 차를 몰고 가며 지영민 누나의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장면과 대구를 이룬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에서는 약간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전의 인터뷰에서 나홍진 감독은, 그 x끼들(연쇄살인범들)은 원래 그렇게 태어난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추격자>의 지영민은 정상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은 아니며, 설령 그에게 어떤 인간적인 동기가 있다고 해도 감독은 관객들이 그걸 볼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거기에 별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영민이라는 캐릭터에서 무엇보다 돋보이는 것은 그의 야수성입니다. 그것이 영화에서 최초로 드러나는 건 미진이 그를 따라 집으로 들어가는 장면인데, 전의 집주인이 키우던 개가 달려오자 지영민은 으르렁 짖으며 달려들어서 쫓아냅니다. 지영민의 성격을 살짝 암시하고 본격적인 것은 집안에 들어가서 보여주기로 했는지, 멀리서 찍은 이 장면은 아주 짤막하게 처리되고 있습니다.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 지영민이 초콜릿을 맛있게, 유달리 집착하듯이 먹는 장면이나, 마치 피 냄새는 잘 맡을 줄 안다는 듯 여형사가 생리 중이라는 사실을 알아낸 것도 그렇습니다. 하정우는 지영민 역을 맡아 가장 저차원적인 인간이란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영민이 경찰에게 자신의 범행을 밝힌 데에는 살인을 자랑하고 싶은 어린아이 같은 충동, 그리고 남의 차를 훔쳐 탔다는 사실이 들통 나고 포주에게 잡힌 난감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공작(이미 몇 번 살인범이라고 주장했다가 풀려난 전력이 있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 처하면 모든 것이 무마될 수도 있을 거라는 계산)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그러면서도 지영민은 교활하게 자신이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지, 사람들을 죽여서 어디에 묻었는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결정적인 사항이니까요. 영화에서는 지영민이 전에 따라다니던 여성, 그리고 마치 범죄 심리학자 같이 보이는 인물과의 경찰서에서의 대화를 통해 지영민이 성불구자이기 때문에 범행을 저지르게 된 것처럼 설명하지만, 제가 보기엔 성불구만으로는 그의 범행을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의 범죄가 욕구불만에서 비롯된 것이며, 섹스를 대신하여 여자의 머리에 정을 박았다고 보기엔 그의 인간성이 너무나 저차원적이고 어둡습니다. 행동거지까지 짐승을 닮아 있는데요? 게다가 지영민이 죽인 미진의 머리와 팔을 잘라 수족관에 넣는 것은 뭔가요? 그것도 성적인 상징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요? 지영민이 하필이면 조카에게 그런 짓을 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실험? 연습? 원한?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영민이 어린 조카를 성적 대상으로 삼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지영민이 취조를 받다가 범죄 심리학자 같은 인물에게 네가 뭘 아느냐고 달려들었을 때 지영민의 말처럼 그의 범죄, 그의 내면에 뭔가가 더 있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평범한 사람들은 이해할 수도 없고, 어쩌면 알아서도 안 될 그런 것인지도 모르죠. 물론 그런 걸 보여주자는 게 감독의 의도는 아니라서, 이 장면은 기수대장(?)이 브라보를 외치며 박수를 치는 것으로 신속하게 마무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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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목표는 인류 최고의 악질인 지영민을 잡아 단죄하는 것, 동시에 흉악한 범죄자를 잡지도, 그렇다고 피해자가 생기는 걸 막지도 못하는 부조리한 사회와 시스템에 대해 짜증을 토해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영화의 후반부는 지영민을 잡아야 하기 때문에 만들어졌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지영민이 슈퍼에서 살인을 저지른 이후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이 줄줄이 나오는데, 한솥밥을 먹은 식구이며 심정적으로는 동정이 가는 면이 있다고 해도 경찰을 여러 명 구타하고 경찰차를 꼬라박게 만든 엄중호가 그렇게 쉽게 나와서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처음에 지영민에게 유인되어 그의 집으로 끌려들어가 죽은 교회 권사의 집에 엄중호가 들어가는 장면도 있는데 그 뒤를 보면 이전에 엄중호를 만났던 권사네 집 아주머니가 전경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엄중호가 설마 전경을 데리고 다니는 것은 아닐 테지요? 전직 형사에 불과한 엄중호가 범죄 현장에 엄연히 들어가 있는 것도 그렇고, 피칠갑이 된 범죄 현장에 멀뚱히 앉아 있는 엄중호를 무심히 보고 지나가는 남자의 존재는 어떻습니까?
