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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만화 이야기 2007/05/13 11:40

300
프랭크 밀러(글, 그림), 린 발리(채색) 지음
김지선 옮김
세미콜론,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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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300>의 원작인 프랭크 밀러의 만화 <300>을 봤습니다. 판형이 크지만 100페이지도 안 될 정도로 분량이 적은데, 가격도 15,000원으로 만만하지는 않고요. 그래도 볼만합니다. 만화 <씬 시티> 같이 흑백의 대비를 특징으로 하지는 않지만 그림은 인상적이고, 영화의 몇몇 장면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영화에서 레오니다스 왕이 최후를 맞이하기 전 창과 방패를 내려놓고 페르시아 사신에게 무릎을 꿇는 걸 보면서 방심하게 하려는 것이겠지만 굳이 저럴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는데, 만화에서는 이렇게 나옵니다. "투구는 숨막히게 답답했다. 시야를 가렸다. 그는 멀리 보아야 한다. 방패는 무거웠다. 균형을 잃게 만들었다. 그의 과녁은 멀리 있다." 목숨을 돌보지 않고 크세르크세스 왕을 살해하려는데 자신을 지키는 도구인 투구와 방패는 오히려 방해가 되었다는 것이군요.
또 만화는 스파르타 동맹군의 규모를 설명하고 있는데 닥소스가 이끄는 아르카디아 군을 포함하여 테게아, 만티네아, 테스피아이, 테베, 오푸스, 포키스, 말리스 등등 스파르타 군을 빼고 7천 명의 병사가 모였다고 합니다. 에피알테스가 크세르크세스에게 염소의 길을 알려줬을 때 이곳을 지키던 이들은 포키스 인들이었는데 이들은 이모탈이 나타났을 때 도망가지만 테스피아이 인들은 레오니다스의 부하들처럼 싸우다 전사합니다.

프랭크 밀러가 원작을 바꾸는 걸 싫어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100페이지도 안 되는 짧은 만화를 영화화하려면 어느 정도 윤색하는 것이 불가피하겠죠. 거기에도 프랭크 밀러의 의견이 반영되었을텐데,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영화를 위해 새로 지어낸, 만화에 없는 이야기가 있고, 반대로 만화에만 나오는 부분이 있는데 특히 레오니다스의 왕비는 레오니다스가 스파르타를 떠나는 대목에서만 나옵니다. 그러니 페르시아와 내통하는 의회 지도자 테론, 그와 왕비의 대결 등은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스파르타 군인이, 자신을 전쟁터에서 영광스럽게 죽게 할 상대를 찾고 있다고 말하는 부분, 스파르타의 두 병사가 전공을 놓고 경쟁하는 부분, 테르모필라이 협곡의 전투 중에서 페르시아 기마병과 스파르타 중장보병이 대결하는 장면, 페르시아가 화약 무기(마법이라고 했지만 분명히 화약 무기)를 사용하는 장면 등도 역시 영화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이모탈이 민간인들을 학살해서 나무에 꿰어 놓는, 마치 <베르세르크>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도 그렇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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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루엣으로 등장한 레오니다스 왕의 오른쪽에 있는 여자가 왕비. 영화랑은 차이가... 많이 납니다.



영화에 빠진 장면은 뭐가 있을까요? 스텔리오스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스텔리오스가 페르시아 사신의 팔을 벤 뒤 화살이 하늘을 가리면 어둠 속에서 싸우겠다고 말하는 부분은 살아 있지만 행군 중에 쓰러진 뒤 구타를 당하는 장면, 왕이 이름을 불러주었다고 기뻐하는 장면 등은 빠져 있습니다. <300> 만화에서 스텔리오스는 레오니다스 왕에 이은 또 다른 주인공이나 마찬가지인데요. 스텔리오스 이야기 말고, 스파르타 인들이 쉬는 시간에 단련을 하는 장면도 영화에 빠졌는데, 그 단련이란 게 사람 한 명을 등 위에 올려놓고 한 팔로 팔굽혀펴기를 하는 겁니다. 병사가 방패와 창을 들고 다른 병사의 등을 밟고 선 상태에서 "지쳤나, 스파르타인?" "아닙니다." "마음에 드나, 스파르타인?" "너무 좋습니다." 따위의 대화를 나눕니다. 야한 뉘앙스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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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군 사흘째. 목이 타들어가는 무자비한 열기 속에서 젊은 스텔리오스가 비틀거린다. 용납할 수 없는 일. "스텔리오스 이 얼간이 놈." "처벌은 달게 받겠습니다." 지휘관의 구타가 계속되는데 왕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까요?

