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혈귀'에 해당되는 글 9건

  1. 2008/07/28 렛 미 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by Wolverine
  2. 2008/07/02 카르마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by Wolverine
  3. 2008/01/14 써티 데이즈 오브 나이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by Wolverine (4)
  4. 2007/08/11 박쥐성의 무도회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by Wolverine
  5. 2006/12/25 앰워스 부인 by Wolver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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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 미 인 (Låt den rätte komma in, 2008)

감독 : 토마스 알프레드손
출연 : 코레 헤데브란트, 리나 레안데르손

오스카는 불량한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소년이다. 처음에는 '저쪽 아이들은 저 정도가 끝인가?' 라며 심드렁하게 봤지만 그 괴롭힘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심해지고, 나중에는 정말 심하다고 생각할만한 정도가 된다. 하여튼 오스카는 칼로 나무를 찌르면서 그 아이들에게 복수하는 상상을 하고, 그 모습을 옆집에 이사온 엘리가 보게 된다. 엘리는 마치 <프라이트 나이트>처럼 오스카의 옆집에 이사 온 흡혈귀인데, 호칸이라는 중년 남자가 엘리를 대신해서 살인을 저지른다. 호칸이 살인을 잘 마무리하지 못하자 엘리가 직접 나서는데, 그녀 역시 다른 사람 눈에 띄게 된다. 한편 오스카는 엘리와 친해지고, 둘은 서로 좋아하게 된다.

1. 엘리와 호칸은 서로 어떤 관계인가? 영화 속에서 둘의 관계는 명확하지 않다. 지체 높은 흡혈귀들은 하인을 거느리고 있기도 한데, 호칸은 엘리의 하인인가? 하지만 호칸이 엘리를 상전으로 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면 호칸은 엘리의 아버지인가? 두 사람의 나이는 확실치 않지만 엘리가 오랫동안 열 두살이었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혈연 관계, 적어도 부녀 관계는 아닌 것 같다. 원작이 있다니 그걸 읽어 보면 두 사람의 관계를 알 수 있겠지만, 국내에서는 출간도 안 된 작품일 테니 그건 제쳐두고... 어쩌면 호칸은 미래의 오스카의 모습 아닐까? 어려서부터 좋아했지만 한 쪽은 나이가 들고, 다른 쪽은 그대로 열 두살인 채로 살아가고. 평범한 인생을 포기하면서까지 돌봐줬지만, 결국은 자신을 버려야 하는 처지로까지 몰리는... 그렇게 보면 이 영화 정말 우울하지 않은가?

2. 보덴부르크의 <꼬마 흡혈귀> 시리즈를 보면 안톤이 시골로 여행을 가는 대목이 있다. 안톤은 도시에서 흡혈귀 사냥꾼들을 피해 도망친 루디거와 안나를 만나게 되는데, 안톤이 읽는 신문에는 원인 불명의 빈혈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기사가 나온다. 물론 그 곳은 루디거네 식구들이 정착한 곳이고. 안톤은 이 기사를 읽고 이런 병에는 창문을 닫고 자는 것과 마늘이 특효약일 거라면서 웃고 만다. 초등학생들이 주 독자층이었던 꼬마 흡혈귀 시리즈에서는 말랑말랑하게 그리고 있으니 생각하기 힘들었지만, <렛 미 인>을 보니 확실해진다. 흡혈귀와 친구가 된다는 것은 살인의 동조자가 되는 것이다. 그건 친구가 조폭이나 마피아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영화에서도 오스카는 동네 남자인 라케가 엘리의 은신처를 찾아냈을 때, 그를 방해해서 엘리가 그를 죽이도록 만든다.
그러고 보면, 엘리가 오스카를 괴롭히던 아이들을 죽인 것도 이해가 간다. 처음 볼 때는 지나치게 잔인하지 않았나 생각했지만, 오스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흡혈귀와 친구라는 사실은 알려져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3. 영화도 재미있고, 그만큼 인상적인 장면도 많다. 오스카가 엘리를 어설프게 껴안는 장면도 좋았고, 엘리에게 물려 흡혈귀가 되어 가던 버지니아라는 여자가 고양이를 많이 키우는 고스타라는 남자의 집으로 들어가는 장면. 집안에 있던 고양이들이 일제히 온 몸의 털을 세워 버지니아에게 달려든다. 그리고 초대받지 않은 상태에서 집안으로 들어온 엘리가 눈에서 피를 흘릴 때, 그 무서운 표정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고 바라보던 오스카의 모습도.

