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성 엮음
동아일보사, 1993
정확히 말하면 [정치공작사령부 KCIA - 남산의 부장들 3권]이 제목입니다. 필자가 김충식에서 이도성 기자로 바뀌었고요. 1993년도 책이니 10년 넘었습니다.
[남산의 부장들] 시리즈는 중앙정보부를 중심으로 한국 정치 비사를 소개하고 있는 책이지만 3권에서는 막상 중앙정보부 얘기가 많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 책이 소개하고 있는 시기가, 김재규(편의상 인명의 존칭을 생략하겠습니다.)의 박정희 살해 이후 중정의 활동이 거의 정지되어 있던 때와 일치하는 탓도 있습니다. 여하튼 이 책은 1980년 4월 14일 전두환이 중앙정보부장 서리로 임명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가 정권을 잡아나가는 과정을 그려냅니다. 12.12를 비롯하여 5.17 등 쟁점이 될 만한 당시 사안들에 대한 이 책의 기본 입장은 신군부의 집권욕이 알파이자 오메가였다는 거죠. 전편과 비교하면 그다지 재미있게 읽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흥미있는 사실들을 추려낼 수 있었습니다.
- 최규하에게도 야망이 있었다는 징후가 발견된다. 이원집정제에 대한 관심이라든지, 청와대에 입주하기에 앞서 내부 수리 기간이 3개월이나 되었다는 것은 그가 임시 대통령 이상의 것을 꿈꿨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 당시 청와대 비서관 Q에 따르면 전두환이 중정부장으로 취임한 4월 중순 청와대 신관에서 신군부의 실세인 권정달이 누구에겐가 "최통 그만두지 않으면 잡아넣겠어" 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삼국지에서 조조의 부하들이 헌제를 위협하는 장면이 생각난다.
- 1979년 공화당 정풍운동과 관련하여 그 주도자로 박찬종 의원의 이름이 등장한다. 중딩때는 대단히 깨끗한 정치인인줄 알고 있었던 인물. 박찬종, 오유방, 남재희. 이 사람들도 소장파 소리를 듣던 때가 있었구나.
- 이후락이 공화당을 탈당하기 전에 남긴 말. "정치자금을 만지다보니 이런말 저런말을 들었지만 떡고물 안 흘리고 떡을 만들 수 있느냐." 떡고물이라는 정치판의 은어가 여기서 처음 등장했던 것일까?
- 김종필은 부패했고, 김영삼은 머리가 나쁘고, 김대중은 사상이 의심스럽다는 3김 불가론의 원형은 군부에서 먼저 등장한 것일까? 사상이 의심스럽다는 이유의 김대중에 대한 비토론은 신군부 만이 아니라 반대측에게도 있었음을 확인시켜 주는 대목이 있다.
- 이 책이 쓰여진 지도 10년이 넘었는데, 12.12 사태에 대해서 이제 쟁점으로 남아있는 것이 있을까? 당사자들만 입을 열지 않고 있을 뿐, 확실히 12.12 사태는 하극상이 분명하다. 대통령의 재가가 나지 않은 상황에서 계엄사령관을 연행하고 상관의 허락 없이 부대를 이동시켰다는 점은 명백한 범법 행위이고. 그래서 등장하는 말이 "구국의 결단" 이겠지.
- 언론에 대해 벌였던 K-공작계획에 대해서도 나온다. 보안사는 3김씨를 민주화 세력, 신군부를 안정화세력으로 차별화시키고 언론계에서 협조 가능한 사람들을 포섭했다. 학원의 시위와 노사분규를 사회혼란의 징표로 몰아붙이는 한편 3김씨의 대결을 추악한 파벌싸움으로 비쳐지도록 언론을 움직였다는 것. 물론 여기에는 언론에 대한 검열이 뒤따랐다. 이 책은 80년 5월 당시 학생운동 지도부의 서울역 회군도 신군부의 언론조작이 먹혀든 결과로 설명하고 있다.
- 북풍 공작도 빼놓을 수 없다. 신군부는 북한의 특수8군단 남침설을 여론주도층을 중심으로 퍼뜨렸다. 그리고 5월 12일 미군순찰대와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비무장지대 공동관리구역 남방에서 총격전을 벌였다는 미국방부의 발표가 있었으나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다.
- 주욱 읽어나가다 보면 전두환 집권 계획의 그림이 그려진다. 신군부는 정치권력을 장악하면서 기존 정치권을 완전히 재편하고자 했으며 여당과 야당까지도 새로 만들고자 했다.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3김씨 모두 정치적으로 타격을 입었지만 가택연금에 불과했던 김영삼과 김종필에 비해 김대중에게 가해진 박해는 급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김대중 본인은 잠을 재우지 않고 모욕을 가하는 선에서 마무리되었지만 측근들에게는 엄청난 고문이 가해졌다. 광주 민주화 운동의 배후에 김대중을 연결시키는 것이 공작의 키포인트.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기 전에 김대중이 먼저 체포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둘을 연결시킨 것은 고문의 힘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정치권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으로도 엄청난 숙정이 가해진다. 언론인 해직, 공무원 해임, 방송사 통폐합, 삼청교육대 등등.
- 저자는 김대중이 김영삼과는 급을 달리하는 정치인이라는 결론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낸다. 부패 정치인으로 연행되어 조사를 받던 김종필이 풀려나자마자 바로 노태우를 만나 2인자로서 주의해야 할 것들을 일러주었다는 일화는 그의 정치적 감각이 장인의 경지에 이른 것임을 알려준다.
- 저자는 관련 인물들의 증언을 통해 허문도, 허화평, 허삼수 세 명의 허씨 가운데서 전두환을 대통령으로 만들고 모든 상황을 주도한 인물이 허화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신군부에서는 정치인들을 연행하면서 그들의 재산을 모두 몰수했다. "어려운 집안 출신이 많은 11기생들이 사회주의혁명을 일으킨 줄 알았다." 는 증언도 나온다. 조순이 국보위 분과위원장직을 거부했기 때문에 쫓겨났다는 얘기나 국보위 분과위 구성을 마친 뒤 신군부가 파티를 열 당시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 좌석 뒤편 병풍에 대통령 휘장에 사용되는 봉황이 새겨져 있더라는 일화는 재미있다.
- 문성근 이야기도 나온다. 내란음모혐의로 김대중이 1심 재판을 받을 때 계엄사의 통제를 피해 피고인 가족들의 진술을 모아 유인물을 작성한 사람이 바로 문성근이었다. 문성근의 아버지인 문익환 목사도 그때 같이 재판을 받고 있었다.
- 그 악명 높은 발언, "광주사태는 마이애미 폭동 정도 된다." 는 망언의 출처도 확인할 수 있었다.
- 2005.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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