<씬 시티>처럼 꽉 짜이고 강렬한 것은 아니지만 영화 <300>을 좋아한다면 이 만화는 충분히 소장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신체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살아있고, 판형이 큰 게 만화책이라기보단 화보집 같은 느낌도 듭니다. 제가 보기엔 영화보다 만화의 신탁(oracle, 신탁녀)이 더 예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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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스파르타의 300인 가운데 이야기꾼인 딜리오스만 살아남는 것은 우연이 아니군요. 훗날 이야기가 전해진 것만으로도 레오니다스는 승리한 것과 다름 없습니다. 행군 도중에 쓰러졌다고 '쓰러질리오스'라는 모욕적인 이름을 얻은 스텔리오스에게는 마지막 순간에 왕에게 이름으로 불린 것이 귀중한 승리였고요.

책에 Thank to가 실려 있는데 그 마지막에 스텔리오스 자카리우(Stelios Zachariou)라는 이름이 올라가 있습니다. 만화에 나오는 스텔리오스는 이 사람 이름을 딴 것 같은데 구글에서 찾아보면 그리스 아테네 대학의 역사학자이자 고고학자인 스텔리오스 자카리우가 나옵니다. 이 사람이 맞는지는 알 수 없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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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lverine

300

영화 리뷰 2007/03/24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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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300, 2006)

감독 : 잭 스나이더
출연 : 제라드 버틀러, 레나 헤디, 도미니크 웨스트, 데이비드 웬햄

페르시아 대군에 맞서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 왕은 스파르타 용사들 중에서 대를 이을 자손을 남긴 자들을 골라 결사대를 만든다(스파르타 장군의 아들이 유일한 예외). 나이 든 사람도 있을지언정 이 스파르타 전사들은 기본적으로 근육질의 호남들이다. <베터 댄 섹스>에서 약간 늘어진 배를 내놓고 다니던 데이비드 웬햄(반지의 제왕에서 파라미르 역)도 이 영화에서는 각이 잘 잡힌 복근을 달고 있을 정도로.
그런 스파르타 전사들 앞에 곱사등이인 에피알테스가 나타난다. 불구로 태어난 에피알테스는 벼랑에서 떨어져 죽을 운명이었지만 그의 아버지는 스파르타를 떠남으로써 그를 살렸다.
에피알테스는 레오니다스 왕에게 스파르타 군에 속해서 싸우게 해 줄 것을 청하지만 레오니다스 왕은 에피알테스가 방패를 높이 들어올리지 못하므로 방진을 이룰 수 없다며 그의 청을 거절한다. 일생의 염원이 무산된 에피알테스는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황제에게 테르모필레 협곡의 사잇길을 알려주고 레오니다스 왕과 그 휘하의 결사대는 장렬히 전사하게 된다.

레오니다스 왕이 에피알테스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결과야 어찌되었든 합리적인 조치로 보인다. 에피알테스가 방진을 이룰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고, 레오니다스 왕이 에피알테스를 모욕한 것도 아니며 전투에 참가하는 대신 다른 일을 하라고 얘기하기도 했으니까. 다만 이 부분이 눈에 밟히는 것은 <300>에서 미추에 따른 구분이 너무 분명하기 때문이다. 배신자 에피알테스, 페르시아에 붙은 스파르타의 에포르 사제들, 이모탈 부대에 있는 거인 병사나 괴물 도부수 등은 모두 흉한 용모를 지니고 있다. 크세르크세스 황제 역시 기이한 용모를 지닌 거인으로 원래 그 역을 맡은 로드리고 산토로는 대단한 미남 배우라고 들었지만 이 영화에서는 단지 기괴하게 보일 뿐이다. 이에 반해 스파르타 병사들은 앞서 얘기했듯 모두 미남에 아름다운 육체를 지니고 있다. 그런 만큼 <300>이 타자를 적대시하는, 정치적으로 공정하지 않은 영화라는 얘기도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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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알테스