4. 주인공인 남자 아이가 정말 예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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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The Unseeable, 2006)

감독 : 위시트 사사나티앙
출연 : 시라판 와타나진다, 수폰팁 추안그랑스리, 타사완 세니왕세


<카르마>는 카르마(업)와는 별 상관 없는, 주인공 누알의 귀신 체험기로 보인다. 누알은 밤마다 란 부인의 저택에서 갖가지 다양한 귀신들과 마주친다. 중간에 누알이 남편과 재회하는 장면 등 <카르마>는 많은 면에서 <디 아더스>와 닮았지만 <디 아더스>와는 달리 핵심적인 테마를 잃고 방황하는 것처럼 보인다. 누알은 란 부인의 침실에서 정체불명의 남성을 목격하고 이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는 장면이지만 영화를 이끌어가지는 못한다. 란 부인의 남자는 과연 누구인가? 하지만 관객들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감독도 이 부분을 지나가는 이야기처럼 다루고 있는 것 같고. 영화는 누알이 다양한 귀신들에게 시달리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반전을 통해 저택과 란 부인의 비밀을 밝힌 뒤 막을 내린다.
그래도 <카르마>는 꽤 재미있다. 사기에 가까웠던 <바디> 보다는 훨씬 낫다. 으스스하기도 하고. <카르마>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누알이 하녀 초이와 함께 귀신 이야기를 하면서 웃을 때 소녀 귀신이 달려와 함께 웃던 장면. 초이의 정체가 밝혀지는 부분도 꽤 좋았다.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것은, <카르마>에서 관객들에게 죽은 것 같이 보이는 사람들이야말로 사실은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다만 <카르마>는 누알 남편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중간에 초이가 슬며시 없어진다는 것 등 관객들에게 꼬리가 쉽게 밟히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을 보면 꼭 란 부인과 솜짓이 누알을 가지고 놀고 있는 것 같지?

이 영화를 통해 알게 된 태국 흡혈귀에 대한 상식 몇 가지.
1. 태국 흡혈귀는 탯줄을 먹는다. 흡혈귀가 탯줄을 먹지 못하게 하려면 항아리에 넣어서 땅에 묻어야 한다.
2. 태국 흡혈귀는 아기 기저귀에 피를 닦는다.
3. 태국 흡혈귀는 제삿밥도 먹는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

초이는 할머니가 흡혈귀라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본인이 흡혈귀고, 아이의 탯줄도 초이가 먹은 것이었다. 그런데 누알은 임신한 채로 죽었고 아이도 태어나지 않았으니까, 초이가 아이의 탯줄을 먹는 장면은 누알의 상상일 텐데... 그럼 초이가 흡혈귀라는 사실은 믿을 수 있는 건가, 없는 건가? 관객들은 누알의 환상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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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티 데이즈 오브 나이트 (30 Days of Night, 2007)

감독 : 데이비드 슬레이드
출연 : 조쉬 하트넷, 멜리사 조지, 대니 휴스턴, 벤 포스터



<써티 데이즈 오브 나이트> 첫 장면을 보면 이 영화가 다른 많은 뱀파이어 영화들처럼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에서 여러 가지 설정을 빌려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드라큘라>에서 드라큘라 백작이 배를 타고 영국으로 건너온 것처럼 <써티 데이즈 오브 나이트>의 흡혈귀들도 첫 씬에 등장하는 그 배를 타고 알래스카의 배로우로 건너 왔을 겁니다. 그 배가 어디서 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요. <드라큘라>에서는 미친 렌필드가 드라큘라 백작의 추종자로서 그를 돕는데, 이 영화에서는 의문의 이방인 한 명이 <드라큘라>에서의 렌필드 노릇을 합니다. 나중에 그는 흡혈귀들의 우두머리인 말로우에게 목이 꺾여서 죽게 되는데 <드라큘라>에서 렌필드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과 흡사하죠.

