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에 해당되는 글 43건

  1. 2008/07/23 엽기좀비 오토 by Wolverine
  2. 2008/07/02 카르마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by Wolverine
  3. 2008/03/17 기담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by Wolverine (2)
  4. 2007/08/11 박쥐성의 무도회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by Wolverine
  5. 2007/03/17 힛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by Wolverine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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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좀비 오토 (Otto; or Up with Dead People, 2008)

감독 : 브루스 라브루스
출연 : 제이 크리스파, 카타리나 클레빙가우스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영화지만 간단히 한 마디 이야기하고 넘어가야겠다. 무덤에서 되살아난 좀비 오토는 히치하이킹을 해서 베를린까지 오는데, 좀비들이 인간에 맞서 혁명을 일으킨다는 정치적 좀비 포르노 영화를 만들려던 레즈비언 제작자 메데아를 만나 영화를 찍게 된다. 일단 좀비들이 게이라는 설정은 재미있다. 특히 게이 좀비들끼리 섹스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영화는 한 좀비가 다른 좀비의 구멍난 옆구리에 삽입을 하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발상 같은 것은 참신하다고 생각한다. 메데아의 애인 헬라만 흑백 무성영화 주인공처럼 되어 있는 것도 재미있고.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재미있는 발상을 덮고도 남을 만큼 지루하다.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 측에서 발행한 영화 안내 카탈로그를 보면 브루스 라브루스 감독은 뉴 퀴어 시네마 중에서도 가장 논쟁적인 감독이라고 하는데, 논쟁적일지는 모르지만 영화가 정말 재미없다. 특히 가만히 앉아있는 오토 곁으로 게이 좀비 둘이 천천히 걸어오는 장면이 있는데, 좀비가 걸어오는 시간이 못 잡아도 30초 가까이 된다. 감독은 정녕 좀비 영화계의 타르코프스키가 되고 싶었던 것인가? 번역 제목은 또 왜 그렇게 지었는지. 어디를 봐도 오토에게 엽기적인 구석은 보이지 않는다. 좀비 자체가 엽기적인 것이라서 그랬다면 또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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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The Unseeable, 2006)

감독 : 위시트 사사나티앙
출연 : 시라판 와타나진다, 수폰팁 추안그랑스리, 타사완 세니왕세


<카르마>는 카르마(업)와는 별 상관 없는, 주인공 누알의 귀신 체험기로 보인다. 누알은 밤마다 란 부인의 저택에서 갖가지 다양한 귀신들과 마주친다. 중간에 누알이 남편과 재회하는 장면 등 <카르마>는 많은 면에서 <디 아더스>와 닮았지만 <디 아더스>와는 달리 핵심적인 테마를 잃고 방황하는 것처럼 보인다. 누알은 란 부인의 침실에서 정체불명의 남성을 목격하고 이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는 장면이지만 영화를 이끌어가지는 못한다. 란 부인의 남자는 과연 누구인가? 하지만 관객들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감독도 이 부분을 지나가는 이야기처럼 다루고 있는 것 같고. 영화는 누알이 다양한 귀신들에게 시달리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반전을 통해 저택과 란 부인의 비밀을 밝힌 뒤 막을 내린다.
그래도 <카르마>는 꽤 재미있다. 사기에 가까웠던 <바디> 보다는 훨씬 낫다. 으스스하기도 하고. <카르마>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누알이 하녀 초이와 함께 귀신 이야기를 하면서 웃을 때 소녀 귀신이 달려와 함께 웃던 장면. 초이의 정체가 밝혀지는 부분도 꽤 좋았다.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것은, <카르마>에서 관객들에게 죽은 것 같이 보이는 사람들이야말로 사실은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다만 <카르마>는 누알 남편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중간에 초이가 슬며시 없어진다는 것 등 관객들에게 꼬리가 쉽게 밟히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을 보면 꼭 란 부인과 솜짓이 누알을 가지고 놀고 있는 것 같지?

