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저 (Closer, 2004)
감독: 마이크 니콜스
주연: 주드 로, 줄리아 로버츠, 나탈리 포트만, 클라이브 오웬
영화의 첫 장면은 대단히 인상적으로 시작합니다. 근래 본 영화들의 오프닝 가운데서 손에 꼽을 정도로 아름다운 장면 아니었나 싶습니다. 대미안 라이스의 The Blower's Daughter가 흐르고 'I can't take my eyes off you'라는 가사가 흘러나오면, 인파 속의 주드 로와 나탈리 포트만이 걸어오면서 서로 눈을 마주치고 웃음을 나누죠. 그러다 나탈리 포트만은 차에 살짝 치이는 사고를 당하는데, 놀란 주드 로가 그녀에게 다가섰을 때 눈을 뜬 나탈리 포트만이 이렇게 말합니다. 'Hello, stranger.' 나중에 줄리아 로버츠는 주드 로에게 말합니다. 나는 낯선 사람과는 키스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녀의 사진전 제명은 낯선 사람이죠.
신문사의 부고 담당 기자 댄이 알리스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영화의 첫 머리가 지나면, 알리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소설을 쓴 댄이 사진작가 안나를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안나에게 반한 댄은 그녀에게 키스하고 알리스는 댄과 안나가 실랑이를 벌이며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됩니다. 느닷없이 돌아서서 눈물을 흘리는 알리스의 얼굴에 안나는 사진기를 들이댑니다.
그 후, 피부과 의사인 래리는 안나를 가장한 댄과 음란 채팅을 나누고 그것을 계기로 안나를 만나게 됩니다. 래리와 안나 커플, 댄과 알리스 커플이 전시회에서 마주칩니다.
영화 속에서 정말 끔찍했던 것은 래리와 댄, 두 남자였습니다. 두 사람은 상대방에게 끊임없이 진실을 확인하려 들죠. 래리는 안나에게 댄과 했느냐 안 했느냐, 어디서 했느냐, 몇 번 했느냐, 좋았느냐, 어떤 자세였느냐를 꼬치 꼬치 캐묻고, 댄도 나중에 알리스에게 래리와의 정사 여부를 캐묻죠. 오직 진실이 알고 싶을 뿐이라고. 하지만 그건 진실을 빙자한 소유욕과 집착을 드러내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그들은 그렇게 진실을 강요하지만 정작 진실에 대해 열려 있지는 않습니다. 진실을 털어놓아도 진실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녀들은 거짓을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소유욕과 집착은, 세월이 흘러 늙은 사랑의 초라한 모습일 겁니다.
래리와 댄이 래리의 병원에서 만나는 장면은 그야말로 적나라한 투쟁의 모습을 보여주죠. 약한 수컷인 댄은 자신보다 강한 수컷인 래리에게 꼬리를 내리고 울음을 터뜨리는데, 나중에는 친절하게 대해줘서 고맙다는 말까지 합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숱하게 겪고, 지켜봐온 싸움의 속살을 세월이 흘러서 다시 보는 건 당혹스럽기 짝이 없었죠. 주드 로는 이 장면에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추하게 보이지만 저는 그게 인간의 진실이려니 생각합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상대를 만나면 비굴해질 수밖에 없는 거죠.
래리와 안나 커플은 전형적인 3류 에로 영화의 전철을 밟는 것 같습니다. 일 때문에 바쁜 남편과 그의 불만족한 아내. 댄은 안나를 우울증 환자로 묘사하면서 우울증 환자들은 우울해지지 않으면 존재 가치가 없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계속 우울해지려 한다, 뭐 이런 식으로 애기하는데, 같이 영화를 본 친구는 안나에게 자신을 감당하기 어려운 쪽으로 몰아가는 듯 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하더군요. 물론 그걸 우울증으로 보는 것은 래리의 단편적인 분석이라는 말도 덧붙였고요. 전문직 여성이라 생계 수단이 없는 것도 아닌데 연인에게 버림받자 마자 전 남편에게로 돌아가는 것은 그렇게 밖에는 설명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여하튼 두 커플이 행복하게 살 수 없으리라는 것은 명약관화한 듯 보입니다.
사랑 앞에서 너무나 비열하고, 특히 섹스에 관해 집착이 강한 래리, 그리고 래리와 사실은 별 차이가 없는 댄. 래리와 잤는지에 대해 계속 채근하는 댄에게, 침대에 누워있던 알리스는 고개를 돌리고 이제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번쩍거리는 깨달음의 순간이 왔던 것일까요. 알리스가 댄을 버린 것은 씁쓸하지만 옳은 판단이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런 남자는...
영화 속에서 가장 우스웠던 장면은 래리가 안나를 가장한 댄과 음란 채팅을 하는 대목입니다. 대화의 수위가 높아지면서 댄은 걸려오는 전화도 끊고, 블라인드도 치고, 완전히 집중 모드가 되죠. 누구나 한번쯤은 저런 적이 있을 텐데, 남의 눈을 꺼려하면서 몰입하는 모습이 옛날 생각 나게 만드네요. 방가방가~ 류의 번역도 가끔 지나치긴 하지만 우습고. 배우들에 대해 얘기하자면, 예전부터 느꼈던 거지만 줄리아 로버츠는 별 매력이 없어요.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연민을 자아내게 만듭니다. 가장 좋았던 것은 어느 모로 보나 나탈리 포트만이고 클라이브 오웬과 주드 로는 뭔가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 같은 느낌입니다. 특히 사진전을 비판하는 나탈리 포트만의 대사는 인상적입니다. 남의 슬픔을 너무 아름답게 잡았고, 그 사이에 진실은 다 빠져나갔다. 고로 이 사진들은 쓰레기에 불과하다.
사랑이든 뭐든 영원한 것은 없겠죠. 집착으로 사랑을 되찾을 수 없다면,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해야 할까요?
추신) 오늘 영화를 같이 본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군요. 좋은 추억이 생겼습니다.
- 2005.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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