영화가 전개되다 보면 약간 어긋난 점들이 보입니다. 가령, 영화의 초반부에 조쉬 하트넷이 연기하는 보안관 에벤 올슨과 그의 동료는 불타버린 휴대폰들을 발견하는데, 그것은 의문의 이방인이 한 짓으로 묘사됩니다. 흡혈귀들이 습격하기 전에 마을을 완전히 고립시키려는 거죠.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방인이 모든 사람들의 핸드폰을 훔치지도 못했으며(얼마 뒤에 스텔라 올슨도 핸드폰으로 에벤 올슨에게 연락을 합니다), 흡혈귀들이 마을의 통신 시설을 공격하여 파괴시킨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것 같은데(어쨌든 외부에서 연락이 오질 않으니) 굳이 그런 수고를 해야 했을지 의문입니다.
그리고 흡혈귀들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언어를 가진 것으로 묘사됩니다. 하지만 이방인에게 마을을 고립시키기 위한 여러 가지 행동을 지시한 것과, 나중에 살아남은 마을 여자 한 명을 미끼로 쓰는 것 등에서 알 수 있듯이 흡혈귀들이 흡혈귀의 언어를 써도 사람과 의사소통이 됩니다. 그럼 굳이 흡혈귀들이 인간과 다른 언어를 가진 것으로 설정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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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몇 가지 어긋난 점들과 관계 없이 영화는 재미있습니다. 스릴도 있고요. 가장 독특한 것은 흡혈귀들의 대장 노릇을 한 말로우인데, 다른 흡혈귀들이 피에 굶주린 좀비들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 반면 말로우는 쿨한 악당 두목처럼 보입니다. '신은 없다'는 따위의 무신론적인 대사를 날리기도 하고,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리며 흡혈귀들에게 맞선 인간을 처단할 때는 "맞설 수 없는 것에 맞서는 인간들은 자기 자신을 파괴시키는 것과 다름 없다"며 머리를 밟아서 죽이기도 합니다. 이 장면에서 말로우는 희생자의 피를 빨거나 오랫 동안 괴롭히지 않고 단번에 숨을 끊는데, 마치 인간들은 어리석다고 말하면서도 자신들에게 맞선 용기를 보아 관대한 처분을 내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인물형은 사실 독특하지는 않고, 또한 이런 연기를 잘못 하면 바보처럼 보이기 십상이지만 말로우라는 캐릭터는 그런 함정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다행입니다.

그렇기에 말로우처럼 꾸준히 쌓아 올린 캐릭터가 마지막에 무너지는 것은 보기 안타깝습니다. 마지막 장면을 흡혈귀와 인간의 대결, 즉 목숨을 건 사투로 묘사한 게 아니라 흡혈귀와 흡혈귀의 막싸움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에 영화 내내 그럭저럭 유지시켜 왔던 긴장감은 사라져 버립니다. 긴장감이 사라질 뿐만 아니라 말로우도 깡패 대장으로 떨어져 버립니다. 싸움꾼이 왔다(흡혈귀들 앞에 나타난 에벤 올슨을 본 말로우가 하는 말)니, 무슨 파이트 클럽입니까? 게다가 에벤 올슨이 말로우에게 일격을 가하는 장면은 어이가 없을 지경이고, 여기서 말로우의 카리스마도 완전히 사라져 버립니다. 마지막 부분이 달라졌다면 이 영화는 훨씬 더 좋아졌을 겁니다. 30일 중에서 단 며칠 간의 이야기만을 보여 주는 건 아쉽지만 그럴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고요.
이 영화에는 괜찮은 장면이 여러 개 있습니다. 흡혈귀들이 마을에 처음 들어왔을 때 사람들을 집에서 끄집어내어 무차별 학살하는데, 카메라는 그 장면을 부감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장면을 생각할 때마다 괜찮았다는 기분이 드는 한편으로, 부감이 아니라 다르게 찍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에벤 올슨과 일행들이 눈보라를 틈타서 이동하는 장면을 느리게 찍은 것도 좋았고요. 라스트 씬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블레이드 2>를 떠올리게 하는 건 있었지만요.


