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미스터리 걸작선 I
한국 일본 추리작가협회 엮음
정태원 옮김
태동출판사, 1999
아파트의 귀부인
낡은 아파트에 사는 구보라는 남자가 아래층에 이사 온 귀부인에게 반한다. 구보의 아내인 묘코가 냄새를 귀신같이 잘 맡는다는 것이 작품의 포인트. 마무리가 인상적이다.
나체의 방
숙모의 집을 봐주는 사부로는 여자친구를 들이는데 그날 따라 자꾸 사람들이 찾아오고 사부로는 그들을 한 명씩 골방에 숨긴다. 별로 신선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이야기의 반복.
나폴레옹광
나폴레옹에 집착하여 그와 관련된 물건을 수집하는 나폴레옹광과 자신이 나폴레왕의 환생이라고 생각하는 나폴레옹을 닮은 남자가 만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이 단편선에서 가장 재미있는 작품.
고양이의 목
가까운 미래에 쥐들이 지능을 갖게 되고 덩치가 커지면서 인간을 압박한다. 인간은 쥐들과 조약을 맺고 그에 따라 고양이를 기르는 것이 금지된다. 설정은 재미있는데, 마지막 부분의 일장연설은 지나치게 판에 박힌 것 아닌가? 게다가 쥐가 고양이를 그토록 증오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편견일 수도 있다. 쥐에게는 개나 올빼미, 고양이가 모두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
광기의 계보
아름다운 소녀 기누코가 새엄마에게 괴롭힘을 당한다는 것을 그 담임 선생이 알게 된다.
3억 엔의 악몽
미즈자와 교코는 자신을 아리사와 나미코로 착각한 변호사를 만나 아리사와 나미코가 3억 엔의 유산을 물려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이유 없는 횡재는 없다.
얼굴
연극 배우인 이노 료기치는 유명 감독의 영화에 캐스팅된다. 이노 료기치는 오래 전에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술집 여자를 살해했는데, 그 와중에 마주친 남자가 있었다. 이노 료기치는 자기가 유명해지면 그 남자가 자신을 알아볼 거라고 생각한다. 지은 죄는 어디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 이 작품의 주제 아닐까. 이것 또한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정사의 배경
신문 기자 소네 슈지는 음독 자살한 한 가정주부가 실은 다른 남자와의 불륜으로 괴로워하고 있었으며 그 불륜남에게 살해된 것 같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된다. 괜찮은 작품이었다.
조건반사
신인 배우 미즈사와 미나코는 연기지도 담당 오모리 세이지로부터 최면 기법을 이용한 연기 훈련을 받게 된다. 세월이 흘러 미즈사와 미나코와 오모리 세이지와 결혼하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황폐해지고 마침내 미즈사와 미나코는 오모리 세이지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실제로 배우들이 연기 훈련을 하는데 최면을 이용했던 적이 있는지 궁금해지는 작품이다.
벽
이 책에서 가장 짧은 단편인데, 그 내용은 남자가 부인과 불륜남에 대한 것이다. 에드거 앨런 포가 더 오래 살았다면 이런 작품을 썼음직하다.
살의
한 여자가 남편의 정부를 살해하고 집행 유예를 받는다. 이 단편은 그 여자의 변호사와 남편을 통해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있는데... 음, 이건 잘 모르겠다.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소라
화약공장에서 정리해고 당한 뒤 극도의 빈곤에 시달리던 남자는 화약공장 사무실에 도둑질을 하러 가고 그날 밤 폭발사고가 일어난다. 이건 추리소설이 아니라 마치 1920년대 사회주의 작가들이 썼을 법한 작품이다.
무서운 선물
주인공인 남자는 바람둥이로 술김에 직장 동료와 키스를 나눴는데, 그는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기지만 여자는 생각이 달랐다. 그녀는 매일 꽃을 보내오는데 그 꽃들의 꽃말이 그 여자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이며 남자는 조금씩 황폐해지게 된다.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연습게임
수다쟁이 부인을 둔 남자가 부인의 수다로 괴로움을 겪고, 바람을 피우고, 결국 파멸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주인공 가지키의 정부인 미와의 동기나 심리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별로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은 안 든다.
우물이 있는 집
남편과 외딴 민박집으로 신혼여행을 온 주인공은 그곳에 오래 전에 들른 적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분위기는 좋은데, 왜 그렇게 여주인공을 악역으로 몰아갔을까?
복안
법의학자 고이케 고로는 유골의 생전 모습을 복원하는 복안법의 창시자로 쓰레기장에서 발견된 여성의 두개골을 조사하고 있다. 그런 그의 앞에 복안법을 배우라는 명령을 받은 과학수사 연구소 조수 스도가 나타난다. 나중에 고이케 고로는 죽은 여성의 유골을 복원시킨 결과 그것이 스도의 얼굴과 똑같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잠깐! 이건 우리나라 영화 <페이스>잖아! 작가인 소노 다다오는 1917년 생으로 어디를 보아도 이 작품은 21세기 이전에 쓰여진 것이다. <페이스>의 영화 정보를 보면 이 영화에 원작이 있다는 얘기는 어디에도 없다. 결국은 창의성 부족인 것인가? 그러나 작가는 이 작품을 귀신 이야기로 몰고 가지 않았고 그 바람에 소설은 오히려 더 믿음직하지 못하게 되었다.
사랑
아이를 길러주는 육아로봇을 다룬 SF 소설. 이 소설에서는 미래의 로봇에 동물의 뇌세포를 사용하는 것으로 되어 있고, 그로써 로봇이 동물의 감정을 갖게 된다. 그러나 사자가 새끼를 벼랑에서 밀어 떨어뜨린다는 것은 사실인가? 속설과는 달리 그런 모습을 본 적은 이제껏 한번도 없다.
산키치의 식욕
와타나베 게이스케의 이 단편은 낮에는 상회에서 일하고 밤에는 야학에 다니는 가난한 산키치의 이야기다. 늘 배고픔에 시달리는 산키치는 우연히 3엔을 얻고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기로 한다. 따뜻하고 웃기는 소설.
쇼윈도의 연인
모방벽이 있는 다마루 소진이라는 남자가 한 작가의 작품처럼 쇼윈도 안의 마네킹을 사랑하게 되어 소동을 일으킨다. 나중에는 그의 행동이 고객의 의뢰에 따라 센세이션을 일으키려는 연극이었음이 밝혀지는데, 이런 장사라면 여러 번 계속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범인은 누구인가
음반회사 사장 미노다 코지가 자신이 퇴짜를 놓은 밴드의 멤버에게 살해된다. 문제는 목격된 범인이 쌍둥이라서 둘 중 어느 쪽이 살인범인지 알 수 없다는 점. 이런 설정의 작품이라면 지금도 먹힐 것 같은데, 이 작품은 여기서 더 발전하지는 않는다.
계단을 오르는 남자
이 작품이 묘사하는 미래 사회는 25,000층 짜리 건물 안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고속 엘리베이터를 버스나 지하철 타듯 이용하는데, 그 와중에 걸어서 건물 끝까지 올라가겠다는 남자가 있었다. 이 작품은 SF로 시작해서는 선지자에 대한 이야기로 끝나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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