이 영화를 통해 알게 된 태국 흡혈귀에 대한 상식 몇 가지.
1. 태국 흡혈귀는 탯줄을 먹는다. 흡혈귀가 탯줄을 먹지 못하게 하려면 항아리에 넣어서 땅에 묻어야 한다.
2. 태국 흡혈귀는 아기 기저귀에 피를 닦는다.
3. 태국 흡혈귀는 제삿밥도 먹는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

초이는 할머니가 흡혈귀라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본인이 흡혈귀고, 아이의 탯줄도 초이가 먹은 것이었다. 그런데 누알은 임신한 채로 죽었고 아이도 태어나지 않았으니까, 초이가 아이의 탯줄을 먹는 장면은 누알의 상상일 텐데... 그럼 초이가 흡혈귀라는 사실은 믿을 수 있는 건가, 없는 건가? 관객들은 누알의 환상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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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담 (Epitaph, 2007)

감독 : 정가형제
출연 : 진구, 이동규, 김태우, 김보경, 고주연, 지아, 전무송, 엄지원


<기담>을 보고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것은 시대와 영화가 정말 느슨하게 이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기담>의 주요한 시대적 배경이 되는 1942년 겨울과 그 뒷이야기에 해당하는 1979년 10월은 일제의 패망과 해방, 그리고 박정희의 죽음과 군사 쿠데타, 5공화국 등장이라는 격변을 눈앞에 둔 혼란한 때였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비쳐지는 시대상은 여유롭고 따뜻하기 그지없다. 가령, 대학 강의실에서 박정남 교수는 학생들에게 데모 나간 학생들 보면 시험 꼭 보라고 전해달라는 이야기를 하고, 수업을 끝낸 박정남 교수가 캠퍼스를 걸으면 그 근처에서 유신 철폐 따위의 피켓을 든 학생들이 꼭 소풍을 가는 것처럼 어슬렁거리는 게 보인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본 사람들이라면 학생들이 캠퍼스에 전단 몇 장 뿌리고 사복경찰에 쫓겨 도망가던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그때 대학 당국도 운동권 학생들을 곱게 다루지 않았으니 저런 느슨한 데모가 가능할 리 없는 것이다. 사건들을 하나로 이어붙이는 마지막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아키야마 소좌도, 일본 군인이 아니라 마치 탐정처럼 묘사되고 있다. 아키야마 소좌는 확실히 한국 영화가 보편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일본 군인들보다 훨씬 긍정적인 인물인데, 그건 아마 이 사람이 군인이 아닌 탐정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이 자국 군인 한 명이 살해당했다는 이유로 민간에서 벌어진 사건의 수사를 맡는다?

가만히 보면 이 영화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당시 시대 상황과 별 관련이 없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기담>의 시대적 배경이 반드시 1942년이었어야 할 이유는 없는 것 같은데, 굳이 1942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정한 것은 영화의 주제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말하기로 하자. 이 영화에서 또한 중요한 것은 감독이 시대를 빌어서 이때가 아니었으면 볼 수 없는 장면들을 그려내고 있다는 것인데, 그 중 특히 인상 깊은 하나는 기모노 입은 여인의 이미지였다. 안생병원의 원장은 딸의 영혼결혼식을 치르면서 엎드려 곡을 하는데, 그때 그녀의 옷차림은 꼭 달팽이가 집을 등에 얹은 것처럼 보인다. 달팽이라는 곤충은 특히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수시로 등장하며 영화의 주요한 모티브가 되는데, 등에 얹은 집처럼 결코 벗어던질 수 없는 끈끈한 집착과 애정이 달팽이를 빌어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달팽이는 영화의 기묘한 분위기와 썩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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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세 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으며, 앞의 두 에피소드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의 시간적 순서는 마지막 에피소드를 통해 분명해진다. 이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사건들을 모으면 병원의 주요 인물들이 며칠 사이에 죽음을 맞이하는, 안생병원 멸망기라고 부를 수 있는 이야기가 되지만, 그 죽음들이 어떤 필연적인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히 이 죽음들은 공통된 정서를 보여주고 있다. 각 에피소드 세 편의 주인공은 병원에 실려 온 죽은 소녀와 안생병원 학생인 박정남, 어머니의 죽음을 목격한 소녀 아사코와 의사 이수인, 안생병원의 의사 김동원과 김인영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쪽은 죽은 사람, 혹은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며 다른 한쪽은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한쪽이 외로움과 쓸쓸함을 느끼며 다른 한쪽에게 집착하는 구도가 반복되고 있으며, 그 집착과 쓸쓸함은 다른 한쪽의 죽음을 부르는 것이다. 죽은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의 남은 인생에 달팽이처럼 달라붙거나, 혹은 그를 곧장 데려온다. 그러나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는 이 구도가 하나의 허상으로 작동한다.