추신

1. 흡혈귀들이 물러간 뒤에 사람들이 여기 저기서 나타나는데 그 수가 꽤 많은 걸로 보아, 말로우가 "마을을 말살시켜서 우리의 정체를 감춰야 된다"고 지시를 내리긴 했지만 그게 별 효과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 영화의 흡혈귀들이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전설로 남지는 못하겠네요.
말로우는 마을에서 처음 사람을 죽인 뒤에 "변신하지 못하도록 목을 자르라"고 명령을 내리는데, 이건 흡혈귀로 변하지 않도록 희생자의 목을 자르라는 이야기였던 것 같습니다. 흡혈귀들이 자신의 존재를 인간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오랜 세월 자신을 전설로 꾸며 왔다는 설정에 비춰보면 이런 조치는 흡혈귀들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것 같습니다. 무리의 수가 늘지 않도록 조절해야 정체를 들킬 위험도 줄어들겠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에서 공격을 받아 흡혈귀가 된 마을 사람들이 여럿 나오는 걸 보면 여기 흡혈귀들은 확실히 뒷처리를 잘 못합니다.

2. 이방인 역으로 나오는 배우를 찾아보니 벤 포스터, 바로 <엑스맨 3>의 엔젤이더군요. 전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벤 포스터와 엘렌 페이지는 지금도 사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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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프라이트 나이트> 이후 현대의 흡혈귀들을 다룬 영화에서 몇몇 작품을 빼면 흡혈귀들이 변신하거나 십자가를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기 힘들어진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더욱 그렇겠지요. 이건 시대의 변화일지는 모르겠지만 흡혈귀가 자신의 개성을 잃어버리고 급기야 좀비와 혼동되기까지 하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좀 안타깝습니다.

4. 이 장면을 예고편에서 봤을 땐 마을에 이제 막 들어온 흡혈귀들이 마을을 내려다보는 장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상당히 마음에 드는 이미지였는데, 영화를 보니 마을에 들어온 지 한참 뒤의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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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마을 이름은 배로우, 흡혈귀 이름은 말로우. 그런데 스티븐 킹의 <살렘스 롯>에 나오는 흡혈귀 이름은 발로우(Barlow)입니다. 배로우 말로우 발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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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성의 무도회 (The Fearless Vampire Killers, 1967)

감독 : 로만 폴란스키
출연 : 로만 폴란스키, 잭 맥고런, 샤론 테이트, 퍼디 메인, 알피 바스


이 영화는 어렸을 때 KBS 토요명화에서 처음 봤습니다. 중간부터 봤지만 이 영화를 오랫동안 잊지 못했던 것은 당시로서는 몹시 무서웠던 결말 때문이었죠. 이 영화를 기억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다가 작년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호러 영화 파티 행사를 할 때 다시 봤습니다. 그때 뭔가 끄적여보려다 만 것은 영화 내용에 대한 오해가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여자 주인공 두 사람을 착각했습니다. 나중에 흡혈귀가 된 여관 주인 샤갈이 하녀를 집적거린 것인데, 딸을 집적거린 것으로 오해한 것이죠. 제가 생각해도 뭔가 이상했고 쓰지 말아야겠다 싶었습니다. 어제 EBS에서 다시 보았는데 공중파에서 몇 년 만에 방영한 것인지...

아브론시우스 교수는 박쥐 연구자이자 흡혈귀 전문가입니다. 동료 교수들에게는 따돌림을 당하는 것 같은데, 조수인 알프레드를 데리고 트랜실바니아 지역을 여행하고 있습니다. 이 여관 곳곳에는 마늘이 잔뜩 달려 있고, 사람들은 뭔가 숨기고 있습니다. 알프레드는 여관 주인 샤갈의 어여쁜 딸인 사라에게 반하는데, 사라는 여관에 나타난 폰 크롤록 백작에게 잡혀 갑니다. 아브론시우스 교수와 알프레드는 흡혈귀를 퇴치하고 사라를 구출하기 위하여 새벽에 그들의 성을 찾아가는데, 마침 그날 밤은 1년에 한 번 흡혈귀들의 무도회가 열리는 밤이었습니다.