관객들은 분명히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처럼 끝나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므로, 흥행 면에서 보면 지영민이 슈퍼에서 빠져나간 이후부터 그를 잡기까지의 과정이 들어가는 편이 나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영화는 엄중호가 울부짖는 장면에서 끝나야 했던 것 아니었을까요? 미진이 엄중호에게 걸었던 전화도, 그게 무슨 내용이었는지 알려주지 않았어야 되는 것 아닌지. 만약에 엄중호가 망원동 골목을 헤매다 도망가는 지영민과 마주쳐서 그를 잡고 범행 현장인 슈퍼에서 울부짖는 것으로 마무리한다면 어땠을까요? 물론 그렇게 영화를 만들 사람은 없을 테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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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다시 보니 전에 좀 이상한 장면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멀쩡해 보이고, 대신 새로 어색해 보이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가령 처음에는 지영민 집의 열쇠는 엄중호가 갖고 있었는데 지영민이 슈퍼에서 범죄를 저지른 뒤에 어떻게 집에 들어갔는가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가만히 보면 미진이 집에서 뛰쳐나올 때 문에서 덜컹 소리가 나는 것이 들립니다. 그때 문을 제대로 닫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수족관에 있는 미진의 머리도, 처음 볼 때는 다른 사람의 머리 아니었을까 생각을 했는데 다시 보니 확실히 미진의 머리가 맞더군요. 그런데 수족관에는 미진의 팔까지 들어있었으니 지영민은 그 짧은 시간에 변변한 도구도 없이 사람의 목과 팔을 해체할 수 있는, 솜씨가 아주 좋은 백정인 셈입니다. 형사 둘이 지영민을 미행하는 장면에서는 남자 형사 한명이 지하철에서 지영민을 놓치는데, 그 남자 형사는 지영민을 범행 현장까지 호송하려던 형사입니다. 그때 판사에게 걸려서 지영민이 풀려나게 됐지요. 그러니 지영민 입장에서는 둘 다 아는 얼굴이었던 셈입니다. 미행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제가 보기에도 말이 안 되는 설정이지만 굳이 오형사(그 여형사)가 등장해야만 했다면 어쩔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범행 현장 바깥에서 오형사가 주저앉아 울고 있는 장면은 슬펐습니다.
엄중호는 모텔에서 지영민과 아는 여자를 만나고 그 여자의 입을 통해서 은지는 엄마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그때는 비가 많이 내렸고 승용차 창문도 꽉 닫혀 있었는데 밖에서 나누는 두 사람의 대화를 차 안에서 잘 들을 수 있을까요? 게다가 바로 옆에서 말한 것도 아니어서 거리가 꽤 떨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장면이 주는 정서적인 힘이 있기에, 좀 어색하지만 넘어갈 수도 있는 장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은지가 오토바이에 치이는 것은 새벽이었는데, 오토바이에 치었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보기 힘들도록 찍었더군요. 그런데 음식점 근무 시스템을 잘 모르지만 새벽 주택가로 배달부들이 그릇을 수거하러 다니나요? 게다가 그릇에는 음식점 이름이 버젓이 남아있을 텐데 아무리 급하게 도망가기로소니 그걸 그대로 다 남겨두고 가다니? 인적이 드문 새벽이라면 배달부도 좀 더 침착해지지 않았을까요? 이건 사소한 건데, 영화 초반부에 모텔로 들어간 여자가 섹스를 하면서 비디오를 찍으려던 손님에게 맞았을 때, 분명히 비디오카메라를 든 남자가 화장실에 숨어 있었죠. 그런데 모텔 종업원들이 그 손님을 말릴 때도, 엄중호가 그 손님을 혼낼 때도 그 남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원래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도망가는 게 보통인가요?
배우들에 대해서 짤막하게 이야기하자면, 김윤석의 어조라든지 발음 같은 것은 어딘지 모르게 송강호와 닮은 데가 있더군요. 그런 점 때문에 <추격자>를 <살인의 추억>과 떼어서 보기가 더 힘들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점을 빼면 김윤석의 연기는 정말 좋았죠. 하정우의 무심한 인간 야수 연기도 그렇고. 김윤석이 나온 장면 중에서, 엄중호가 병원으로 돌아오는데 절뚝거리는 그를 보고 시장과 비서들이 황급히 달아나는 장면은 정말 좋았습니다. 오버하지 않고 제대로 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머지 배우들 중에 파출소에서 웃통 벗고 난리치는 나이 든 형사는 어디선가 많이 본, 꽤 유명한 배우인 것 같은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엄중호 보고 너 진짜 형사냐고 꺼지라고 하는 보도방 남자 역을 맡은 배우는 진중권을 닮았죠? 키도 컸습니다. 나중에 혹시, 아주 혹시 황우석 영화가 나오면 꼭 진중권 역을 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슈퍼 아주머니 때문에 객석에서 아주 우렁찬 한숨과 탄식이 울려 퍼졌는데, 가만히 보면 그 아주머니도 입으로는 안심된다고 말을 하면서도 뭔가 불안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 사람을 함부로 믿으면 안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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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는 남성 성기를 직접적으로 가리키는 그 말이 두 번이나 나오는데, 언제부터 이 말이 영화에서 이렇게 자유롭게 쓰일 수 있게 된 건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그게 싫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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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lver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