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네 번째 이야기 - 죽음의 숲 (Dark Forest, 2006)
감독 : 김정민
출연 : 이종혁, 소이현, 김영준, 최성민, 이예원, 박충선
어느 날 갑자기 시리즈의 네 번째 영화인 <죽음의 숲>은 기타무라 류헤이 감독의 <버수스>와 마찬가지로 숲을 무대로 합니다. 그러나 <버수스>가 확실한 논리와 액션을 갖고 있는 반면 <죽음의 숲>에는 그게 없습니다. <버수스>에서 숲에서 죽는 사람들이 좀비가 되는 까닭은 그 숲이 다른 세계와 연결된 통로이기 때문이지만... <죽음의 숲>에서 사람들이 좀비가 되는 까닭은 뭘까요? 극중 승헌이 산이 산불로 영혼을 잃은 거다, 그런 소리를 하지만 그 산불은 사냥꾼 아저씨가 이 숲에서 좀비가 된 식구들을 처치하고 지른 것이니... 승헌의 말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
줄거리를 보면 등산을 떠난 다섯 명이 입산 금지 구역에 들어왔다가 하나 둘씩 좀비가 되어 갑니다. 여자 주인공인 정아는 언니가 유명한 무속인이었는데 동생의 죽음을 막는다며 교통사고를 내고 죽었습니다(전형적인 국어책 읽기식의 대사). 그러면서 주인공이 죽은 언니의 능력을 물려받은 건데... 쓸모가 많습니다. 정아는 가까운 미래를 내다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싸이코메트리도 할 줄 압니다. 주위에서는 언니가 죽은 뒤에 신기가 들렸다 하고... 정아는 이 그룹의 리더인 우진과 서로 사귀는 사이인데, 승헌은 우진의 동생으로 어렸을 때 우진이 어린 시절 그를 산에 두고온 뒤 사이가 멀어졌습니다(보면 승헌도 약간 신기가 들려 있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정아를 좋아하는 것 같고요. 나머지 멤버인 준후와 세은은 날라리입니다. 우진과 정아를 빼면 나머지 세 사람은 등산을 온 건지 뭐하러 온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여튼 준후가 먼저 다쳐서 좀비가 되면서 나머지도 하나 둘씩.
이 영화에 나오는 좀비는 인간성도 약간 남아 있는데(살아 있을 때의 버릇을 간직하고 있으며 수틀리면 욕도 합니다) 살인은 굉장히 즐기지만 식인은 하지 않습니다. 감독은 한국인의 정서에 맞는 '한국형' 좀비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하는데, 결과적으로 이 영화에서 창조한 좀비는 좀비의 중요한 본성이라고 할 수 있는 집단성, 식인 본능이 없는 단순한 살인마입니다. 이게 계산 착오였다는 영화 속에서 생생하게 드러납니다. 사냥꾼은 처음에 산으로 들어왔을 때 삽인지, 몽둥이인지로 좀비가 된 아내와 딸 둘을 때려잡았습니다(물론 그때는 좀비들이 한꺼번에 돌아다녔지만). 좀비가 된 승헌은 정아 하나도 제대로 죽이지 못합니다. 집단이 아니라면 좀비라는 괴물은 그렇게 강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 영화의 좀비들은 숫자도 얼마 안 되는 것들이 사람을 죽일 때 한없이 뜸을 들여서 영화를 지루하게 만듭니다. 좀비가 된 사냥꾼이 우진과 싸울 때도 총을 이리 들이댔다, 저리 들이댔다, 입 안에 넣었다, 빼서 뒤로 물러났다... 준후도 세은을 죽이지 않고 끌고 다니다가... <새벽의 저주>는 좀비들을 훨씬 빠르고 강하게 만들었으며 그 시도는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죽음의 숲>에는 좀비를 더 무섭게 할만한 플러스가 없습니다.
좀비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고어 장면은 여건상 찍기 힘들었을텐데, 그것을 대체하는 장면은 명백한 강간의 은유인 불쾌한 살인 장면 뿐입니다. 제대로 된 좀비 영화를 만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이 영화를 통해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는데, 다른 영화 같았으면 백 번은 처치하고 남았을 좀비 넷을 처리하느라 영화 러닝타임이 다 지나갑니다. 좀비들을 대충 처리하고 나면 자기 희생과 신파조의 결말, 그리고 반전이 있는데, 이건 그렇게까지 나쁘진 않습니다. 감독의 한국형 좀비 영화라는 비
전이 실현된 것은 이 신파적인 결말 밖에는 없다는 것이 문제겠지만...
리디아의 크로이소스 왕은 신탁을 통해 '왕이 강대한 왕국을 멸망시킬 것이다' 라는 말을 듣고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시작했는데 그 강대한 왕국이란 뜻밖에도 자신의 나라였다는 얘기가 전해 내려옵니다. 정아는 미래를 보았지만 그걸 어떻게 바꿔야 할지,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는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꿈보다 해몽이 중요하겠죠. 좋지 않은 연기에다가 한없이 늘어지는 별로 재미있지 않은 영화였습니다.
1. 사냥꾼이 우진에게 한 대 맞고 침을 뱉은 다음에 피를 흘렸다고 난리치는 장면이 압권이었습니다.
2. 승헌 좀비는 강시 노릇도 합니다.
3. 이 영화에서 숲의 범위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일까요? 숲과 그 일대?
4. 마지막 장면에서 숲으로 들어간 살인마들이 뒷정리를 해 주리라 믿습니다.
5. 무당 집안의 그 능력이란 건 핏줄과는 아무 상관 없었군요.
6. 그 자기 희생도 사실은 나약함에서 나온 것 아닌지.
- 2006.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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