뱀파이어 킬러(?)인 두 사람의 캐릭터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흡혈귀라는 존재에 대해 학문적인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아브론시우스 교수는 <드라큘라>의 반 헬싱에 필적하는 존재지만 그보다 훨씬 경박하고 현실 감각이 없는 사람입니다. 게다가 둔하죠. 흡혈귀들에게 쫓기는 와중에도 왕박쥐를 보고 감탄한다는 게 어쩌면 반 헬싱보다 더 학자다운 면모라고 할 수 있겠지만, 긴장감이 없고 주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눈치를 채지 못하는 것 등은 뱀파이어 킬러로서는 실격입니다. 탑 꼭대기에서 탈출하는 장면 등을 보면 원래 머리가 나쁜 사람 같지 않아요. 그의 제자인 알프레드는 지나치게 마음이 약한 사람이라 역시 실격입니다. 그가 폰 크롤록 백작의 심장에 제대로 말뚝을 박았다면 모든 일이 잘 풀렸을 텐데 말입니다. 알프레드가 사랑하는 사라도 별로 영리하지는 않고, 그저 목욕을 좋아하는 철없는 아가씨로 그려집니다. 마지막에 그녀가 아브론시우스 교수와 알프레드를 따라 나선 것도 햇볕이 잘 비치는 아름다운 이탈리아의 휴양지에 대한 동경이 컸겠죠. 사라는 교육을 잘 받은 것 같은데, 샤갈은 마을 사람들 모두가 두려워하는 흡혈귀에 대해서 사라에게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러니 사라가 백작의 하인인 쿠콜의 눈에 띄게 되었죠. 마그다는 재빨리 숨었는데 말입니다.
하여튼 뱀파이어 킬러로서는 실격인 두 사람이 흡혈귀를 잡는다고 나섰으니 당연히 잡히는 흡혈귀가 있을 리 만무합니다.

이 두 사람이 비하면 흡혈귀들은 전형적인 귀족들입니다. 폰 크롤록 백작과 그의 아들인 헤르베르트는 좀 다르지만 나머지 흡혈귀들은 굉장히 무력한 존재로 그려지는데(아브론시우스와 알프레드조차 그들을 제압하고 옷을 뺏어서 갈아입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에 비하면 서민 출신인 흡혈귀 샤갈은 훨씬 활기차고 영리합니다. 샤갈은 폰 크롤록 백작에게 종속되어 있지만 그의 명령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하지도 않고, 굉장히 독립적이에요. 그런 장면도 있는데, 흡혈귀가 된 샤갈이 백작의 성으로 찾아와서 백작이 자는 방에 관을 두고 같이 자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쿠콜이 샤갈을 빛이 잘 드는 마구간으로 내쫓죠. 그런데 나중에 알프레드가 헤르베르트의 관을 열어 보니 샤갈이 그 위에서 자고 있습니다. 샤갈은 흡혈귀가 된 후에도 아브론시우스 교수와 알프레드를 피해 도망치고, 마지막에는 자신을 폰 크롤록으로 가장한 아브론시우스 교수의 협박에 꼴딱 넘어가는 우스꽝스러운 존재입니다. 그는 전통 민담에 등장할법한 흡혈귀인 것 같습니다.
샤갈과 그에게 죽음을 당한 하녀 마그다, 그리고 새로 흡혈귀가 된 사라와 알프레드는 고성에 틀어박힌 채로 "비쩍 마른 나무꾼 한 명을 두고 절망하는" 사멸해 가는 귀족 출신 흡혈귀들 대신 새로운 세계를 열어갈 것입니다. 생각해 보니 무섭기도 하고, 또 은근히 활기차고 민주적인 결말인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샤갈처럼 사라에게도 십자가가 안 통하겠네요.

이 영화에서 흡혈귀에 대한 이론은 정립되어 가는 상태고, 완벽하게 검증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각 영화에서 흡혈귀에 대한 설정이 서로 어떻게 다른지, 그걸 확인해 보는 것도 흡혈귀 영화를 보는 재미이지요. 아브론시우스 교수와 알프레드는 알리보리라는 사람이 쓴 것으로 보이는 책을 가지고 있는데, 그 책에 따르면 흡혈귀는 거울에 비치지 않습니다. 알프레드가 헤르베르트를 만났을 때 그가 거울에 비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그 이론이 맞다는 사실을 알게 되죠. 호기심이 지나친 아브론시우스 교수는 자기가 그걸 직접 확인해 봐야 된다고 안타까워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아브론시우스 교수는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며칠 요양하면 나을 거라고 사라에게 말하는데, 그 이론은 완전히 잘못 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서든 폰 크롤록 백작을 죽여야만 했어요.
재미있는 것은 다른 흡혈귀들에게는 십자가가 통하지만 샤갈에게는 십자가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인데(You got the wrong vampire!) 그건 샤갈이 유대인이기 때문입니다. 이건 영화에 직접 나오지 않습니다.