<기담>에도 깜짝쇼는 있다. 그러나 다른 영화와 비교해보면 적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차분하게 감정을 쌓아 올려간다는 것이 <기담>에서 가장 좋은 점이다. 가령 노인이 된 박정남이 자신을 찾아온 딸과 함께 식사를 하는 장면을 보면, 교복을 입은 여고생이 얼굴을 보이지 않은 채 그들의 옆자리에 앉아 있다. 그 여고생의 정체는 영화가 진행되면서 밝혀지지만, 거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그 장면을 보는 사람은 누구나 그녀가 귀신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무 음악도 없이 덤덤하게 부녀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모습과 그 옆에 가만히 앉아 있는 귀신을 보여주는 연출은 굉장히 드문 것이 아닌가? 얼어붙은 호수의 얼음장 밑에 보이는 소녀의 시체 위로 붉은 심장 모양의 꽃잎이 날아오는 등의 아름다운 장면들도 좋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관객들이 뇌리에서 지울 수 없는 것은 두 번째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귀신이다. 아사코 엄마의 귀신과 그 뒤에 등장하는 할머니의 귀신은 영화의 다른 귀신들과 달리 실재하는지, 아니면 아사코의 환각인지 불분명하다. 그러나 그 귀신들은 아사코의 죄책감을 강력하게 반영하는 존재로, 특히 아사코 엄마의 귀신은 압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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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기담>의 마지막 에피소드는 혀를 내두를 만큼 좋지 않다. 심하게 말하면 영화를 망쳤다고 할 정도로. <기담>은 공포보다는 외로움이라는 정서를 전달하는 데 더 공을 들였다는 느낌이 드는데, 마지막 에피소드는 이상하리만치 반전과 살인에 집착하고 있다. 그 반전은 굉장히 산만하고 이상하여 말로 표현하기도 힘들 정도이며, 살인은 더더욱 그렇다. 부산에서 경성까지 문서를 전달하던 일본 군인이 살해당했기 때문에 군에서 수사에 나선 것으로 보이는데, 그 뒤로 희생된 사람은 조선인 탈영병, 거지 아이, 안생병원의 간호원 등이다. 그러면 일본군을 노린 살인이라는 가설은 폐기되어야 하고 수사는 경찰에서 맡게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왜 아키야마 소좌는 거지 아이의 시체를 두고 일본군을 노린 연쇄살인 운운하는 정신 나간 소리를 지껄이는가? 더욱 이상한 것은 동원-인영인데, 왜 그가 일본군은 물론 무고한 어린아이까지 살해하는지 도저히 짐작할 수가 없다. 몽유병?
또한 인영이 아키야마 소좌를 찌르는 장면에서 시끄럽게 울려퍼지는 <사이코>의 음악, 내 안에 인영이가 있다는 김동원의 말은 마지막 세 번째 에피소드를 재활용 영화처럼 보이게 한다. 이 영화의 반전은 배우(특히 김태우)의 연기까지 우스워보이게 만든다. 이 에피소드에서 인상적인 것은 그림자 없는 인영의 모습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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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담은 낭만적이고 나른하며 음울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그때 우리는 모든 것이 영원할 줄 알았다는 대사로 마무리되는데, 병원-구체제-구시대가 종말을 앞둔 마당에 모든 것이 영원하기를 꿈꾸었다니 허망하지 않은가? 영화도 전체적으로, 아름답지만 뭔가 공허하고 부유하는 듯한 분위기를 은근히 풍기고 있다. 그런 점에서 <기담>은 구세대에 대한 비판으로, 정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작품이다. 1942년, 즉 일제 말기가 시대 배경으로 선택된 것은 그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정남이 안생병원이 헐린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에 갈 때 계단을 보면 죽은 까치가 뒹굴고 있는데, 나중에 정남의 스케치북을 보면 까치 그림이 있다. 그러니 그 죽은 까치는 말할 것도 없이 정남 자신을 상징하는 것. 생각해 보면 영화 첫 부분에서 정남의 나레이션도 그가 죽은 후에 (아마도) 귀신이 되어 자신이 죽은 날을 회상하는 것일 텐데, 이 영화의 은근함은 이런 점에서도 빛난다.