그러나 이러한 설정은 차별적인 시선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단지 스파르타 군인들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가 아닐까? 페르시아 군인과 악당들이 추하면 추할수록 스파르타 인들의 아름다움은 빛나게 되니까. 스파르타 군인들은 갑옷도 없이 투구와 붉은 망토만 걸치고 싸우는데 이렇게 차려입고 전투를 벌일 수 있었을까? 고증에 충실한 것인가? 의심스럽지만 이러한 차림은 그들의 육체적인 아름다움을 선명하게 부각시키고 있으며 이런 점이 관객들에게 먹히고 있는 건 사실이다.
또한 지적할 점은 스파르타 군인들의 전쟁을 대하는 자세이다. 물론 레오니다스 왕이야 안 그렇지만, 전쟁에서 지면 나라가 망할지도 모르는데 스파르타 군인들은 그 점에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것 같다. 예를 들어 페르시아의 대군이 도착하는 것을 본 스파르타 병사는 전쟁터에서 아름답게 죽음을 맞이하게 해 줄 용사를 찾고 있노라는 말을 하면서 즐거워하고, 전쟁에 참가한 다른 두 젊은 병사는 서로 간의 경쟁과 우정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 이런 점들 때문에 <300>은 사실적이라기보다 전쟁을 낭만적으로 그리고 육체에 집착하는 탐미적인 영화로 보인다.
그런 의도의 연장선상에서 스파르타 군인들의 최후를 흉하지 않게 장식하려는 목적이었는지는 몰라도 클라이막스에서 스파르타 병사들은 한순간에 전부 죽어 있다. <13인의 무사>의 적룡처럼 수십 분 동안 혼자 싸우다 죽는 것은 바라지도 않지만 <300>의 클라이막스는 너무 소략한 것 아닌지. 게다가 몇몇 중요한 조연들은 죽었다는 것은 알 수 있지만 그 최후가 나타나지 않는다. 이것이 <300>에서 가장 아쉬운 점 중 하나였다.

<300>은 다른 한편으로 스파르타가 자유로운 사회였고 그들이 정의를 위해 싸웠음을 강조하는데, 정작 영화를 본 나는 그들의 말과 달리 스파르타가 자유로운 사회가 아니라 전체주의적인 사회였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레오니다스 왕이 에피알테스의 청을 거부하는 장면을 보면서 느낀 건데, 방진이란 것 자체가 일정한 수준과 기준을 갖춘 사람들이 뭉치게 함으로써 그 기준에 미달하는 자, 비정상적인 자들을 자동적으로 도태시키는 시스템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물론 현대인의 시각에서 고대 군사 시스템을 단정짓는 것은 적지 않게 무리가 따르는 일이긴 하다. 하지만 <300>이 강조하는 이데올로기를 곧이 곧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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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진


덧말

1. <300>의 전투 장면은 지나치게 인공적이었다. <300>은 <씬 시티>와 원작자가 같고 스타일이 흡사하지만 그보다 더 낫다고 얘기하기는 힘들 것 같다. 맨손으로 싸우는 영화를 보고 싶다.

2. <300>의 중요한 주제 중 한 가지는 언어와 기억이다. 크세르크세스 황제는 스파르타의 기억을 지우고 기록을 모두 불태우겠다고 레오니다스 왕을 협박하고 레오니다스 왕은 딜리오스를 통해 의회에 나를 기억하라는 말을 전달한다. 기억을 둘러싸고도 전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또한 레오니다스 왕은 페르시아 군의 일원으로 앞장 선 에피알테스를 보고, 그와 싸우는 대신 영원히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저주를 남긴다.

3. 신탁녀(Oracle)가 유명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보면서 그렇게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춤은 부자연스럽고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다. 신탁녀보다는 아름답고 강인한 스파르타의 왕비가 훨씬 매력적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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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탁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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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의 사신을 만나고 있는 레오니다스 왕과 왕비. 왕비는 대단히 강인하고 영리한 여성이지만 의회에서의 연설은 시시했다. 설마 테론을 지나치게 믿은 건 아니겠지?



4. 나레이션에서는 마법이라고 하지만(당연하게도) 페르시아 군사들이 쓰는 것은 틀림없이 화약 무기이다. 그 시절에 화약이 발명되었는가? 아니면 화약을 대체할 만한 물건이 고대에 존재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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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크세르크세스 황제가 레오니다스 왕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는 장면은 은근히 동성애적인 암시를 풍기고 있다. 레오니다스 왕이 아테네를 가리켜 호모들과 철학자들의 도시 운운하는 걸로 보면 이 영화가 동성애를 그다지 긍정적으로 그리는 것은 아니다. 다만 스파르타 병사 중에서 두 친구의 우정을 보면 왠지 이 둘이 성적으로 끌리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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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데이비드 웬햄. 나와서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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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이모탈 부대와 괴물 거인. 이모탈 부대가 나무에 학살한 사람들을 꿰어놓은 것도 그렇지만, 이 부대를 보고 있으면 왜 <베르세르크>가 자꾸 생각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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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lver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