이렇게 이 영화에는 재미있는 설정들이 많은데, 우선 폰 크롤록 백작의 아들인 헤르베르트는 게이입니다. 상의만 입은 헤르베르트는 알프레드가 가진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100가지 방법이라는 책에 맞춰 그의 어깨에 손을 두르고 목을 물려고 하는데, 이 부분이 영화에서 가장 섬뜩하면서도 우스운 대목입니다. 간신히 도망친 알프레드가 어디 쳐다보지도 않고 회랑을 한 바퀴 돌아서 헤르베르트에게 돌아오는 장면도 있고, 헤르베르트가 음산한 음악에 맞춰 맹수처럼 달려드는 장면도 압권입니다.
옛 흡혈귀 전설, 그리고 많은 흡혈귀 영화에 따르면 사람이 흡혈귀가 되면 먼저 생전의 가족을 공격합니다. 여관 주인인 샤갈은 납치된 딸을 찾으러 갔다 흡혈귀가 됩니다. 당연히 돌아와서 아내를 흡혈귀로 만들어야 겠지만, 그는 아내의 눈을 몰래 피해서 하녀를 공격합니다. 죽은 다음에도 아내는 여전히 무섭고, 그래도 하녀랑 바람은 피워야겠고... 원래 샤갈에게 냉정하게 대하던 하녀는 일단 물리고 나자 눈이 맞았다고 해야 되나, 그런 사이가 됩니다.

이런 우스운 설정에 맞춰 여러 가지 재미있는 장면들이 있는데, 샤갈이 흡혈귀로 되살아나는 장면도 우스꽝스럽게 연출이 되어 있으며 아브론시우스 교수와 알프레드가 베게를 가지고 말뚝 박는 연습을 하는 장면도 재미있습니다. 다만 예측을 못했던 것은, 작년에 극장에서 볼 때 아브론시우스 교수와 알프레드가 칼을 빼들어 십자가를 만들어 흡혈귀들을 제압하는데 그 장면에서 사람들이 많이 웃더라고요. 일부러 우스꽝스럽게 연출한 장면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요. 하긴 작가의 의도가 관객들에게 달리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법입니다. 어쨌든 이 영화의 코믹한 장면들은 은근한 구식 스타일의 추격전과 관련된 설정들을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옛날 관객들에게는 당연히 잘 통했겠고, 그걸 식상하다고 여기는 시대에는 또 안 통했겠지만 이런 슬랩스틱이 귀한 지금 같은 시대에는 충분히 잘 통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우스운 영화라고 해도 마지막 장면의 공포스러움은 여전합니다. <박쥐성의 무도회>는 코미디와 호러를 거침없이 오가는 로만 폴란스키의 능력이 잘 발휘된 재미있는 영화이며, 또 이 영화를 찍으면서 만난 뒤에 결혼한 샤론 테이트와 로만 폴란스키의 비극적인 뒷이야기로도 잊을 수 없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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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lverine

앰워스 부인

읽은 책들 2006/12/25 18:33
<세계 공포 문학 걸작선 - 고전 편> 가운데 에드워드 프레드릭 벤슨(Edward Frederic Benson)의 <앰워스 부인 Mrs. Amworth>을 읽었다.

영국 서섹스 주의 작고 쾌적한 마을인 맥슬리에 앰워스 부인이라는 여성이 이사 온다. 인도 페샤와르에서 판사를 지낸 남편이 죽은 뒤에 그녀의 조상들이 살았던 이 곳으로 이사를 온 앰워스 부인은 활달하고 사교적인 미인으로 주변 사람들의 호감을 얻지만 곧 흡혈귀의 본색을 드러낸다. 앰워스 부인의 정체는 케임브리지 대학 심리학 교수 출신인 프랜시스 어컴브에 의해 드러난다.

외딴 시골 마을에 흡혈귀가 이사를 온다는 설정은 훗날에 쓰여진 스티븐 킹의 <세일럼스 롯>과 같고 프랜시스 어컴브는 이 소설의 반 헬싱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는 앰워스 부인의 정체를 너무 쉽게 눈치챈다. 그렇게 명랑하고 활기차게 그려 놓은 앰워스 부인을 갑자기 흡혈귀로 만드느라 소설은 이해하기 힘든 점을 많이 만들어놓았다.

박쥐 대신 각다귀가 나온다는 것은 특기할 만하다.

- 2006. 10. 28
Posted by Wolver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