추신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정남의 뒷모습이 빛에 왜곡되어 기묘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이 장면에서 마치 머리가 줄어든 사람처럼 보였다. 이것 또한 달팽이 이미지의 변형. 글을 쓰면서 앞머리에 올린 포스터는 티저 포스터로 알고 있는데, 달팽이 이미지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어서 본 포스터 대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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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성의 무도회 (The Fearless Vampire Killers, 1967)

감독 : 로만 폴란스키
출연 : 로만 폴란스키, 잭 맥고런, 샤론 테이트, 퍼디 메인, 알피 바스


이 영화는 어렸을 때 KBS 토요명화에서 처음 봤습니다. 중간부터 봤지만 이 영화를 오랫동안 잊지 못했던 것은 당시로서는 몹시 무서웠던 결말 때문이었죠. 이 영화를 기억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다가 작년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호러 영화 파티 행사를 할 때 다시 봤습니다. 그때 뭔가 끄적여보려다 만 것은 영화 내용에 대한 오해가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여자 주인공 두 사람을 착각했습니다. 나중에 흡혈귀가 된 여관 주인 샤갈이 하녀를 집적거린 것인데, 딸을 집적거린 것으로 오해한 것이죠. 제가 생각해도 뭔가 이상했고 쓰지 말아야겠다 싶었습니다. 어제 EBS에서 다시 보았는데 공중파에서 몇 년 만에 방영한 것인지...

아브론시우스 교수는 박쥐 연구자이자 흡혈귀 전문가입니다. 동료 교수들에게는 따돌림을 당하는 것 같은데, 조수인 알프레드를 데리고 트랜실바니아 지역을 여행하고 있습니다. 이 여관 곳곳에는 마늘이 잔뜩 달려 있고, 사람들은 뭔가 숨기고 있습니다. 알프레드는 여관 주인 샤갈의 어여쁜 딸인 사라에게 반하는데, 사라는 여관에 나타난 폰 크롤록 백작에게 잡혀 갑니다. 아브론시우스 교수와 알프레드는 흡혈귀를 퇴치하고 사라를 구출하기 위하여 새벽에 그들의 성을 찾아가는데, 마침 그날 밤은 1년에 한 번 흡혈귀들의 무도회가 열리는 밤이었습니다.

뱀파이어 킬러(?)인 두 사람의 캐릭터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흡혈귀라는 존재에 대해 학문적인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아브론시우스 교수는 <드라큘라>의 반 헬싱에 필적하는 존재지만 그보다 훨씬 경박하고 현실 감각이 없는 사람입니다. 게다가 둔하죠. 흡혈귀들에게 쫓기는 와중에도 왕박쥐를 보고 감탄한다는 게 어쩌면 반 헬싱보다 더 학자다운 면모라고 할 수 있겠지만, 긴장감이 없고 주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눈치를 채지 못하는 것 등은 뱀파이어 킬러로서는 실격입니다. 탑 꼭대기에서 탈출하는 장면 등을 보면 원래 머리가 나쁜 사람 같지 않아요. 그의 제자인 알프레드는 지나치게 마음이 약한 사람이라 역시 실격입니다. 그가 폰 크롤록 백작의 심장에 제대로 말뚝을 박았다면 모든 일이 잘 풀렸을 텐데 말입니다. 알프레드가 사랑하는 사라도 별로 영리하지는 않고, 그저 목욕을 좋아하는 철없는 아가씨로 그려집니다. 마지막에 그녀가 아브론시우스 교수와 알프레드를 따라 나선 것도 햇볕이 잘 비치는 아름다운 이탈리아의 휴양지에 대한 동경이 컸겠죠. 사라는 교육을 잘 받은 것 같은데, 샤갈은 마을 사람들 모두가 두려워하는 흡혈귀에 대해서 사라에게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러니 사라가 백작의 하인인 쿠콜의 눈에 띄게 되었죠. 마그다는 재빨리 숨었는데 말입니다.
하여튼 뱀파이어 킬러로서는 실격인 두 사람이 흡혈귀를 잡는다고 나섰으니 당연히 잡히는 흡혈귀가 있을 리 만무합니다.

