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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3/17 힛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by Wolverine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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힛쳐 (The Hitcher, 1986)

감독 : 로버트 하몬
출연 : C. 토마스 하웰, 룻거 하우어, 제니퍼 제이슨 리


"엄마가 히치하이커는 태우지 말랬는데요." 시카고의 대학생 짐 할시가 어느 비오는 새벽 자기 차에 히치하이커인 존 라이더를 태운 뒤 하는 말이다. 엄마 말씀 좀 새겨 듣지 그랬니. 살인마 존 라이더는 곧 본색을 드러내서 짐을 죽이려 든다. 천만 다행으로 존이 타면서 차 문이 덜 닫혀 있던 터라 짐은 존을 차에서 밀어내고 도망치는데, 존은 짐을 쫓아다니면서 사람들을 살해하기 시작한다. <힛쳐>는 이런 내용의 영화다.

이 영화의 살인마 존 라이더는 죽음의 본능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고속도로에서 히치하이킹을 하며 자신을 태워주는 사람들을 살해할뿐만 아니라, 마음 속으로 누군가 자신을 살해함으로써 자기를 멈춰 주길 바라고 있다. 그는 처음 만나는 짐 할시를 위협하며 "나를 멈춰달라."고 하더니(존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나는 죽고 싶다(I want to die.)"는 말을 하라며 그를 협박한다. 그 말을 하는 순간 존 할시가 죽게 되리라는 것은 뻔히 알 수 있는데, 짐은 나는 죽고 싶지 않다고(I don't want to die!) 외치며 그를 밀어 버린다. 짐은 삶의 본능이 되고, 죽음의 본능과 삶의 본능이 만나 서로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존은 자기에게 대항한 짐을 자신을 죽여 줄 사람으로 보고 그가 그렇게 하도록 몰아붙이는데, 죽음이 삶의 힘으로 자신을 완성시키려 한다는 이 기이함이란(여기서 말하는 죽음의 본능, 삶의 본능이란, 흔히 말하는 에로스와 타나토스와는 별 관계가 없다).

한때 끼고 살았던 <열려라 비디오 5000>이 이 영화의 각본가 에릭 레드가 참여한 영화를 짤막하게 평하면서 "<힛쳐>는 폭력의 정의를 다시 쓰도록 만든 엄청나게 폭력적인 영화" 라고 했던 게 기억 난다. 정의인지 개념인지, 그런 것까지는 지금 기억나진 않는다. 세월이 20년이나 흐르고 이 정도 수위의 고어/호러/액션 영화는 그동안 숱하게 나왔기 때문에 그 평가를 현재진행형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지만, 이 영화가 근본적으로 폭력적이라는 사실 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 폭력성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서 드러난다.

영화를 보면 석연치 않은 점을 몇 가지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짐을 추격하던 경찰관들의 죽음이다. 짐이 아니라 존이 살인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쳐도, 그 경찰관들은 분명히 짐이 죽인 것이다. 비록 경찰들이 짐을 죽이려 했고, 짐이 한 일은 제때 브레이크를 밟은 것밖에 없었다고 쳐도(짐의 양 옆으로 경찰차 두 대가 총으로 타이어를 겨눈 채 따라오고 있었는데 짐이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뒤로 빠지자 상대방의 타이어를 쏴 맞추게 된다). 그런데 존의 정체가 드러난 후 경찰이나 짐은 더 이상 그 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짐 역시 경찰 살해범인 것은 마찬가지인데 조사만 잠깐 받고 가라고 하는 것은 이미 그 사실을 안중에 두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 궁금증은 다른 장면을 보면 풀리게 된다. 영화 중반에 고속버스에서 짐을 쫓아온 경찰관이 짐에게 총을 겨누면서 나한테 침을 뱉었으니 그걸 닦으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짐이 그에게 침을 뱉은 적이 없었다. 언제 그랬지? 한참 지난 후에야 짐이 취조실에서 존에게 침을 뱉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이 말해주는 것은 두 가지인데, 이 영화가 시간적으로 순환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이 하나, 그리고 다른 하나는 경찰과 살인마는 서로 비슷하다는 점이다. 영화 중반 경찰들은 짐을 체포하기 보다는 그를 살해하는 데 더 신경을 쓰고 있으며, 존이 짐이 자신을 죽여주길(폭력을 사용해주길) 바라는 것처럼 경찰도 짐의 대응을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경찰과 존은 모두 폭력을 사용하는 주체이자 동시에 그것을 기다리는 주체인 것이다. <힛쳐>는 폭력을 긍정함으로써 짐이 존을 살해하지 못해서 내쉬를 죽게 한 것을 야유하고 있다. 이것이 이 영화가 근본적으로 폭력적인 이유이다. 물론 폭력을 해결책으로 사용하는 영화야 쌔고 쌨지만 <힛쳐>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요를 하고 있으므로 그런 영화들 이상 폭력적으로 보인다.

이 영화는 또 다른 석연치 않은 점을 보여줌으로써 스스로를 어떤 경지로 끌어올린다. 존이 이 영화에서 죽인 사람들 수는 대충 세어봐도 10명이 넘는데, 그 중에는 경찰도 있고 일반인도 있지만 가만히 보면 존이 일반인들을 살해하는 장면은 보이지 않는다. 살인하기 직전의 상황이나 암시는 충분히 하지만. 또한 존이 죽인 시체가 나오지 않는다. 고속도로의 일가족 살인 현장에서도 관객들은 짐의 신발에 떨어지는 피를 볼 수 있을 뿐이다. 경찰서에서 경찰들이 죽어 있는 장면, 운전석에 앉은 경찰들 두 명이 살해당하는 장면이 예외일 뿐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관객들은 짐이 있는 곳에서만 존이 살인하는 모습, 그리고 피살체를 볼 수 있다. 존이 호송차에서 탈옥할 때 카메라는 존이 샷건을 장전하는 장면만을 보여주고 있다. 당연히 그 자리에는 짐이 없었다.
그리고 짐이 가는 곳이라면 존은 어디든지 들어갈 수 있다. 통사정해서 들어갔던, 영업시간 전의 동네 레스토랑, 화장실, 모텔까지. 짐은 존이 일부러 신호를 남기지 않는 한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그런 점에서 존은 꼭 유령처럼 보인다. 특히 모텔에 나타나는 장면이 그랬는데. 어떻게 생각하면 사실은 짐이 살인마라는 결론도 내릴 법 하다. 하지만 존은 분명한 실체가 있으며 영화는 존이 또 다른 짐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죽음과 삶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아니니까. <힛쳐>는 폭력적일 뿐만 아니라 심리적이다.
몇몇 장면들, 감자튀김을 먹는 짐이 필요 이상으로 오래 앞을 바라보고 있거나 쓰러진 존이 다시 일어나는 장면은 지금에야 예측이 가능하지만 충분히 놀랄만하다. 그 잘린 손가락이 나오는 장면은 보면서 정말 헉, 소리가 나왔다.

아까 <힛쳐>를 시간적으로 순환하는 영화라고 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면 순환하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폭력이다. 죽음의 본능이 결국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켰으므로 살아남은 주인공은 고개를 숙인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은 통쾌하지 않고 씁쓸할 뿐이다. 토마스 C. 하우웰과 제니퍼 제이슨 리도 그렇게 인상적이진 않지만, 살인자의 절망적인 눈빛을 보여주는 룻거 하우어는 대단하다. 하긴 룻거 하우어가 나오는 <레이디 호크>는 어렸을 때 내가 가장 좋아했던 세 편의 영화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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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lver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