이 두 사람이 비하면 흡혈귀들은 전형적인 귀족들입니다. 폰 크롤록 백작과 그의 아들인 헤르베르트는 좀 다르지만 나머지 흡혈귀들은 굉장히 무력한 존재로 그려지는데(아브론시우스와 알프레드조차 그들을 제압하고 옷을 뺏어서 갈아입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에 비하면 서민 출신인 흡혈귀 샤갈은 훨씬 활기차고 영리합니다. 샤갈은 폰 크롤록 백작에게 종속되어 있지만 그의 명령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하지도 않고, 굉장히 독립적이에요. 그런 장면도 있는데, 흡혈귀가 된 샤갈이 백작의 성으로 찾아와서 백작이 자는 방에 관을 두고 같이 자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쿠콜이 샤갈을 빛이 잘 드는 마구간으로 내쫓죠. 그런데 나중에 알프레드가 헤르베르트의 관을 열어 보니 샤갈이 그 위에서 자고 있습니다. 샤갈은 흡혈귀가 된 후에도 아브론시우스 교수와 알프레드를 피해 도망치고, 마지막에는 자신을 폰 크롤록으로 가장한 아브론시우스 교수의 협박에 꼴딱 넘어가는 우스꽝스러운 존재입니다. 그는 전통 민담에 등장할법한 흡혈귀인 것 같습니다.
샤갈과 그에게 죽음을 당한 하녀 마그다, 그리고 새로 흡혈귀가 된 사라와 알프레드는 고성에 틀어박힌 채로 "비쩍 마른 나무꾼 한 명을 두고 절망하는" 사멸해 가는 귀족 출신 흡혈귀들 대신 새로운 세계를 열어갈 것입니다. 생각해 보니 무섭기도 하고, 또 은근히 활기차고 민주적인 결말인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샤갈처럼 사라에게도 십자가가 안 통하겠네요.

이 영화에서 흡혈귀에 대한 이론은 정립되어 가는 상태고, 완벽하게 검증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각 영화에서 흡혈귀에 대한 설정이 서로 어떻게 다른지, 그걸 확인해 보는 것도 흡혈귀 영화를 보는 재미이지요. 아브론시우스 교수와 알프레드는 알리보리라는 사람이 쓴 것으로 보이는 책을 가지고 있는데, 그 책에 따르면 흡혈귀는 거울에 비치지 않습니다. 알프레드가 헤르베르트를 만났을 때 그가 거울에 비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그 이론이 맞다는 사실을 알게 되죠. 호기심이 지나친 아브론시우스 교수는 자기가 그걸 직접 확인해 봐야 된다고 안타까워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아브론시우스 교수는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며칠 요양하면 나을 거라고 사라에게 말하는데, 그 이론은 완전히 잘못 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서든 폰 크롤록 백작을 죽여야만 했어요.
재미있는 것은 다른 흡혈귀들에게는 십자가가 통하지만 샤갈에게는 십자가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인데(You got the wrong vampire!) 그건 샤갈이 유대인이기 때문입니다. 이건 영화에 직접 나오지 않습니다.

이렇게 이 영화에는 재미있는 설정들이 많은데, 우선 폰 크롤록 백작의 아들인 헤르베르트는 게이입니다. 상의만 입은 헤르베르트는 알프레드가 가진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100가지 방법이라는 책에 맞춰 그의 어깨에 손을 두르고 목을 물려고 하는데, 이 부분이 영화에서 가장 섬뜩하면서도 우스운 대목입니다. 간신히 도망친 알프레드가 어디 쳐다보지도 않고 회랑을 한 바퀴 돌아서 헤르베르트에게 돌아오는 장면도 있고, 헤르베르트가 음산한 음악에 맞춰 맹수처럼 달려드는 장면도 압권입니다.
옛 흡혈귀 전설, 그리고 많은 흡혈귀 영화에 따르면 사람이 흡혈귀가 되면 먼저 생전의 가족을 공격합니다. 여관 주인인 샤갈은 납치된 딸을 찾으러 갔다 흡혈귀가 됩니다. 당연히 돌아와서 아내를 흡혈귀로 만들어야 겠지만, 그는 아내의 눈을 몰래 피해서 하녀를 공격합니다. 죽은 다음에도 아내는 여전히 무섭고, 그래도 하녀랑 바람은 피워야겠고... 원래 샤갈에게 냉정하게 대하던 하녀는 일단 물리고 나자 눈이 맞았다고 해야 되나, 그런 사이가 됩니다.

이런 우스운 설정에 맞춰 여러 가지 재미있는 장면들이 있는데, 샤갈이 흡혈귀로 되살아나는 장면도 우스꽝스럽게 연출이 되어 있으며 아브론시우스 교수와 알프레드가 베게를 가지고 말뚝 박는 연습을 하는 장면도 재미있습니다. 다만 예측을 못했던 것은, 작년에 극장에서 볼 때 아브론시우스 교수와 알프레드가 칼을 빼들어 십자가를 만들어 흡혈귀들을 제압하는데 그 장면에서 사람들이 많이 웃더라고요. 일부러 우스꽝스럽게 연출한 장면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요. 하긴 작가의 의도가 관객들에게 달리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법입니다. 어쨌든 이 영화의 코믹한 장면들은 은근한 구식 스타일의 추격전과 관련된 설정들을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옛날 관객들에게는 당연히 잘 통했겠고, 그걸 식상하다고 여기는 시대에는 또 안 통했겠지만 이런 슬랩스틱이 귀한 지금 같은 시대에는 충분히 잘 통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우스운 영화라고 해도 마지막 장면의 공포스러움은 여전합니다. <박쥐성의 무도회>는 코미디와 호러를 거침없이 오가는 로만 폴란스키의 능력이 잘 발휘된 재미있는 영화이며, 또 이 영화를 찍으면서 만난 뒤에 결혼한 샤론 테이트와 로만 폴란스키의 비극적인 뒷이야기로도 잊을 수 없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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힛쳐 (The Hitcher, 1986)

감독 : 로버트 하몬
출연 : C. 토마스 하웰, 룻거 하우어, 제니퍼 제이슨 리


"엄마가 히치하이커는 태우지 말랬는데요." 시카고의 대학생 짐 할시가 어느 비오는 새벽 자기 차에 히치하이커인 존 라이더를 태운 뒤 하는 말이다. 엄마 말씀 좀 새겨 듣지 그랬니. 살인마 존 라이더는 곧 본색을 드러내서 짐을 죽이려 든다. 천만 다행으로 존이 타면서 차 문이 덜 닫혀 있던 터라 짐은 존을 차에서 밀어내고 도망치는데, 존은 짐을 쫓아다니면서 사람들을 살해하기 시작한다. <힛쳐>는 이런 내용의 영화다.

이 영화의 살인마 존 라이더는 죽음의 본능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고속도로에서 히치하이킹을 하며 자신을 태워주는 사람들을 살해할뿐만 아니라, 마음 속으로 누군가 자신을 살해함으로써 자기를 멈춰 주길 바라고 있다. 그는 처음 만나는 짐 할시를 위협하며 "나를 멈춰달라."고 하더니(존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나는 죽고 싶다(I want to die.)"는 말을 하라며 그를 협박한다. 그 말을 하는 순간 존 할시가 죽게 되리라는 것은 뻔히 알 수 있는데, 짐은 나는 죽고 싶지 않다고(I don't want to die!) 외치며 그를 밀어 버린다. 짐은 삶의 본능이 되고, 죽음의 본능과 삶의 본능이 만나 서로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존은 자기에게 대항한 짐을 자신을 죽여 줄 사람으로 보고 그가 그렇게 하도록 몰아붙이는데, 죽음이 삶의 힘으로 자신을 완성시키려 한다는 이 기이함이란(여기서 말하는 죽음의 본능, 삶의 본능이란, 흔히 말하는 에로스와 타나토스와는 별 관계가 없다).

한때 끼고 살았던 <열려라 비디오 5000>이 이 영화의 각본가 에릭 레드가 참여한 영화를 짤막하게 평하면서 "<힛쳐>는 폭력의 정의를 다시 쓰도록 만든 엄청나게 폭력적인 영화" 라고 했던 게 기억 난다. 정의인지 개념인지, 그런 것까지는 지금 기억나진 않는다. 세월이 20년이나 흐르고 이 정도 수위의 고어/호러/액션 영화는 그동안 숱하게 나왔기 때문에 그 평가를 현재진행형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지만, 이 영화가 근본적으로 폭력적이라는 사실 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 폭력성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서 드러난다.

영화를 보면 석연치 않은 점을 몇 가지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짐을 추격하던 경찰관들의 죽음이다. 짐이 아니라 존이 살인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쳐도, 그 경찰관들은 분명히 짐이 죽인 것이다. 비록 경찰들이 짐을 죽이려 했고, 짐이 한 일은 제때 브레이크를 밟은 것밖에 없었다고 쳐도(짐의 양 옆으로 경찰차 두 대가 총으로 타이어를 겨눈 채 따라오고 있었는데 짐이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뒤로 빠지자 상대방의 타이어를 쏴 맞추게 된다). 그런데 존의 정체가 드러난 후 경찰이나 짐은 더 이상 그 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짐 역시 경찰 살해범인 것은 마찬가지인데 조사만 잠깐 받고 가라고 하는 것은 이미 그 사실을 안중에 두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 궁금증은 다른 장면을 보면 풀리게 된다. 영화 중반에 고속버스에서 짐을 쫓아온 경찰관이 짐에게 총을 겨누면서 나한테 침을 뱉었으니 그걸 닦으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짐이 그에게 침을 뱉은 적이 없었다. 언제 그랬지? 한참 지난 후에야 짐이 취조실에서 존에게 침을 뱉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이 말해주는 것은 두 가지인데, 이 영화가 시간적으로 순환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이 하나, 그리고 다른 하나는 경찰과 살인마는 서로 비슷하다는 점이다. 영화 중반 경찰들은 짐을 체포하기 보다는 그를 살해하는 데 더 신경을 쓰고 있으며, 존이 짐이 자신을 죽여주길(폭력을 사용해주길) 바라는 것처럼 경찰도 짐의 대응을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경찰과 존은 모두 폭력을 사용하는 주체이자 동시에 그것을 기다리는 주체인 것이다. <힛쳐>는 폭력을 긍정함으로써 짐이 존을 살해하지 못해서 내쉬를 죽게 한 것을 야유하고 있다. 이것이 이 영화가 근본적으로 폭력적인 이유이다. 물론 폭력을 해결책으로 사용하는 영화야 쌔고 쌨지만 <힛쳐>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요를 하고 있으므로 그런 영화들 이상 폭력적으로 보인다.

이 영화는 또 다른 석연치 않은 점을 보여줌으로써 스스로를 어떤 경지로 끌어올린다. 존이 이 영화에서 죽인 사람들 수는 대충 세어봐도 10명이 넘는데, 그 중에는 경찰도 있고 일반인도 있지만 가만히 보면 존이 일반인들을 살해하는 장면은 보이지 않는다. 살인하기 직전의 상황이나 암시는 충분히 하지만. 또한 존이 죽인 시체가 나오지 않는다. 고속도로의 일가족 살인 현장에서도 관객들은 짐의 신발에 떨어지는 피를 볼 수 있을 뿐이다. 경찰서에서 경찰들이 죽어 있는 장면, 운전석에 앉은 경찰들 두 명이 살해당하는 장면이 예외일 뿐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관객들은 짐이 있는 곳에서만 존이 살인하는 모습, 그리고 피살체를 볼 수 있다. 존이 호송차에서 탈옥할 때 카메라는 존이 샷건을 장전하는 장면만을 보여주고 있다. 당연히 그 자리에는 짐이 없었다.
그리고 짐이 가는 곳이라면 존은 어디든지 들어갈 수 있다. 통사정해서 들어갔던, 영업시간 전의 동네 레스토랑, 화장실, 모텔까지. 짐은 존이 일부러 신호를 남기지 않는 한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그런 점에서 존은 꼭 유령처럼 보인다. 특히 모텔에 나타나는 장면이 그랬는데. 어떻게 생각하면 사실은 짐이 살인마라는 결론도 내릴 법 하다. 하지만 존은 분명한 실체가 있으며 영화는 존이 또 다른 짐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죽음과 삶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아니니까. <힛쳐>는 폭력적일 뿐만 아니라 심리적이다.
몇몇 장면들, 감자튀김을 먹는 짐이 필요 이상으로 오래 앞을 바라보고 있거나 쓰러진 존이 다시 일어나는 장면은 지금에야 예측이 가능하지만 충분히 놀랄만하다. 그 잘린 손가락이 나오는 장면은 보면서 정말 헉, 소리가 나왔다.

아까 <힛쳐>를 시간적으로 순환하는 영화라고 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면 순환하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폭력이다. 죽음의 본능이 결국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켰으므로 살아남은 주인공은 고개를 숙인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은 통쾌하지 않고 씁쓸할 뿐이다. 토마스 C. 하우웰과 제니퍼 제이슨 리도 그렇게 인상적이진 않지만, 살인자의 절망적인 눈빛을 보여주는 룻거 하우어는 대단하다. 하긴 룻거 하우어가 나오는 <레이디 호크>는 어렸을 때 내가 가장 좋아했던 세 편의 영화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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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lver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